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적 > 조정산 전기
◈ 조정산 전기
제 목 1. 자고산의 제좌(紫皐山의 帝座)
작성자 작성일 2012-01-01
파 일


紫皐山의 帝座
 

이 나라 겨레의 조국(肇國)사화 속에 영기(靈氣)를 떨치며 우뚝 솟은 백두(白頭)의 감뫼<神山>가 장백(長白)의 산맥을 이루어 남으로 태평양을 향해 내려오다가 태백(太白)산맥으로 이어지면서 동진(東震)의 나라 한(韓)반도를 일기관통(一氣貫通)하고 있는 곳이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이다.
태백산맥이 반도의 척주(脊柱)를 이루며 남으로 부산을 향하여 뻗다가 오른쪽으로 한강을 낀 서울을 이루고 다시 소백산맥의 죽령, 추풍령을 넘어 서라벌과 달구벌을 이룬 다음 낙동강(洛東江)을 끼고 내려와서 비자화(比自火) 곧 오늘의 창녕(昌寧)과 서화(西火)로 불리우던 영산(靈山)의 고을들을 펼친다.


이 영산의 낙강(洛江) 건너에, 저 소백산맥이 지리산과 남해안으로 우회하여 함안(咸安 : 우주 삼계(三界)가 모두 평안)에 이르러 여항(艅航), 광려(匡廬)의 산군(山群)으로 이어진 자고산(紫皐山)이 솟았고 그 아래 천계(天界), 무릉(武陵)의 마을을 이웃한 회문리(會文里)가 있으니 여기가 바로 이 전기의 주인공이신 태극도주(太極道主) 조정산(趙鼎山)께서 태극주(太極主) 옥황상제(玉皇上帝)의 도화인신(道化人身 : 도가 사람의 몸으로 화함)으로 강세(降世)하신 곳이다.
이 회문(會文)이란 글자 그대로 후천(後天)의 문명(文命 : 상제가 문덕(文德)으로 내린 명령)을 여기에 총회(總會 : 모두 모임)시켰다는 뜻이다.


이 후천문명의 총회처(總會處)가 되는 회문리의 지세(地勢)를 살펴보면, 그 조산(祖山)은 여항산이며 주산(主山)은 자고산이고 안산(案山)은 작대산(爵隊山, 또는 爵大山)이며 좌청룡(左靑龍)은 안국산(安國山), 대곤산(大山)이고 우백호(右白虎)는 광려산(匡廬山), 무학산(舞鶴山), 천주산(天柱山)으로서 모두 이름 그대로의 명산(名山), 영산(靈山)들이 회문리로 모여드는 형상을 이루어 에워싸고 있으며 회문리 자체는 봉소형(鳳巢形 : 봉황새 둥지 형상)을 이루고 있다.


더구나 그 중에서 주산인 자고산은 그 이름만 보아도 이곳이 과연 후천문명을 주재(主宰)하실 상제님의 어좌(御座), 옥좌(玉座)인 천장길방(天藏吉方) 도수(度數)로 점지된 곳임을 넉넉히 알 수 있다.


중국의 사서(史書) 위지(魏志 郭后傳注)에 보면 ‘용이 자극(紫極)에 날아 황제와 어울린다<龍飛紫極 作合聖皇>’고 하여 황제의 자리 <皇帝座>를 ‘자극’이라 했고, 진서(晉書 天文志)에는 ‘자미(紫微)’라는 별을 ‘상제의 자리, 상제가 거처하는 곳<天帝之座 天帝之常居也>’이라고 했으며, 예기(禮記)에는 황궁(皇宮)의 가장 높고 커서 으뜸되는 문을 ‘고문(皐門)’이라고 한 것으로 보아 ‘자고’는 결국 황제 또는 상제의 자리 곧 ‘제좌(帝座)’를 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이런 제좌를 이 동토(東土)에 마련해 놓고 그  참 주인<眞主>의 강세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이 자고산 아래의 회문리를 행정구역으로 알아보면, 정산께서 강세하실 당시에는 경상도 칠원현 서면 회문리(漆原縣 西面 會文里)였으나 현재는 경상남도 함안군 칠서면 회산리{咸安郡 漆西面 會山里 : 이 회산리는 그 이웃의 신산리(新山里)와 합쳐진 이름으로서 회문리와 같은 뜻을 지님, 즉 人山=仙=白 : 甑山+鼎山=兩山=會山}로 되어 있다.


