태극도 역사
- 1. 구천상제님(강증산) 천지공사 역사 (1871~1909)
- 2. 옥황상제님(도주님) 태극도 창도 역사(1895~1958)
- 3. 도주님 화천 후 고난의 역사 (1958~2007)
- 4. 태극도 바로세우기 역사 (2008~현재)
1. 구천상제님(강증산) 천지공사 역사 (1871~1909)
1) 1871년 신미년
1871년 신미년 9월 19일 강일순 (증산)
구천상제님께서 전라북도 고부군 우덕면
객망리에서 강세하셨습니다.
2) 1901년 신축년
1901년 신축년 6월 모악산 대원사에서
49일 동안 공부 후 7월 초5일 대오 자각하시고
삼계공사를 시작하셨습니다.
3) 1906년 병오년
종도들을 거느리시고 경상도 부산(釜山)에 행행하셔서
"이곳이 바로 산진수회처(山盡水廻處)며 세계의 관문이고
후천선경의 기지가 될 곳이므로 소 백두(百頭)를 잡아
공사를 보아야 하리로되, 음동(音同)을 취하여
백우(白牛)로써 대신하리라. "하시며 흰 소 한 마리로써
치성을 올리게 하시고 공사를 행하시니라.
4) 1908년 무신년
1908년 무신년 10월에 고부 와룡리에서
황극신 공사를 통해 청국 광서제에 응기된 항극기운을
만동묘로 옮겨오시는 공사를 보셨습니다.
( 청국 광서제 → 송우암 만동묘 )
5) 1909년 기유년 (도통(道統))
1909년 기유년 4월 28일에 김보경 이치복 등
종도 몇 사람을 거느리시고 대전역 철도 주변에
행행하셔서 혼자 말씀으로 “올 때가 되었는데…”
기차를 보시고 반겨하시며 “ 이제 나의 일은
다 이루었도다 남아 십오세면 호패를 차느니
무슨 일을 못하리요”
“과연 인유기인 시유기시로다” 하시고
한참 동안 서 계시니라.
6) 1909년 기유년 (본소)
정읍 마동에 임어하셔서 매씨 선덕부인
(구천상제님 누이 동생)에게 하명하시기를
“너는 이 본소에서 을미생을 기다리라 그는
나의 도통(道統)을 이을 진인이니라……”
하셨습니다.
1) 1871년 신미년
1871년 신미년 9월 19일 강일순 (증산) 구천상제님께서 전라북도 고부군 우덕면 객망리에서 강세하셨습니다.
2) 1901년 신축년
1901년 신축년 6월 모악산 대원사에서 49일 동안 공부 후 7월 초5일 대오 자각하시고 삼계공사를 시작하셨습니다.
3) 1906년 병오년
종도들을 거느리시고 경상도 부산(釜山)에 행행하셔서 "이곳이 바로 산진수회처(山盡水廻處)며 세계의 관문이고 후천선경의 기지가 될 곳이므로 소 백두(百頭)를 잡아 공사를 보아야 하리로되, 음동(音同)을 취하여 백우(白牛)로써 대신하리라. "하시며 흰 소 한 마리로써 치성을 올리게 하시고 공사를 행하시니라.
4) 1908년 무신년
1908년 무신년 10월에 고부 와룡리에서 황극신 공사를 통해 청국 광서제에 응기된 항극기운을 만동묘로 옮겨오시는 공사를 보셨습니다. ( 청국 광서제 → 송우암 만동묘 )
5) 1909년 기유년 (도통(道統))
1909년 기유년 4월 28일에 김보경 이치복등 종도 몇사람을 거느리시고 대전역 철도 주변에 행행하셔서 혼자 말씀으로 “ 올 때가 되었는데…” 기차를 보시고 반겨하시며 “ 이제 나의 일은 다 이루었도다 남아 십오세면 호패를 차느니 무슨 일을 못하리요” “과연 인유기인 시유기시로다” 하시고 한참 동안 서 계시니라.
6) 1909년 기유년 (본소)
정읍 마동에 임어하셔서 매씨 선덕부인 (구천상제님 누이 동생)에게 하명하시기를 “너는 이 본소에서 을미생을 기다리라 그는 나의 도통(道統)을 이을 진인이니라……” 하셨습니다.
