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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2. 태극주의 인세현화(太極主의 人世現化)
작성자 작성일 2012-01-01
파 일

太極主의 人世現化
 
보통 사람의 출생에도 태몽(胎夢)이 있게 마련인데 하물며 우주의 지고(至高), 지존(至尊)하신 상제로 봉대(奉戴)되실 종교 위인(偉人)의 강세에 어찌 특이한 이적(異蹟)과 경서(慶瑞)스러운 징조(徵兆)가 없을 것인가.
을미년 정월, 복우도장께서는 결혼 초가 되어 부인이신 숭덕부인(崇德夫人) 민씨께서 우귀(于歸 : 결혼한 신부가 처음으로 시집에 들어가는 예절. 이 당시 선비 집안에서는 결혼 후 3년만에 우귀하는 것이 통례였다)전이므로 설날 차례(茶禮)를 마치고 바로 밀양군 하남면 파서리(密陽郡 下南面 巴西里) 빙댁(聘宅)에 가서 머무르게 되셨다.


초3일 밤에 부인께서 꿈을 꾸었는데 그 꿈이 참으로 엄청나게 신기한 꿈이었다. 그것은 천지가 갑자기 환해지면서 하늘서 오색구름을 탄 한 선관(仙官)이 좌우에 시종(侍從)을 거느리고 내려오더니 부인께 경배(敬拜)하며, “저는 천제(天帝)님의 명에 따라 진멸지경(殄滅之境)의 삼계군생(三界群生)을 광구(匡救)하기 위하여 이 동녘 조선 땅에 내려오고자 합니다. 어여삐 받아주소서”하고 아뢰며 부인의 품에 안긴 꿈이었다.
꿈을 깬 부인께서 너무 신기하고 두려운 마음으로 부군(夫君)에게 말씀드리기를 주저하다가 마침내 이 꿈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이때 복우도장께서도 꼭 같은 꿈을 꾸고 잠이 깨어서 생각 중에 있었는데 부인의 말을 듣고는,“여보! 우리 두 사람이 꼭 같은 꿈을 꾸었으니 이것은 예사꿈이 아니라, 천기(天機)에 속하는 대몽(大夢 : 태몽)일 것이오.

그러니 이 일을 아무에게나 함부로 발설하지 말고 하늘의 뜻에 어긋남이 없도록 각별히 유의합시다”하며 함께 다짐하였다. 두분은 그날 밤 잠을 이루지 못하였는데 방안에는 향기가 밤 새도록 가득하고 창 밖은 서광이 낮과 같이 밝게 하늘에 뻗쳐 있음을 보며 말할 수 없는 감회에 젖으셨다.
신이한 몽조(夢兆)는 이에서 그치지 않았다. 당시 도장의 부친되는 취당공(聚堂公)은 관직으로 서울에 있었는데 그는 일찍이 문과에 급제하여 홍문관 정자(弘文館 正字), 지춘추관 기사관(知春秋館 記事官), 승정원 주서(承政院 注書)등을 역임한 분이었다.
그 취당공도 도장 내외분이 태몽을 꾸던 거의 같은 시각에 또 대몽을 꾸었다. 뇌성벽력이 일고 천지가 진동하는데 큰 불기둥이 사방을 휩쓸더니 또 바닷물이 넘쳐 흘러 불기둥을 뒤덮자 천지가 캄캄해졌다. 그러더니 하늘이 갈라지며 찬란한 태양이 솟아올라 천지가 광명해졌는데 그 햇덩어리가 자부 민씨의 품으로 들어가 안기는 것이었다.


취당공은 이 꿈이 틀림없는 자부의 태몽이라 생각되어 도장 내외분에게,
“우리 가문에 하늘서 내리는 경서가 있을 것이니 정성을 다하여 하늘의 뜻을 받들 준비를 하고 기다리라”는 당부의 서찰을 전편(專便 : 특별히 보내는 인편)으로 내려보냈다.