칠원은 신라의 옛고을로 초기에는 칠토현(漆吐縣)이었는데 말기에는 칠제(漆堤)로 고쳐졌으며 고려 때 칠원(漆原一漆園)으로 바뀌었고 한말에 군(郡)으로 승격했다가 후에 함안군의 3개 면(面)으로 병합되었다 (이 칠원, 칠서, 칠북 3개 면을 3칠(三漆)이라고 통칭한다).
함안군은 원래 6가야(伽倻)의 하나로 아라가야(阿羅伽倻), 또는 아시량(阿尸良)국으로 불리우다가 신라 때 현재의 이름으로 고쳐진 큰 고을이다.


이곳에 통칭 ‘조·리·안(趙李安)’이라고 하는 함안조씨(咸安趙氏), 재령이씨(載寧李氏), 순흥안씨(順興安氏)의 3대성(三大姓)이 있는데 그 가운데도 함안조씨를 첫손으로 꼽고 있다.

인격으로는 이 조씨 가문 한 문벌의 종손이지만 신격으로는 옥황상제로 봉대되시는 정산의 탄생은 이러한 지리적, 가계(家)적으로 선택된 당위성(當爲性)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넉넉히 알 수 있으며, 또한 보국위민(輔國爲民)하던 가통(家統)을 보아서 태극도와 같은 애국적 민족종교인 동시에 세기적(世紀的) 신생종교가 생겨날 수 있었던 필연성(必然性)을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주역에서 건괘(乾卦)를 찬양한 ‘수출서물 만국함녕(首出庶物 萬國咸寧)’의 ‘함녕’과 정산의 본관인 이 ‘함안’이 같은 뜻을 지녔다는 것과 이 나라의 국기인 ‘태극기’가 ‘태극도주’가 되실 정산의 강세에 10여년 앞서 그 징조로서 제정 공포되었다는 것이 모두 이것을 증명하는 사실이다.
함안조씨의 시조는 고려때 대장군 조정(趙鼎)인 바 정산께서는 그 28대손이시다.그 선조중에서 충국애민(忠國愛民)의 인물만을 대상으로 가려보면 19대조 열(悅)은 고려의 공조전서(工曹典書)로 있다가 고려가 망하게 되자 함안으로 낙향하였는데 조선조에서 다시 불렀으나 전조(前朝)에의 충의로 불응하였다. 이때부터 그 자손들이 세거(世居)하면서 본관(本貫)을 함안으로 정하였던 것이라 한다.


17대조 여(旅 호는 漁溪)는 조선 단종(端宗)때 생육신(生六臣)의 한 분으로서 숙종 때 정절(貞節)이란 시호(諡號)와 함께 이조판서에 추증(追贈)되기까지 하였으며 그의 손자 연(淵 호는 耐  軒)은 명필로 명성이 후세에 전하고 있다.
13대조 방(호는 斗巖)은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곽재우(郭再祐)장군과 창녕 화왕산성(火旺山城)에서 전공(戰功)을 세우고 이조참판의 추증을 받았으며 11대조 함익(咸益 호는 林溪)은 학문과 덕망이 당대의 사표(師表)가 되었는데 정산께서는 그 종손(宗孫)이셨다.
고조부 화식(華植 호는 竹軒)은 그 효행이 조정에 알려져 정려(旌閭 : 지금도 회문리에 있음)의 왕명(王命)을 받았으며 조부 영규(瑩奎 호는 聚堂)는 을사보호조약 당시 관직(승정원 주서)에 있으면서 민영환(閔泳煥), 이상설(李相卨) 등과 그 조약의 부당성을 상소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게 되어 심화병(心火病)으로 토혈(吐血) 순국(殉國)하였다.


더구나 부친 용모(鏞模 : 호는 復宇, 도호는 道丈)께서는 3형제(중씨 鏞懿의 호는 曙山, 계씨 鏞瑞의 호는 晨山)가 왜적(倭賊)에 항거하여 의병을 일으킬 때 쓰기 위한 화약공장을 차렸다가 발각되어 망명하는 등 항일정신이 강하셨으니 후일 정산께서 일생동안 ‘일본’이란 말조차  꼭 ‘왜’라고만 하신 것도 이런 가통, 가풍에 의한 것이다.