2. 옥황상제님(도주님) 태극도 창도 역사 (1895~1958)
1) 1895년 을미년
1895년 을미년 12월 4일
조철제(정산) 도주님께서 경상남도 칠서면
회산(문)리에서 강세하셨습니다.
2) 1909년 기유년 (15세)
독립 운동을 하시기 위해 만주로 이주하시기로 결정하시고
1909년 기유년 4월 28일 기차를 타고 고향을 떠나셨습니다
15세가 되시던 해 1909년 기유년 4월 28일
대전역 근처의 열차속에서 구천상제님이신
강증산 상제님로부터 계시로 천명을 받으셨습니다.
“내 그대를 기다린지 오래노라. 그대는 삼계의 진주니 …
그대와 나는 증정지간이며.. 이도일체니라” (봉천명)
3) 1917년 정사년 (23세)
1917년 정사년 초에 항우의 고향인
절강성 회계의 객사에서 구천상제님으로부터
계시를 받으신 후 1917년 정사년 2월 10일
중국의 노고산에서 9년 동안 수도(受道)를 하시고
계시로서 득도를 하시고 득도 치성을 올리셨습니다.
이후 계시로 본국으로 돌아가셔서
본소(구천상제님 계시던 곳)를 찾아 가셨습니다.
4) 1917년 정사년 (23세)
1917년 본국으로 돌아오신 후 안면도등에서 공부를 하신 후
계시로 1919년 기미년 1월 15일 본소를 찾으셨습니다.
5) 1919년 기미년 (25세)
1919년 기미년 1월 20일 본소에서 현무경과
천서를 찾으셨습니다. 현무경은 여러벌 존재하여
다른 종파에서도 보유하게 되었으나, 핵심 천서인
주문만은 오직 도주님께서 받으시게 되었습니다.
이후 9월 18일, 천보인 둔계를 모심으로서 구천상제님께서
계시로서 명하신 도통(道統)의 증표인 삼천을 모두 모셨습니다.
(삼천: 천명, 천서, 천보)
6) 1921년 신유년 (27세)
1921년 신유년 4월 28일에 통사동 공부처에서
무극대도를 창도 하셨습니다. 이는 구천상제님의
천지공사를 펼치는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또한, 도주이심을 천명(闡明)하시고, 도호는
정산이심을 선포하셨습니다.
7) 1923년 계해년 (29세)
1923년 치마바위가 있는 비장의 도장처인
태인 도장터를 찾으십니다. 계해년(1923년),
새로운 원(문명,후천)이 시작됨을 선포하시고
“전도문”을 도인들에게 내려주셨습니다.
인류의 역사를 볼 때 원시반본으로 황극에 의한
후천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됨을 밝혀 주셨습니다.
8) 1925년 을축년 (31세)
1925년 을축년 4월 28일에 무극대도의 태인 도장을
영건하시고 영대의 봉안 치성을 모셨습니다.
도의 체계인 신조, 강령, 도규 등을 공표하셨습니다.
9) 1935년 을해년 (41세)
일제 점령기인 1935년(을해년) 12월 24일에
종교 해산령으로 1936년 병자년 1월1일
치성 후 잠룡도수가 시작되었습니다.
10) 1945년 을유년 (51세)
1945년 을유년 7월8일에 태극도 도명을
하명하셨으나 공표는 보류하셨습니다.
이후 회룡재와 회문도장에서 공부하셨습니다.
11) 1947년 정해년 (53세)
1947년 4월에 김룡사의 화장암에서 대장부 도수와
천지일월 음양도수 공사를 보시면서 백일공부를 하셨습니다.
공부를 마치시고 산북면 약석리 박순석의 집에서
20여 일간 계시면서 공사를 보셨습니다.
12) 1948년 무자년 (54세)
1948년 무자년 1월 1일에 잠룡도수 10년을 지나
현룡도수를 선언하시면서 현룡 비룡을 거쳐 관록 제왕기를
맞으리라 하십니다. 태극도 도명을 공표하시게 하시니라.
또한 부산에 가서 산맥이 끝나는 곳, 용은 물이 있어야 하니
바다가 보여야 하며, 수자가 든 땅으로서 태인도장처럼
치마바위가 있어야 도수에 맞으므로 찾도록 명하시고 보수동을
찾으셨습니다. 회문도장에서 보수동으로 이전 (3월15일)
하도록 하셨고 보수동을 부산행재소로 명명하셨습니다.
