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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화양동 - 황극신도수와 대신문도수를 보신 곳
작성자 작성일 2012-01-10
파 일

 

 

 

 

 

 

태극 5장 84절
3월 27일, 양력 4월 29일에 상제님께서 도장으로 환행하시는 길에 청주 화양동(華陽洞)으로 행행하셔서 도수를 보기로 하시니라. 화양동은 본시 소백산맥(小白山脈)의 중간 산골인 괴산군 청천면(靑川面) 화양리의 계곡으로서 사적과 명소가 많고, 중국 무이구곡(武夷九曲)과 흡사한 절경지지라 하여 예로부터 
화양구곡(華陽九曲)으로 호칭되니라. 그 제3곡에는 송우암(宋尤庵)이 임진왜란 때 우리나라를 도와 준 명나라 신종(神宗), 의종(毅宗)에 대한 보은으로 제자들로 하여금 만동묘(萬東廟)를 짓고 제향을 드리게 하였는데, 흥선대원군이 철폐한 것을 유생들이 중창하였더니 왜가 다시 철거하여 훼손된 묘지와 묘비만 남아 있으니라.


태극 5장 86절
이날 하오에 상제님께서 조청봉과 정운교, 안상익, 윤금현 등 시종을 거느리시고 승용차로 화양동에 거둥하셔서 만동묘(萬東廟)의 묘지와 묘비를 친감하시며 말씀하시기를 “이곳 청주 화양동은 명?청 양국(明淸兩國)이 공존하는 곳이라, 내가 이곳에 온 것은""황극신도수(皇極神度數)와 대신문도수(大神門度數)""를 보려 함이니라.” 하시니라. 다시 암서재(岩棲齋)를 친감하시는 동안 해가 저물므로 “
화양구곡을 다 볼 것은 없지마는 온 김에 제5곡까지 가려 하였으나 해가 저물었으니 신도(神道)로써 공사하리라.” 하시고 환행하시니라.



태극 5장 91절
며칠 뒤 청주 일대에 “
화양동 제5곡의 석문이 열렸다.”는 소문이 자자하니라. 금현도 소문을 듣고 그 사실을 확인하고자 인근 도인 윤석현(尹錫鉉), 오병하(吳炳夏), 박동한(朴東漢), 김진협(金鎭協) 등과 화양동으로 가니 마침 상제님께서 파견하신 박종순을 만나 함께 그곳에 사는 빈재로(賓在老)를 만나니라. 재로는 본래 만동묘 창건시에 중국에서 파송된 묘지기의 9대손으로서 대대로 봉직하다가 묘가 철거된 후에는 묘지 옆에서 농사와 주점으로 생계하는 사람이니라.


태극 5장 94절
4월 초에 임규오가 도장에 올라가 상제님께 배알하고 금현으로부터 들은 
화양동 석문 열린 일을 상고하니 용안에 미소를 띠우시고 침묵하시니라. 규오가 다시 “이는 필시 구천상제님께서 청도원(淸道院)에서 짜놓으신 황극신도수와 대신문도수가 풀림이 아니오니까?” 하고 아뢰니 “오직 결자(結者)와 해자(解者)는 동체니라.” 하시고 더 말씀이 없으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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