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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10. 도인집단도수(道人集團 度數)
작성자 작성일 2012-01-01
파 일

道人集團 度數
 
경인(庚寅 : 1950)년 원조(元朝)에 임원들에게 하명(下命)하시기를,
“그동안 그대들의 노고로 도세(道勢)가 확장되었음을 치하하노라. 그러나 호사다마(好事多魔)로 미구에 도내외(道內外)에 몰아닥칠 환난(患難)의 고비를 넘기기가 극난(極難)하리니 그대들은 도명(道命)의 지엄함을 각골명심(刻骨銘心)하라”하셨다.
이튿날 아침에 지방 임원들을 독촉하여 내려보내셨는데 오후에 경찰 형사들이 불시에 들이닥쳐 도주님 이하 도장에 있던 임원들 다수를 중부산 경찰서로 연행하여 용공(容共)단체관계의 혐의로 고문(拷問)하더니 경북도경으로 이송하였다가 다시 예천(醴泉)에 있는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대로 넘기는 도난(道難)의 변고가 일어났다.


이것은 전에 무극도의 도인이던 배신자 강모, 김모 등이 권력층과 교섭하여 모함한 것으로서 곧 무고로 판명되어 3월 5일 무죄방면되었다.이때 도주님께서는 그 배신자의 괴수 강순임, 김병팔, 엄병윤, 신도균, 정기택 등 5인을 도척, 오적(五賊)으로 규정하셨으나 임원들에게는,
“저들에 대하여 원한을 품거나 복수를 생각하지 말라”하셔서 응징을 못하게 하셨다. 그리고,“앞으로 수화상층(水火相沖)의 대도수에는 국운이 비색(否塞)하여 5적뿐 아니라 모든 원척이 발동하여 세상은 늦모 찔 때 묘판(苗板)에 메뚜기 뛰듯 콩볶을 때 가마솥에 콩 튀듯 하리니......
이번 도난(道難)을 거울삼아 이 고비를 넘겨야 큰 도수를 성취하리라”하시며 당시에 난립한 주의(主義) 사상과 당파에는 일체 가담을 엄금하시며 다음의 한시 한 수를 하교하셨다.


“千山鳥飛絶
  萬逕入滅
  孤舟蓑笠瓮
  獨釣寒江雪


이해 5월 초 10일에 6.25의 남침전쟁이 일어나 전 국민이 온갖 고액을 치르다가 3년 후 6월 17일(양력 7월 27일)에야 휴전이 성립된 민족의 비사(悲史)는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다.

이 사변이 일어나자 많은 국민들은 남쪽으로 피난하게 되었으니 그 가운데 도인들도 보수동 도장 부근에 모여들어 판잣집, 토담집을 짓고 생활하게 되어 그 일대는 자연히 도인들의 집단지가 되었다.

이때 도주님께서는 이들에게 정신적 지주가 되실 뿐 아니라 현실적으로도 생계를 도와 주시고 직장을 알선하시는 등으로 구휼(救恤)하시니 모두가 단시일내에 생활이 안정되고 더구나 지척에서 도주님을 모시므로써 도심이 굳어지고 도인 상호간의 협동력도 강해졌다.
이러한 부산도인들의 소식을 들은 지방도인들은 사변 중에 고초를 겪다가 기회를 보아 보수동 도장 부근으로 모여들어 어려운 가운데도 도단(道團)은 더욱 확대되고 단결되었다.


한편 임원들은 사변기간에도 온갖 애로를 무릅쓰고 전국의 도가를 순방하며 지도 교화하며 매월 1회씩 도주님께 배알하고 명교(命敎)를 모시는 일을 어김없이 수행하였다.7월경에 함안까지 침공했다가 후퇴하던 공산군 패잔병의 은신처가 될 것을 염려한 국군이 회문리 일대의 가옥을 불태울 때 회룡재도 소진(燒盡)되고 그곳에 있던 도중가족은 막심한 고난을 당하다가 부산도장으로 돌아왔다.회룡재 소진의 소식을 들으신 도주님께서,“인간이 무도하면......그 극단이 전쟁이요 살인인데 동족상잔(同族相殘)의 비겁(否劫)속에 어찌 방화만을 탓하랴. 회룡재가 소진됨은 아까우나 이로써 전화(戰禍)가 감소된다면 불행중 다행이니라......복원(復元)도 있으리라”하셨다.