1년 후 1949년 1월 1일 보수동을 부산 도장으로 명명하게 하셨습니다.
13) 1954년 갑오년 (60세)
1954년 갑오년 3월 27일 부산도장(보수동)으로
환어하시는 길에 만동묘지와 묘비를 친감하시며
황극신도수와 대신문도수를 보시었습니다.
14) 1955년 을미년 (61세)
1955년 을미년 10월 말에 800호의 도인들이
감천으로 이주하시게 하셨습니다.
1956년 3월 1일 태극도 취지서 등 통감,
도인의 수칙 등을 하달 공표하셨습니다.
15) 1956년 병신년 (62세)
1956년 병신년 7월29일에는 부산도장을 보수도정으로
명명하시고 감천의 구덕정사를 부산도장으로 명명하셨습니다.
16) 1957년 정유년 (63세)
1957년 정유년 4월 28일에는 도인들이 수도할 우주지간에
유일무이한 대강전을 영건하시고 영대 봉안치성을 모시게 되어
50년 공부종필하실 토대를 마련하셨습니다.
1957년 정유년 4월 28일에는 도인들이 수도할 우주지간에
유일무이한 대강전을 영건하시고 영대 봉안치성을 모시게 되어
50년 공부종필하실 토대를 마련하셨습니다.
17) 1957년 정유년 (63세)
1957년 정유년 9월 18일 하오에 상제님께서 임원들을
중궁에 시립하게 하시고, 친히 영대의 옥황상제님 위폐의
위지를 떼어 소화하신 다음, 그 위에 옥체진영을 봉안하시니라.
하셨습니다.
12월 3일에는 양위진영의 크기를 동일하게 새로 조성하셔서
다음날 상제님 강세치성 직전에 봉안하시니라 하셨습니다.
18) 1957년 정유년 (63세)
1957년 11월 18일 갑신 자시부터 시학공부를 개시하시고
법단에서 백일 공부를 시작하셨습니다.
19) 1958년 무술년 (64세)
1958년 무술년, 2월 28일 법단에서 벡일 공부를 마치시고
도주님께서 50년 공부 종필을 선언하시게 됩니다.
“ 이제 내가 이 세상에서 볼 도수는 모두 마쳤으니
이로써 종필이니라.” 하셨습니다.
수도 법방 체계 완성하셨습니다.
내가 명한 수도법방은 공부종필의 총결정이며 전무후무한
삼계의 진법이니, 유구 5만 년 도인의 규구니라,
수신 수도 영통 도통(道通)이 이를 떠나서는 있을 수 없느니라”
“공부는 우리 태극도의 생명인 동시에 광구천하의
유일무이한 진법임을 재삼 명각하라”하셨습니다.
20) 1958년 무술년 (64세)
1958년 무술년 3월 6일, 양력 4월 24일이시고 일진은 신미,
시각은 을미시인 하오 1시 37분, 64세로 화천하셨습니다.
1) 1895년 을미년
1895년 을미년 12월 4일
조철제(정산) 도주님께서 경상남도 칠서면
회산(문)리에서 강세하셨습니다.
2) 1909년 기유년 (15세)
독립 운동을 하시기 위해 만주로 이주하시기로 결정하시고 1909년 기유년 4월 28일 기차를 타고 고향을 떠나셨습니다. 15세가 되시던 해 1909년 기유년 4월 28일 대전역 근처의 열차 속에서 구천상제님이신 강증산 상제님로부터 계시로 천명을 받으셨습니다. “내 그대를 기다린지 오래노라. 그대는 삼계의 진주니 … 그대와 나는 증정지간이며.. 이도일체니라” (봉천명)
3) 1917년 정사년 (23세)
1917년 정사년 초에 항우의 고향인 절강성 회계의 객사에서 구천상제님으로부터 계시를 받으신 후 1917년 정사년 2월 10일 중국의 노고산에서 9년 동안 수도(受道)를 하시고 계시로서 득도를 하시고 득도 치성을 올리셨습니다. 이후 계시로 본국으로 돌아가셔서 본소(구천상제님 계시던 곳)를 찾아 가셨습니다.
4) 1917년 정사년 (23세)
1917년 본국으로 돌아오신 후 안면도등에서 공부를 하신 후 계시로 1919년 기미년 1월 15일 본소를 찾으셨습니다.
