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진경

제목 태극도 - 태극진경 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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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황상제님께서 정유(정유 : 도기 49, 단기 4290, 서기 1957)년 원조에 임원들의 세배를 받으시고 말씀하시기를 "내가 글 한 구를 외우리니 잘 기억하여 두라." 하시니 이러하니라. 去年四月何四月 運來靑龍是四月 거년사월하사월 운래청룡시사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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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3일 조회시(朝會時)에 임원들이 상고하기를 "중부도인들이 모두 세배를 드리려 하오니 윤허하여 주시옵소서." 하니 상제님께서 "나도 그런 생각을 하였더니 마침 잘되었도다. 오늘 저녁에 한자리에서 받으리니 전도인을 각 방면 회의실에서 대기하도록 하라." 하시니라. 임원들이 이 명령을 하달하니 도인들은 환호하면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전학원 학생들까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초저녁부터 회의실에서 대기하다가 오후 7시에 정사 앞 광장으로 모이니라. 이때 바람이 일며 큰 비가 내리는데 도인들은 추운 날씨에 우비도 없이 비를 맞으면서 오직 상제님께 알현(謁見)한다는 일념으로 불구자와 어린이들까지 정숙하게 대기하니라.
3
상제님께서 청구(영래)가 받쳐드린 우산을 물리시고 비를 맞으시며 단에 오르셔서 일동이 숙연히 시립하였다가 국궁(鞠躬)으로 올리는 세배를 받으시고 "동성상응(同聲相應)하며 동기상구(同氣相求)하야 수류습(水流濕)하고 화취조(火就燥)하며 운종룡(雲從龍)하고 풍종호(風從虎)이라. 성인이 작이(作而) 만물이 도(覩)하나니 본호천자(本乎天者)는 친상(親上)하고 본호지자(本乎地者)는 친하(親下)하나니 즉 각종기류야(各從其類也)이니라. 동청룡(東靑龍) 기동도수(機動度數)로 진시삼천지반(盡是三千之班)이니 대운대사(大運大事) 소원성취가 불원임을 고(誥)하노라." 하시는 요지로 유시(諭示)하시니라. 유시를 다시 청구로 하여금 복창, 하달하게 하시고 환궁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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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제님께서 단을 내려서시자 그때까지 신통스럽게 조용하던 어린이들이 일제히 울음소리를 내었으나 곧 그치니라. 이때 갑자기 기온이 온화하여져서 빗물조차 차지 않았으며 등불이 없음에도 평소와 달리 여명(黎明)처럼 밝아져서 도인들은 질서 정연히 해산하여 각 방면 회의실에서 밤새도록 이야기를 나누며 노래와 춤으로 즐거워하니라. 이날 많은 도인이 비를 맞았으나 한 사람도 감기에 걸리지 않으니라.
5
상제님께서 도인들의 정성어린 세배를 받으시고 못내 기뻐하시더니 이튿날 조회에서 하교하시기를 "지난밤 도인들이 찬비를 맞으며 고생이 많았으나 청룡이 동(動)하매 풍우가 대작(大作)함은 당연지사가 아니냐? 수운 가사에 '개문납객(開門納客)하니 기수기연(其數其然)이라, 사연설법(肆筵設法)하니 기미여하(其味如何)오? 의관정제(衣冠整齊)하니 진시삼천지반(盡是三千之班)이라' 하였는데 이번 일이 바로 양(兩) 50년 만에 비로소 성취되는 '삼천지반도수(三千之班度數)'니라." 하시니라. 이날 각 방면별로 참례인원을 조사 집계하여 보고하니 신기하게도 총원이 3천 명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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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5일 축시 기도시간을 기하여 기도행사 방법을 다시 변경하시니, 납폐지는 기도주, 도통주, 운장주 각각 3장씩 9장을 소화하고 주문은 모두 종전대로 봉송하게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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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낮에는 도인들의 농악을 숭도부인과 함께 친감하시고 "이것이 장차 선악(仙樂)이 되리라." 하시니라.
8
초8일에는 전학원 공민학교 학생들이 학정의 지도로 연습한 연극을 광장 임시 무대에서 공연하니, 관객들은 어린 학동의 재롱스런 연기에 모두 감탄하며 흥겨워하니라. 상제님께서도 친람하시고 가상히 여기셔서 격려금을 하사하시니 학동들의 사기가 더욱 양양(揚揚)하여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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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제님께서 임원들에게 하명하시기를 "포덕과 교화에 어떠한 경우라도 없는 말을 꾸며서 남을 현혹시키지 말고 올바르게 진리를 전하라. 혹세무민하는 사술(詐術)은 사술(死術)이니 설사 일시 성공한 듯이 보일지라도 사상누각과 같아 오래 지탱할 수 없을 뿐더러 원원(元元)이 천지에 용납받지 못할 대죄니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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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에 주문을 변경하시니 봉축주와 진법주의 무극신(无極神)을 통극신(通極神)으로 고치시고 납폐지의 무(无)자도 통(通)자로 고치게 하셨으며, 22일 주일에는 진법주의 "처선조 응감지위 처외선조 응감지위"를 삭제하게 하시고 기도시간에는 주문을 모두 봉송한 다음, 기도주와 태을주를 각각 24회씩 연송하게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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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말일에 상제님께서 최경구(崔敬求)와 노해성(盧海成) 등 영선부의 건축기술자들을 거느리시고 동래 금정산(金井山) 범어사(梵魚寺)와 양산 영취산(靈鷲山) 통도사(通度寺) 등에 행행하셔서 가람(伽藍)의 구조와 설비 등에 관하여 상교하시고 당일로 환궁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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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초3일에 임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그대들 뒤에는 언제나 보호신(保護神)이 따라다니니 걱정이 무엇이랴? 그러나 좋은 일은 항상 마(魔)가 많고 파란 곡절이 있는 법이니 좋은 운수를 받으려면 먼저 그만한 시련이 있음을 명심하라." 하시니라. 또 "고시(古詩)에 노류폭포어이주(怒流瀑布魚已走)라 한 뜻은 폭포수는 내리치나 고기는 이미 달아났다는 뜻도 되고, 고기는 그런 곳이 좋아 꼬리치며 노는 형상인 어희주(魚喜躊)도 되느니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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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말씀하시기를 "잉어는 매일 크는 것이 아니라 홍수가 나서 마음 놓고 놀 때 한 물씩 큰다 하며, 낙동강 황어(黃魚)는 황지(黃池) 용소(龍沼)에 가야 옥관자(玉貫子)를 단다 하느니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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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9일에 상제님께서 정사 앞의 판잣집을 지적하시며 "어느 방면 누구의 집이냐?" 하고 하문하시므로 영주방면 도인 이종팔(李鍾八)과 금복연(琴福淵) 등의 집임을 상고하니 "그 집들을 옮기고 임원들의 회관을 지을 만한 터를 닦도록 하라." 하시니라. 임원들이 집주인과 합의하여 그 집들을 옮겨 준 다음, 이내 터를 닦기 시작하니 "이왕이면 저기까지 넓히라." 하시며 구역을 지정하여 주시니라. 그런데 그 안에는 원주민 오수일(吳秀一)의 논 일부가 포함되어 있었으나 사실을 말하니 수일이 기꺼이 기증함으로 하명대로 터를 넓히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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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를 닦음에는 전체 임원들이 총동원하여 낮은 곳에 돌로 축대를 쌓고 높은 곳의 흙을 파서 메워 정지(整地)하니라. 이때 김천방면 도인 원갑선(元甲善)은 원래 농아였으나 석수(石手)도 아니면서 자진하여 다른 석수와 함께 지성으로 석축공사에 힘쓰므로 상제님께서 치하하시며 그의 말못함을 안타까워하시더니, 공사가 완료될 무렵 갑자기 갑선의 말문이 열려 정상인이 되므로 모두 상제님의 덕화라 하며 감복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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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석축에는 옥녀봉의 바윗돌을 많이 쓰니라. 하루는 옥녀봉 아래 냇가에서 10여 명의 부녀자들이 빨래하고 있었는데 이건우 등이 이를 살피지 않고 그 위에서 바윗돌을 굴려 내리니 부녀자들이 촉박한 위험에 놓이니라. 상제님께서 진노하시며 어수를 들어 바윗돌을 가리키시는 순간 세차게 굴러 내려오던 바윗돌이 갑자기 중턱에서 멎었다가 신경희 등 임원들이 부녀자들을 피신시킨 후에야 내려앉아 모두 무사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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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제님께서 정지공사가 완료되자 영건비(榮建費)를 하사하셔서 당일로 착공하도록 하시니라. 임원들은 처음에는 일반 회의실처럼 임시건물로 신축하실 줄 알았으나 친히 현장에 임어하셔서 기초작업부터 지휘하시는데 그 범위도 넓고 기초도 견고할 뿐더러, 일반 회의실 건물과는 다른 목재와 기와 등 자재를 준비하게 하시니, 그 중에서도 목재는 강송(江松)으로써 염수(鹽水)에 절였다가 말려 쓰도록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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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원들은 건물을 신축할 바에는 임원회관보다 정사를 먼저 중창하여 드림이 도리이고 급선무라 생각되어 상신하였으나 윤허하지 않으시니라. 다시 상의한 후 하층은 임원회관으로 쓰더라도 상층은 정사와 인접하여 적합한 곳이므로 상제님께서 어용(御用)하시도록 2층으로 영건하시도록 상신하니 3일 만에 윤허하시고, 27일 오시에 정초(定礎), 28일 묘시에 입주(立柱)하게 하시며 상량일(上樑日)은 규오에게 택일하게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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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말경에 상제님께서 지난 계사(癸巳 : 도기 45, 서기 1953)년에 모종하게 하셔서 친히 분재하시던 은행 묘목 몇 그루를 이건우로 하여금 도장내로 옮겨 심게 하시며 "후일 큰 정자나무가 되어도 좋을 곳에 심고 잘 가꾸라." 