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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7. 태극진법의 회동(太極眞法의 胎動)
작성자 작성일 2012-01-01
파 일

太極眞法의 胎動
 
정산 도주님께서 이해 6월 24일 구천상제 화천치성을 마친 다음 임원들에게 하명하시기를,
“중대한 일이 있으니 도장에 머무르라. 그대들이 도수하는 말은 들었지만 실지로 보지는 못하였으니 이번에는 직접 참여하여 눈으로 보아야 하리라”하셨다.
임원들은 함께 묵으면서도 무슨 일인지 궁금하였으며, 또 전임원이 이렇게 여러날 함께 공부하기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도주님께서는 그동안 잠룡도수 이후 어려운 생활속에서 왜경의 감시를 받으시면서도 구천상제의 강세일, 화천(化天)일은 물론, 봉천명일, 득도일, 명절, 절후 등의 치성을 한 번도 거른 적이 없으시고 그때마다 몸소 빚으신 청주로 헌작(獻酌)하시는데 이를 위한 시루, 용수등 기물과 누룩, 술밥등 자료를 항상 예비(豫備)하셨으나 왜경의 취체에는 한번도 발각되지 않으셨다. 임원들은 도주님의 지난 10년간에 걸친 고초를 회상하며 감탄하였다.
7월 초3일 저녁에 문후(問候)를 드리는 임원들에게 도주님께서 각별히 자애롭게 말씀하셨다.


“내 오늘은 그대들에게 태극의 진리를 도상(圖像)으로 설(說)하리라. 무극이 곧 태극이니 이는 곧 우리 도의 연원(淵源)이며 또 우주 전체의 생성(生成)발전하는 대원리니라.”


그리고는 흰 비단으로 너비는 두 폭, 길이는 그 3배로 한 기폭을 만들게 하셔서 친히 붓으로 그 기폭의 중앙에 둥근 청·홍의 태극의 도상(圖像)을 그리시고 그 둘레에 건(乾)·태(兌)·이(離)·진(震)·손(巽)·감(坎)·간(艮)·곤(坤)의 8괘(八卦)를 그리신 다음 이렇게 교시하셨다.


“이것이 태극도(太極圖)니 중앙의 원은 무극(无極)이지만 기동(機動)하는 음·양이 태극을 이룬다. 이것이 태극기인데 우리 도의 기가 되고 나라의 국기도 되느리라. 이 기가 곧 주역에서 “태극이 양의(兩儀 : 음양)를 낳고 양의가 4상(四像 : 太陽, 太陰,  少陽, 少陰)을 낳고 4상이 8괘를 낳는다’고 한 그대로를 도형화한 것이니라. 지금까지는 왜가 금기(禁忌)하고 있지마는 이것이 우리 도의 신앙과 사상의 표상(表象)이요 만유군생(萬有群生)의 근원이니라”


다음날 아침에 집뒤 대밭에서 한그루 베어온 깃대에 태극기를 매어 달아 회룡재 뜰에 세우게 하시고 그 깃대를 숭도부인(崇道夫人 : 도주님 부인)에게 혼자 붙들게 하신 다음 기를 향하여 법좌(法坐)하시고 태을주를 연송(連誦)하시므로 일동도 따라 하였다. 이때 동쪽에서 부는 바람이 강해서 부인이 아주 힘들어 땀투성이가 되셨는데 얼마후에 도주님께서 손을 올리시니 바람이 멎었다.


이렇게 하시기를 3일째 되던 날 오정(午正)에 갑자기 큰 소리로,
“태극이 기동하니 만물이 자시자생(資始資生)이로다”하시고 혼자 말씀으로,
“인(仁 : 日王仁 을 뜻함)아, 네가 이제 태극 앞에 고개 숙였다. 그러나 네 이름자의 덕으로 명은 유지되리라” 하셨다.


이 공사(公事)를 마치시고 임원들에게 하명하시기를,
“ 이 태극기를 동구 밖에 갖다 세우라”하셨으나 임원들은 시국의 위험을 염려하여 주저하는데 평소에 용기가 있던 김태만(金台萬)에게 시키시니 그가 뛰어가서 동네 앞 정자나무에 기대어 세워놓고 급히 돌아왔다. 이때 임원들은 엄명이기 때문에 시행은 하였으나 겁에 질려 좌불안석(坐不安席)하며 그날 밤을 뚠눈으로 지새웠다.
이해 7월 칠석(七夕)의 다음날은 양력 8월 15일이다. 새벽에 도주님께서 새 옷을 갈아입고 계시는데 못보던 소년이 나타나서 도주님께 사뢰기를,“왜왕(倭王)이 간밤에 무조건 항복하였습니다”하고는 홀연히 사라지므로  임원들이 이상히 생각하여 여쭈니,“그는 신동(神童)이니라”하셨다.


