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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9. 입금산 도수(入金山 度數)
작성자 작성일 2012-01-01
파 일

入金山 度數
 
무자(戊子 : 1948)년 설날 치성 후에 도의 이름<道名>이 ‘태극도’임을 정식으로 공표하게 하시고 주문의 ‘무극도주’를 태극도주’로 고치셨다.


그리고 이렇게 하교하셨다.
“우리 도의 개화(開化)와 낙화(落花)가 모두 태인(泰仁)땅이 이었으니 이는 ‘큰 씨’가 싹이 트고 자랄 연유이나 꽃이 피었다짐은 결실을 위함이라. 그동안 우리 도가 잠룡도수 10년의 포태기(胞胎期)를 지나 회문도장에서 태극도로 중창하여 현룡(見龍)도수인 장생기(長生期)를 맞은 다음 또 3년이 지났으니......다시 현룡 비룡(飛龍)으로 화(化)하여 관록(冠祿) 제왕기(帝旺期)를 맞으리라. 임원들은 이 천기(天機)를 위념물실(爲念勿失)할지어다”하시며 지난 잠룡(潛龍) 10년간의 고난을 상기(想起)시키셨다.


도주님께서 임원들에게 하문(下問)하시기를,
“그대들 중에 누가 부산의 지리를 잘 아느냐”하시므로 이강인(李康仁)이,
“저의 처가가 부산이옵고 그곳에 친구도 있어 잘 아옵니다”하고 여쭈니,
“네가 가서 내가 공부하기에 적합한 집을 찾되 부산의 산맥이 끝나는 곳이라야 하고 용은 물이 있어야 하니 바다가 보이고수(水)자가 든 지명(地名)이라야 하며 태인도장처럼 치마바위가 있어야 한다”고 하시며 대금 일부도 내려주셨다.


이어서 이렇게 하교하셨다.
“부산은 이 강산의 동남단에 위치한 도시로서 그 지세(地勢)는 국토의 신산(神山) 백두에서 비롯한 산세가 남으로 뻗어내린 정기가 응결(凝結)되고 영남지방 전체의 물이 모여 흐르는 낙동강과 동해가 굽이치는 산진수회처(山盡水廻處)의 영국(靈局)이니라”


“부산은 이 나라 제일의 국제항인 관문......군창지(群倉地) 생문방(生門方)이며 새서울이니......상제께서도......백두우(百頭牛)를 대신한 백우(白牛)를 잡아 공사를 보셨으며......그 자형(字形)이 팔금산(八金山) 또는 입금산(入金山)이라. ‘내가 장차 금산사로 들어가리라’하신 곳......천장길방(天藏吉方) 태극원점(太極原點)의 기지......가마(釜)산이 곧 솥산인 줄도 알라”
강인이 부산에 가서 여러날 동안 여러 곳을 수소문한 끝에 분부하신 조건과 부합되는 보수산(寶水山)아래 보수동의 한 집을 찾았다.


그 집의 위치는 특히 뒤에 태인도장의 치마바위보다 그 길이는 반쯤 되나 높이는 배로 넘었으며 우측으로는 구덕산(九德山), 아미산(峨嵋山)으로 이어진 백호(白虎)와 좌측으로는 복병산(伏兵山), 용두산(龍頭山)으로 이어진 청룡(靑龍)이 뚜렷하고 앞으로는 절영도(絶影島)와 남해가 바라보이는 곳이었다.
강인이 가계약을 체결하고 돌아가서 보고한 다음 다시 와서 대금을 완불하고 내부를 수리하였다.


도주님께서 3월 15일에 임원들을 거느리고 왕림하셔서,
“집은 비록 협소하나 땅이 도수에 맞는 적지로다. 태극의 대운이 이에서 비롯되리라”하시고 그 집을 부산행재소(釜山行在所)로 부르시다가 다음해 설날 부산도장(釜山道場)으로 명명하셨다.
〔이 도장은 8년 후인 병신(丙申 : 1956)년 7월 29일에 보수도정(寶水道庭)으로 개칭하신 이래 지금까지 보존되고 있다〕
이해 5월 초에 도문가(道門歌)란 가사를 지어 읊어 주셨는데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우주는 호호(浩浩)하고
천지는 탕탕(蕩蕩)하다
5만년 길고 긴 용화세계
8문을 넓고 높이 달았으니
(이하 생략)


이달 말경에 승안차(承顔次) 올라온 권동흠(權東欽)에게 하문하시기를,
“너의 집안에서는 입도한 사람이 몇이나 되느냐”하시므로,
“아직은 저 혼자뿐이옵니다”하고 아뢰니,
“덕불고(德不孤)라 도는 외롭지 않은 법이니 벗이 있게 마련이니라.....”하셨다. 동흠이 명심하고  지방으로 돌아와서 먼저 가화(家和)를 이루고 포덕에 힘쓰니 입도치성을 올리기에 바쁠 정도였다.