하시니라. 이에 건우가 마음속으로 "우리의 도성덕립(道成德立)을 언제 이 나무가 커서 정자나무가 될 때까지 기다릴까?" 하고 의심하며 두려워하니 상제님께서 그 뜻을 아시고 "너희는 때를 기다리기가 어려움이 아니라 마음 닦기가 어려움을 알라." 하시니라. 건우가 이 묘목을 도장내에 심고 성심으로 가꾸더니 훗날 큰 정자나무가 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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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초하룻날 인시(寅時)에 신축건물 2층에서 상제님께서 친히 집례하셔서 상량치성(上樑致誠)을 올리시니라. 이때 갑자기 강풍이 일어나 임시로 설치한 예단(禮壇)이 심히 요동하므로 진설조차 곤란하였으나 상제님께서는 "천지대신명이 운집하는데 어찌 바람이 없으리오?" 하시며 치성을 강행하시니라. 축문을 읽던 규오는 바람에 촛불이 꺼질 듯하며 글자가 보이지 않아 어려웠으나 치성은 무사히 끝나니라. 이 치성 후에야 임원들은 비로소 이 건물이 단순한 임원회관이 아님은 짐작하였으나 상제님께서 대강하실 본전(本殿)인 대강전(大降殿)임은 전혀 깨닫지 못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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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량축문(上樑祝文)은 며칠 전에 임규오에게 발설하지 말고 짓도록 하셨으나 잘 짓지 못하므로 전날 밤에 친제(親製)하셔서 규오로 하여금 봉서하게 하시니 이러하니라. 상량축문 維歲次 丁酉 三月 壬寅朔 初一日 壬寅 无極神 大道德 奉天命 奉神敎 유세차 정유 삼월 임인삭 초일일 임인 무극신 대도덕 봉천명 봉신교 太極道主 趙鼎山 伏告于 태극도주 조정산 복고우 九天應元 雷聲普化 天尊 姜聖上帝 至神至聖 聖靈之下 天藏地秘 구천응원 뇌성보화 천존 강성상제 지신지성 성령지하 천장지비 占千古堅秘之嶺境 大海湊東南 創萬世淸化之弘規 樹風聲於天壤 점천고견비지영경 대해주동남 창만세청화지홍규 수풍성어천양 聳觀瞻於襟神 竊惟太古之遺跡 實是後學之矜式 蓋 欽慕者 深入是境 용관첨어금신 절유태고지유적 실시후학지긍식 개 흠모자 심입시경 升是堂 孰不感服而欽歎 前導後托 是人神之常道 上布下成 是洞天之眞境 승시당 숙불감복이흠탄 전도후탁 시인신지상도 상포하성 시동천지진경 抛樑東 天馬沖宵 揷翠空 對志那時飛到此 奔騰世波飛將衡 포량동 천마충소 삽취공 대지나시비도차 분등세파비장형 抛樑西 龍湫活水與長天 應時流通四海春 莫道此中潛勿用 抛樑北 포량서 용추활수여장천 응시유통사해춘 막도차중잠물용 포량북 九德重重繞碧嵐 望裡 群峰圖畵列 天光雲影此中海 抛樑南 鞍峰高出待幾時 구덕중중요벽람 망리 군봉도화열 천광운영차중해 포량남 안봉고출대기시 望美人兮天一方 玉宇高處不勝欽 抛樑上 白日明月與淸風 망미인혜천일방 옥우고처불승흠 포량상 백일명월여청풍 玉樞九天又仙境 萬千兒孫獻福壽 抛樑下 山盡水廻際陰陽 옥추구천우선경 만천아손헌복수 포량하 산진수회제음양 無盡無涯蒼蓮源 四海龍王互相對 伏願 上樑之後 陽順陰逆 五行相生 무진무애창연원 사해용왕호상대 복원 상량지후 양순음역 오행상생 造化道成 眞法經內 十五位次 神聖之位 七星經內 諸位仙官 조화도성 진법경내 십오위차 신성지위 칠성경내 제위선관 天下英雄 關雲長 所率諸將 二十八宿 二十四節 諸大神將 開闢呪內 천하영웅 관운장 소솔제장 이십팔수 이십사절 제대신장 개벽주내 十五神門 諸大神將 卽此大降 십오신문 제대신장 즉차대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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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이른 아침에 임원들은 모두 귀가하고 도장 안에는 지난달 25일에 새로 임명된 도전 오치국과 지방임원 권동흠만이 시측하니라. 이때 상제님께서 정사 내정 바위 위에 좌어(坐御)하셔서 하늘을 쳐다 보시므로 동흠도 우러러보니, 치성시에 휘몰아 치던 강풍은 고요히 자고 하늘은 맑게 개었는데, 동쪽 하늘에서 흰 구름 한 조각이 빠르게 서쪽 하늘로 날아가니라. 상제님께서 혼자 말씀으로 "여동빈(呂洞賓)이 저기 가는구나. 옥추문(玉樞門)은 내가 잠그고 왔는데..."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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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3일 저녁에 임원들에게 하문하시기를 "그대들 가운데 누가 적벽부(赤璧賦)를 외우느냐?" 하시므로 동흠이 "제가 외울 수 있나이다." 하니 외워 보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적벽부에 소자(蘇子)라 함은 소동파(蘇東坡) 자신이고, 객(客)이라 함은 여동빈이니 그가 선술로 동파를 선경(仙境)까지 데려다가 구경시켜 줌이니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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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중순 어느 날 상제님께서 내정에 거둥하셔서 시측한 영하 등 임원들에게 1 • 2감 쪽을 가리키시며 "저 쪽은 테밖이고 난간(欄干)과 같아서 떨어지기 쉬우니 내려앉아야 하리라." 하시니라. 또 6감 아랫지역을 가리키시며 "너무 내려가면 테를 벗어나느니라." 하시고 다시 옥녀봉 동쪽 기슭을 가리키시며 "저 곳은 생문방(生門方)이고, 그 안골은 천옥(天獄)이니 당분간 집을 짓지 않아야 하느니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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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초4일 아침에 포장, 호장들을 정사로 부르셔서 수라를 함께 진어하신 다음, 하교하시기를 "오늘 이 자리에 모인 그대들은 모두 태극도의 공인(工人)들이니라. 반드시 알아 둘 일이 있으니 오도의 중대사는 모두 4월에 이루어지므로 음력이든 양력이든 4월은 내가 잊지 못할 달이니라. 봉천명과 득도가 그러하고 천보와 황극도수, 태인, 회문, 부산 세 도장의 개시가 모두 그러하지마는, 이는 이미 지난 도수이고 그보다 더 큰 도수는 돌아오는 4월이니라." 하시더니 "거년사월 하사월(去年四月 何四月)고? 운래청룡 시사월(運來靑龍 是四月)이라." 하는 한시 한 절을 읊으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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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하명하시기를 "앞으로 중부의 포장, 호장들은 도장에서 상근(常勤)하고 지방임원도 상정시에는 상주(常住)하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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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교하시기를 "증산 상제님께서 허도수(虛度數)를 짜 놓으셨으므로 내가 50평생을 허도수, 허공부에 시달렸으나 갑신(甲申 : 도기 36)년에 시지49년지비(始知四十九年之非)도수에 따른 인덕도수의 실공부(實工夫)로 전환하여 지금에 이르렀으니 이제 13년이니라. 이것이 상제님께서 짜 놓으신 이윤의 도수였으며 또 공부종필(工夫終畢)의 도수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그대들은 명심할지어다."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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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일불(一不)이 살육통(殺六通)이라는 옛말이 있는데 나는 일불이 살백통(殺百通)의 도수를 쓰리니 너희들은 일호(一毫)의 차착도 없어야 하리라." 하시니라. 김용화가 그 뜻을 여쭈니 "사다리를 오를 때는 한 칸씩 오르되 떨어질 때는 단번에 떨어진다는 뜻이니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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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마(龍馬), 신귀(神龜)는 모두 물에서 나왔고 또 하우씨의 9년 치수는 낙서에 유래함이나, 나의 5만년 후천대운(後天大運)은 오강록(烏江錄)에 유래함이니라. 낙수와 오강은 강하(江河)의 중류이나 이곳 감천용담은 황하(黃河)와 낙수(洛水)로 통하는 낙동강과 동해의 수회처(水廻處)니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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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 누구나 제 한 몸이 곧 소우주(小宇宙)며 도와 일체임을 자각하여야만 대도 진법의 진도인(眞道人)이니, 이러한 도리는 쇄골정려(碎骨精勵)한 공부로써 이루리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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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란 재천(在天), 재지(在地), 재인(在人)하여 삼재에 관영(貫盈)하니 너희들 도인은 이미 천지인 삼계의 역군이 되어 있느니라. 그러나 그로써 족하지 않으니 후천 삼계개벽(後天 三界開闢)의 역군이 되어야 하지 않으랴?"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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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제님께서 영건공사의 모든 부분을 친감하셔서 한 가지라도 소홀함이 없게 하시고 설계상 구조와 자재를 상찰(詳察)하심은 물론, 목재는 모두 굽거나 찌개 하시고 반드시 수미(首尾)를 가려서 쓰게 하시니라. 심지어 외(椳)엮는 일까지 손수 시범하시며 "나무는 종횡 십(十)자 또는 정(井)자로 대어서 음양이 되고, 새끼는 궁을형(弓乙形)으로 엮어 태극을, 흙도 맞벽을 쳐서 합덕을 이루니 여기에도 진리가 있지 않느냐? 이처럼 만사를 모두 태극의 원리로 이루어야 하리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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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창호의 살 하나, 고리 하나와 돌쩌귀 하나도 자상히 명교하시므로 영선부의 책임자 박해성(朴海成)을 비롯하여 대목책임자(大木責任者) 최경구(崔敬求) • 조동은(趙東殷), 소목책임자 송인화(宋仁化) • 박위서(朴渭緖) 등과 모든 공인들이 온갖 정성과 기능을 다하여 공사에 임하니라. 또한 도인들도 앞을 다투어 공사에 참여하여 흙 한 덩이, 기와 한 장을 나르는 일까지 자진 참여하여 힘씀으로써 공사가 불일성지(不日成之)로 추진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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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 도중 어느 날 상제님께 박해성이 아뢰기를 "이러한 자재로써는 판잣집을 겨우 면한 정도이오니 30, 40년밖에 더 지탱하겠나이까?" 하니 "이만하면 임시 쓸 것이니라." 하시니라. 또 최경구가 " 하층은 콘크리트나 벽돌로 짓고 상층은 한식으로 지어 단청도 했으면 좋겠사옵니다." 하니 "훗날에는 금을 올릴지언정 지금은 도인들이 이렇게 고생하는데 인정상 어찌 그리할 수 있으랴? 