아침해가 뜨자 도주님께서 태극기를 다시 회룡재에 옮겨 세우게 하시고 공부를 계속하셨다.
이날 오정이 조금 지나 회문리 이장 황천수가 달려와서 도주님께 아뢰기를,
“오늘 낮에 일본 왕이 연합국에 항복하고 조선은 광복된다는 방송이 있었습니다”하였다.


도주님께서는,
“이것이 바로 해방도수(며칠 전에 임원들에게 보고 가라고 하신 도수)니라. 그러나 태극의 기동이 합덕·조화하여야 할 것인데......”하시고,
“너희는 경거망동을 삼가하라”하셨다.
이어서 임원들에게 증산상제께서 ‘왜인을 임시<서양 사람의 세력을 물리치고 동양을 붙잡는> 일꾼으로 내세우리라’, ‘이 나라가 한 때 저들의 영유(領有)는 될지언정 영원히 영유되지는 않게 하리라’하시고 ‘그들을 수운의 주장 아래 두고 일시 천하통일지기(天下統一之氣)와 일월대명지기(日月大明之氣)를 붙여주어 역사(役事)를 잘 시키려니와......갈 때에는 품삯도 못받고 빈손으로 돌아가리니 말대접이나 후하게 하라’고 가르치신 말씀을 풀어서 훈교하셨다.


이때 밖에서는 벌써 해방소식을 들은 동민들이 외치는 ‘독립만세’ ‘해방만세’ 소리로 소란했지만 도주님께서는 침착하게 말씀을 계속하셨다.


“나만큼 선대로부터 왜인을 불구대천(不俱戴天)의 원수로 한사람도 없으나 만사는 천리(天理)의 도수로써 하여야 하느니라.


그동안 무극의 표징(表徵)인 왜기(倭旗 : 그들은 日章旗라 한다)가 이 강토를 덮었으나 이제는 태극도(太極圖)의 국기가 휘날리리니 이 곧 태극의 기동이니라.”
“구천상제의 일은 무극대운이요 나의 일은 태극대도이므로 나의 도가 지금까지는 무극대운의 기초동량(基礎棟樑)도수였으나 이제부터는 태극의 기동도수니라. 그러므로 구천상제와 나는 무극과 태극의 관계며 시루와 솥 곧 증정지간(甑鼎之間)이니 도로써 일체(一體)니라”


“내가 왜화(倭禍)로 망명하였으나 중도에서 봉천명(奉天命)하였으므로 망명지의 성도(省都) 심양(瀋陽)이 봉천(奉天)으로 개명됨이 어찌 우연이며 인위(人爲)였으랴......나는 이제 잠룡 회룡의 도수를 거쳐 진주(眞主)를 잡아 태극도주가 되었음을 고(誥)하노라. 그러나 우리 도의 도명(道名)이 태극도임을 아직 일반에게 공표하지 말라”
“내가......그대들을 체류(滯留)시킨 뜻을 이제 알 터이며 도수의 실지를 목도(目賭)하였으니 지방으로 가서......태극의 도리를 4방 4유(四方四維)에 널리 선양하라”


이튿날 아침에 퇴배(退拜)하는 임원들에게 하교하시기를,
“그대들이 지방으로 내려가면 전국 방방곡곡에 중론(衆論)이 백화(百花)처럼 남발하고 사람들의 정신이 들떠 있을 것이나 현혹되어 부화뇌동(附和雷同)하지 말고 안심·안신으로 경천(敬天)·수도하여 도인의 본분에 어긋남이 없게 하라”하셨다.


