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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도학원론 제1장 서론(제2절 도(道)란무엇인가?)
작성자 작성일 2012-01-02
파 일

1. 도의 정의(定義)

위에서 우리는 우주 최고 유일의 진리로서 태극도라는 도를 제시하였다. 그러면 여기에서 먼저 도란 무엇인가? 하는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도의 뜻을 글자 그대로 길이다. ‘道’라는 한자의 고전(古篆)이 바로 이렇게 네거리 십자로(十字路)로 표시되어 있는 것을 봐도 그렇다.

그러나 길을 나타내는 글자에 ‘道’자와 함께 ‘路’자가 있으니 아울러서 도로(道路)라고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런데 ‘路’는 사람이 걸어 다니는 형이하적(形而下的)인 길만의 뜻이 있는 반면 ‘道’는 우리가 걸어 다니는 길의 뜻도 있는 동시에 또 다른 형이상적(形而上的)인 뜻이 있다.

그래서 도리(道理)니 도덕(道德)이니 도의(道義)니 하는 말이 있고 또 천도(天道), 인도(人道), 신도(神道) 등의 말도 있다.

뿐만 아니라, 동양서는 서양서 들어온 릴리젼(religion) 곧 종교라는 이름이 있기 전에는 유도(儒道), 불도(佛道), 선도(仙道) 등이 있었다.

또 기예면(技藝面)에까지 기술적인 면보다 정신적인 면에 치중해서 의술(醫術)을 의도(醫道), 무술(武術)을 무도(武道)라고 하는 동시에 다도(茶道), 예도(藝道), 서도(書道), 검도(劍道), 태권도(跆拳道) 같은 말도 생겨났다.

이와 같이 바르게 사는 길, 부처나 신선이 되는 길, 그 밖에 사람의 사는 일들이 모두 도가 되는데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도는 무엇인가? 하는 도의 정의를 생각해 본다.

주역계사(周易繫辭)에는 ‘한 음과 한 양, 또는 한번은 음하며 한번은 양함(곧 태극의 기동)을 도라 한다〔一陰一陽之謂道〕’고 하였고, 중용(中庸)에는 ‘성품(태극의 기동으로 생겨난 본성)을 그대로 행하는 것을 도라 한다〔率性之謂之道〕’고 하여 도를 정의(定義)하고 있다.

기독교 성서(요한복음 1:1)에는 ‘태초에 도(logos)-말씀이라고도 번역-가 있으니 도가 곧 하느(나)님이시라’고 하여 ‘도’의 인격화가 하느님인 것을 명시하고 있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여호와 또는 야훼라는 신이 신약성서에는 엘로힘(Elohim)으로 표기되는데 이 엘로힘의 뜻은 ‘자연히 있는 자’란 뜻이 된다. 이것을 자연의 이치(logos)그 자체로 보아서 잘못이 없을 것 같다.

아무튼 도(道)라는 개념은 동양에서 생긴 말로써 서양 사람들의 형이상적 개념이 없는 로고스와는 다르기 때문에 타오(tao, 道)라는 중국발음을 그냥 쓰고 있는 것도 주목의 여지가 있다.

그러면 이제 우리는 도가 무엇인가를 간추려 정리해 보려 한다.

첫째 도를 우주 3계의 공도(公道)라고 규정한다.

우주가 구성되고 생성 발전하는 원리 원칙이 바로 그것이다. 음양이 합덕하여 낮과 밤이 교호(交互)하고 춘하추동 4계절의 24절후가 순환하는 가운데 수목화토금 5행이 상생 상극하는 것이다.

이것을 현대적으로 말하면 자연법칙이 된다 할 것이고 유교적으로는 이(理) 기(氣), 불교적으로 인과(因果), 기독교적으로 섭리(攝理)라 할 것이다.

쉽게 말하면 콩 심어 콩 나고 팥 심어 팥 나는 것이며, 착한 일을 하면 복을 받고 악을 범하면 죄를 받는 원리가 모두 이것이다.

이 모두가 태극 음양의 원리로써 이루어지는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둘째는 인도(人道) 곧 사람의 살아가는 길이다.

인간의 본성을 찾아서 그 마음을 바르게 다스리며 가족과 이웃과 나아가서 국가 사회 그리고 국제간에 사는 길이 그것이다.

한 마디로 천도와 인도라고 하는데 이것이 곧 태극사상의 음양합덕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제 이 도를 서구인들은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를 살펴본다.