현실에 맞게 하느니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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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하순에 건물이 완공되자 상제님께서 임원들에게 하명하시기를 "그대들이 건물의 용도와 명칭도 모르면서 오직 내 명(命)대로 하여 영건한 노고를 치하하노라. 이 전각은 내가 장차 50년공부를 종필(終畢)할 곳이며, 그대들이 심령심대를 봉안하고 진법을 봉행하여 대강(大降)을 봉대(奉戴)할 오도유일(吾道唯一)의 지중한 성전(聖殿)이니 그런 뜻으로 명칭을 지어 보라." 하시니라. 임원들이 태을궁(太乙宮), 통천궁(統天宮), 봉강전(奉降殿), 요운전(曜雲殿), 봉령전(奉靈殿) 등의 명칭을 지어 올리니 "모두 부적하다." 하시고 "내 이 성전을 대강전(大降殿)으로 명명하노라." 하시므로 일동이 황공복지(惶恐伏地)하며 감복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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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하교하시기를 "유가(儒家)에서는 공자를 모신 전우(殿宇)를 선성지도(先聖之道)의 집대성(集大成)이라는 뜻에서 대성전(大成殿)이라 하고, 불가에서는 부처의 덕호(德號)를 따라 대웅전(大雄殿)이라 하는데, 오도에서는 원위대강(願爲大降)의 대강전(大降殿)으로 명명하느니 이로써 수운이 기도주를 봉명(奉命)한 지 양 50년 만에 비로소 대강의 계대가 마련되느니라. 건물은 비록 협소하나 우선 쓰는 데는 족할지니 내가 50년공부로써 찾은 곳이 감천이요, 그대들이 기도하는 소원이 오직 대강이므로 이 바로 천기요 도수이며, 5만 년에 유일하고 우주간에 무이(無二)한 진리의 성전이니 이곳을 새 서울이라 함도 이 성전이 있는 연유니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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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제님께서 대강전 내부의 명칭과 용도를 하명하시니 상층은 중궁(中宮). 중궁의 영위(靈位) 봉안실(奉安室)은 영대(靈臺)라 하시고, 몸소 도수를 보실 공부실은 법단, 중궁의 동문은 대동문(大同門), 남문은 영불문(迎佛門), 팔각의 창문은 정갑문(丁甲門)이라 하시며, 중궁의 북서 측에 전수실(奠需室), 동남 측의 서편에 봉심실(奉審室), 그 동편에 시법 공부실을 두시니라. 하층은 회관, 그 북문은 승정문(承政門), 남문은 용화문(龍華門)이라 하시고, 동북과 서남측에 상하층을 통하는 계단, 그 옆에는 남북으로 공부실 두 개를 두셨으며 상하층의 출입하지 않는 창문은 공창(空窓)이라 하시니 일(日), 월(月), 용(用)자의 형상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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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영선부원(營繕部員)에게 명하셔서 영대의 봉안상(奉安床), 독(櫝), 제기(祭器) 등을 원위(元位)로부터 4위까지 각각 만들게 하시며 "내 일을 내가 하다니...," 하시고 일일이 그 장광척촌(長廣尺寸)과 칠에 이르기까지 세밀히 지도, 감검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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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26일에 봉축주와 진법주의 통극신을 무극신으로 환원토록 하명하시고, 납폐지에도 그와 같이 고치게 하시며 "내 이제 무극과 태극의 진리를 통한 황극(皇極)을 세웠노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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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에 상제님께서 구천상제님의 진영(眞影)과 석가여래, 관성제군의 위영(位影)은 몸소 준비하시고, 옥황상제님을 비롯한 다른 위패(位牌)의 위지는 채우식(蔡雨植)으로 하여금 법단에서 하명에 따라 봉서하게 하셔서 이를 이윤섭과 오치국에게 순차대로 영대 봉안상 위에 옮겨 모시게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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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초에 봉안상과 좌대(座臺), 진영액자, 독 등을 소목들로 하여금 은행나무 목판으로 짜고 옻칠을 하게 하시며 옻을 타는 임원들은 접근을 엄금하시니라. 박중하는 이때 옻을 심히 타는 체질임에도 두려움 없이 이윤섭. 오치국과 함께 위패를 모셨는데 옻이 오르지 않음으로 신이에게 여기더니 상제님께서 중하에게 "모든 병은 마음에 있느니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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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에 봉천명일 치성을 겸하여 대강전 영건과 영대 봉안의 치성을 겸하여 봉행하기로 결정하시고 먼저 영대에 15신위를 봉안하시니, 그 위차와 배례절차 등은 다음 장의 도표와 같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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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성 후에 임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옛날 주문왕(周文王)이 영대(靈臺)와 영소(靈沼)를 경지영지(經之營之)할 때, "서민(庶民)이 자래(子來)하여 불일성지(不日成之)함에 종고이낙지(鐘鼓而樂之)라." 하더니 나의 일도 그와 같아 영대 앞에 영소도 불일성지하리라." 하시며 대강전 앞 축대 아래 작은 샘을 파서 금붕어를 기르게 하시더니, 과연 다음 해 도장을 정지할 때 그곳에 영소가 절로 이루어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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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강전이 영건된 후 상제님께서 법단(法壇)에 공부 설석하셔서 도수를 보시며 하명하시기를 "자금 이후로는 도법이 출어법단(出於法壇)이니 내 말이 곧 도법(道法)이니라." 하시고, 도중사의 결재(決裁) 하명과 도인들의 승안(承顔) 등 공사(公事)를 법단에서 행하시니라. 숭도부인께서는 정사 회룡재에 거처하게 하시고, 시봉들은 정사 옆방에 항상 대기하게 하셨으며, 도중 가족들은 보수도정 내당(內堂)에 거주하게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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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초하룻날 상제님께서 영대문을 개방하시고 중부 전도인의 봉심의례(奉審儀禮)을 명하셔서, 방면별로 임원 인솔하에 회관 동북계단을 통하여 중궁에 올라가 영대에 배례를 올리고 거수하여 알현한 다음, 서남계단으로 퇴전(退殿)하게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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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전날 상제님께서 옻으로 옥체가 붉어지셨으므로 임원들이 송구하여 약을 진상하며 "지존께옵서 옻을 타지 않으시옵는데 오늘은 어찌 옻이 오르셨나이까?" 하고 상고하니 "만수도인이 봉심의례에서 옻 때문에 신고(辛苦)할 것이므로 내가 미리 대속함이니라." 하시고 약을 물리시니라. 임원들은 옥체의 환후를 염려하였으나 저녁 문안을 드릴 때에는 쾌차하셨으며 수천 도인이 칠 냄새가 가득한 중궁에 오르내렸음에도 옻이 오른 도인이 없음으로 모두 덕화라 생각하며 기뻐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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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초순 며칠 동안의 장마에 용화문 밖 광장이 질고 물이 괴었으므로 임원들에게 정지작업을 명하시니라. 이때 임원들이 그 진흙탕을 꺼리어 불성실하게 하므로 "너희는 여기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곳이 대강전의 하층과 같으니라." 하시며 엄히 훈책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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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어느 날 말씀하시기를 "앞으로 조심할 일은 산불이니, 산불로 산이 헐벗는 일도 문제이나 신명계에서는 더욱 싫어하느니라. 지계(地界)가 천계(天界)에 응함이 지기로 하늘에 붉은 노을이 이는 것을 보면 아느니라." 하시고 다음의 한시 한 절을 외워 주시니라. 香初老佛細細音 鐘後靑山默默天 향초노불세세음 종후청산묵묵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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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임원들에게 허령(虛靈), 지각(知覺), 신명(神明)의 3단계 도수를 하교하시고 "이제는 완전한 신명시대니라. 허령도수와 지각도수를 마친 지가 이미 오래니 신명도수가 분명하지 않느냐?"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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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그대들이 지금 태을주를 외우고 있으나 그 뜻을 알고 외우느냐? 만사무기(萬事無忌) 태을주, 포덕천하(布德天下) 태을주, 소원성취(所願成就) 태을주니라. 그러므로 한자 한음에도 성경신을 다하여 마음을 다져 외워야 태을천상원군(太乙天上元君)의 감응이 있으리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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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초패왕과 의제(義帝)의 고사를 말씀하시고 "초패왕이 의제를 저버림이 아니요, 의제가 초패왕을 저버림이니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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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행사에는 마음가짐과 함께 장소도 중요하니, 사가(私家)에서 열 번보다 회의실에서 한 번이 낫고, 회의실에서 열 번보다 도장에서 한 번이 나으니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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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제님께서 훈교를 내리실 때는 항상 2인 이상이 함께 봉교하도록 하시고, 임원에게 과오가 있을 때는 선임자에게 선도(善導)의 잘못을 엄책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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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보름에 청구가 개인사업을 위하여 학정직을 사임하므로 수리하신 다음, 후임에 괴산지방 호장 김영하를 임명하시고 교전에 박영희(朴永熙), 교무에 이영호(李永鎬), 학무에 김수봉(金壽鳳), 유진권(兪鎭權), 이종희(李種姬), 이문행(李文行) 등을 보궐 임명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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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전학원 임원들에게 하교하시기를 "그대들은 성경신을 다하여 이세도인(二世道人)들을 교육시켜 참다운 인재를 양성하라. 