이런 태몽도 경사스럽지만 출산 또한 일반인과는 특이하게 열두달만이었다. 그런데 산모께서 난산(難産)으로 산고(産苦)가 극심해서 사흘동안을 산통(産痛)으로 신음하다가 마침내 몸과 마음을 가누지 못하고 혼몽(昏朦)한 상태에 이르렀다.
이때 비몽사몽간(非夢似夢間)에 갑자기 눈앞이 밝아지며 공중에서 피리소리가 나더니 약탕기를 든 한 선녀가 무지개를 타고 내려와서 부인께 경배하고 아뢰기를,“소녀는 천존상제님의 명을 받들어 탕제(湯劑 : 탕약)를 가지고 부인을 구완코자 내려왔습니다. 지금 탄생하시는 옥동자는 삼계를 광구하실 진주(眞主)이오니 부인께서도 옥동자와 함께 옥체를 보중(保重)하소서”하며 입에 탕제를 드리웠다.


부인께서 이 순간 정신이 쇄락하고 통증이 멎으면서 순산을 하게 되었으며 이때 산실에는 향기와 서광(瑞光)이 가득하였다. 그 당시 칠원고을 일대에 사흘동안 눈이 내렸는데 정산의 출생과 동시에 멎고 일기가 청명해지며 지붕 위로부터 흰 무지개가 하늘로 뻗쳐올랐고 다른 곳에는 눈이 쌓였으나 산실 지붕에는 녹아있었다.


정산께서는 출생시부터 다른 아이들보다 기골이 장건하고 기상이 준수하셨으며 성장함에 따라 천중(天中), 천정(天庭)이 넓고 일각(日角), 월각(月角)이 풍부하며 눈빛이 빛나고 얼굴 모습이 뛰어나셨다.
그보다도 온 몸에서 후광(後光)이 발하고 등에는 칠성(七星)의 문양, 붉은 점이 오른쪽 다리에 세개, 왼쪽에 72개, 두 발바닥에 각각  세개씩 있었으며 턱 밑에는 용수(龍鬚), 손톱발톱은 용조(龍爪)가 완연하고 음성은 용성(龍聲)처럼 우렁차셔서 보통 사람과는 다른 표징이 있으셨다.
어려서부터 무슨 일이든지 깊이 생각하고 캐어묻기 때문에 어른들은 대답하기가 힘들었는데 사람들은 생이지지(生而知之)의 신동(神童)이 출현하였다고 찬탄이 자자했다.
7세까지의 유년시절에도 많은 기행(奇行) 이적(異蹟)이 있었지만 다 기록할 수 없는 것이 유감인 바, 7세에 한문서숙에 입학하셨는데 그해에 육갑(六甲)과 역서(曆書)의 구성법을 홀로 창안하신 일은 훈장을 비롯한 지방 유림(儒林)의 화제가 되었다.
9세 때에 벌써 영적으로 차원높게 통령이 되었던지 잠깐 조는동안 선풍도골(仙風道骨)의 한 선비가 나타나서 4배(四拜)를 드리며 “하느님의 명령을 받들어 진인(眞人)께 알현하옵니다”한 일이 있었으나 천기(天機)라 생각되어 부친께만 아뢰어 발설하지 않으셨는데 그 후에도 몸이 괴로우면 이 선비가 나타나서 위안하고 도와 드렸다.


11세 되던 해에는 한일보호조약의 체결 단계에서 조부 취당공이 관직을 사임하고 항일운동에 전념하다가 통분이 차서 토혈(吐血)하며 귀향하여 45세를 일기로 순국(殉國)한 일이 있었다.
이때 어린 나이에도 조부의 유언에 따라 ‘나라를 위하는 충성심’이 남달랐으며 그 성취를 위한 ‘남모르는 마음공부’를 시작하여 13세까지 계속하셨다.이로부터 서숙에 나가지 않고 한 방에 경서와 제자백가서를 갖추어 놓고 문을 안으로 잠근 다음 공부에 몰두하셨으니 그것은 바로 학문과 함께 마음 닦는 공부였다.부친이 걱정되어 누누이 물으면 다만,“소자의 공부는 할아버님께서 유언하신 ‘남모르는 공부’이오니 염려하지 마옵소서”하시는 말씀이 너무나 진지하기 때문에 더 묻지 못했다.

이 무렵 일본의 침략은 극도에 이르러 을사보호조약 이후에는 대한제국이란 허울좋은 이름뿐 실권은 일본의 군부가 완전히 장악한 형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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