위에서도 말했듯 서양에서는 도란 개념이 없어서 이에 해당하는 말은 없고 지금 우리가 함께 쓰고 있는 종교 곧 릴리젼(religion)이란 말이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 종교단체 곧 교단 중에는 ‘道’자를 쓰는 교단, ‘敎’자를 쓰는 교단이 있는데 단체적 의미로서 그다지 큰 구별이 없는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그런데 종교의 서구어인 릴리젼(religion)의 어원은 라틴어 렐리지오(religio)인데 그 뜻은 ‘신과의 재결합’이다. 원래 신과 인간이 결합되어 있던 것이 떨어졌기 때문에 그것을 다시 맺게 해 준다는 뜻이니 여기에서 원죄(原罪)설이 나오기도 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동양의 도는 길을 찾되 그 길이 신의 길, 인간의 길이란 것이 되는 반면 서양의 종교가 지닌 뜻은 신과의 재결합을 하려는 길을 가는 것이 되어 개념이 비슷하면서도 본말(本末)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을 다시 한번 정리해 보면 동양에서는 공도(公道)의 도가 앞서서 그 공도 속에서 공평무사하고 질서 정연한 우주의 주재신이나 분임(分任)신이 있다는 신관인 반면에, 서양의 종교세계는 독재적 주재신이 있어 인간은 그의 종속물이 되어 그 신의 뜻대로 하는 그러한 길을 강요하는 길이 있다는 것이 상이하다.

예를 들어 태극도에서 주장하는 인존(人尊)사상이나 성사재인(成事在人)과 같은 논리를 서양종교에서는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동양의 도(종교라고 해도 괜찮다)와 서양의 교(종교라고 하는)는 공통성을 지니고는 있지만 그 발생 과정과 함께 교의의 상이점이 현저한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어느 민족 그 지방의 지방신격(地方神格)인 신들을 세계 전체의 주재자로 보는 관(觀)을 경계하여야 하며, 또 그들의 신화나 거기서 발상된 종교 교의가 비교 연구의 대상은 될지언정 동양의 종교사상과 혼합해서 신앙하는 것도 불가능하며 또 그럴 필요도 없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정산도주께서 무극도 취지서에서

“도란 하늘이 명한 바이고 사람이 행할 바니라”하시고

또 태극도 취지서에서

“우주가 우주된 법칙이 태극이니 태극이란 지리(至理)의 실린 바

지기(至氣)의 행하는 바 지도(至道)의 나온 바니라”

하셔서 포괄적으로 도의(道義)를 정의(定義)하신 것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2. 도(道)와 교(敎)의 구별

위에서도 약간 언급하였지만 종교단체로서 ○○도, ××교 등 명칭이 있어서 거의 같은 뜻으로 쓰이고 있으나 이에는 현격한 차이점이 있으므로 이것을 고찰하고 넘어가려 한다.

먼저 옛 성현들의 가르침을 참고로 제시하면 중용(中庸) 수장(首章)에서 자사(子思)는 ‘천성대로 행하는 것을 도라 하고 그 도를 닦는 것을 교라 한다〔率性之謂道 修道之謂敎〕’고 하였고, 또 주역 계사 상전(繫辭上傳)에서 공자는 ‘한번 음하고 한번 양함을 도라 한다〔一陰一陽 之謂道〕’고 하는 한편 그 관괘(觀卦) 단전(彖傳)에서 ‘성인이 신도로써 교를 베푼다〔聖人以神道 設敎〕’고 하였는데 이것을 종합하면 도는 천연적(天然的) 원칙문제이고 교는 인위적(人爲的) 방법문제가 되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불도의 경우를 보면 불타의 법 곧 불법(buddha dharma)이 있을 뿐 교란 범어는 아예 없고 다만 가르친다는 동사로 사사나(Sasana)란 팔리어가 있을 뿐이다.

지금 불법을 불교라고 하고 있지만 이것을 일본식 개화 이후였고 그 이전에는 불도(佛道)라고 불렀던 것이다.

유도나 선도도 마찬가지니 이렇게 놓고 보면 도와 교의 개념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이 확연하다.

다시 말하면 우주에나 사람사이에나 도가 있을 뿐인 것을 그 도를 보급하고 그 도로써 교화하는 사실이 교가 될 것이다.

이것을 도주 정산상제께서는 ‘하늘(상제)이 행하는 일을 도라 하고 사람이 행하는 일을 교라 한다〔天之行事曰道 人之行事曰敎〕’(태 9:29 참조)라고 규정하셨다.

이러한 준규(準規)로서 볼 때 근본 도로써 구성되지 않은 서양의 종교나 무속(巫俗)적 종교, 또는 교화단체의 이름은 ‘교’라고 하는 것은 너무나 타당하다.

그러나 3계 우주의 공도로서 창도(倉道) 입교(立敎)한 종교단체라면 ‘도’의 명칭 하에 도인들의 집단인 ‘도단’의 구성이 원리 원칙인 것이다.

우리는 다만 ‘교’의 이름을 붙인 단체들도 ‘도’의 진법에 입각한 종교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더구나 무슨 사(社)라느니 회(會)라느니 원(院)이라느니 한 단체들은 종교단체가 아닌 하나의 상사나 협회, 학원 같은 것이 연상되어 ‘도’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실례를 범한다.

그러므로 태극도는 우주진리 그 자체 다시 말하면 도의(道義)가 바로 ‘도’가 되는 동시에 이 도의를 근본으로 하는 도헌(道憲)을 제정하여 도무(道務)를 집행하고 도화(道化)사업에 매진하고 있음을 거듭 밝혀 두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