앞으로는 임원들과 성인(成人)들도 모두 배워야 하느니라. 청학동에서는 청학을 하여야 하느니 이 또한 '청학도수(靑學度數)' 의 개시니라." 하시고 "청학동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청학공부하는 곳이 바로 청학동이니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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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렵 상제님께서 "후일의 용도에 대비한다." 하시며 금, 은괴(今銀塊)를 수집하시더니 5월에 박한경에게 거금을 주셔서 금괴를 사오도록 하명하시니라. 한경은 이 돈을 증식시키려고 음성(陰城) 무극광산(無極鑛山)의 금광 덕대(德大) 김광현(金光鉉)에게 투자하였다가 사기당하여 금괴를 진상할 수 없게 되자, 송구하여 "도를 못 믿게 되었다" 하며 2개월 간 월례 상정일에도 상정하지 않으니라. 이 사실을 알게 된 김용화가 그 유용한 손실금을 협동상회 자금으로 충당하여 수습한 다음, 함께 상정하여 상제님께 배알하니 "너의 죄를 논하자면 만사무석(萬死無惜)이나 개과천선하고 도업에 더욱 진력하되 과욕의 죄과를 참회(懺悔)하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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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어느 날 말씀하시기를 "옛날 공자가 이구산(尼丘山)에 사람을 모음은 칠십이현(七十二賢)을 내는 공부였고, 서가가 영취산(靈鷲山)에 사람을 모음은 성문(聲聞) 연각(緣覺)과 오백나한(五百羅漢)을 내는 공부였으나, 나의 공부는 천장길방하신 부산 감천 용화도장(龍華道場)에서 일만이천 도통군자(道通君子)를 일시에 내는 공부니라. 그러나 나는 자리 없어 한하는 자는 없게 하리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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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도인의 장남이 모대학에 수석합격하였다 하여 그 가정에서 자축연을 열매 도인들이 모여서 즐겁게 논다 하므로 상제님께서 임원들에게 하교하시기를 "그대들이 주역 건괘(乾卦)의 효사(爻辭)를 보라. 잠룡 현룡은 앞날이 창창함을 낙으로 삼고, 비룡은 소요자재(逍遙自在)의 낙이 있으나, 항룡(亢龍)은 다만 참회가 있을 뿐이니, 수석보다는 차석에 안심 안신이 있느니라. 그러나 수재(秀才)가 형설적공(螢雪積功)으로 수석이 됨을 어찌 가상하다 하지 않으리오?"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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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하교하시기를 "군주가 출병(出兵)을 시킬 때에는 대장보다 더 신임하는 자를 부장으로 임명하는 뜻을 알아야 하느니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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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좋은 생활을 구하느냐? 좋은 생각을 먼저 지으라. 오래 살고 싶으냐? 오래 안심 안신하라. 복을 받고 싶으냐? 복을 남보다 먼저 짓고 늦게 받을 생각을 하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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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소년 몇 명이 상제님께 배알하니 격려하시기를 "너희들은 용력(勇力)을 지니라. 대강(大江)을 건너뛰려고 하여야 반에라도 이르느니라. 그러나 실력과 계책이 없으면 물에 빠질까 두려우니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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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제님께서 임원들에게 하교하시기를 "그대들이 기다리는 때는 오직 좋은 시절을 말함이나 그 때라는 것은 여기이지(如期而至)하고 여한이정(如限而定)하는 것이니라. 분초를 두고 기다릴 것이로되 꼭 어느날 어느 시라고 단언하지는 못하고 설사 알아도 누설하지는 못하는 법이니, 만일 그리하면 신명이 가장 싫어하는 천기누설(天機漏洩)이 됨이니라. 그러므로 알고 말하면 누설죄에 걸리고, 모르고 말하면 기만죄(欺瞞罪)에 걸리느니, 정히 답답하거든 세상사를 살펴보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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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제님께서는 평소에 대강전을 상비원으로 하여금 엄히 수직하게 하시며 일체의 부정(不淨)을 금하시고 중궁에는 상급임원의 출입도 제한하시니라. 7월 말일에는 상비원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한 경관이 우연히 중궁에 올라가 구경함을 박중하가 발견하고 황급히 퇴전(退殿)시키니라. 상제님께서 이 보고를 받으시고 크게 진노하셔서 상비당번 정복현(鄭福鉉)을 대동문 밖에 석고대죄(席藁待罪)시키시고, 상급임원 전원도 중궁에 부복 대죄시키시며 몸소 영대문 앞에 한 시간이나 부복 사죄하신 다음, 전임원에게 엄책하셔서 궁단속(宮團束)을 더욱 강조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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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8월 초8일 아침에 상제님께서 박한경, 유철규와 한상덕(韓相德), 김재복(金載福) 등을 거느리시고 지리산(智異山) 쌍계사(雙溪寺)에 행행하시니라. 행행에 앞서 대강전 앞마당에 승용차를 대기시키시고 임원들에게 하명하시기를 "이번에 '백의군왕(白衣君王), 백의장상(白衣將相)도수'가 들어오는데 내가 없어도 너희들이 감당하겠느냐? 궁단속을 잘하라. 궁단속이 제일 중요하니라." 하셔서 다짐을 받으시니라. 이어서 "이 도수를 마치면 도명이 세상에 드러나고 도장에도 전기가 들어오게 되며, 나 또한 이 지상에서 볼 도수는 거의 다 마치게 되느니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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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하오 쌍계사에 임어하셔서 청학루(靑鶴樓) 옆의 영주각(瀛州閣)에 설석하시고, 초9일 자시부터 공부를 시작하시니 밤에 지리산 일대에 폭풍이 일며 때 아닌 우박이 쏟아지니라. 이때 상제님께서는 밤새 공부하셨으며 시종들은 우박을 피하여 청학루에서 쉬는데 밤중에 공부실 쪽에서 벼락 소리가 크게 일어나므로 급히 올라가니 상제님께서 크게 꾸중하시기를 "너희들은 제자리를 비워 두고 어디서 무엇을 하였느냐? 저 문과 문고리를 보라." 하시니라. 시종들이 황공하여 부복하였다가 살펴보니 문고리는 뻐드러져 뽑히고 문종이는 모두 찢어져 있으므로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니라. 이어 말씀하시기를 "이런 일에 너희들이 있은들 어찌하랴? 신명들이 한 일이어늘... 지리산 신령은 여신령(女神靈)이니라." 하시며 한시 한 절을 외워 주시니 이러하니라. 趙鼎山來智異應 一布衣來白日寒 조정산래지리응 일포의래백일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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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에 임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증산 상제님께서 '정북창(鄭北窓) 같은 재주로도 입산삼일(入山三日)에 시지천하사(始知天下事)라.' 하심이 진실로 옳은 말씀이니, 너희들도 공부 않고 성공할 생각은 말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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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날 여러 일간신문에 "태극도 간부가 폭력으로 도인 재산갈취"라는 제하의 기사가 크게 보도되니라. 이는 7감에 살던 김현우(金顯宇)가 입도는 하였으나 임원들의 지도에 불응할 뿐더러, 재력이 있음을 뽐내면서 빈곤한 도인들을 업신여겨 괴롭히므로 방면호장 이윤섭이 과격하게 질책하매, 이에 앙심을 품고 배도하여 사실무근한 허위날조(虛僞捏造)의 진정서를 언론기관과 수사당국에 제출함으로써 발단됨이니라. 이로써 각 신문사에서는 이를 확대 보도하고 더욱 심층 취재한다 하며 매일 수십명의 기자가 도장에 찾아와서 며칠 동안 소란을 피우니라. 수사당국에서도 사실을 조사하니 도장에 남아 있던 임원들은 이 사건을 상제님 환궁 전에 마무리 지으려고 불안, 초조하며 고초를 겪었으나 당국의 조사 결과로 사실무근임이 판명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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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에 상제님께서 지리산 공부를 마치시고 환어하셔서 시내 당감동의 서랑(婿郞) 하계천(河啓千)댁에서 3일 간 유어하시고 환궁하시니라. 이때 지리산에 산불이 크게 번져 수만 정보가 소실되므로 며칠 동안 인근 주민 수만 명이 동원되어도 인력으로는 진화하지 못하니라. 25일에 상제님께서 이 소식을 들으시고 "산이 다 타서야 되겠느냐?" 하시더니 이날 폭우가 쏟아져 자연 진화되니라. 임원들은 한 달 전에 산불을 분부하신 어의를 비로소 깨달았으며, 공부 첫날 밤에 지리산 산신이 복응(伏應)한 일과 아울러 감복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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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밤에 환궁하실 때 수천 도인이 하감천까지 나아가 배례를 올리며 맞아 모시니 밤하늘에 달도 없는데 대낮처럼 밝고 맑은 하늘에서 뇌전이 일어났으며, 상제님께서 임원들에게 "백의군왕 백의장상도수"를 무사히 치른 노고를 치하하시니라. 