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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해인사 - 다로경권에서 3일간 공부하신 곳
작성자 작성일 2012-01-10
파 일

 

 

 

 

 

 

태극 6장 66절
“예로부터 합천 
해인사(陜川 海印寺)에 해인(海印)이라는 보물이 있어 이로써 산하를 좌우하며 천지를 개벽한다는 전설이 있고, 일설에는""정만인(鄭萬人)이 해인을 훔쳐 해도(海島)로 들어가 장차 계룡산에 도읍할 대사를 꾸미리라"" 전하나 이는 도시 허언이니라. 다만, 구천상제님께서 ‘잘 믿는 자에게 해인을 전하여 주리라.’ 하셨으니 해인이 있기는 하되, 이는 본시 무극의 체와 태극의 용을 이름이니라.” 하시고 이어 말씀하시기를 “그 해인이 누구에게 있는지 너희들이 아느냐?” 하시니라.


태극 7장 80절
24일에 상제님께서 숭도부인과 동반하셔서 조청구와 박한경, 유철규, 이윤섭, 김용화, 오치국 등을 거느리시고 합천 
해인사(海印寺)로 행행하셔서 대적광전 앞의 다로경권(茶爐經卷)에서 3일간을 공부하시며 도수를 보시니라. 27일에는 시종들이 절 아랫마을에 나갔다가 우연히 신문에서 해인사에 보존하던 국보 석조여래입상(石造如來立像)이 갑자기 없어졌다는 기사를 보고 이를 상제님께 올려 드리니 친감하시고 아무 말씀이 없으시니라.


태극 7장 82절
이날 밤에 
해인사 주지가 상제님께 알현하고 여쭈기를 “비결에 가야산(伽倻山)은 장차 "조씨도읍지지(趙氏都邑之地) "가 된다 하옵는데, 이 첩첩산중이 어떻게 도읍지가 될 수 있사오리까?” 하니 “그 무슨 해괴한 말이뇨? 그러한 비결은 이미 맞지 않게 되었느니라. 그러나 기어이 도읍지를 만들고자 할진대 이 산으로 이 골 메우고 저 산으로 저 골 메우면 되지 않겠느뇨?” 하신 다음, 비결의 부당성을 하교하시니라. 주지가 감복하고 소장하던 해인도(海印圖)를 헌상(獻上)하며 해석을 간청하므로 상교하신 다음, 그 중에 용(龍)자와 구(龜)자를 복사(複寫)하게 하셔서 숭도부인의 좌우 버선목 속에 지니게 하시니라.


태극 7장 84절
상제님께서 임원들에게 
해인사에 관한 전설로서 의상(義湘)과 윤필(尹弼)이 중국 정향(靜香)대사를 찾아간 일, 의상의 손승인 순응(順應)과 이정(理貞)이 답산기(踏山記)를 받아 해인사 터를 잡은 일, 그들이 신라 애장왕비(哀莊王妃)의 중병을 고쳐 주자 왕이 그 보답으로 해인사를 지어준 일, 고려 태조가 건국을 도와 준 보답으로 해동 제일의 사찰로 중창해 준 일, 그 후에 팔만대장경판(八萬大藏經板)을 옮겨오게 된 일, 정만인(鄭萬人)이 해인을 훔쳐 갔다는 일 등을 상세히 하교하시며 “우리 일도 뒷날 전하는 이가 있으리라.” 하시니라.


태극 7장 91절
“고려말의 나옹(懶翁)은 어려서부터 특수한 재질이 있었느니라. 문경(聞慶) 대승사(大乘寺) 묘적암(妙積庵)에 있을 때 그 스승이"점심 공양에 먹을 상추를 뜯어 오라."하여 밭에 보냈는데 점심 공양이 끝난 후에야 빈손으로 돌아오므로 크게 꾸짖으니"
해인사에 불이 나서 대장경판고(大藏經板庫)가 탈것 같아 그 불을 끄고 오느라 늦었나이다."하니라. 스승은 황당하게 여겼으나 그의 언어 행동이 평소 수승(殊勝)하였으므로 채근하지 않았는데 그 후 해인사에 다녀 온 사람의 말을 들으매 과연 그 시각에 불이 나서 경판고에 옮기려 하는데 별안간 소낙비가 쏟아져서 진화되었다 하니라. 더욱 이상한 일은 빗속에 상추가 섞여 떨어졌다 하니 선천 사승(寺僧)의 술법도 이와 같거늘 하물며 후천진법(後天眞法)의 도력이야 어떠하겠느냐.”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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