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극진경

제목 태극도 - 무극진경 9장
1
구천상제님께서 기유(己酉 : 도기 원, 단기 4242, 서기 1909)년 원조에 친히 현무경(玄武經) 세 권을 쓰셔서 한 권은 몸소 지니시고, 한 권은 후일 도창현(道昌峴)에서 불사르셨으며, 한 권은 안내성에게 맡기시니 현무경은 한지 13장 26면에 문자와 부도(符圖)를 기록하여 철하신 책이니라.
2
이날 차경석이 차례를 지내려고 장만한 전수를 가져오게 하셔서 종도들과 함께 진어하시며 말씀하시기를 "이것이 곧 절사(節祀)니라." 하시니라.
3
현무경을 쓰신 후에 백지에 글을 쓰셔서 두루마리를 만들어 물 담은 흰 병의 입을 막아 놓으시고, 그 앞에 백지를 깔고 그 위에 현무경을 놓으셨다가 거두시니라. 상제님께서 화천(化天)하신 후에 병마개를 빼어 펴 보니 "길화개길실(吉花開吉實) 흉화개흉실(凶花開凶實)"이라는 글과 다음의 의통(醫統) 병세문(病勢文) 등이 쓰여 있느니라. 病有大勢 病有小勢 병유대세 병유소세 大病 無藥 小病 或有藥 대병 무약 소병 혹유약 然 大病之藥 安心安身 小病之藥 四物湯 八十貼 연 대병지약 안심안신 소병지약 사물탕 팔십첩 기도(祈禱) 侍天主 造化定 永世不忘 萬事知 至氣今至 願爲大降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 지기금지 원위대강 大病 出於無道 小病 出於無道 대병 출어무도 소병 출어무도 得其有道則 大病 勿藥自效 小病 勿藥自效 득기유도즉 대병 물약자효 소병 물약자효 至氣今至 四月來 禮章 지기금지 사월래 예장 의통(醫統) 忘其君者 無道 忘其父者 無道 忘其師者 無道 망기군자 무도 망기부자 무도 망기사자 무도 世無忠 世無孝 世無烈 是故 天下皆病 세무충 세무효 세무열 시고 천하개병 병세(病勢) 有天下之病者 用天下之藥 厥病乃癒 유천하지병자 용천하지약 궐병내유 聖父 성부 聖子 元亨利貞 奉天地道術藥局 在全州銅谷 生死判斷 성자 원형이정 봉천지도술약국 재전주동곡 생사판단 聖神 성신 大仁大義 無病 대인대의 무병 三界解魔 大帝神位 願趁天尊 關聖帝君 삼계해마 대제신위 원진천존 관성제군 知天下之勢者 有天下之生氣 지천하지세자 유천하지생기 暗天下之勢者 有天下之死氣 암천하지세자 유천하지사기 東有大聖人 曰東學 동유대성인 왈동학 西有大聖人 曰西學 都是敎民化民 서유대성인 왈서학 도시교민화민 孔子 魯之大司寇 孟子 善說齊梁之君 공자 노지대사구 맹자 선세제량지군 近日 日本國 文神武神 竝務道統 근일 일본국 문신무신 병무도통 朝鮮國 上計神 中計神 下計神 無依無托 不可不文字 戒於人 조선국 상계신 중계신 하계신 무의무탁 불가불문자 계어인 宮商角徵羽 聖人乃作 先天下之職 先天下之業 궁상각치우 성인내작 선천하지직 선천하지업 職者醫也 業者統也 聖之職 聖之業 직자의야 업자통야 성지직 성지업
4
한 종도가 병세문에 쓰신 "유천하지병자 용천하지약 궐병내유"라는 구절의 뜻을 여쭈니 하교하시기를 "천하사에 뜻하는 자로서 일을 이루지 못함으로 인한 병이 골수에 들어 백약이 무효하다가, 어떤 희소식이 들리면 물약자효(勿藥自效)하느니 이 일을 이름이니라. 운수에 맞추지 못한 자는 내종(內腫)을 이루리라." 하시니라.