이어 당나라 말기에 희종(僖宗)이 "해동지리산(海東智理山) 대불핍절문천무만지기(代不乏絶文千武萬之氣)"라는 비결을 보고 최고운(崔孤雲)을 보내어 그곳 청학동 잔돌평지 40리에 8만9암자를 지어 그 기운을 진압하게 하였다는 전설과 조선 태조가 개국시에 팔도 명산의 응기를 받았으나 유독 이 산만이 불복(不服)하므로 본래의 산이름 지리산(智理山)을 지이산(智異山)으로 고쳐서 경상도로부터 전라도로 유배시켰다는 전설 등을 하교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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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에 상제님께서 박한경, 이윤섭 등을 거느리시고 대전으로 행행하셔서 유어(留御)하시고, 이튿날 은진 관촉사(恩津 灌燭寺)의 미륵불상과 연산 개태사(連山 開泰寺)의 철확(鐵鑊)을 관감하시니라. 환궁하신 후 임원들에게 은진미륵은 석재가 너무 커서 건립이 곤란하였으나, 신동(神童)의 암시로 흙을 쌓고 세운 다음, 흙을 파냈다는 전설과 연산 철확은 옛날 중국 도산(塗山)의 구정(九鼎)에 비유되는 큰 쇠솥이었는데,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왜국이 철재로 사용하려고 파괴하다가 뇌전벽력이 일어나고 인부가 급사하므로 포기하였다는 전설에 이어 개태사 미륵삼존불의 전설 등을 하교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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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축시에 상제님께서 공부를 마치시고 정사에 임어하셔서 옆 방에 있던 임규오, 김영하, 윤금현 등을 불러 시좌시키시고 "너희들과 이야기를 하고자 하니 우선 너희들이 무슨 이야기든지 하여 보라." 하시니라. 금현이 "서교 경전 묵시록(默示錄)에 '어린양'이 하느님으로부터 인봉(印封)한 책을 받아 그 인을 떼어 조화를 부렸다는 말이 있사온데, 그 '어린양'은 바로 '을(乙)인 양(羊)' 이고 '양(羊)은 미(未)'이므로 지존께서 을미생(乙未生)으로 오심을 예언함이옵고, '인봉한 책'이란 지존께서 증산 상제님께서 비장하신 천서(天書)를 받드심을 뜻함이오며, 또 여호와가 '2천년 후에 불로 심판한다'는 말은 지금 지존께서 사오화(巳午火) 남방에 오셔서 창생을 구제하실 일을 예언함이라 생각하옵니다. 그러하옵고 역(易) 정괘(鼎卦) 단전(彖傳)에 '이목손화(以木巽火)이 팽임야(烹飪也)이니 성인이 팽(烹)하야 이향상제(以享上帝)하고 이대팽(以大烹)하야 이양성현(以養聖賢)하니라.' 함도 지존께서 정산(鼎山)님으로서 천명을 봉대하심을 단정함이옵니다." 하고 장황히 아뢰니라. 상제님께서 미소를 띠시며 듣기만 하시다가 봉천명하신 일로부터 중국에서 공부하시며 도수를 보신 일, 득도 환국하신 일, 안면도 황새마을 통사동에서 공부하신 일, 천서 • 천보를 모신 일 등의 경과사를 말씀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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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임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진주는 내가 잡고 이제 뽑기까지 하였으니, 까기만 하면 되는데 까기는 여반장(如反掌)이니 너희들이 하라. 진주란 낙서의 법이니 낙서 구궁(九宮)의 수가 종, 횡, 대각(縱橫對角) 팔방이 모두 15임이니라. 또 낙서의 좌선(左旋), 우선(右旋)하고 상생상극(相生相剋)하는 이치도 너희들이 깨달아야 하느니라." 하시며, 낙서 구궁도(九宮圖)를 하시(下示)하시니 다음 표와 같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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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중순에 상제님께서 임원들로 하여금 중부 도인 전원에게 구궁 팔괘와 생기법(生氣法), 십이운법(十二運法)을 가르쳐 외우도록 하시고 다음의 한시를 외워 주시니라. 先須掌中配九宮 縱橫十五在其中 선수장중배구궁 종횡십오재기중 次將八卦分八節 一氣統三爲正宗 차장팔괘분팔절 일기통삼위정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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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제님께서는 본래부터 "내 앞에는 서자(書字)가 필요하지 않으니라." 하시며 일체의 문서는 소화하셔서 남기지 않으시고 진영(眞影)도 기념 촬영조차 엄금하시니라. 9월 13일 아침에 청구가 사진기를 가지고 정사에 올라가 상고(上告)도 없이 회룡재 정침에서 독서하시는 상제님 진영을 촬영하니, 이는 청구(영래) 자신이 아무 생각 없이 한 일로서 촬영 후에야 무엄하게 저지른 일임을 깨닫고 당황하였으나, 상제님께서는 아무 말씀도 않으시고 법단으로 거둥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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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낮에 상제님께서 박중하, 이윤섭 등에게 하명하시기를 "오늘 아침에 영래가 한 일은 저도 모르고 한 일이나 도수에는 맞았느니라. 사진사를 불러 내 사진을 정식으로 촬영하여 확대하도록 하라." 하시며 그 장광척촌을 하교하셔서 대소 4장을 마련하게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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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8일 하오에 상제님께서 포장, 호장 등 상급임원들을 중궁에 시립하게 하시고, 친히 영대의 옥황상제님 위패의 위지를 떼어 소화하신 다음, 그 위(位)에 옥체진영(玉體眞影)을 봉안하시니라. 임원들은 이때 어의를 헤아릴 수 없어 묵묵히 시립하였을 뿐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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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상급임원들은 이심전심으로 "범질도수와 예장도수(禮章度數)"를 생각하고 지난 을미(乙未 : 도기 47, 서기 1955)년에 보수도정에서 지존위 등극을 주청(奏請)하던 사례가 상기되니라. 이에 치성준비를 마치고 일동이 숙의하여 주청할 방침을 결의한 다음, 하오 9시경에 중급임원들을 대강전 회관에 시립시키고, 상급임원 전원이 정사에 올라가 존전에 부복하고 주청하기를 "지존께옵서 상제위(上帝位)에 등극하옵소서." 하였으나, 비답(批答)하지 않으시므로 자정이 지나 구천상제님 강세치성 시간이 되도록 세 번 네 번 반복하여 간곡히 주상(奏上)하니, 상제님께서 "치성이 늦겠으니 그만하라." 하시고 중궁으로 거둥하셔서 치성진설을 명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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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원들이 진설을 봉행하다가 진반순서(進飯順序)가 상제님 진영 위 앞에 이르매, 진설원(陳設員) 이윤섭이 주저하다가 마지못하여 "지존진영위(至尊眞影位) 앞에도 메를 올려야 하나이까?" 하고 상고하니, "너희들이 그렇게 미련하냐? 답답하도다! 뜻대로 하라." 하시므로 진반하고 치성를 봉행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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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낮에 상제님께서 영대 앞에 임원들을 원형으로 부복시키시고 현무경을 내어 놓으시며 하교하시기를 "내가 이 현무경의 도수를 모두 마치고 이제 이 한 장의 도수만 남았느니라. 이는 내가 닫고 온 옥추문(玉樞門)을 다시 열러 가는 도수니라." 하시며 그 중의 한 장을 가리키시니라. 이때 임원들은 부복한 채 하교를 모셨을 뿐, 어느 장인지를 확인하지 못하고 어의도 깨닫지 못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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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상제님께서 박중하 등을 거느리시고 법단에 옥체진영을 구천상제님 진영과 나란히 봉안하신 다음, 보수도정에 임어하셔서 그 영대에도 대강전 영대에서와 같이 옥황상제님 영위에 진영을 봉안하시니라. 임원들은 이때부터 상제님께 4배를 올렸으나 진의를 깨닫지 못하더니 화천하신 후에야 비로소 상제님께서 옥황상제님이심을 깨달았으며, 이때 법단에 남겨 두신 진영 한 장은 화천하신 후 양례(襄禮)를 마친 다음, 재세시에 미리 지정하신 대강전 봉심실(奉審室)에 봉안하고 도인들이 승안, 봉심토록 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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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제님께서 11월 초하루 조회시에 현세의 시국이 너무 무도함을 개탄하시며 "강륜(綱倫)이 소지(掃地)에 패천만신(悖天謾神)하니 혼잡이 기극의(其極矣)라." 하시고 한시 한 수를 읊으시니 이러하니라. 願問生方從何地 鐘聲起處太乙宮 원문생방종하지 종성기처태을궁 兩白之運在何處 四鐘聲振太乙宮 양백지운재하처 사종성진태을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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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궁즉변(窮則變)하고 변즉통(變則通)하며 통즉원시반본(通則原始返本)이니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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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오시에 동지치성(冬至致誠)을 마치시고 전임원을 명소(命召)하셔서 하명하시기를 "내 이제 50년공부를 종필할 도수니라. 도의 규모가 무극도 때만 못하고 성전도 옥경대(玉京臺)를 본뜬 태인 도장만은 못하나 원래 허(虛)는 외화내빈(外華內貧)한 법이라, 대강전도 이만하면 쓰리로되 앞으로 남은 일은 도인들의 수심연성(修心鍊性)과 천지음양(天地陰陽) 이기(理氣)에 대응상속(對應相續)하여 대강과 도통의 전제가 되는 진법공부 한 가지 뿐이니라. 내가 50년공부로써 이룬 광구 천하의 공부법방이니 유일무이한 진법(眞法)이요, 진법(陳法)이며 천지대학(天地大學)이요, 청학(靑學)이니라. 이는 36궁 도수(三十六宮度數)니 임원들은 이 일을 명심하여 봉행하되, 우선 각 방면 책임자는 관하도인 중에서 신심과 정성이 공부할 만한 자를 엄선하여 그 명단을 일주일 내로 제출하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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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명령에 따라 각 방면에서 제출된 명단은 약 8천여 명이니라. 상제님께서 먼저 수도사무원으로 책임자에 박중하, 부책임자에 윤금현과 최해창(崔海昌)을 임명하시고 수도공부반 편성과 그 관리업무를 상세히 하교하셔서 맡기시니라. 또 각 공부반의 책임자인 시학원(侍學員)을 위시하여 도장과 중궁을 수호, 감시하던 상비원의 업무를 계승할 정급(正級)과 정급을 보좌할 진급(進級) 등 수도반 임원을 선임하시니라. 