5) 1919년 기미년 (25세)
1919년 기미년 1월 20일 본소에서 현무경과 천서를 찾으셨습니다. 현무경은 여러 벌 존재하여 다른 종파에서도 보유하게 되었으나, 핵심 천서인 주문만은 오직 도주님께서 받으시게 되었습니다. 이후 9월 18일, 천보인 둔계를 모심으로써 구천상제님께서 계시로써 명하신 도통(道統)의 증표인 삼천을 모두 모셨습니다. (삼천: 천명, 천서, 천보)
6) 1921년 신유년 (27세)
1921년 신유년 4월 28일에 통사동 공부처에서 무극대도를 창도 하셨습니다. 이는 구천상제님의 천지공사를 펼치는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또한, 도주이심을 천명(闡明)하시고, 도호는 정산이심을 선포하셨습니다.
7) 1923년 계해년 (29세)
1923년 치마바위가 있는 비장의 도장처인 태인 도장터를 찾으십니다. 계해년(1923년), 새로운 원(문명,후천)이 시작됨을 선포하시고 “전도문”을 도인들에게 내려주셨습니다. 인류의 역사를 볼 때 원시반본으로 황극에 의한 후천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됨을 밝혀 주셨습니다.
8) 1925년 을축년 (31세)
1925년 을축년 4월 28일에 무극대도의 태인 도장을 영건하시고 영대의 봉안 치성을 모셨습니다. 도의 체계인 신조, 강령, 도규등을 공표하셨습니다.
9) 1935년 을해년 (41세)
일제 점령기인 1935년(을해년) 12월 24일에 종교 해산령으로 1936년 병자년 1월1일 치성 후 잠룡도수가 시작되었습니다.
10) 1945년 을유년 (51세)
1945년 을유년 7월8일에 태극도 도명을 하명하셨으나 공표는 보류하셨습니다. 이후 회룡재와 회문도장에서 공부하셨습니다.
11) 1947년 정해년 (53세)
1947년 4월에 김룡사의 화장암에서 대장부 도수와 천지일월 음양도수 공사를 보시면서 백일공부를 하셨습니다. 공부를 마치시고 산북면 약석리 박순석의 집에서 20여 일간 계시면서 공사를 보셨습니다.
12) 1948년 무자년 (54세)
1948년 무자년 1월 1일에 잠룡도수 10년을 지나 현룡도수를 선언하시면서 현룡 비룡을 거쳐 관록 제왕기를 맞으리라 하십니다. 태극도 도명을 공표하시게 하시니라. 또한 부산에 가서 산맥이 끝나는 곳, 용은 물이 있어야 하니 바다가 보여야 하며, 수자가 든 땅으로서 태인도장처럼 치마바위가 있어야 도수에 맞으므로 찾도록 명하시고 보수동을 찾으셨습니다. 회문도장에서 보수동으로 이전 (3월15일) 하도록 하셨고 보수동을 부산행재소로 명명하셨습니다. 1년후 1949년 1월 1일 보수동을 부산 도장으로 명명하게 하셨습니다.
13) 1954년 갑오년 (60세)
1954년 갑오년 3월 27일 부산도장(보수동)으로 환어하시는 길에 만동묘지와 묘비를 친감하시며 황극신도수와 대신문도수를 보시었습니다.
14) 1955년 을미년 (61세)
1955년 을미년 10월 말에 800호의 도인들이 감천으로 이주하게 하셨습니다. 1956년 3월 1일 태극도 취지서 등 통감, 도인의 수칙등을 하달 공표하셨습니다.
15) 1956년 병신년 (62세)
1956년 병신년 7월 29일에는 부산도장을 보수도정으로 명명하시고 감천의 구덕정사를 부산도장으로 명명하셨습니다.
16) 1957년 정유년 (63세)
1957년 정유년 4월 28일에는 도인들이 수도할 우주지간에 유일무이한 대강전을 영건하시고 영대 봉안치성을 모시게 되어 50년 공부종필하실 토대를 마련하셨습니다.
1957년 정유년 4월 28일에는 도인들이 수도할 우주지간에 유일무이한 대강전을 영건하시고 영대 봉안치성을 모시게 되어 50년 공부종필하실 토대를 마련하셨습니다.
17) 1957년 정유년 (63세)
1957년 정유년 9월 18일 하오에 상제님께서 임원들을 중궁에 시립하게 하시고, 친히 영대의 옥황상제님 위폐의 위지를 떼어 소화하신 다음, 그 위에 옥체진영을 봉안하시니라. 하셨습니다.
