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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황새마을 공부처(후천 해원도수의 공사인 초패왕 해원도수 보신곳)
작성자 작성일 2012-01-10
파 일

 

 

 

태극 2장 34절
10월에 상제님께서 우일재 공부를 마치신 다음, 시종들을 거느리시고 다시 원평으로 행행하셔서 정률로 하여금 정읍군 감곡면 계룡리(桂龍里) 
황새마을 이병건(李炳健)의 집을 매수하게 하셔서 공부하시며 천명을 기다리기로 하시고, 이해 12월에 안면도의 가족과 도인 일부를 그곳으로 이사시키시니라.


태극 2장 35절
상제님께서 
황새마을 공부처에서 수도하시며 포덕하시니 30여인이 입도하니라. 이 소식을 들은 이치복이 여러 차례 찾아와서 “증산선생님께서"해인(海印)은 너에게 주신다"하셨으므로 그 교법과 공사가 모두 나를 위하여 하신 것이니 나의 제화교(濟化敎)를 믿고 수도하면 될 터인데 본소는 찾아서 무엇하리요?” 하며 유인하였으나 허락하지 아니하시니라.


태극 2장 36절
이달 26일에 상제님께서 
황새마을 공부처에서 여러 도인을 거느리고 공부하시더니 신시경에 자못 기뻐하시며 말씀하시기를 “나는 오늘 초패왕(楚覇王)의 원척을 풀었노라. 이제 후천 해원도수의 이 공사로써 그 원척을 풀었으니 이로부터 인간 세상의 모든 원척이 차츰 풀리어 상생(相生)의 새 판국이 열리리라. 천지간의 원척이 신명과 사람 사이에도 쌓여 있고, 또 나라와 나라 사이, 금수초목(禽獸草木)에 까지 없는 곳이 없어서 군생(群生)이 척신 망령(妄靈)에 시달림을 받았으니 어찌 평온한 날이 있었으리요? 그러나 이 해원도수에 따라 모두 해원, 광구(匡救)되어 장차 5만년 청화선경(淸華仙境)이 절로 이루어지게 하리라.” 하시니라.


태극 2장 42절
“부인께서는 현숙하신 성품으로 유명(遺命)을 받들어 일심으로 10년을 고대하고 계시옵니다. 저희는 부인을 고모님으로 존대하며 시종들고 있사온데 오늘 아침 절사 후에 고모님께서 처음으로 저에게 이와 같은 사실을 말씀하시고"?오늘 새벽 하느님의 계시를 받들매 만주 봉천에서 오신 조(趙)씨라는 청년도사가 지금 원평 건너 
황새마을에서 공부하며 본소를 찾으려 애쓴다 하시니 네가 가서 사실을 알아본 다음, 너의 집에 모시고 내게 전하라."?하셔서 이렇게 찾아뵈었사오니 속히 가사이다.” 하므로 상제님께서 그 말에 따라 박여인 집으로 임어하시니라.


태극 2장 53절
이때 상우에게 하명하시기를 “너는 곧 
황새마을로 가서 네가 본 대로 이 소식을 전하되, 나의 일은 모두 천기니 외인에게는 누설하지 말도록 할 것이며, 도인들을 독려하여 포덕에 더욱 힘쓰도록 하라. 이곳에는 누구의 왕래도 금하되, 너는 5일에 한 번씩 와서 경과를 보고하고 명령을 받아 갈 것이며, 상식을 이곳으로 보내어 나를 시봉하게 하라.” 하시므로 상우가 명을 받들어 봉행하니라. 


태극 2장 54절
상우가 본소와 천서의 소식을 알리고 하명을 전하니 가족과 도인들의 감격은 이루 형언할 수 없었으며 포덕이 날로 늘어나서 
황새마을에는 도인들의 내왕으로 문전성시(門前成市)를 이루니라. 상우가 명령대로 5일만에 본소에 가서 상제님께 배알하고 황새마을의 경과와 시국의 사정을 보고하니 “너희들은 오직 공부와 포덕에만 전념하라.” 하시고 더 말씀이 없으시니라.


