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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도학원론 제4장 증정사상(제3절 증정사상의 개요 II - 정산사상)
작성자 작성일 2012-01-02
파 일

위에서 증정사상 가운데 도조 증산사상께서 강조하신 것을 중심하여 약간의 해설을 가해 보았다.

다음은 도주 정산상제의 종교사상인데, 역시 같은 맥락의 사상이고 종교적으로는 이도일체(以道一體)가 되는 것이므로 같은 도리가 중복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체(體)의 무극주 구천상제 곧 도조 증산의 용(用)의 태극주 옥황상제 곧 도주 정산께서 풀어 맞추신 그 절묘한 진법을 체득하지 못하면 그 사상은 화병(畵餠)에 그치는 것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정산사상은 도주 정상께서 무극도, 태극도를 창건하실 때 이미 손수 설정하신 취지(趣旨)와 신조(信條)가 있으니 도문소자로서 감히 여기에 첨삭가제(添削加除)할 수 없는 절대적인 것이다.

1. 음양합덕(陰陽合德)

태극의 기동 상태 그것은 양의(兩儀) 곧 음양이 생겨나서 거기서 천변 만화로 발전해 나가는 것을 말함은 이 원론을 안 본 사람도 아닌 상식이다.

그런데 요체는 음양이 합덕을 하는 데에 그 기능이 있는 것이지 음 따로 양 따로 라든지 서로 반대가 되어 불합(不合)하든지 하면 그것은 곧 부덕(不德) 비덕(菲德)이 되고 나아가서는 진법의 용(用)이 아닌 탈법(脫法) 비법(非法)의 용이 될 뿐이다.

그러므로 이 합덕의 전제가 되는 것이 정음 정양이니, 정음 정양이 아닌 상태에서는 합덕이 이루어 질 수 없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앞절의 증정사상 Ⅰ에서도 논술한 바 있으므로 가급적 중복을 피하여 가정윤리, 사회윤리 등 구체적 측면에서의 음양합덕을 논하기로 한다.

1) 가정 윤리로서의 음양합덕

먼저 부부간 남녀의 도리로서, 또 가정윤리로서의 원칙이 음양합덕임을 진경의 성훈에서 알아본다.

“태극의 진리가 정음정양임은…남편이 남편답게 아내가 아내답게…서로 화하여 합덕하는 것이…가정 규범의 원리니라.”(태 5:25)

“너와 나가 화하고 부(父)의 자(子)…형과 제…부부간에 화하면 인륜이 되고…” (태 5:58)

남편이 남편답게 아내가 아내답게 부모가 부모답게 자녀(子女)가 자녀답게 사는 가정이야 말로 가정이요 윤리의 가정이라는 말씀이다.

2) 사회윤리로서의 음양합덕

그것을 또 사회 전반에 관하여도 구체적으로 가르치셨다.

“음양이 조화한 합덕으로 개인이 생할하고 사회가 유지되면 그것이…인륜에 계합됨이니라…정부와 국민…자산가와 근로지…지주와 직인이 화와 합으로 생활하는 것이 바로 윤리 도덕의 사회니라.” (태 5:58)

“사후(死後) 신명계의 복락은 생전에 상제를 숭신하고…부모에의 효행에 힘쓰고 형제와 일가친척 이웃과 우애하며 사회를 위한 일에 성경신을 다함으로써 얻으리라.” (태 5:53)

이처럼 정부와 국민간은 물론 공장이나 농촌에서의 모든 문제가 이로써 해소되고 건전한 사회윤리가 형성되는 것이 모두 음양합덕의 원리인 것이다.

이 원리에 맞는 행위는 생전 뿐 아니라 사후의 복락과도 직결되는 중요성까지 지적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산상제께서 친히 제정 공포하신 ‘훈회’와 ‘도인의 수칙’에서 ‘남을 잘되게 하라’ 또는 ‘사회도덕을 준행하여 국리민복에 기여하여야 한다’고 강조하신 성의(聖意)를 받들어 음양합덕을 원칙으로 하는 사회윤리를 준행하여야 할 것이다.