8월 어느날 박순석이 도주님께 여쭈기를,
“지금 부산이 임시 수도가 되었사오니......전에 분부하신 새서울도수에 적중됨이 아니오니까”하니
“내가 말하는 새 서울이 어찌 한 나라의 수도이랴......내가......설법(設法)하는 통일신단(統一神壇), 조화정부(造化政府)에서 삼계를 광구(匡救)할 태극기동의 원점이니라”하셨다.
12월 어느날 보수동 도장의 서쪽 동대신동과의 경계 근처에 밀집(密集)된 판잣집 마을에서 큰 화재가 일어나 강한 서북풍(西北風)을 타고 도장쪽으로 급히 번져 왔다. 도주님께서 그 보고를 받으시고 도장에서 서북향으로 손을 드시니 서북풍이 갑자기 동남풍으로 바뀌며 절로 진화(鎭火)되었다.


신묘(辛卯 : 1951)년에 이르러 부산으로 이사온 도인이 수백호이므로 이를 중부(中部)도인이라 하여 지방도인과 구분하여 부르게 하셨다.

3월 하순에 도장이 번잡하여 공부하기에 불편하시므로 도장 뒷산 중턱에 집을 짓게 하셔서 공부설석하시고 산정(山亭)으로 명명하시고 납폐지(納幣紙)를 소화하며 공부하셨는데 납폐지를 처음에는 임원들이 써서 올렸으나 장수가 많아 도장(圖章)으로 찍게 하시다가 등사판으로 등사하게 하시고 소화할 때 그 연기가 너무 많으므로 공부실에 별도의 연통을 내게 하시며 말씀하시기를,
“내가 지금 하는 공부는 복중(腹中) 80년도수에 따른 휴전(休戰) 도수의 공부니라”하시더니 이때부터 시작된 휴전 회담이 계속되어 2년 후에 휴전이 성립되었다.
이해 여름에 폭우로 무너진 산정 앞의 축대를 충주도인 박재문(朴在文)이 정성드려 쌓더니 도주님께서 그 노고를 치하하시는 순간 그의 농아(聾啞)가 열러 정상인(正常人)이 되므로 본인은 물론 도중이 모두 경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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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한 도인이 인간 사후 신명계의 일을 여쭈니,“인간의 생과 사는 정신과 육체의 합치고 흩어짐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니 죽으면 육체는 흙이 되고 정신은 혼(魂)과 백(魄)으로 나뉘어 생시의 수도 공덕에 따라 귀(鬼), 신(神)의 분등(分等)이 있으나 모두 신명계로 돌아가느니라. 그러나 신명의 주처(住處)는......일정하지 않으니......환생(還生), 전생(轉生)도 있느니라”하시고 간곡히 하교하셨으나 여기서는 이만 줄인다.
임진(壬辰 : 1952)년 원조에 단도수와 급(級)도수를 말씀하시고 포덕을 강조하시더니 도인의 수가 급증하였다.


3월 15일에 도인들의 납폐도수를 하명하시고 1인당 5만장씩을 기도 송주하며 소화하게 하시며,
“5만장이 많은 것 같으나 5만년 후천선경 도수에 비하면 1년에 한 장씩 밖에 해당되지 않느니라”하셨다.
하루는 인간의 윤리, 도덕, 법률, 질서의 원리가 모두 태극의 진리로써 이루어짐을 말씀하시고 공자의 인의, 서가의 자비, 예수의 박애가 모두 태극 음양 합덕진리의 부분적 표현임을 가르치셨다.
11월 하순에 왕자수금(王者收金) 도수와 남신헌금(南信獻金) 도수를 말씀하시고 월성금을 포감별로 보관하였다가 명년 초에 신화(新貨)로 바꾸어 올리도록 명하시므로 임원들이 여러가지 방법으로 바꾸고자 하여도 미처 다 바꾸지 못하였더니 다음해 정초의 화폐개혁(貨幣改革)으로 인하여 3개월 월성금을 모두 신화로 올리게 되었다.