임원 이외의 도인을 수본(修本)이라 하고, 여자수본을 내수(內修), 남자수본을 외수(外修)라 명명하시고 내, 외수 중에서 신심이 더욱 두텁고 공로가 많은 자와 상급임원의 가족들을 회원(會員)으로 선발하시며 시학원과 정급, 진급, 회원 등의 사명을 더욱 강조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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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제님께서 수도사무원들에게 공부방법을 상세히 하교하시고, 또 주문의 봉송격식(奉誦格式)을 봉축주 • 기도주 • 진법주 • 도통주 • 신성주는 축문식(祝文式), 태을주 • 칠성주 • 이십팔수주 • 이십사절주는 경문식(經文式), 운장주 • 개벽주 • 해마주는 호령식(號令式)으로 하되 개벽주의 감아미성(感我薇誠) 이하는 축문식으로 정하신 다음, 전도인의 송주(誦呪)와 배례방법을 재연습시키게 하시니라. 또 주송은 격식뿐만 아니라, 오음육률(五音六律)에 맞추되 구절부단(句節不斷)하고 구송부절(口誦不絶)하게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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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8일에 규오, 중하, 영하, 금현 등에게 명하셔서 종운(鐘韻)을 짓게 하셨으나 3일이 되도록 짓지 못하므로 12일에 어제(御製)하신 글을 내리시니 다음과 같으니라. 종운 鐘聲鳴兮여 宇宙警應이로다. 종성명혜 우주경응 第一鳴兮여 天氣下降하고, 第二鳴兮여 地氣上昇하고, 第三鳴兮여 제일명혜 천기하강 제이명혜 지기상승 제삼명혜 人道中正하고, 第四鳴兮여 造化始定하니 萬有具備로다. 인도중정 제사명혜 조화시정 만유구비 鐘聲이 幾何오? 十五相續이라. 其理如何오? 八卦相盪하고 九宮成數로다. 종성 기하 십오상속 기리여하 팔괘상탕 구궁성수 縱橫運用하야 十五成眞이라, 眞法如是하니 是曰眞理로다. 종횡운용 십오성진 진법여시 시왈진리 第一鳴兮여 角星이 爲始하고, 第二鳴兮는 亢星之明이요, 第三鳴兮는 제일명혜 각성 위시 제이명혜 항성지명 제삼명혜 氐星之謂요, 第四鳴兮는 房星이 是也오, 第五鳴兮는 心星이 正卯요, 저성지위 제사명혜 방성 시야 제오명혜 심성 정묘 第六鳴兮는 尾星이 次之요, 第七鳴兮는 箕星之艮이로다. 제육명혜 미성 차지 제칠명혜 기성지간 二行之一은 斗星이 爲始하고 二二之鐘은 牛星이 當北하고 二三之鐘은 이행지일 두성 위시 이이지종 우성 당북 이삼지종 女星之分이요, 二四之鐘은 虛星之指요, 二五之鐘은 危星이 是也오. 여성지분 이사지종 허성지지 이오지종 위성 시야 二六之鐘은 室星이 次之하고 二七之鐘은 壁星之乾이로다. 이륙지종 실성 차지 이칠지종 벽성지건 三行之一은 奎星이 起西하고 三二之宿는 婁星이 次起하고, 三三之宿는 삼행지일 규성 기서 삼이지수 누성 차기 삼삼지수 胃星이 相續하고, 三四之宿는 昴星之酉요, 三五之宿는 畢星이 위성 상속 삼사지수 묘성지유 삼오지수 필성 隨起하고 三六之宿는 觜星之度요, 三七之宿는 參星이 是野이로다. 수기 삼륙지수 자성지도 삼칠지수 삼성 시야 四一之宿는 井星이 初起하고 四二之宿는 鬼星이 次之하며 四三之宿는 사일지수 정성 초기 사이지수 귀성 차지 사삼지수 柳星이 相隨하고 四四之宿는 星星이 當午하며 四五之宿는 유성 상수 사사지수 성성 당오 사오지수 張星이 相繼하고 四六之宿는 翼星이 連起하며 四七之宿는 軫星이 장성 상계 사륙지수 익성 연기 사칠지수 진성 爲終하야 周流成度에 在天成象이로다. 위종 주류성도 재천성상 是鐘也는 冬至爲始에 小寒이 次之하고 大寒이 連起하니, 立春 雨水 시종야 동지위시 소한 차지 대한 연기 입춘 우수 驚蟄 春分 淸明 穀雨 立夏 小滿 芒種 夏至 小署 大署 立秋 處署 경칩 춘분 청명 곡우 입하 소만 망종 하지 소서 대서 입추 처서 白露 秋分 寒露 霜降 立冬 小雪 大雪이 成終이로다. 백로 추분 한로 상강 입동 소설 대설 성종 北玄武 黑帝將軍 來待之位 東靑龍 靑帝將軍 來待之位 南朱雀 赤帝將軍 북현무 흑제장군 내대지위 동청룡 청제장군 내대지위 남주작 적제장군 來待之位 西白虎 白帝將軍 來待之位 中央鉤陳 黃帝將軍 내대지위 서백호 백제장군 내대지위 중앙구진 황제장군 來待之位 如是五方帝君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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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정급이 기도시간에 타종(打鍾)하며 종운을 외우는 방법을 하교하시니 다음과 같으니라. 1. 자, 축시에는 "종성명혜여 우주경응이로다. 제1명혜여 천기하강하고"와 제2, 제3, 제4명혜를 이와 같이 외우면서 각 1회씩 4회를 삼고일명(三告一鳴)으로 치고 "종성이"로부터 "진리로다"까지는 외우지 아니한다. 2. 다시 "제1명혜여 각성이 위시하고"를 외우면서 1회를 친 다음, "제2명혜는 항성지방이요"를 외우면서 1회, 나머지 각 성수마다 이와 같이 외우면서 1회씩 모두 28회를 치되, 약식으로 각 성수제군명만 외우면서 1회씩 28회를 칠 수도 있다. 3. 오, 미시에는 먼저 전 제1항과 같이 4회를 친 다음, 24절후명을 한 절후씩 외우면서 1회씩 24회를 친다. 4. 묘, 유, 진, 술시에도 전항과 같이 4회를 친 다음, "종성이"로부터 "진리로다"를 외우고 더 외움이 없이 15회를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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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수도공부실을 다음과 같이 하명하시니라. "공부를 시학(侍學)과 시법(侍法)으로 구분하여 시법공부는 그 시행을 후일로 미루되, 대강전 상층의 중궁 동남측의 공부실을 시법실(侍法室)로 명명하니 장차 시법공부반(侍法工夫班)이 사용하도록 하라. 하층의 용화문 옆방을 태을방(太乙房)으로 명명하니 시학공부반(侍學工夫班)의 시학원, 정급, 진급, 회원이 교체 사용도록 하며, 승정문 옆방을 일관방(一貫房)으로 명명하니 내,외수가 교체 사용하라. 또 일전에 대강전 앞의 김중태의 집을 7감으로 이사시키고 수리한 두 방을 내수공부실과 외수공부실로 명하니 내, 외수가 각각 1실씩 쓰도록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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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에 수도사무원으로 하여금 3일 후에 공부할 시학 1개반의 명단을 다음과 같이 편성하게 하시니라. 이 반이 제1호 제1반이며 책임자에 이용직, 부책임자에 박중하와 조호선(趙浩善)이 임명되고 용직은 몸이 불편하므로 중하가 대리하니라. 수도사무원은 공부 3일 전마다 반편성표(班編成表)를 작성, 공포하고 각 방면 포정은 관하 해당 반원에게 통지하며 각 반은 책임자 1인, 부책임자 2인, 정급 3인, 진급 6인, 회원 12인, 외수 12인, 내수 12인 총원 48인이며 그 편성표는 다음 장의 표와 같으니라. 또 수도사무원은 각 방면 포정으로부터 다음 날 공부할 반원의 이상 유무를 확인 받아 하오 7시까지 그 녹명지(錄名紙)를 정서하여 법단(法壇) 존전에 봉정(奉呈)하게 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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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시학 제1호 제1반부터 제10반까지 각 반의 책임자 1인과 부책임자 2인씩이 미리 임명되고, 또 매일 공부반을 감독할 시학관(視學官)으로 임규오, 그 보좌로 윤금현이 임명되어 하루씩 교대로 근무하니라. 며칠 뒤에는 포장, 호장 중에서 몇 명이 추가 임명되어 당번제도가 되니 그 명단은 다음 장의 표와 같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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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하오에 상제님께서 친히 각 공부실을 설비하시니 각 실의 영대방향(靈臺方向) 정면 벽에 백지를 붙이셔서 위지(位紙)로 정하시고 위지 앞에는 향과 향로 성냥과 재떨이를 비치하신 다음, 잠시 위지와 대좌(對坐)하셔서 시종들이 알아들을 수 없게 혼자 말씀을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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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밤 9시에는 다음날 공부할 반원 48인을 회관으로 모이게 하셔서 책임자 박중하로 하여금 반원을 호명 점검하되, 다음과 같이 진행하도록 하시니라. 호명된 반원을 편성표 순위대로 제1렬에는 책임자 • 부책임자 • 정급 • 진급 등 12인, 제2열에는 회원 12인, 제3렬에는 외수 12인, 제4열에는 내수 12인이 정렬하여 향전배례(向殿拜禮) 후, 법좌하여 책임자로부터 공부방법과 유의사항을 전달받은 다음, 좌배(坐拜)를 올리고 해산함으로써 점호의례(點呼儀禮)를 마치고 다음 의례에 대기하게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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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학반의 공부방법은 다음과 같으니라. 1. 전일반과 후일반의 교체시각은 하오 11시로 한다. 2. 후일반은 하오 9시에 회관에 모여서 점호의례, 10시에 중궁에 올라가 봉심의례를 봉행한다. 3. 각 공부실에서 봉송할 지정주문(指定呪文)은 다음과 같다. 4. 각 반원은 지정시각, 지정공부실에 들어가되 전(前) 반원이 물러나는 자리에 부복 • 궤좌 • 분향한 다음, 법좌하여 좌배하고 전 반원의 송주가 끝남과 동시에 지정된 주문을 한 시간 연송한다. 5. 소정시간이 끝나면 들어오는 반원에게 자리를 비켜주고 법좌, 송주를 계속하다가 그의 준비가 끝나는 대로 송주를 마치고 좌배, 심고한 다음 퇴실한다. 6. 지정주문을 연송하기 전에 봉축주 1회, 기도주 • 태을주 각 4회를 봉송하되, 갑병무경임(甲丙戊庚壬)의 양일(陽日)에는 태을위시(太乙爲始)로, 을정기신계(乙丁己辛癸)의 음일(陰日)에는 기도위시(祈禱爲始)로 하여 일진의 음양에 맞춘다. 7. 평일의 진술축미시(辰戌丑未時) 4회와 주일의 자오묘유 진술축미시(子午卯酉 辰戌丑未時) 8회의 기도는 전(全) 반원이 합동으로 한 시간을 모신다. 주문을 평상시처럼 봉송한 다음, 기도주와 태을주를 일진음양(日辰陰陽)에 맞추어 호선(互先)으로 반 시간씩 연송하되, 주문교대 시각은 반 시각보다 5분 후에 정급이 올리는 주문교대 종과 전령의 신호에 맞춘다. 다만, 그 시간에 공부한 반원은 다음 시간에 보충기도를 모시되 평상시처럼 태을주. 기도주 각 24회를 연송한다. 8. 공부를 마친 반은 하오 11시에 합동으로 중궁에 올라가 봉심의례를 봉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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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그 유의사항은 다음과 같으니라. 1. 각 반원은 책임자와 시학당번의 지시, 감독사항을 준행한다. 2. 각 반원은 목욕재계하고 복장과 용모를 단정하게 한다. 3. 일체의 부정(不淨)을 금기(禁忌)하며 공부 중에 발생한 부정도 또한 그러하며 그 기간의 기준은 다음과 같다. 4. 공부시각은 정급의 타종에 맞추어 분초도 어김없이 봉행한다. 5. 매일 들어오는 반원은 하오 9시에 점호하고 책임자의 지시를 받는다. 6. 공부의 다음 차례 반원은 한 시간 전부터 지정공부실 앞에 대기하면서 전(前) 반원의 오착(誤錯)이나 조는 일이 있을 때는 책임 시정한다. 7. 모든 반원은 기상 직후 청소하고 소세한다. 8. 공부 당일에는 무단 외출을 금하되 식사는 교대로 한다. 9. 취침시간인 상오 2시부터 5시 이외에는 눕지 않는다. 10. 도장내에서는 항상 청결, 정숙히 한다. 11. 기타 의문사항이나 어려운 일이 있을 때는 책임자에게 문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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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제님께서 이와 같은 방법으로 18일 갑신(甲申) 자시부터 시학공부를 개시하게 하시고, 동시에 법단에서 백일공부를 시작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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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에 하명하시기를 "재명일(再明日)로서 시학 제 10반까지 공부하게 되나 이는 연습을 한 것이며 이만하면 법방수행(法方遂行)에 충분하니, 오는 28일 갑오(甲午)를 기하여 제1반부터 정식공부를 봉행하도록 하라." 