태극 2장 55절
2월 초3일에 상우가 다시 본소에 가니 상제님께서 하명하시기를 “이번에 이 나라 전역에 걸친 독립만세운동은 이미 구천상제님께서 짜 놓으신 도수에 의함이며, 내가 이제 공부로써 결정함이니 아버님과 숙부께 말씀드려 전 도인이 이 운동에 적극 참여하도록 하라. 또 너는 속히 안면도에 가서 그곳 도인들에게 나의 소식과 명령을 전달하여 포덕에 더욱 진력하는 동시, 거사에 적극 참여하도록 하고 그곳에 남은 가족은 
황새마을로 이사하되 가산은 정리하여 황새마을에 대토(代土)하도록 하라.” 하시니라. 안면도 가족이 이사할 때 삼일운동을 제압하려는 왜경의 단속으로 극심한 고난을 겪었으나 낭패는 없으니라.


태극 2장 57절
5월 초에 상제님께서 본소에서 백일공부를 마치시고 고모님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번에 공부를 무사히 성취함은 부인의 공덕이옵니다. 나는 이번 공부로써 천서의 진리를 체득하였사온 바, 이제 진주로서 구천의 도수에 따른 대도를 선포하여야 할 방책이 확립되었나이다. 부인께서는 앞으로도 증산상제님의 유업(遺業)을 받들던 성?경?신으로써 도의 일을 계속 추원(推援)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대도 사업을 위하여 가족들은 
황새마을로 이사하여 도인들과 더불어 생활하심이 좋으리이다.” 하시니라. 고모님께서도 흔연히 동의하시고 말씀대로 시행하여 이때부터 평생토록 창도사업을 보좌하시니 고모님의 도호는 선덕부인(宣德夫人)이시며 도중고모(道中姑母)님으로 존칭하니라.


태극 2장 58절
상제님께서 
황새마을로 환어하셔서 도인들에게 하명하시기를 “내가 본소와 천서를 찾아 구천상제님의 도통(道統)을 봉승(奉承)하고 백일공부를 마침으로써 상제님께서 짜 놓으신 도수에 따른 나의 할 일이 확정되었으니 그대들은 내가 하는 일이 곧 상제님의 일임을 믿고 따를지니라. 증산상제님의 유족은 이곳에 거처를 마련하여 편히 모시도록 하라. 나는 다시 조용한 곳에 가서 공부하며 도수를 보려 하니 상우는 자주 와서 영을 받아 가라.” 하시고 김제 금산면 청도리 구성산(九星山) 학선암(學仙庵)에 설석(設席)하셔서 공부하시니 조주일(曺周一)이 시봉하고 상우는 5일에 한 차례씩 배알, 봉명하니라.


태극 2장 59절
윤7월 그믐에 상제님께서 학선암에서 백일공부를 마치시고 환어하시니 
황새마을 집은 많은 도인들로 번잡할 뿐더러, 동네 가운데 있어서 공부하시기에 적합하지 않으므로 감곡면 통사동(通士洞)의 한적한 이씨재실(李氏齋室) 영모재(永慕齋)를 얻으셔서 가족 일부를 이사시키시고 공부설석하시니 상우와 주일 등이 시봉하였으며, 재실주인 이준세(李俊世)도 입도하여 수종하니라.


태극 2장 61절
8월 초순에 상우에게 하명하시기를 “미구에 들어오는 큰 도수에는 도의 심복이 될 천하장사 두어 사람이 필요하니 너는 도장께 구인지사(求人之事)를 여쭈어라.” 하시므로 상우가 
황새마을에 가서 그대로 여쭈니라. 도장께서는 왕년에 만주에서 독립운동하실 때의 동지들을 통하여 수소문하신 끝에 함경도 백두산 산중까지 가셔서 독립투사 최승오(崔勝五), 김계철(金啓澈)을 달포만에 데려오시니라.