12월3일에는 양위진영의 크기를 동일하게 새로 조성하셔서 다음날 상제님 강세치성 직전에 봉안하시니라 하셨습니다.
18) 1957년 정유년 (63세)
1957년 11월 18일 갑신 자시부터 시학공부를 개시하시고 법단에서 백일 공부를 시작하셨습니다.
19) 1958년 무술년 (64세)
1958년 무술년, 2월 28일 법단에서 벡일 공부를 마치시고 도주님께서 50년 공부 종필을 선언하시게 됩니다. “ 이제 내가 이 세상에서 볼 도수는 모두 마쳤으니 이로써 종필이니라.” 하셨습니다. 수도 법방 체계를 완성하셨습니다. “내가 명한 수도법방은 공부종필의 총결정이며 전무후무한 삼계의 진법이니, 유구 5만 년 도인의 규구니라, 수신 수도 영통 도통(道通)이 이를 떠나서는 있을 수 없느니라” “공부는 우리 태극도의 생명인 동시에 광구천하의 유일무이한 진법임을 재삼 명각하라 ”하셨습니다.
20) 1958년 무술년 (64세)
1958년 무술년 3월 6일, 양력 4월 24일이시고 일진은 신미, 시각은 을미시인 하오 1시 37분, 64세로 화천하셨습니다.
3. 도주님 화천 후 고난의 역사 (1958~2007)
1) 주문 변경 (1967년)
1958년 무술년 3월 6일, 화천이후 9년만인 1967년 4월 14일
당시 태극도 박한경 도전은 대운대사 부분을 도문소자
변경하게 되었습니다.
1970~80년대에 와서는 “태극도주 옥황조성상제 도문소자
소원성취케~”로 변경하였고 1989년에 와서는
“태극도 도문소자 소원성취케” 라는 신위가 아닌 인위격으로
변경하면서 상제님께서 이루어 놓으신 대업이 2000년대에 와서는
존폐의 위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도인들의 욕심으로 주문이 훼손되었으나 2014년에 와서야
주문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복고치성을 올리고
복원하게 되었습니다.
2) 태극도 분열기
주문 변경, 협동상회 사건등으로 내부 분열이 되어
1968년 7월 19일 결국 분열되었습니다.
이후 단합하기 위해 1968년 9월20일 도인단합 촉구
선언대회가 열렸음에도 결국, 분열의 길을 걸었습니다.
3) 대강전 중창 (’96.1.23)
1994년 8월 10일 대강전 중창 상량식을 거행하였고
1996년 1월 22일 대강전으로 영대 이안 치성을 올리시고
1월23일 준공식을 마치셨습니다. 이로써 태극8장 124절
1957년 장래의 도장정비를 하교하시며” 적어도
1군단 1,620명은 수용할 수 있는 건물을 지어야 하며,
그곳에서 비를 맞지 않고 대강전에 출입할 수 있는 지하도라도
내도록 하라”하시니라의 하교를 이행하게 되었습니다.
1) 주문 변경 (1967년)
1958년 무술년 3월 6일, 화천이후 9년만인 1967년 4월 14일 당시 태극도 박한경 도전은 대운대사 부분을 도문소자 변경하게 되었습니다. 1970~80년대에 와서는 “태극도주 옥황조성상제 도문소자 소원성취케~”로 변경하였고 1989년에 와서는 “태극도 도문소자 소원성취케” 라는 신위가 아닌 인위격으로 변경하면서 상제님께서 이루어 놓으신 대업이 2000년대에 와서는 존폐의 위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도인들의 욕심으로 주문이 훼손되었으나 2014년에 와서야 주문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복고치성을 올리고 복원하게 되었습니다.
2) 태극도 분열기
주문 변경, 협동상회 사건등으로 내부 분열이 되어 1968년 7월 19일 결국 분열되었습니다. 이 후 단합하기 위해 1968년 9월20일 도인단합 촉구 선언대회가 열렸음에도 결국, 분열의 길을 걸었습니다.