하시니 이때부터 정식 시학공부를 봉행하게 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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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제님께서 지난 9월에 옥체진영(玉體眞影)을 영대에 봉안하실 때는 구천상제님 진영보다 좌대를 5푼이 낮게 하시니라.그 후에 보관 중이신 금, 은괴 각 10여 관씩으로 양위(兩位)를 금상(金像)으로 조상(彫像)하시고자 수차 기능공을 부르셔서 방법을 하문하시다가 기능상(技能上)의 문제로 중단하시더니, 12월 초3일에는 양위 진영의 크기를 동일하게 새로 조성하셔서 다음날 상제님 강세치성 직전에 봉안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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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기해(己亥) 주일을 기하여 수도사무원에게 초강식(初降式), 합강식(合降式), 봉강식(奉降式)의 절차를 상교하셔서 하오 6시에 그동안 시학공부를 마친 5개 반 정원 240인을 소집하셔서 사무원의 주관으로 초강식을 봉행하게 하시니라. 먼저 사무원이 5개 반의 녹명지를 법단 앞 탁자에 올린 다음, 시간이 되자 창홀(唱笏) 임규오, 고수(鼓手) 김용화, 시독원(侍讀員) 이종락(李鍾洛), 김대성(金大成)과 그 밖의 포장, 호장 전원이 중궁에 올라가 각 지정 위치에 시립하고 당일 공부반의 정급 1인은 내정 대문 옆에, 1인은 중궁 복도 대동문 안에 시립하며, 진급 1인은 대동문 밖에 자리를 펴놓고 그 옆에 시립하니라. 이에 창홀이 영대와 법단에 명촉, 분향하니 상제님께서 법단에 임어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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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앞서 대강전 대문 바깥뜰에 4열종대로 정렬, 대기하던 제1반이 책임자의 "정렬, 면수 1렬 앞으로 나솨" 하는 구령에 따라 제 1렬로부터 중궁을 향하여 전진하다가, 정사 대문 옆의 정급과 대동문 앞의 진급이 순차로 "국궁" 하는 구령에 따라 국궁 자세를 취하고 중궁에 올라가 영대문 앞에 4열 횡대로 정렬하니라. 창홀은 일동을 구령으로 "정렬 • 취석 • 면수 • 배례 • 법좌 • 면수" 하게 한 다음, "평심 정기(平心正氣)하여 지성으로 발원(發願)하라." 하는 계훈(戒訓)을 호령하니라. 시독원은 영대 양문 앞에 법좌하고 창홀의 구령에 따라 봉축주 1회와 기도주 태을주 각 4회, 칠성주 • 운장주 • 이십팔수주 • 이십사절주 각 1회씩 순차로 번갈아 봉송하되 음양일진에 맞추고, 일동 역시 일진에 맞추어 봉축주 1회와 기도주 • 태을주 각 4회를 봉송하며, 고수는 봉축주 첫 봉송시에 "대강 대강 해원신(大降 大降 解冤神)"의 7박자로 4회 북을 치니라. 송주가 끝나면 일동이 좌배하고 일어나서 국궁 • 예필 후, 8렬로 우향 우하여 법단의 양위상제님께 법배와 평배를 각 4배하고 부복하니라. 이때 창홀은 제1반의 녹명지를 소화하고 일동은 일어나서 거수 알현한 다음, 다시 4열로 좌향 좌하여 국궁하고 음양일진에 맞추어 전렬 또는 후열로부터 퇴전함으로써 제1반의 초강식을 마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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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절차로 5개 반의 초강식을 순서대로 봉행하니 다음 반부터 창홀은 박중하가 담당하니라. 제1반 강식 중 일동의 법단을 향한 부복시에 상제님께서 법단 앞에 임어하셔서 훈고(訓誥)하시기를 "이 강식은 건극개강식(建極開降式)이며 우주행진(宇宙行進)이라. 삼재기성(三才旣成)에 팔문(八門)이 성운(成運)하고 구궁(九宮)이 성도(成道)로다. 왈이군공(曰爾群工)은 경수내직(敬受乃職)하야 엄이존성(嚴爾存誠)하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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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제님께서 초강식 후에 법단에서 임원들에게 하교하시기를 "이 공부를 잘하면 나와 서로 문답할 날이 있으리라. 그리고 이 방은 선방(仙房)이므로, 증산 상제님께서 말씀하신 '너희들은 신선을 보리라.' 하심도 이를 이르심이니, 너희들이 곧 신선이 되리라." 하시고 다음의 한시 한 절을 읊어 주시니라. 聲滿宇宙萬物心 淨吾脫劫所願成 성만우주만물심 정오탈겁소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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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8일 갑진(甲辰) 주일에 시학 제6반으로부터 제10반까지의 초강식을 올리게 하시니라. 이때 중부 각 방면의 구분을 다음과 같이 한글 자음표시(子音表示)로 구별하여 호칭하고 신발에도 표시할 것을 상신하니 재가하시니라. 기호(記號) 방면명(方面名) 포정성명(布正姓名) ㄱ 음성(陰城) 경석규(慶錫圭) ㄴ 진천(鎭川) 임창섭(林昌燮) ㄷ 주덕(周德) 김명흠(金明欽) ㄹ 충주(忠州) 장동섭(張東燮) ㅁ 증평(曾坪) 김이현(金利鉉) ㅂ 괴산(槐山) 유한규(柳漢珪) ㅅ 청천(靑川) 이유학(李有學) ㅇ 미원(米院) 김기태(金基泰) ㅈ 김천(金泉) 이건우(李建雨) ㅊ 중산(中山) 박덕구(朴德九) ㅋ 영주(榮州) 신경희(申景熙) ㅌ 청주(淸州) 윤동춘(尹東春) ㅎ 연풍(延豊) 최해창(崔海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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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에 상제님께서 시학 제2호 제1반의 편성표를 재가하시며 하명하시기를 "각 호의 제1반 책임자를 그 호의 호책(號責)으로 하라." 하시고 제5호까지의 각 호책을 다음과 같이 명하시니라. 제1호 박중하(朴重夏) 제2호 임규오(林奎五) 제3호 박한경(朴漢慶) 제4호 신상철(申祥澈) 제5호 유철규(柳喆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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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제님의 명에 따라 13일 기유(己酉)에 시학 제11반부터 제15반까지의 초강식을 봉행한 후에 제1호 15개 반의 합강식을 봉행하니 그 합강반(合降班)의 편성방법은 다음과 같으니라. 시학 제1, 6, 11반의 외수 36인의 전반(前半) 18인은 제1렬, 후반 18인은 제3렬, 내수 36인의 전반은 제2열, 후반은 제4열로 한 총 72인을 합강식 제1반으로 편성하니라. 이와 같은 방법으로 시학 제2, 7, 12반이 합강식 제2반, 제3, 8, 13반이 제3반, 제4, 9, 14반이 제4반, 제5, 10, 15반이 제5반으로 각각 편성하니라. 또 시학 책임자 부책임자 정급 진급의 정원 135인 중 72인으로 제6반, 회원 정원 225인 중 72인씩으로 제7, 8반을 각각 편성하니 그 총원은 576인이니라. 다만 초강식 때에 부정이나 유고(有故)로 불참한 자리는 초강식을 마친 반원 또는 회원으로 보충하고, 남은 인원은 봉심실 옆과 복도에 정렬시키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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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편성을 완료한 제1반부터 초강식 때와 같은 방법으로 중궁에 올라와 합강식을 봉행하니라. 다만, 시독원의 송주를 초강식의 주문 이외에 개벽주를 우선시독원(右旋侍讀員)이 추가 봉송하고, 고수는 그 송주의 "24절제대신장"까지 북을 치며, 또 법단배례 후 해당반의 녹명지 3장을 소화하되 제6, 7, 8반은 예외로 하고, 호책은 합강 각 반의 선두에 정렬하여 봉행하되 반 편성과 인솔은 수도사무원이 하고 대동문부터는 호책이 하며, 수본 행사시(修本行事時)에 그 호의 전(全) 시학원은 전수실, 정급은 영불문안, 진급은 복도에 각각 시립함이 초강식의 절차와 다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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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강식 제1반 알현시에 상제님께서 법단 앞에 임어하셔서 훈고하시기를 "이 강식은 성둔도수(成遁度數)니라. 천근월굴(天根月窟)이 한래왕(閑來往)하니 삼십육궁(三十六宮)이 도시춘(都是春)이라. 삼계혼원세계(三界混元世界) 삼계해원세계(三界解冤世界) 욱일대사(郁日大師) 태을성천(太乙成天) 여률령(如律令) 사바아(娑婆啊)."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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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하교하시기를 "강식의 자리가 좁아도 좁다 하지 말라. 엉성하면 김이 새는 법이니라. 허공을 보라, 텅 빈 듯하지만 천지는 면면밀밀(綿綿密密)하여 바늘 끝 하나 들어갈 틈도 없고, 또 그러할 겨를도 없으며 일보(一步) 밖이 생사의 갈림길이고, 진법(眞法)은 진법(陳法)이니 항오(行伍)를 잃은 낙오자가 되지 않도록 호책의 영에 따르되 그 얼굴을 잘 알아 두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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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조회시에 상제님께서 하교하시기를 "어젯밤에 제1회 합강식을 무사히 마침으로써 오도 진법의 수도법방이 당진함을 경하(慶賀)하노라. 내 다시 한번 강조하거니와 오도의 궁극목적은 도통(道通)이나 수도 없는 도통이 없고 진법(眞法) 없는 법방(法方)이 없으며 법방(法方)없는 수도도 없으니, 이제 이 법방의 당진(當進)은 도통의 첩경이요, 기초동량(基礎棟樑)이니라. 내가 이 법방을 '50년공부의 결정(結精)이라' 하고, 또 '삼계광구의 유일한 진법이라' 함은 그 뜻이 모두 이에 있느니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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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세간에 수도인도 많고 공부꾼도 많으나 진법의 법방이 아닌데 수도하면 무엇하고 공부하면 어찌 하리오? 내가 지금까지 강조한 천언만어(千言萬語)의 뜻도 다 이에 있느니라. 그러므로 너희는 이 법방의 수도인이 됨을 무상의 광영(光榮)으로 알고 긍지를 가지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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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16일에 수도사무원들이 모두 외출하면서 당일 공부반 녹명지를 정서하지 않으니라. 자신들이 유고시에는 항상 임규오가 대행하던 선례가 있으므로 방심하여 돌아와서도 녹명지 생각은 잊고 있었으며, 규오 또한 유고하여 쓰지 못하니라. 