태극 3장 12절
5월에 상제님께서 서산공께 청탁하셔서 기유(己酉)년 망명 후에 남의 소유가 된 회문리(會文里)의 옛집을 사들여 복구하게 하시고, 그 가족을 이주시켜 옛집과 선영(先塋)을 수호하며 농사로 생계하게 하시니 서산공께서는 
황새마을과 회문리를 수시로 왕래하며 이를 감독하시니라.


태극 3장 25절
상제님께서 대문 쪽으로 출어하심을 본 정두는 급히 뒤따랐으나 이내 보이지 않으시고, 폭도들만 좌우에서 달려들므로 날래게 피하여 
황새마을까지 뛰어가서 이 사실을 서산공께 알리니라. 숭덕부인께서도 대문으로 나가시는 상제님을 폭도들이 추격함을 보시고 뒤따랐으나 보이지 않아 찾지 못하시고 언덕 너머 아랫동네로 뛰어가시며 “영모재에 강도 들었다.” 하고 외치시고 황새마을 본댁으로 돌아가시니라.


태극 3장 28절
한편 서산공께서는 정두로부터 급보를 받으시고 
황새마을 청년도인 수십명을 동원시켜 황급히 통사동에 이르셨으나, 폭도들이 도주한 후이므로 교대로 파수보게 하시다가 날이 밝은 후에 돌려보내시니라. 도장께서는 입원 중에도 아우들과 함께 상제님의 신변을 염려하셔서 당분간 거처를 옮기시도록 간곡히 권유하시니라.


태극 3장 29절
상제님께서 숙부(叔父)들의 권유에 따라 
황새마을로 거둥하셔서 며칠 동안을 본댁과 조송제(趙松濟)의 집으로 바꾸어 옮기시며 유어(留御)하시는데, 폭도들은 매일 2, 3명씩 작당하여 형사로 가장하고 통사동과 황새마을을 번갈아 뒤를 밟으니라. 하루는 그들이 상제님께서 본댁에 행재하심을 탐지(探知)하고 들어가면 송제의 집에, 또 송제의 집으로 찾아가면 본댁에 행재하셔서 그들이 집요하게 추적하였으나 끝내 찾지 못하니라.


태극 3장 35절
상우가 
황새마을로 가서 상제님께 배알하고 제가 불민(不敏)하여 수난 당하심을 사죄하니 말씀하시기를 “도수임을 어찌하랴? 도시 천운이나 성사(成事)가 재인(在人)함도 잊지 말라.” 하시니라. 상우가 다시 열수의 배신 경위와 음모 계략을 상세히 보고하고 당분간 이어하시도록 상신하니 서산공도 수긍하시므로 상제님께서는 수년 전에 만주에서 대전으로 이사한 빙택(聘宅)으로 거둥하셔서 설석하시고 공부하시니라.


태극 3장 41절
이에 앞서 빙택에서는 상제님께서 말씀도 없이 출어하신 후 소식이 없으므로 심히 궁금하여 
황새마을 본댁으로 사람을 보내니, 본댁에서는 그의 말을 듣고 당황하니라. 마침 이때 열수가 상우에게 보낸 서신을 보니 “지금 도주와 함께 대전경찰서에 구금되어 있으니 속히 와서 수습하여 달라.” 하는 내용인지라, 비로소 사유를 알고 당일로 서산공과 상우가 대전으로 가니 상제님께서는 이미 환어하신 후니라.


태극 3장 42절
상제님께서 며칠 후 정읍경찰서에서 대전경찰서의 연락을 받고 신변보호를 위하여 파송한 요원의 호위를 받으시며 위풍당당하게 
황새마을로 환어하시니라. 이때 황새마을에서는 폭도들의 만행을 우려하여 달포 전에 통사동 공부처를 비우고 가족들이 모두 합솔하여 있던 중이며 동네에서는 축하연을 베푸니라.