3) 대강전 중창 (’96.1.23)
1994년 8월 10일 대강전 중창 상량식을 거행하였고 1996년 1월 22일 대강전으로 영대 이안 치성을 올리시고 1월23일 준공식을 마치셨습니다. 이로써 태극8장 124절 1957년 장래의 도장정비를 하교하시며” 적어도 1군단 1,620명은 수용할 수 있는 건물을 지어야 하며, 그곳에서 비를 맞지 않고 대강전에 출입할 수 있는 지하도라도 내도록 하라”하시니라의 하교를 이행하게 되었습니다.
4. 태극도 바로세우기 역사 (2008~현재)
1) 능소 개방 (2011년)
2011년 9월 1일부터 옥황상제님 능소가 개방되었습니다.
이념과 사상을 넘어서 도주님을 모시는 많은 분들이 다녀가셨습니다.
참배를 원하시는 분들은 누구라도 오셔서 참배하시기 바랍니다.
- 기간: ‘11년 9월 1일부터 상시
- 시간: 오전 10시~오후6시
- 주소: 부산시 사하구 감천2동 105번지
2) 주문 복원 (2014년)
2014년 4월 12일 복고치성 후 주문을 도문소자에서
태극도주 옥황조성상제 대운대사 소원성취케 하옵소서로
복원하였습니다.
3) 납폐지, 구덕정사 내부복원 (2018년)
2018년 5월 20일에는 기도 모실때의 납폐지에서
납폐할 곳 (산회당, 구덕정사)을 복원하였습니다.
-2018년 3월에 구덕정사 내부를 도주님 재새시의 모습으로
복원하였고 백우바위도 원래 있던 곳으로 환원하였습니다.
4) 수련/시학 공부 (2017년/2020년)
2017년 6월부터 대강전에서 집중적인 수련을 시행하였습니다.
‘19년 12월 코로나가 전세계적으로발생하면서
‘20년 3월, 6월, 9월 세번에 걸처 본부를 폐쇄하고
45일간 시학공부를 하셨습니다.
시학공부는 대강전을 중창한 이후 처음 열렸습니다.
5) 온라인 기도 방송 (2020년)
2019년 12월 중국의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로 인해
대면기도 공부등이 힘들어지자 ‘20년 8월20일 시험 방송을
시작하여 ‘20년 9월 1일 밴드에서 실시간 온라인 방송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온라인으로 실시간 기도를 모실 수
있게 되면서 태극도의 모든 도인들이 한 가족처럼
각 도가에서 함께 기도를 모실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도우들간에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고 챙겨주고
함께하는 화기만당의 기운이 돌고 있습니다.
1) 능소 개방 (2011년)
2011년 9월 1일부터 옥황상제님 능소가 개방되었습니다. 이념과 사상을 넘어서 도주님을 모시는 많은 분들이 다녀가셨습니다. 참배를 원하시는 분들은 누구라도 오셔서 참배하시기 바랍니다.
- 기간: ‘11년 9월 1일부터 상시
- 시간: 오전 10시~오후6시
- 주소: 부산시 사하구 감천2동 105번지
2) 주문 복원 (2014년)
2014년 4월 12일 복고치성 후 주문을 도문소자에서 태극도주 옥황조성상제 대운대사 소원성취케 하옵소서로 복원하였습니다.
3) 납폐지, 구덕정사 내부복원 (2018년)
2018년 5월 20일에는 기도 모실때의 납폐지에서 납폐할 곳 (산회당, 구덕정사)을 복원하였습니다. -2018년 3월에 구덕정사 내부를 도주님 재새시의 모습으로 복원하였고 백우바위도 원래 있던 곳으로 환원하였습니다.
4) 수련/시학 공부 (2017년/2020년)
2017년 6월부터 대강전에서 집중적인 수련을 시행하였습니다. ‘19년 12월 코로나가 전세계적으로 발생하면서 ‘20년 3월, 6월, 9월 세 번에 걸처 본부를 폐쇄하고 45일간 시학공부를 하셨습니다. 시학공부는 대강전을 중창한 이후 처음 열렸습니다.
5) 온라인 기도 방송 (2020년)
2019년 12월 중국의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로 인해 대면기도, 공부 등이 힘들어지자 ‘20년 8월20일 시험 방송을 시작하여 ‘20년 9월 1일 밴드에서 실시간 온라인 방송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온라인으로 실시간 기도를 모실 수 있게 되면서 태극도의 모든 도인들이 한 가족처럼 각 도가에서 함께 기도를 모실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도우들간에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고 챙겨주고 함께하는 화기만당의 기운이 돌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