5
또 종이에 철도선을 그리신 다음, 남쪽에 점을 치셔서 정읍(井邑)이라 쓰시고, 북쪽에 점치셔서 신태인(新泰仁)을 쓰신 후에 그 중앙에 점을 치시려다가 멈추시기를 여러 번 하시더니 대흥리를 출어하실 때, 점을 치시며 "이 점이 되는 때에는 초패왕(楚覇王)의 해원 도수로 선천 세상일이 끝나게 되리라." 하시니라.
6
초2일에 모든 일을 마치시고 초3일에 고사를 지내려고 준비하실 때, 차문경(車文京)이 술에 취하여 동네에 돌아다니며 큰소리로 "강모가 경석의 집에서 역모한다." 하고 외치니, 이 말이 천원(川原) 병참기지에 전하여져서 헌병이 출동하려 하니라. 상제님께서 미리 아시고 고부인과 경석에게 명하시기를 "너희는 집을 지키며 나를 대신하여 내일 자정에 문틈을 봉하고, 제수를 화로에 구우며 술병은 마개만 빼고 지성으로 심고하라, 이것이 곧 고사니라." 하시고 출어하시니라. 초4일 새벽에 고부인과 경석이 명하신 대로 봉행하니라. 날이 밝자 일본 헌병 수십 명이 몰려와서 상제님을 찾았으나 행재하지 않으시므로 그냥 돌아가니라.
7
이날 상제님께서 백암리 김경학의 집으로 이어하시니, 경석이 공우와 윤경을 보내어 무사히 된 경과를 아뢰매 "내가 공사를 마친 후에 경석을 시험함이러니 무사히 겪어 내었음은 다행한 일이로다." 하시니라.
8
김경학의 집에 행재하실 때, 태인에 사는 그 형이 사람을 시켜 경학을 부르므로 상제님께서 발을 만지시며 "속언에 '발 복'이란 말이 있느니 모르는 길에 잘 가면 복이요, 잘못 가면 화라는 말이니라." 하시고 그 집에서 홀로 최창조의 집으로 이어하셨다가 그 앞 소나무 숲을 지나 최덕겸의 집으로 이어하시니 사람들은 행재소를 알지 못하니라. 원래 경학의 형은 "경학이 술객에게 홀려서 살림을 돌보지 아니한다."는 말을 듣고 염려하여 경무청에 탐문하니 "그 술객과 경학을 잡으러 간다."라고 하였으나 그 사실을 통지하지 않음은 그 아우만 빼내어 숨기려 함이니라. 경학이 집을 떠나 형의 집으로 가던 중로에서 순검에게 붙들려 함께 집으로 오니 상제님께서는 이미 출어하신 후이므로 창조의 집까지 끌려갔다가 돌아오니라.
9
초5일에 동곡에 임어하시더니 며칠 후에 태인으로부터 무사하게 된 전말을 보고하므로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정읍 일은 하루 공사인데 경석에게 맡겼더니 하루아침에 풀고, 태인 일은 하루아침 공사인데 경학에게 맡겼더니 하루가 걸렸으니 경석이 경학보다 낫도다." 하시니라. 또 "경석은 병판(兵判)감이요, 경학은 위인이 직장(直腸)이라 돌리기 어려우나 돌리기만 하면 착한 사람이 되리라." 하시니라.
10
하루는 박공우와 황응종 신경원을 거느리시고 태인읍 음식점에 임어하셔서 경원에게 말씀하시기를 "오늘은 백순검(白巡檢)을 만나야 하리니 그를 데려오라." 하시자 백순검이 그 집 앞을 지나므로 경원이 나가서 상제님의 행재를 알리니 백순검이 곧 뛰어들어 상제님을 포박하니라. 상제님께서 공우에게 하명하시기를 "네게 있는 돈 백 냥을 내게 전하고 창조의 집에 다녀오라." 하시니 공우가 명을 받들고 나가니라. 또 응종과 경원을 각기 다른 곳으로 보내시고 백순검에게 백 냥을 하사하시며 말씀하시기를 "그대를 만나려고 이곳에서 기다린 지 오래였으니 이것을 적다 말고 용돈에 보태어 쓰라." 하시니 백순검이 사례한 다음, 결박을 풀고 물러가니라. 그가 상제님을 잡아 돈을 빼앗으려 함을 미리 아시고 그 욕심을 채워 주심이니라.
