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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구천상제님 연보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1-12-20
파 일


 

강증산(구천상제님)의 연보

 

  구천상제님께서 도력기원전 38년(1891년) 신미년(辛未年) 음력 9월 19일 전라북도 고부군 우덕면 객망리에 강세하시니 성은 강, 본관은 진주, 어휘는 일순, 어자는 사옥, 어호는 증산이시다. 어릴적부터 호생지덕이 많으셨다.

 

7세때

훈장에게 천자문을 배우실때 하늘 천(天)자와 땅 지(地)자를 따라 읽으시고 하늘, 땅의 이치를 알았다고 말씀하시고, 유가(儒家)의 경서(經書)와 불가서(佛家書), 제자백가서(諸子百家書) 등을 두루 섭렵.

13세때

부친께서 박부자에게 진 부채 수백량을 50량으로 탕감 받으시고 모친께서 친히 짜신 모시베를 정읍장에서 잃었다가 고창장에서 다시 찾음.

15세때

학업을 중단하시고 정읍 거사막에서 남의집 보리거둥도 하시고 장성 백양사 부근에서 벌목작업도 하심.

17세때

주정꾼행패에 돌절구통이 날아옴.

24세때

1894년(갑오년) 금주군 초처면에 있는 처남 정남기의 집에서 서당을 열어 훈학하시다가 김형렬의 청으로 동곡 학선암으로 옮기심.
5월 어느날 꿈에 신선이 나타나서 '저는 후천진인(後天眞人)으로서 천지현기(天地玄機)와 천하대세를 은밀히 의논하고자 하옵는바 먼저 무극의 체(體)를 설하시면 후에 태극의 용(用)으로 화(化)하리라.' 하니라.
전봉준이 동학당을 모아 의병을 일으켜 항거하니 눈 내릴때 패망할 것을 예언하시고 김형렬과 안필성의 가담을 만류하심. 예언대로 동학군이 패망

25세때

송광사 승려들의 무례함에 법당기둥 잡아당김.

27세때

다시 처가에 서당을 개설하여 훈학하시고 유불선(儒佛仙), 음양, 참위의 서적 열독하시고 광구천하(匡救天下)에 도움이 되리라 하심.
광구천하의 뜻으로 3년간 팔도를 주유하심.
충청도 연산(連山)에서 역학자(易學者) 김일부에게 들러시니 어제

30세때

귀향후 시루산에서 호둔공부도 하심 정확한 호구조사 하심.

31세때

1901년(신축년) 선대의 공명첩을 불태우시고 대원사를 들어가셔서 49일간 두문수도 하셔서 몸소 삼계의 무극주로써 구천상제의 당체(當體)이심을 대오자각(大吾自覺),천지인삼계공사(天地人三界公事)행하심.

1901년

본댁에서 삼계공사(三界公事)를 행하심.

1902년

김형렬외 김자현, 김갑철, 김보경, 한공숙 등이 차례로 추종하였고, 신미년(辛未年)에 몸소 인신으로 강세하신 이유를 밝히셨다.
"삼계대권을 주재하여 조화로써 천지를 개벽하고 불로불사(不老不死)의 선경을 열어 비겁에 빠진 중생을 건지려하노라"하시며 형렬에게 신안(神眼)을 열어주심.
처음으로 이경오에게 치병법을 베푸심.
명부공사(冥府公事)를 행하심.(명부공사의 심리에 따라 세상의 모든 일이 결정되느니 명부의 혼란으로 세상이 혼란하게 됨으로)
상극지리 → 상생시대
해원(解寃) ①단주의 해원 - 위수(爲首)
②만고역신의 해원 - 위차(爲次)

1903년

서원규, 백남신, 김병욱, 김윤찬 등이 추종.
김병욱의 화역을 풀어주심.
이때 서양세력을 물리치기 위하여 '천지대신문(天地大神門)'을 열고 공사를 행하심.
겨울 어느날 혼자 말씀으로 "내일이 어찌 이렇게 더딘고"하시니 보경이 여쭈기를 "무엇이 그리 더디나이까"하니 "내 이제 신명을 시켜 진인(眞人)의 나이를 찾아보니 아직 아홉살 밖에 되지 않은지라, 내 일과 때가 이렇게 더디니 어찌 민민하지 않으리요"하심.
보경이 "그러하오면 저희들은 모두 무용지인(無用之人)이요, 지금까지 헛되이 수종하옴이니까? 하고 상고하니 "체유기체 용기기용이며, 시유기시, 인유기인"이니라 하심.

1904년

백남신의 관액을 풀어주심.
장효순의 난으로 피신하심.
동학신도들이 일진회를 조직 하였으나 민폐를 끼치지 못하게 하심.
김병욱의 파직을 면하게 하심.
박순여에게 정성껏 심고하라고 하심.
김사명의 죽은 아들을 살려내심.

1905년

신원일, 김광찬, 소진섭, 김성화 등이 추종.
신원일의 청으로 풍재를 막아주셨으나, 천약(天約)을 어김으로써 어업이 철폐됨.
일진회원과 아전의 싸움을 화해시킴.
신원일이 속히 운수를 열어 주시기를 간청하므로 상제님께서 심히 괴로워하시며 변산 개암사에서...개벽이란 이렇게 쉬우니라 하심.
또 원일의 부친이 진 빚을 탕감케 해주심.

1906년

신원일의 청으로 범포를 탕감케 해주심.
김보경 등 종도들을 거느리시고 부산으로 행행하셔서 '후천선경의 기지가 될곳임'을 말씀하시고 치성을 올리게 하시고 공사를 행하심.
금산사에 행행하셔서 '과연 증정일체(甑鼎一體)며 양산도(兩山道)로다'하시고 화위전녀(化爲全女)와 주초위왕(走肖爲王)을 하교하심.
태인 도창현을 순행하시다가 군신봉조지국(群臣奉詔之局)을 말씀하시고 길가에 단장을 꽂으심.
풍운우로(風雲雨露), 상설뇌전(霜雪雷電), 태양운행을 자재로 하심.