임원들이 지방으로 내려가 보니 과연 해방의 기쁨 속에 태극기와 만세의 노도(怒濤)로 열광함이 바로 백화남발의 형상이었으나 도인들은 도주님의 훈교를 받들어 동요하지 않고 본분을 지켰다.
이해 추석 치성 후에 도주님께서 임원들에게 하명하시기를,
“천하대세는......모두 태극의 원리를 음양이 기동하리니 근역(槿域)강산이 그 중심핵이 된다. 그러나 좋은 일에는 마(魔)가 많아 단절과 분열의 조짐(兆朕)도 있으니 도인들을 무극무단(無極無端)의 합덕(合德)과 조화(調化)로 잘 교화하여 좋은 날을 보고 살도록 인도하라”하셨다.
하루는 이렇게 가르치셨다.


“조화(調化)는 신명과 인간 사이의 가장 귀한 요체(要諦)요, 합덕(合德)은 음과 양의 가장 큰 원리니라. 비도(非道)와 사법(邪法)에는 조(調)도 화(化)도 합(合)도 덕(德)도 없으니 오직 정도(正道)와 진법이 우리도 뿐이니라”하시고 또,“해방도수로 창생이 자유, 자활(自活)하게 하였으니 천하에 독립국가로 군립(群立)하고 도와 교(敎)도 우후죽순(雨後竹筍)처럼 총생(叢生)하리라......이것이 상제께서 ‘초장봉기지세(楚將蜂起之勢)를 이루리라’하시고 ‘난법(亂法)이 난후에 진법이 나니라’하신 훈교의 응험(應驗)이니라......그대들은 오직 위아(爲我)의 수도와 위타(爲他)의 교화에 힘쓰라. 이 둘은 둘이 아니니 또한 합덕 조화의 원리니라”하셨다.
병술(丙戌 : 1946)년 신정 치성 후에 회문도장에서 윷놀이 대회를 여셨는데 거기서 특이한 행마법(行馬法)을 가르치시니 그것은 상대의 말을 잡지 않고 각자가 끗수대로 나아가되 출점(出點)에서는 거기 맞는 도수라야 되게 하시며,
“이것이 상생(相生)원리에 맞는 행마법이니 서로 잘 사는 법이며 남 잘되게 하는 법이니라”하셨다.
이런 말씀도 하셨다.


“장님은 꽃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머거리는 삼현육각(三絃六角)이 울려도 듣지 못하듯 도안(道眼), 도이(道耳)가 열리지 않은 사람은 대도의 진주와 진법의 진경(眞經)이 곁에 있어도 모르느니라. 모를 뿐만 아니라 도리어 비방, 반역하는 수도 있느니라”


“도인으로서 대인수행(對人修行)의 근본요체는 언덕(言德)과 해원(解寃)이니 언덕을 잘 가지며 척을 짓지 말라”
이해 여름에 참으로 신기하고 흥미로운 일이 많았으나 한 가지만 간단히 소개한다.
하루는 임원들에게,“채소 밭에 나가보라”하시므로 가보기 전에 없던 복숭아 나무가 솟아나서 삽시간에 자라나더니 그 가지에 꽃이 피었다 지고 소담스런 복숭아가 주렁주렁 열렸다. 그대로 아뢰니 따오게 하셔서 나누어 잡수시고,“다시 나가보라”하시므로 가보니 사라지고 없었다. 돌아와서 본대로 아뢰니,
“너희는 이상히 생각하지 말라. 풍운조화(風雲造化)도 범인(凡人)의 일은 아니나 수도하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해가 되기 쉬우니 이런 일에 미혹(迷惑)하지 말라”하셨다.


9월 치성 후에 제갈량과 황발부인의 고사(故事)와 홍성문의 회문산 27년간 헛공부에 관하여 설명하여 주신 다음,
“이제는 허령(虛靈)·지각(知覺)시대가 지나고 신명(神明)시대가 당도하였느리라”하셨다.
또 하교(下敎)하시기를,
“한패공(漢沛拱)의 성공은 신모야곡(神母夜哭)에 있고 나의 성공은 오강록(烏江錄)에 있느니라”하시고 ‘아리랑’ ‘도라지’ ‘양산도’ ‘강강수을래’ ‘조을시구’ ‘강조기간’ ‘철부지’ 등의 동요, 민요 또는 속담에 관하여 해설하여 주셨다.
이해 12월 초4일 도주님 강세일을 당하여 임원들이 축배(祝杯)를 올리니,
“그대들이 나에게 잔을 올림은 못난 사람을 잘나도록......병신은 완인(完人)이 되도록 해달라는 축수(祝手)도 되지마는 그보다도 도운융흥(道運隆興)을 기원하는 잔이라야 도미(道味)가 있느니라”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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