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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8. 회룡. 현룡 도수(廻龍·見龍 度數)
작성자 작성일 2012-01-01
파 일

廻龍·見龍 度數
 
도주님께서 정해(丁亥 : 1947)년 설날 임원들의 세배를 받으시고,
“이제는 12윤회(輪廻) 도수를 마쳤으므로 대운대사(大運大事)가 도래하리니 대도의 성취를 빌어야 하리라”하시고 한시 한절을 읊으시니 이러하였다.


“一幅宇宙余若何
 雨露不二永世定”
〔한 폭의 우주를 내가 어찌할꼬?
비와 이슬에 둘 (변하지)이 아니게 하여 영세토록 정하리라.〕


또  말씀하기를,
“전설에 옛날 한패공(漢沛公)은 왼쪽 다리에 72개의 검은 점이 있어서 초패왕(楚覇王)을 이기고 한나라를 세웠다 하는데 ......나에게도......그러한 증표가 있으니 보아두되......발설하지 말라”하시며 걷어 보이시는데 붉은 점이 오른쪽에 3점, 왼쪽에 72점이 완연하므로 모두 신기하게 여기고 감복하였다.


2월 득도일 치성후에,
“부도야자(夫道也者)는 천소명이(天所命而) 인이행지자야(人以行之者也) ㅣ며 앙지미고(仰之彌高 : 우러러 볼수록 더욱 높고)에 찬지미견(鑽之彌堅 : 뚫을수록 더욱 굳다)하고......사람이 도를 눈으로 보고 믿는 것이 아니라 다만 진법의 도리를 깨달아 믿는 것이니라. 소경이 꽃을 보지는 못하여도 향기를 맡고 알듯 도는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 공부로써 깨닫는 것이므로 심불재도(心不在道 : 마음이 도에 있는 것이 아니라)요 도재심공(道在心工 : 도가 마음공부에 있다)이니라”하고 가르치셨다.


또 이렇게도 가르치셨다.
“부모를 일찍 여의어 보지 못하였다고 해서 부모가 없다고 못하고 국가민족의 혜택이 없는 것 같아도 버리지 못하듯이 도를 보지는 못하여도 태극의 진리 속에 살고 있음을 알아야 하며 신앙, 수도의 영험이 당장에 없다고 버릴 수 없음이 어불리수(魚不離水 : 고기는 물을 떠날 수 없다)와 같으니라”
“우주의 대도인 태극의 진리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 가운데 함께 있으니 업고, 안고, 숨쉬고, 있는 것이 막비도(莫非道)니라”


5월 하순에 경북 문경 산북면 공덕산 대승사(大乘寺)를 공부처로 정하시고자 임원들을 거느리고 길을 떠나셨다. 이때 날씨가 너무 더워서 시종하는 사람들이 모두 어려워함을 보시고,
“혹서(酷暑)로 그대들의 노고가 자심(滋甚)하도다”하고 한 말씀하시니 갑자기 시원한 바람과 함께 구름이 햇볕을 가리었으며 또 날이 저물고 구름이 끼어 길이 어두울 때는,
“그대들의 가는 길이 너무 어둡지 않으냐”하시니 구름이 흩어지고 길이 밝아져서 쉽게 대승사에 당도하였다.
대승사에서 유하시며 임원들에게 며칠동안 공부하실 방을 얻게 하셨으나 주지가 응하지 않으므로  임원들이 분하게 여기니,
“나의 공부는 한번만 지나가도 도수를 볼 수 있으니 하룻밤 공부면 넉넉하니라. 다만 이 절의 일이 걱정이나 그대들과는 상관없는 일이니라”하시고 그 면 운달산 김룡사(金龍寺)로 옮기셨다.


얼마 후에 대승사가 화재로 전소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이용직이 도주님께 아뢰니,“당초에  너와는 상관없는 일이라 하지 않았더냐”하시고 더 말씀이 없으셨다.도주님께서 문경으로 거동하실 때에 이용직 등 임원 외에도 그곳 면장 황수연(黃壽淵)과 부면장 박순석(朴順錫)등 여러 도인이 시종하였다.


그리고 김룡사에서는 그 법당에 설석(設席)하시고 수일간 공부하시다가 그 절 뒤에 있는 화장암(華藏庵)에서 대장부 대장부(大丈夫 大丈婦) 도수와 천지일월음양(天地日月陰陽) 도수로 백일공부를 하셨다.
김룡사 공부를 마치시고 20여일간 그곳 약산동 박순석의 집에서 공부하셨는데 수라(水) 시봉은 순석의 처가 담당하였다. 그는 며칠전 꿈에 한 신선이 하강하여 찹쌀 한 말과 좁쌀 서 말을 주며 ‘이  쌀로 하느님의 수라를 지어 올리라’ 한 일이 있었을 뿐 아니라, 매일 도주님께서 뵈러 오는 도인 수십명씩을 대접하는데 걱정하던 찬거리 채소가 조석으로 아무리 뜯어내도 고대 돋아나므로 신기하게 여기고 도주님을 더욱 극진히 받들었다.
이때 도주님을 수종하던 이병두(李炳斗)가 존전(尊前)에서 너무나 무엄(無嚴)하고 불손(不遜)하게 처신하므로 박순석의 아들 중하(重夏)가 보다 못해 그를 꾸짖고자 벼르는데 도주님께서 그 의중을 아시고 따로 불러 타이르시길,
“그대로 두라. 병두는 도를 믿으러 온 것이 아니라  도주 행세(行世)를 견습하러 왔느니라. 앞으로도 병두 같은 자가 비일비재(非一非再)하리니 탓하여 무엇하겠느냐”하시더니 병두는 몇년 뒤에 관운장의 후신이라 하며 금강교주(金剛敎主)를 자처하다가 객사(客死)하였다.


10월 말경에 회문도장으로 돌아오셔서 다시 회룡재에 공부하실 때 매일 수십명씩 찾아오는 도인들의 왕래를 제한하시고 임원들만 왕래하게 하시고 월성금(月誠金) 제도를 정하셔서 매월 23일에 관하 도인으로 부터 수봉(收捧)한 성금을 임원들이 수합(收合)하여 올리도록 하셨다.


도주님께서는 이에 앞서 4년전에 장자 준래(俊來)를 칠원 무기의 상주(尙州) 주(周)씨 영석의 따님 복순(福順)과 성혼시키시고 자제분의 도호(道號)를 내리시니 준래는 청봉(靑峰), 차자 승래(升來)는 청암(靑岩), 3자 영래(永來)는 청구(靑丘)였다.


청봉이 성혼한 후에는 집안 살림을 모두 청봉에게 맡기시되 공사(公私)의 구분을 엄격히 하시고 사가(私家)의 살림이 아무리 궁색하여도 도중의 공금에 의뢰하지 못하게 하셨다. 청봉이 혹 긴급한 일로 간청하면 금품을 빌려 주시되 기일을 정하여 위약함이 없도록 하시며,도중의 공금은 나도 함부로 못하거늘 하물며 네가 만약 손금(損金)할 때는 그 죄를 어찌 감당하랴. 내 너희로 하여금 넉넉하게도 못하거니와 죄짓게도 못하느니라”하시고 청암, 청구 등 자제분들도 근로로 고학(苦學)하게 하셨다.


도주님께서도 모든 가족과 임원들의 허영과 망동(妄動)을 엄금하시고 항상 도리로 법례(法禮)에 적합하게 처신토록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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