1907년

3월에 20일동안 말점도에 가셔서 천하창생의 죄를 대속하는 공사를 보심.
태인 관왕묘 제원 신경원의 집에서 공사를 행하실 때 관운장이 공사에 협조함. 이후 태인사람 김경학, 최창조, 최내경, 최덕경이 추종.
김준상의 아내가 사경을 헤매는 것을 살려주시고, 그집 사랑방 한칸을 수리하여 후에 약방을 차리심.
5월에 차경석을 만나 종도를 함.(형렬의 집에서 떠나면서 말씀하시기를 '이길은 길행이라.한 사람을 만나려 함이니 장차 네게 알리리라')하시고 음식점에서 차경석을 만남.
또 박공우를 만나 종도로 함.(원평에서 떠나면서 '대진(大陣)은 일행(日行) 30리라.' 하시고 30리가 되는 박공우 집으로 모심.) 그후 문공신, 안내성, 신경수, 박장근 등이 추종.
천지의 조화를 임의로 행하시는 권능을 보여 주심.
박영효, 최면암의 해원공사, 고부인을 수부로 세움.
후천음양도수를 보심.
진당대부께 한 종도가 큰 집을 사드리는것을 꾸짖음.
차경석으로 하여금 동학신명들의 해원공사를 붙이심. 12월 25일에 '천자신(天子神)과 장상신(將相神)을 모아들여 백의군왕(白衣君王) 백의장상(白衣將相) 도수를 보실 때 미리 순검이나 병정이 겁나는 자는 다 돌아가라하셨음. 다음날 새벽 의병 활동의 혐의로 구속되심.

1908년

1월 10일 종도20인이 구류에서 풀려나고 2월 4일 상제님께서 석방되심. 이때 구금되었던 사람은 김형렬, 김자현, 문공신, 공신의형 학철, 오촌조카 수암, 매부 허성희와 김광수, 김공빈, 김참봉, 이화춘, 박장근 등과 그외 9인이였음.
통곡에 행재하실때 백남신의 돈 천냥을 가져오셔서 김준상의 집 방한칸을 수리하시어 약방을 차리시고 약장과 궤를 짜셔서 약장서랍에 '단주수명' '열풍뇌우불미' '태을주'등을 넣으시고 궤안에는 '오강록', '설문', '반구제수'등의 글을 쓰시고 둔궤니라.하심.
또 밤나무 패에 '광제국'이라 쓰시고 불사름.
경수집에 수명소, 경학의 집에 대학교, 경원의 집에 복록소를 정하시고 또 안내성에게 '일등박문이 여기 있는데 이등박문이 어찌 머리를 들리요'하고 꾸짖으라 하시고 그대로 하니 이후에 안중근이 하얼빈에서 이등박문을 사살함. 그리고 남녀동권의 도수와 그밖의 많은 도수의 공사와 병고침이 있으시고 정읍마동으로 가셔서 선덕부인에게 본소가 될 집을 하사하심. 화천하실 것을 예고하시고 다짐을 받으시며 또 '죽는 일은 장차 내게서 보라'하셨으나 깨닫지 못함.
황극신 도수와 태극 도수 공사를 보심.

1909년

1월 1일 현무경을 세권 쓰셔서 한권을 몸소 지니시고 한권을 후일 도창현에서 불사르시고 한권은 안내성에게 맡기심.
많은 유교(遺敎)와 유문(遺文)을 남기심.
청도원에서 청국공사와 대신문공사를 보시고
운장주, 태을주 도수를 보심. 또 이십칠년 허도수 보심.
도운(道運)을 보리라 하시며 사두용미(蛇頭龍尾)라, 문명(文命)은 후일 진경(眞經)으로 나오리라 하심.
4월 28일 김보경, 이치복 등 종도 몇사람을 거느리시고 대전역 근처의 철도 주변에 가셔서 '올때가 되었는데...'하시고 마침 남쪽에서 오는 기차를 보시며 '이제 나의 일을 이루었도다. 남아 15세면 호패를 차느니 무슨일을 못하리요, 과연 인유기인(人有其人) 시유기시(時有其時)로다'하심
대두목, 법방도수 공사 보심.
6월 20일 동곡약방에 종도들을 모이게 하여 제차 믿음을 다짐 받으시고 창생들의 온갖 병을 번갈아 대속하시고 '세상의 모든병을 내가 다 대속하였으나 한가지 괴질은 남겼으니 곧 무도의 병이요, 의통을 전하느니 곧 진법의 용이니라' 하시고 삼계공사를 마치신후
'포교 오십년 공부종필(工夫終筆)쓰시고 불사르심.
6월 23일 김형렬의 딸을 수부로 세움.
차경석에게 하명하셔서 '대시태조(大時太祖), 출세(出世), 창생(蒼生), 점고(點考), 후비소(后妃所)'를 경석이 받아쓸때 비(妃)자를 비(砒)자로 잘못 썼으므로 찢어 소화하시고 다시 쓰게 하심.
6월 24일 이른 아침에 경석을 부르셔서 "무식하고 똑똑하지 못한 것이 무슨 정가냐?" 하시고 사시(巳時)에 태을주를 외우시다가 와석하시니 인세향수는 39년이시다.
종도들은 뿔뿔이 흩어져 돌아가고 김형렬, 차경석, 박공우, 김자현, 김갑칠, 김덕찬 등 6인만 남아서 진당대부 모시고 약방 뒷산에 외빈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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