3) 종교도덕의 근원인 음양합덕

이 음양합덕사상에서 유교사상, 불교사상, 기독교사상 등도 생겨나고 또 법률이나 사회질서도 형성됨을 가르치신다.

“선이니 악이니… 구애됨이 없이 음양합덕의 태극진리로 생활하는 자는… 인의와 자비, 박애를 천리(踐履)함이니 이에 법률이나 사회질서 또한 절로 형성될 것이라.…곧 무위자연의 원칙이니라.” (태 5:59)

이로써 우리는 선이다, 악이다, 사랑이다, 미움이다 하는 것이 모두 여기에 연유하고 윤리니, 질서니 하는 것도 모두 이 음양합덕을 근원으로 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음양 합덕은 먼저 ‘원칙이 있으면 해원하여야만 상생의 길이 트여서’ 완전하게 이루어진다고 다짐을 받고 있는 것도 알아 둘 일이다.

그리고 ‘세계의 정치가 군사가 또 석학들이 태극원리의 음양합덕 조화 상생의 도를 알아야 전인류가 구제되고 선경세계가 이룩되는 것’ (태 5:68참조)도 가르치셨다.

또한 ‘육체적 현실, 정신적 이상도 음양합덕의 원리로서’ (태 5:114참조)함께 해야 되니 ‘도인은 지나쳐도 안되고[不可過剩] 못 미치고 모자라도 안되는[不可不及 不可不足] 음양합덕의 조화가 있어야 함’ (태 6:19참조)도 가르치신다.

그리고 음양합덕을 ‘정음정양의 운도가 과학기구로도, 또 부녀자의 사회활동으로도 나타나며 그래도 대도 진법을 배우고 닦으려는 자가 속출하리라.’(태 6:85참조)고도 하셨다.

이로써 음양합덕사상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며 그것이 시대의 진전에 따라 더 많은 도인이 생겨날 것도 예언하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다음 성언(聖言)에서 우리는 우리의 예술 문화의 본의도 음양합덕이라는 진리에 대하는 것이다.

“일훼일목(一卉一木)에도 신이 있고 음성의 고저, 풍류의 장단, 서자(書字) 도화가 모두 음양합덕 태극진리의 표현이니 예능에도 이 도리를 통한 자만이 달인이니라.” (태 8:122)

이 음양합덕의 원리가 지세, 지리에도 적용된다는 사실을 현재의 태극도 본부 도장이 있는 성지(聖地) 감천(甘川)의 예로써 다음 성언(聖言)을 적기(摘記)한다.

“천마산 옥녀봉이 청룡·백호를 이루어 음양합덕한 곳에 1·6감천(坎川)이 흘러내리는 이 영장(靈場)은 태극진리 만고 장류의 통원(通源)이 되며 세계의 지운을 통일할 핵점(核點)인 새서울이 되리라.” (태 7:68)

이런 말씀은 정신적인 종교사상의 표현으로써 부산이 왜 새 서울이 되느냐고 따질 것은 없으니, 다만 후천의 감천은 선천에서 기독교의 예루살렘, 회교의 메카와 같은 성질의 곳임을 알아야 한다.

아무튼 진경에서 우리는 농사짓는 것, 장사하는 것, 기계를 사용하는 것 모두가 음양합덕이라야 한다고 하신 가르침을 대한다.

정신과 육체, 이상과 현실, 기쁨과 슬픔, 사랑과 미움, 원한과 해원 모두가 태극기동의 음양합덕이 되어야 하는 것이니 그것을 어떤 예언이나 비결과 같이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면 어리석기 짝이 없는 것이다.

2. 신인조화(神人調和)

1) 신명(신)의 개념

동양 전래의 신명(또는 신)사상에 비해 서양인들의 그것은 본질적으로 상이하다. 독재적 무력으로 왕이 되고 영토를 넓히고 하던 그들이 독재적인 절대자 유일신을 설정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동양이라고 해도 독재와 무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늘 명분(名分)과 대의(大義)를 앞세우고 도(道)와 덕(德)을 먼저 설정하는 태도를 취했다.