계사(癸巳 : 1953)년 4월 봉천명일 치성 후에 임원들에게 이렇게 훈교하셨다.
“내가 천명을 받들어 모신지도 벌써 45년이다.......구천상제의 도호 ‘증산’에 이어 나를 ‘정산’으로 하셨으니 ‘증정지간’이며 무극주께서 재천(在天)하신 체(體)와 태극주로 재인(在人)한 용(用)의 체용일여(體用一如)한 이도일체(以道一體)니라”
“내가 상제의 도수로 무극대도를 개창하였으니 이는 체를 밝힘이고 다시 태극의 도문을 열음은 그 도수를 푸는 용의 기동이니라. 모든 법방(法方)은 무극주의 체를 태극주로서 용함이니라”
“그대들이 이 체와 용에 따라 공부함은 각자 개인의 도통완공(道通完工)에도 목적이 있으나 천·지·인 3계공사에 참여함이니 5만년 후천선경을 완성할 성사재인(成事在人)의 큰 뜻을 알라”
“천·지·인 3계공사의 도수는 털끝만치의 차착(差錯)도 없느니라. 이제 3천리 동토에 아국 아도(我道)의 태극기가 휘날리고 있으나 금차(今次) 간지(干支)가 끝난 장래에는 세계인의 가슴마다 태극이 박힐 날이 있을 것이며  태극의 원리가 과학문명과 정신문화의 기점(基點)임이 천명되리니 이 곧 선경도수의 일단이니라”


어느날 임원들이 “어떻게 하여야 세계가 화평하고 인류가 안락하오리까”하고 여쭈니 이렇게 훈교하셨다.
“모든 종교는 국제정치나 국내정치에 직접 관여하지 않으나 우리 도는 교정(敎政)을 일체로 하느리라. 태극의 원리는 우주의 대도이므로 모든 정치의 근본사상임을 알라. 지금 미·소 양대국이......대립하여 상극, 상충, 상투, 상해하므로 인류가 진멸지경에 처한 현상은......선천과도역정의 비겁(否劫) 도수니라......이것이 내가 해결해야 하는 소임(所任)이며......구천상제께서 짜놓으신 도수를 합덕, 조화, 해원, 상생의 태극진법으로 실현하여 3계에 보화(普化)하는 청화 5만년 선경을 건설하면 인류의 화평은 무위이화(無爲而化)니라.”
“아직도 양대진영의 정치가 군사가들이......태극원리를 모르고 있으나 음양의 합덕, 조화, 상생으로 기동조화의 묘를 이루어......선경세계가 이룩됨을 자각......전체 인류의 발전을 위한 공동노력을 하게 되리니 이 곧 음양합덕인 태극의 기동이니라.”
이해 9월에 미원지방 도인 윤금현(尹金鉉)이 도장에 올라와 승안(承顔)을 모시고 도주님의 수라(水)상이 맥반(麥飯)에 소찬인 것을 보고......크게 깨닫고 평생 근검절약을 신조로 하여 수도에 전념하였다.
11월 중순에 7일간 식음을 전폐하고 공부하시다가 하루는 갑자기 숨을 거두시므로 가족과 임원들이 놀라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데 잠시 후에 쾌차하셔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사판단(生死判斷) 도수를 보아 상제께서 ‘나는 죽고 살기를 마음대로 하노라’하신 도수를 풀었노라’ 하셨다.


갑오(甲午 : 1954)년 원조에 임원들에게 하명하시기를,
“금년 도수는 구마이당로(九馬而當路)니라. 이 도수는 도인이 모이고 도명이 세상에 알려지는 큰 도수니만큼 그 목넘기 또한 어려울 것이니 도인들에게 언동을 각별히 조심토록 단속하라”하셨다.
이 무렵 각 지방에서는 포덕이 더욱 잘 되고 도인들의 성금헌납도 많아졌으며 중부로 이사하고자 하는 도인도 늘어나므로 임원들은 그 성적을 비교 경쟁하는 양상을 이루었다. 그중에도 충주지방 안상익 포감방면이 더욱 현저하고 그에 따른 말썽도 많이 일어나므로 도주님께서 그 지방 임원들에게,
“도인들의 신심과 정성이 지극함은 가상(嘉賞)한 일이나 그것도 과(過)하면 불여불급(不如不及)하여 폐단이 되기 쉬우니......정도(正道)를 지키라”하셨다.
정월 중순에 어느 도인의 집에 작은 화재가 일어났다. 이때 도주님께는 아무도 보고하지 않았는데 먼저 알고 계셨으며 진화(鎭火)도수를 보신다 하시며,
“수·화·풍 3재(三災) 가운데 수·풍재는 자연의 객기(客氣)에서 나오지만 화재는 인간의 방심(放心)에서 나오는 인재(人災)니 모든 도인에게 불조심을 각별히 강조시키라”하셨는데 이로부터 도인집단지에서는 화재가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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