11
공우가 상제님을 모시고 신경수의 집에 유숙하면서 꿈을 꾸니, 불빛 같은 사람 수십 인이 하늘로부터 내려와 상제님 행재소 문밖 뜰에서 배알하므로 공우는 두려워하여 상제님의 등 뒤에 숨으니라. 이튿날 아침에 상제님께서 하문하시기를 "꿈에 무엇을 본 일이 있느냐?" 하시므로 그 사실을 아뢰니 "그들이 곧 천상 벽악사자(辟惡使者)들이니라." 하시니라.
12
경학이 일찍이 동학에 가입하여 3개월간 시천주의 수련을 하던 중 꿈에 천상에 올라 상제님을 뵌 일이 있었더니, 하루는 상제님께서 "네 평생에 제일 좋은 꿈을 꾼 것을 기억하느냐?" 하시니라. 경학이 그 꿈을 아뢰며 "선생님의 형모가 그때에 뵈옵던 상제님의 용안이심을 알았나이다." 하니라.
13
정월 14일 밤 덕두리 최덕겸의 집에 행재하실 때 '신리(新籬)'를 쓰셔서 불사르시고 덕겸에게 "신리는 새 울이란 뜻이니 최창조에게 가서 전도하라." 하시니라. 덕겸이 그 방법을 여쭈니 "창조의 집 조용한 방에 청수 한 동이를 길어다 놓고 수도자(受道者)들을 모은 다음, 수저 49개를 동이 앞에 놓고 시천주를 7회 봉송한 후에 수저를 함께 모아 흔들어 쇳소리를 내되 닭 울 때까지 하라. 만일 닭이 울기 전에 잠드는 자는 죽으리라." 하시니라. 덕겸이 명을 받들고 창조의 집에 가서 그대로 행하니라.
14
15일에 상제님께서 원일을 거느리시고 새울에 임어하셔서 전날 신원일을 시켜 백암리에서 가져오게 하신 성냥과 두루마리를 덕겸에게 주시니, 두루마리는 태을주를 쓰신 것과 천문지리(天文地理) 풍운조화(風雲造化) 팔문둔갑(八門遁甲) 육정육갑(六丁六甲) 지혜용력(智慧勇力)등을 쓰신 것이니라. 창조에게 "밖에 나가 살피라." 하시니 창조가 나갔다 들어와 아뢰기를 "태인 순검이 선생님을 체포하려고 백암리로 나갔다는 말이 있사옵니다." 하니 일어나시며 창조에게 "너도 피하라." 하시고 덕겸에게 "일 분 동안 일이니 빨리 집으로 돌아가라." 하시니라. 또 창조에게 돈 두 냥을 가져오게 하셔서 새울 이공삼(李公三)에게 간직하게 하신 다음, 통머릿골을 향하여 비틀걸음으로 행행하시며 "도망하려면 이렇게 걸어야 하리라." 하시니라.
15
이날 정읍 마동에 임어하셔서 매씨에게 하명하시기를 "너는 이 본소에서 을미생(乙未生)을 기다리라. 그는 나의 도통(道統)을 이을 진인(眞人)이니라. 그 진인을 나 본 듯이 경대(敬待)하되 천기이니 누설하지 말라." 하시며 그 집을 손수 수리하시고 도배까지 하여 주시니라.
16
종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고향에 가면 일가 친족간에 항렬 높은 분으로부터 반드시 하대(下待)를 받게 되느니 이것은 윤리상 전통이라 당연한 일이로되, 신명들은 그 불경한 말을 싫어하여 징벌(懲罰)을 주려 하므로 이 일이 어려워서 내가 친족들과 상종을 적게 하노라." 하시니라.
17
김자현이 조모의 장사를 지내려고 상여를 운반하여 장지로 가는데, 상제님께서 동곡 앞 금광터를 가리키시며 "이곳에 장사하라." 하셨으나, 듣지 않음으로 "화룡천년(畵龍千年)에 진룡(眞龍)의 이름을 모르는도다." 하시니라.