하늘[天]의 공도(公道), 다시 말하면 무극과 태극의 원리를 믿는 입장에서 신은 곧 인간이 죽어 신명계에서 생전에 닦은 대로의 각급 신 곧 신명·귀신·잡귀 등이 된다고 믿었었다.

현재 동양 사회에는 본래의 신사상을 저버리고 서양의 실체도 없는 가상신(假想神)을 믿는 우상 숭배의 태도가 판을 치고 있는 실정이지만 그 부당성도 머지않아 해명될 것이다.

이 신인조화의 절목(節目)에서 이런 신관(神觀)을 먼저 말하는 것은 이 나라에 인신으로 태어나셨던 증산·정산 양위 성인이 곧 무극주·태극주시며 구천·옥황상제시라는 사실을 명확히 알고 신인조화의 길을 닦아가야 하는 것이 바른 길이기 때문이다.

또 양위상제의 가르침에는 ‘귀신은 천리(天理)의 극(極)이다’ (무 6:30), ‘삼계에 미만(彌滿)한 것이 신이다’ (무 5:45), ‘일훼일목(一卉一木)에도 신이 있다’ (태 8:122), ‘인간의 일거일동에 신명의 작용이 붙지 않음이 없다’ (태 7:35)고 하셨으니 모든 사물과 인간의 어천만사에 신이 없을 수 없으므로 음양합덕을 논함에 있어 신관을 제외시킬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민족은 노래를 부르다가도 ‘신(신명) 난다’ 춤을 추면서도 ‘신 난다’ 노름꾼이 돈을 따도 ‘신 난다’고 하는 것이 노래와 춤과 놀이 그 밖에 모두 ‘신 나는 것’인데 그것은 원래 신이 그 안에 들어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말이다.

사람의 마음을 ‘정신’이라 하고 얼굴빛을 ‘신광(神光)’, 감각을 전하는 실모양의 기관을 ‘신경(神經)’, 재주 있는 아이를 ‘신동’이라고 하는 데서 우리 동양의 신개념을 알 수 있으니 다시 말하면 사람이 신이 되는 인신(人神)사상이 바로 신인조화사상과 상통하는 신개념이다.

진경에 보면 이렇게 된 신들의 종류가 지방신, 문명신, 선령신, 조상신, 선신, 악신, 원신, 역신, 아표신 등 한 없이 많아 이 3계에 두루 퍼져있고 또 천문, 지리와 관계되어 자연을 인격화한 신들이 있으니 산신, 용왕, 5방신, 8문신, 24절신, 28수신 등 무수한 신이 있다.

그리고 인간의 하는 모든 일에 인간 하나만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없고 인간과 늘 함께 하는 신의 힘이 함께 작용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에 조화해야 하는 것이다.

신명관에 대해서는 다음에 도학각론에서 논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이만 줄이기로 한다.

2) 신인간의 조화(調和)와 조화(造化)

신명·인간간의 조화(調和)가 있어야 반듯한 조화(造化)를 낳게 할 것이니 그래서 ‘신인조화(調和)’라는 것이 정산상제의 사상으로 특이성을 말하고 있다.

그것은 조화(調和)가 선행하는 전제가 되어 조화(調和)라는 결론적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이 조(調)와 화(化)의 이치를 바르게 깨닫지 못했던 선성(先聖) 선현(先賢)들이 운명이니 인연이니 우연이니 기적이니 섭리니 하고들 말했지만 바로 신인조화의 도리 가운데서 보면 치졸(稚拙)한 이론 뿐이었던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진경에서의 성언(聖言)에서

"서교는 신명박대가 심하므로 능히 성공하지 못하리라." (무 9:97)

"이것이 곧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원칙이니…너희들 도인은 항상(음양) 합덕(신인)조화의 진리로 생활할지니라." (태 5:59)

고 하셔서 인간은 신에 대하여 유일신만을 숭배하고 여타의 신은 선령신·조상신까지도 모두 마귀와 같이 박대할 것이 아니라 모든 신을 조화의 대상으로 하여야 하는 생활의 규범 범주로 훈계하신 것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다시 도주 옥황상제의 직접 해설하신 성훈(聖訓)을 경건하게 귀담아 듣기로 한다.