이무렵  다른 지방에서도 이처럼 입도인이 날로 늘어나서 도세(道勢)가 일가월증(日加月增)하였다.
이해 7월 초순 어느날 도주님께서 임원들을 거느리시고 감천동(甘川洞) 해변(당시는 해수욕장이 있었다)에서 소요(逍遙)하시다가 그 근처에 사는 최위출(催渭出)의 집에 들리셨다.


이때 위출은 뼈가 심하게 부러져서 오랫동안 기동을 못하는데 의사마다 손을 못 쓰는 것을 보시고,
“너와 같은 성심자(誠心者)는 병신이 되지 않으리니 나를 믿고 안심하라”하시며 환부(患部)를 손으로 만져 낫게 하시므로 모두 감복하였다.
8월 초에는 동래 금련산(金蓮山) 마하사(摩寺)에 가셔서 그 큰 방에 설석(設席)하시고 백일공부를 하셨다.
하루는 공부 여가에 임원들이 거처하는 방에 나오셨다가 모두 담배 피우기에 불편해 함을 보시고 통죽(通竹)하게 하시며,
“이것이 평등도수니라”하셨다.


11월 어느날 임원들과 사승(寺僧)들에게 물으시기를,
“법당의 불상(佛像)에 이상이 없느냐”하시므로 가서 살펴보니 그전에는 반듯하던 불상의 머리가 앞으로 숙여졌으므로 모두 이상히 여기며 소란을 피운 일이 있었다.
공부를 마치시던 11월 15일 새벽에는 공부실 앞뜰에 흰 학 한쌍이 날아와서 공부실을 향하여 절을 하듯 몇 번이나 고개를 숙였다 들었다 하였으며 아침에는 공부하실 때 글쓰신 종이를 태워서 그 재를 절 앞 개울 물에 띄우니 개울 위에 무지개가 찬란하게 뻗치는 이적이 일어났다.


12월 초에 중산 도인 박중하가 행재소에 올라와 배알하니 도주님께서 구겨진 50전 지폐를 인두로 다려서 펴게 하시므로,
“이것이 비록 돈이오나 요사이는 어린이의 용돈으로도 쓸 수 없사온데 다리라 하시나이까”하고 여쭈매,
“나는 이것을 돈으로 보지 않고 도인들의 성덩어리로 여기느니라”하셨다.(이때부터 도인들이 성금으로 올리는 지폐는 모두 구김을 펴고 위 아래와 앞 뒤를 바로 하여 올리게 되었다.)
기축(己丑 : 1949)년 봉천명일에 지방임원의 임명기준을 정하셨다. 지방별로 포덕호수가 500호 이상은 포감(布監), 150호 이상은 선도사(宣導師), 50호 이상은 선도원으로 하시고 이 기준에 따라 중산(中山)에 이용직(李龍稙), 충주(忠州)에 안상익(安商翼), 김천(金泉)에 김태만(金台萬), 영주(榮州)에 김명구(金命求)를 포감으로 임명하신 다음 선도사는 포감의 추천으로 임명하시고 선도원은 선도사의 추천으로 포감이 임명토록 하시며,
“임원은 내가 내는 것이 아니라 제 스스로 되어 올라오는 것이니라”하셨다.


하루는 혼인을 앞둔 한 도인이 배알하니,
“태극의 도리가 음양합덕이며 정음정양이고......이것이 곧 혼인과 가정규범의 원리니......합덕 조화로 하여야 함을 명심하라”고 하셨다.
또 기도의 대상을 여쭌 한 도인에게는,
“기도의 최고 대상은 구천상제 뿐이니 불·보살·산신·칠성신에게도 기도할 수는 있으나 그들은 그 아래 분임(分任)된 신명들이니라”하시고 기도의 영험을 묻는 도인에게는,
“기도는 일심의 지성이라야 감천(感天)이니라......마(魔)의 기도가 되어서는 아니 되니 도둑질이 잘 되도록, 도박이 잘 되도록 빌어서야 어찌 복을 받을 수 있으랴. 송주(誦呪)수도가 몸에 배면 절로 악귀 악령이 침범할 수 없고 위액(危厄)을 면하여 만사형통(萬事亨通)하는 영험이 있으리니......전정한 기도는 성·경·신을 다한 수도와 치성이니라”하고 가르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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