상제님께서 하오 9시경 법단에서 내정에 임어하셔서 도장내에 있는 전임원을 긴급히 명소(命召)하시어 내정에 꿇어앉히시고, 크게 꾸짖으시기를 "너희들이 내 50년공부를 망치려 드느냐? 너희는 때를 금년이냐, 명년이냐? 하고 기다리지마는 나는 푼각을 두고 다투느니라. 왜 녹명지를 제시각에 올리지 않았느냐? 내가 50년공부로써 만고에 없는 이 법방을 짰는데 너희가 만약 도수를 어기면, 내가 50년공부를 다시 하여야 하리니 그 책임은 누가 지며 그 죄는 무엇으로 속(贖)할 것이냐?"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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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원들은 황공하여 어찌할 줄을 몰랐으며 숭도부인께서도 나오셔서 어찌하실 바를 모르시다가 상제님께 임원들을 용서하시도록 간곡히 간청하시고, 박중하가 복고하기를 "공부반 점검은 이상 없이 마쳤사옵고 녹명지만 올리지 못하였사온 바 다시는 이런 일이 없사오리니 지만(遲晩)하옵소서." 하니, "너희들이 하마터면 큰 일을 저지를 뻔하였으나 다행히 공부반의 점검이 끝났다 하니 녹명지를 속히 올리되 앞으로 더욱 명심하여 호리, 분초의 차착도 없이 하라. 더욱이 '공부는 우리 태극도의 생명인 동시에 광구 천하의 유일무이한 진법'임을 재삼 명각(銘刻)하라." 하시므로 임원들은 엎드려 사죄하고 물러나와 이로부터 공부반에 더욱 정성을 다하여 진력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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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렵 오치국 또한 도전의 임무를 잘하지 못하므로 자주 꾸짖으시더니, 하루는 "도중에 도전시킬 사람이 마땅하지 않도다." 하시며 교체시킬 의향을 보이시니라. 박한경이 유철규를 도전으로 상신하니 가부의 분부가 없으셨는데 재가하심으로 오인하고 연말에 철규의 지방사업을 정리시킨 다음, 데리고 올라와 다시 상신하였으나 "치국을 그대로 두리라." 하시고 내려보내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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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인들 가운데는 자신의 운수만을 소원하며 수련에 몰입하여 가정과 생업도 잃어버리는 자가 있으니라. 상제님께서 그들에게 간곡히 효유하시기를 "도를 위하여 불고처자(不顧妻子), 불고가사(不顧家事)하는 것은 가상(嘉尙)하고 어려운 일이나 나의 도는 그것만을 원하지는 않느니라. 내가 진정 말하노니 가정이 선경의 제일관(第一關)이요, 생업이 수도의 초입문(初入門)이니라. 공자의 수신제가(修身齊家)나 맹자의 항산(恒産) • 항심(恒心)이 다 이와 같은 뜻이며, 불가에서도 평상심(平常心) 시도(是道)라 하느니 가정과 생업에도 충실하라. 더구나 수도공부의 진법법방에는 나만 먼저 성취하려는 사욕(私慾)이 제일 금물이니 무아(無我) • 무심(無心) • 무욕(無慾) • 무착(無着)으로 하여야 하되, 이 법방은 수련 정진만으로 성취되는 것이 아니며 자통(自通)이 없음을 명심하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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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조회석상에서 임원들에게 하문하시기를 "그대들 가운데 호(號)를 가진 사람이 있느냐?" 하시므로 모두 "아직 없나이다." 하고 아뢰니 "도인은 본시 자호(自號)가 있을 수 없고 그 사람의 품격과 포부에 맞게 장상(長上)이 지어 내리는 법이나, 그대들의 기국이 어떠한지 보리니 각기 호를 지어 보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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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박한경은 충광(忠光), 임규오는 요산(樂山), 박중하는 태헌(太仚), 유철규는 풍산(豊山), 신상철은 초표(楚豹), 김영하는 춘담(春潭), 오영식은 백일(白日), 오치국은 청파(靑波), 권동흠은 덕포(德飽)라고 지어 올리니 상제님께서 감하시고 "모두 호의 기품(氣稟)이 아니로다. 한경의 충광은 아직 문을 못 찾은 격이고, 규오의 요산은 요산, 저산이니 못쓰겠으며, 철규의 풍산도 도호가 아니니라. 중하의 태헌과 상철의 초표는 넘치거나 천한 격이고, 영하의 춘담은 작은 격이며, 치국의 청파는 비록 조부의 유언이라 하나 내가 너희 팔자도 모두 뜯어고쳤는데 어찌 쓰며, 더구나 영식의 백일은 네 위에는 사람이 없는 격이니 너를 누가 지도하랴?" 하시니라. 그 후에 영식이 "저는 토암(土庵)으로 하겠나이다." 하니 윤허하지 않으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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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너희 자작(自作)이 모두 호로서 부적(不適)하니 내가 사호(賜號)하리라. 한경은 우당(牛堂)이라 하고, 금현과 상철은 오미당(午未堂)과 청음(靑吟) 중에서 수의하여 나누어 쓰라." 하시니라. 이날 오후에 상철은 오미당, 금현은 청음으로 하기로 정하고 아뢰니 "금현은 호에 대한 상식이 있으니 청음은 철규에게 주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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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조회에서 다시 호에 관한 말씀을 하시고 규오에게 건월당(建月堂)이란 호를 내리시니 황감하게 받드니라. 상제님께서 또 "내가 생각하기에 신묘한 글자는 날 출(出)자니 양산(兩山)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는 산(山)자를 넣은 호는 못쓰느니라." 하시므로 금현이 "그 출자를 저에게 주시옵소서. 출재(出齋)로 하겠나이다." 하고, 최해창도 "저는 출암(出庵)으로 하겠나이다." 하니 윤허하시니라. 며칠 뒤에 "중하는 청농(靑農), 윤섭은 청룡(靑龍), 용화는 청헌(靑軒), 치국은 청당(靑堂), 이용직은 청인(靑仁), 영하는 청원자(靑源子), 이갑성은 토헌(土軒), 조호선은 청음(靑陰)으로 하라." 하시고 그밖에 몇 임원에게 사호하시며 "그대들이 아직은 호를 쓸 때가 아니니 간직하고 있으면 후일 도호로 쓰이게 되리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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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시학 제2호 제1반 합강식 진행 중에 시독원 이종락의 칠성주 봉송이 끝났을 때, 상제님께서 다음 봉송을 중지시키고 칠성주의 "괴작관행필보표"를 "표보필행관작괴"로 순서를 거슬러 외우되 처음부터 2자씩과 나머지 1자를 따로 띄어서 봉송하게 하시더니 이날 합강식은 8개 반 모두 이와 같이 하게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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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상제님께서 하교하시기를 "오도의 수도법방은 곧 태극의 용(用)임을 다시 각지(覺知)하라. 이는 개인의 도통 성취만을 위함이 아니요, 도단(道團) 곧 전체 도인을 위하고 군생광구(群生匡救)를 위한 법방이니라. 그러나 전체는 곧 개체(個體)의 집합이니 개개인이 모두 잘 하여야 전체도 잘됨을 알아야 하느니라. 그러므로 개인이 곧 전체며 전체가 곧 개인임을 깨닫고 합덕공부(合德工夫)로 임하되 '나만', 또는 '나부터'라는 생각은 버려야 하느니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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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그대들은 도통진경이 일개인의 원이라고만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의 영대는 소국(小局)이니 대도는 항시 전체도인과 국가전체, 나아가서는 삼계우주 전체를 광구하려는 대이상에 입각하여야 하느니라." 하시니라.
121
한 도인이 산에 들어가 수도에만 전념하려고 그 가부를 여쭈니, 훈교하시기를 "내가 전에도 말한 바 있거니와 도를 대강전을 떠나 진법 밖에서 구하려 하지 말라. 통에는 자통(自通)이 없으니 대강으로 일시에 열어 주리라." 하시니라.
122
상제님께서 임원들에게 하교하시기를 "한 포기 풀이나 한 그루의 나무에도 신(神)이 있고, 음성의 고저, 풍류(風流)의 장단, 그 밖의 서자(書字), 도화(圖畵)가 모두 음양합덕 태극 진리의 표현이니, 예능에도 이 도리를 통한 자만이 달인이니라." 하시니라.
123
또 "내가 설(設)한 공부법방은 전만고(前萬古) 후만고(後萬古) 천상천하에 유일무이(唯一無二)한 진법이므로 다른 날 누가 아무리 모방(模倣)한다 하여도 그것은 가법(假法)일 뿐이니라." 하시니라.
124
이해 연말에 임원들에게 장래의 도장정비를 하교하시며 "적어도 1군단 1,620명은 수용할 수 있는 건물을 지어야 하며, 그곳에서 비를 맞지 않고 대강전에 출입할 수 있는 지하도라도 내도록 하라." 하시니라.
125
상제님께서 한번 관감하신 글이나 말은 잊지 아니하시니라. 더구나 한번 배례를 받으신 도인은 비록 수십 년 후에라도 기억하실 뿐 아니라, 그 성명 • 거소 등은 물론, 그에게 내리신 훈교까지도 상기하시니라.
126
상제님께서는 항상 의관을 정제하시되 비단옷과 화려한 무늬옷을 입지 아니하시고, 용모를 단정하며 공근(恭懃)하게 하시되 공사석(公私席)을 불고(不顧)하시니라. 독좌(獨坐)하실 때도 누구와 대좌하듯 법좌하셨으며 말씀은 용성(龍聲)이시나 평온하게 하시니라.
127
상제님께서 매년 정월 보름 치성을 보수동 도정 영대에서 봉행하도록 하명하시니라.
128
상제님께서 하교하시기를 "수도인은 항상 확신과 집중(執中)으로 정진하되 욕심을 내지 말며, 좋은 일이 있어도 너무 좋아하지 말고, 좋지 못한 일이 있어도 낙심하지 말라. 또 아무리 자랑할 일이 있어도 심적(心的)으로 안정하여 함부로 설(洩)하지 말아야 하느니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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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수도인으로서 평소에 농담을 즐기던 자는 농신(弄神)에게 현혹되기 쉽고, 적심(賊心)을 가졌던 자는 적신(賊神)에게 저해를 받기 쉬우며, 자랑을 좋아하던 자는 자만계(自慢界)를 넘기가 어려우니 삼가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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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상인해물(傷人害物)한 죄를 지은 자는 응분의 형화(刑禍)를 받아 앞길이 막힐 것이니, 이에 상응하는 각골정려의 수도와 적공이 있어야 내가 비로소 사면하고 앞길을 틔워 주리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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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上臺)에는 임원보다 수본이 많이 참예하게 되리라." 하시므로 김명구가 여쭈기를 "그러하오면 임원들의 평생을 위도헌신(爲道獻身)한 적공은 어찌되나이까?" 하니 "죄가 없어야 하느니 근신하라." 하시니라. 이어 하교하시기를 "도인 상호간에는 위계에 불구하고 서로 존대(尊待)하며 경어(敬語)를 쓰라." 하시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