"신인조화는 우리 인간의 일거일동에 신명의 작용이 붙지 않음이 없으므로 신명과 인간이 조화(調和)되고 조화(造化)하여야 어천만사에 형통자재함이니라. 너희는 음양이 합덕하지 않고 신인이 조화(調化)하지 않으면 하루의 목숨도 지탱할 수 없음을 알라." (태 7:35)

이 얼마나 지엄하신 가르침이신가. 우리 생명의 근원도 바로 신인 조화에 있음을 이렇게 중량 있는 언사(言辭)로 훈회하신 것이다.

그러나 그 신인간의 조화가 어디에 있는 산신이나 지신에게 가서 빌어서 얻으라는 것은 또 아니다. 다음 성구(聖句)에서 참으로 지고(至高)한 인간훈(訓)을 내리신다.

"…음양합덕은 심신합덕에 있고 신인 조화는 심신조화에 있느리라." (태 7:38)

참으로 고마우신 가르침인 동시에 지묘(至妙)한 도리인 것은 신인 조화가 곧 심신조화라는 것이 아니고 그 가운데 있다고 하신 그 가르침이야 말로 신의 말씀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

그리고 여기에는 또 신도(神道)적인 대원칙이 있으니

"…후천의 인존시대는 신봉어인(神封於人)이므로 신인조화하느리라." (태 7:122)

하신 이 성구(聖句) 위에 과거 선천시대는 신이 천이나 지(地)에 봉해져서 천존·지존시대였지마는 지금은 인존시대라서 신이 사람에게 봉(封=배속 임명)해졌기 때문에 신인조화가 뚜렷이 인존시대의 캐치프레이즈처럼 등장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신인조화가 아무 잡귀 잡신이나 모두 좋다고 조화한다는 것이 아니라 문명신, 선신, 선령신, 조상신같은 신임은 물론이지만 진경에서 가르치신 대로 '수령 방백(지금의 도지사나 군수)'같은 신이 아니라, 지신, 지성, 지고 지대하여 신중신이신 양위상제께 복응(服膺)신앙하여 신인조화의 은택을 입어야 할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여기에도 잡귀나 원귀·척신까지 해원하여 음양합덕이 된다는 전제가 있음은 물론이다.

3. 해원상생(解?相生)

1) 해원의 실천

해원상생은 위의 증정사상Ⅰ에서 어느 만큼 설명되었다. 그러나 체(體)로서의 무극주 곧 도조 증산상제의 가르침에 용(用)으로서의 태극주 곧 도주 정산상제의 가르침을 보충함으로써 더 완벽한 실천성 있는 이론이 될 것이다.

무극도의 도단(道團)을 개창하기 전부터 정산산제의 성훈은 이러하다.

"나는 오늘 초패왕(楚覇王)의 원척을 풀었노라.…천지간의 원척이 신명과 사람 사이…나라와 나라 사이, 금수 초목까지 없는 곳이 없어서 군생이 척신, 망령에 시달림을 받으니…그러나 이 해원도수에 따라 모두 해원 광구되어 장차 5만년 청화 선경이 절로 이루게 하리라." (태 2:36)

"단(壇)도수의 단은…단군의 명호도 이를 취함이니 나의 이 도수로써 해원의 대운이 제래(齊來)하게 되리라." (태 3:55)

"이 사업으로써 조수와 토지를 조화시켜 해원하였으며…" (태 3:113)

이상에서처럼 도주 정산상제께서는 군생구제와 선경세계 건설을 위한, 그리고 조국을 위한, 토지와 조수를 위한 해원공사까지 빠짐없이 하셨으며 말로써가 아닌 몸소 실천으로 시범하신 것이다.