태극 3장 49절
상제님께서 정초에 가족과 시종들을 
황새마을로 돌려보내신 다음, 숭정부인과 상우만을 거느리시고 회문리로 거둥하셔서 며칠 간을 행재하시니라. 이때 서산공의 맏사위인 칠원 구포(龜浦) 사람 배문걸(裵文傑)을 입도시키시고 시봉을 명하시니 문걸은 성정이 순후하고 학문이 뛰어난 선비였으며 이로부터 10여년간 상제님께 지성으로 시종하니라.


태극 3장 51절
5월 초에 밀양 상동면 유천리(楡川里) 도인 장득원(張得遠)의 집에 공부설석하시고 다시 백일간의 단도수를 보시며""진인보두법(眞人步斗法)""으로 수도하시니 혹독한 더위에 겪으신 고초는 형언할 수 없으시니라. 이때에도 숭정부인이 수종하시고 문걸 등이 시봉하였으며 
황새마을 임원들은 교대로 매월 세천과 유천으로 가서 경과를 보고하고 명령을 모시니 이때에 밀양방면 등의 입도인의 수가 급격히 늘어나니라.


태극 3장 56절
11월 그믐에 
황새마을로 환어하셔서 측근 임원들에게만 하교하시기를 “단도수의 단은 법단(法壇), 천제단(天祭壇)의 단이며 단(檀)과 같은 뜻이므로 단군(檀君)의 명호도 이를 취함이니 나의 이 도수로써 해원(解?)의 대운이 제래(齊來)하게 되리라.” 하시니라.


태극 3장 57절
이때 도인의 수가 수만에 달하므로 
황새마을에는 도인들의 왕래를 통제하시고 임원들만 출입하게 하셨으나, 그래도 매일 수십명씩 행렬을 지어 찾아와서 번잡하니라.


태극 4장 5절
상제님께서는 당초에 증산상제님의 유족을 
황새마을에서 도인들로 하여금 살펴 드리게 하시더니, 태인도장 영건 후에는 도장 근처에 주택을 매입하여 이주하게 하시고 생계를 보조하시니라. 강순임은 선정대모 권씨와 선경부인 정씨께서 화선하신 후에 상제님께서 전주 노송정(老松町)에 집을 매입하여 이주시키시고, 계속 하사하시는 보조비로 생활하더니 무극도가 해산한 후에 김병팔과 함께 경북 의성(義城)지방으로 옮겨 그곳의 도인들을 모아 새로운 교단을 세우니라.


태극 8장 71절
26일 축시에 상제님께서 공부를 마치시고 정사에 임어하셔서 옆방에 있던 규오, 영하, 금현 등을 불러 시좌시키시고 “너희들과 이야기를 하고자 하니 우선 너희들이 무슨 이야기든지 하여보라.” 하시니라. 금현이 “서교 경전 묵시록(?示錄)에 ‘어린양’이 하느님으로부터 인봉(印封)한 책을 받아 그 인을 떼어 조화를 부렸다는 말이 있사온데 그??어린 양??은 바로 ‘을(乙)인 양(羊)??이고 ‘양(羊)은 미(未)’이므로 지존께서 을미생(乙未生)으로 오심을 예언함이오며, 또 여호와가??2천년 후에 불로 심판한다??는 말은 지금 지존께서 사오화(巳午火) 남방에 오셔서 창생을 구제하실 일을 예언함이라 생각하옵니다. 그러하옵고 역(易) 정괘(鼎卦) 단전(彖傳)에 ‘이목손화(以木巽火)ㅣ 팽임야(烹?也)ㅣ니 성인이 팽(烹)하야 이향상제(以享上帝)하고 이대팽(以大烹)하야 이양성현(以養聖賢)하니라.’ 함도 지존께서 정산(鼎山)으로서 천명을 봉대하심을 단정함이옵니다.” 하고 장황히 아뢰니라. 상제님께서 미소를 띠시며 듣기만 하시다가 봉천명하신 일로부터 중국에서 공부하신 일, 득도, 환국하신 일, 안면도, 
황새마을, 통사동에서 공부하신 일, 천서, 천보를 모신 일 등의 경과사를 밤새도록 말씀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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