천·지·인 3계의 본체인 무극(无極)과 태극(太極), 그 주신(主神)이신 무극주 구천상제는 전라도 정읍(당시는 고부)에, 태극주 옥황상제는 경상도 함안(당시는 칠원)에 인신으로 강세하셨는 바 이 두분의 상제<兩位上帝>를 경전(經典=무극진경·태극진경)을 통하여 ‘이도일체(以道一體)’로 믿는 이들의 종교단체가 있으니 곧 부산 감천(甘川)에 그 본부를 둔 태극도인 것이다.

예로부터 동양사상에서는 무극과 태극의 원리를 우주 근본의 진리로 삼고 있다.

무극이 곧 태극인 바 그 태극이 기동(機動)을 해서 음양인 양의(兩儀)가 생기고 거기에서 4상(四象)이 생기며 또 8괘(八卦)가 생겨나서 우주 삼라만상이 생성(生成) 발전하는 것이다.

무극은 정(靜·定)하고 태극은 동(動)하는 그 도(道)의 본체인 태극주께서 몸소 지상에의 현화(現化) 또는 권화(權化 : 신불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하여 사람으로 모습을 바꾸어 이 세상에 나타나는 일)는 바로 그 권능(權能 : 權限과 能力)의 소치(所致)인 것이다.

이것은 혼돈하던 옛세상 곧 선천 말대가 가고 새로운 시대가 교체되는 개벽(開闢)시대의 참주인<眞主>인 정신적 영도자로 출현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 진주의 출현에 관하여 먼저 그 출생부터 살펴보면 도력기원(道曆紀元)전 14년 을미(乙未=1895)년 12월 초4일(양력 1896년 1월 19일) 미시(未時)에 경상도 칠원현 서면 회문리(현 경상남도 함안군......)함안 조씨의 후예로 강세(降世)하시니 휘는 철제(哲濟), 자는 정보(定普), 호는 정산(鼎山)이셨다.


그에 대한 시각(視角)은 보는 이에 따라서 다를 것이다. 신도들은 그를 신격으로는 옥황상제라 믿고 있으며 인격으로는 대성인인 도주(道主)로 받들고 있다. 일반인의 경우에는 한 민족종교의 개조(開祖)인 영도자 또는 민족정신의 지도자로 볼 것이다.
여하튼 그가 거금(距今) 1세기 전에 이땅에 나셔서 그 당시 왜정하에 신음하던 민중을 정신적으로 또 현실적으로 어떻게 지도하셨으며 무슨 어떠한 훈교를 하셨기에 그동안에 수백만의 도인들이 그의 교화를 받고 그래서 그를 상제라고 믿고 있는지에 대한 호기심이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의 태극을 원리로 하는 종교가 개창될 것을 조국의 국장(國章)이 미리 징후(徵候), 예고(豫告)하여 주었다는 사실을 그냥 무시하거나 도외시할 수는 없을 것이며 이 원리, 도의(道義=도의 뜻)가 한국, 한국인, 새 세기의 인류에게 어떻게 적응할 사조(思潮)를 주도(主導)하여 구제하고자 하셨는지를 알아봄직도 할 것이다.


그런 의의에서도 그의 전기를 통한 행적을 살펴보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위에서 그의 생년월일과 출생지, 그밖의 인적사항을 간략한 대로 알아보았다.
그런데 하나의 종교가 생겨나고 그 종교를 개창한 위인(偉人)이 태어난 배경이 될 가계(家)부터 먼저 살펴보아야 할 것이나 그의 가계가 뚜렷한 명문대가인 함안 조씨 양반의 후예였다는 사실같은 일에도 의의가 있지만 그 조상들이 대대로 안빈낙도(安貧樂道)하고 충국애민하는 가풍으로 이어져 왔다는 사실에는 더욱 주목하지 않을 수 없으니 그의 생애가 이러한 가풍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전글
다음글 2. 태극주의 인세현화(太極主의 人世現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