또한 해원의 원칙적인 교훈으로써

"대인(對人)수행의 근본 요체는 언덕(言德)과 해원이니 언덕을 잘 가져야하며 척을 짓지 말아야 하느니라." (태 4:63)

"동란이 있으면 정란(靖亂)도 있고…결원(結?)이 있으면 해원도 있는 법이라." (태 5:44)

"만일 원척이 있으면 해원하여야만 상생의 길이 트여 완전한 합덕이 되리라." (태 5:58)

"수도자에게는 고행이 수반하느니…고행수도하여야만 해원을 성취하리라." (태 7:16)

"산에 가서 산을 해치면 산과 척이 생기고…물을 더럽히면 물과 척이 생기느니 해원에 앞서 척을 짓지 말라…1초1목에도 척을 지어서는 아니 되거늘 하물며 신명과 인간에게랴. 결원은 곧 작죄니라." (태 7:17)

이렇게 많은 성훈(聖訓)을 남기셨다. 위의 구절들을 간단히 정리해 보면 이렇게 될 것이다. 

.  언덕을 가져 척을 짓지 말라. 

.  결원이 있으면 의례 해원도 있다. 

.  원척이 있으면 해원해야만 상생과 합덕이 된다.

.  수도자는 고행수도로 해원을 성취한다.

.  산수 자연과 신명 인간에게 척을 짓는 것은 죄를 짓는 것이다.

이상의 성훈들은 하나 하나씩 해설하는 것이 장황하기 때문에 요점만 소개했다.

아무튼 해원이 되지 않은 인간들이 사는 사회는 화염병, 최루탄이 그치지 않고 모함, 비방, 원망 속에 온갖 범죄가 득실거리는 비정의 현실이 있을 뿐이다.

민간인은 양위상제의 가르침을 고개 숙여 마음에 새기고 또 실천하지 않아서는 안될 것이다.

2) 상생의 실천

해원과 상생을 따로 떼어 각각 단독적인 일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으나, 굳이 분류한다면 해원은 전제가 되고 상생은 결론과 같은 것이라고 본다는 것은 이미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의 단어로나 또 이론적으로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도 틀린 일이 아니고 오히려 더 명확한 인식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이제 그 해원상생의 한 덩어리 가운데 위에서 해원을 용(用)의 실천적으로 찾아보았는데 다시 정산사상을 통한 상생에 대한 것을 알아보기로 하는 것이다.

먼저 도주 정산상제께서 직접 해설하신 상생의 실천적 이론에 귀기울이기도 한다.

"천지 만물이 오직 서로 생(生)하기만 하는 후천세계의 상생은 이미 열렸느니라. 수생목(水生木)만 하지 않고 수생화(水生火)도 하며 인해(寅亥)만 합함이 아니라, 인신(寅申)도 상합(相合)하는 상생(相生) 상합(相合)의 무극대운이 후천 선경의 도수니라." (태 7:36)

앞에서 상생 상합을 설명한 일이 있었지마는 여기에 하나씩 실례를 들어 설명하는 이 성언(聖言)에 모든 인류는 감열(感悅) 감복(感服)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여기서 배워 얻을 일들이 있으니 태극도 뿐 아니라 모든 종교의 경전에 나타난 경문(經文)의 해석이다.

그것은 문면에 나타난 언어 문자 그대로의 해석[事釋]의 태도와 그 문면이 지니고 있는 대의로서의 해석[義釋]인데 여기 나와 있는 문구를 예로 해서 생각해 본다.

수생목은 맞는 말이지만 어떻게 수생화가 되느냐 하는 것 같은 것을 굳이 화학적으로 수소(水素)에 불이 붙는다느니 하고 해석하지 않아도 좋다. 인신상충(寅申相沖)이 어째서 상합(相合)이냐, 그러면 지금까지의 역학(易學) 역술(易術)은 모두 헛것이냐 하는 의의를 제기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것은 치졸(稚拙)한 반문이 된다. 왜냐하면 종교사상이란 현실의 학문이 아니라 고차원적인 정신적 사상이다. 이런 일은 세계의 다수 인사들이 시골 처녀가 시집도 가기 전에 지아비 없이 낳은 사람을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믿고 있는 것처럼 현실적이기 보다 정신적인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