18
김형렬에게 명을 전하셔서 "김광찬과 김갑칠에게 태을주를 많이 읽으라." 하시고 "김병선(金炳善)에게 춘야도리원서(春夜桃李園序)를 천 번 읽으라." 하신 다음, "차경석과 안내성에게 시천주를 혀와 입술을 움직이지 말고 많이 묵송하라." 하시니라.
19
2월 초9일에 자현을 거느리시고 정남기의 집에 임어하셔서 말씀하시기를 "이 길이 나의 마지막 길이니 처족들을 일일이 찾으리라." 하시며 등불을 들리시고 밤새도록 여러 집을 순행하시니라. 이튿날 아침에 수각리(水閣里) 임상옥(林相玉)의 집에서 공사를 보시고 만경 삼거리에 임어하셔서 쉬시며 자현에게 "오늘 오후에 흰 무지개가 해를 꿰뚫으리니 내가 잊더라도 네가 잘 살펴보라." 하시더니 과연 그러하니라.
20
종도들에게 하문하시기를 "초목 중에서 일 년에 가장 속히 자라나는 것이 무엇이냐?" 하시므로 모두 "대"라고 사뢰매 "대의 기운이 만물 중에 제일 크니 이를 덜어 쓰리라." 하시더니 이해에 대가 많이 쇠퇴하여지니라.
21
동곡 약방에 행재하실 때, 종도들을 둘러앉히시고 "삼국시절(三國時節)이 수지지어사마소(誰知止於司馬昭)아?"를 큰소리로 읽히시니라.
22
하루는 공사를 보시며 글을 쓰시니 이러하니라. 一三五七九 二四六八十 일삼오칠구 이사육팔십 成器局 塚墓天地神 基址天地神 성기국 총묘천지신 기지천지신 運 靈臺四海泊 得體 得化 得明 운 영대사해박 득체 득화 득명
23
또 이러하니라. 道傳於夜 天開於子 轍環天下 虛靈 도전어야 천개어자 철환천하 허령 敎奉於晨 地闢於丑 不信看我足 知覺 교봉어신 지벽어축 불신간아족 지각 德布於世 人起於寅 腹中八十年 神明 덕포어세 인기어인 복중팔십년 신명
24
또 이러하니라. 無奈八字 至氣今至 願爲大降 무내팔자 지기금지 원위대강 欲速不達 侍天主造化定 永世不忘 萬事知 욕속부달 시천주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 九年洪水 七年大旱 千秋萬歲歲盡 구년홍수 칠년대한 천추만세세진 佛仙儒 불선유 一元數 六十三 合爲吉凶度數 일원수 육십삼 합위길흉도수 十二月 二十六日 再生身 姜一淳 십이월 이십육일 재생신 강일순
25
또 이러하니라. 五呪 오주 天文地理 風雲造化 八門遁甲 천문지리 풍운조화 팔문둔갑 六丁六甲 智慧勇力 道通天地 報恩 육정육갑 지혜용력 도통천지 보은
26
또 이러하니라. 至曰 天地禍福至 氣曰 天地禍福氣 지왈 천지화복지 기왈 천지화복기 今曰 至無忘 降曰 天地禍福降 금왈 지무망 강왈 천지화복강
27
또 이러하니라. 聖師 醫統 慶州龍潭 성사 의통 경주용담 无極神 大道德 奉天命 奉神敎 大先生前 如律令 무극신 대도덕 봉천명 봉신교 대선생전 여율령 審行 先知後覺 元亨利貞 布敎五十年工夫 심행 선지후각 원형이정 포교오십년공부
28
또 이러하니라. 天下紛紜 自作死黨 以不安聖上之心 以不安聖父之心 천하분운 자작사당 이불안성상지심 이불안성부지심 以不安敎師之心 이불안교사지심
29
또 이러하니라. 佛之形體 불지형체 仙之造化 선지조화 儒之凡節 유지범절
30
또 이러하니라. 閑談敍話 可起風塵 閑談敍話 能掃風塵 한담서화 가기풍진 한담서화 능소풍진 天地從容之事 自我由之 天地紛亂之事 自我由之 천지종용지사 자아유지 천지분란지사 자아유지
31
또 이러하니라. 不受偏愛偏惡曰仁 不受專强專便曰禮 불수편애편오왈인 불수전강전편왈예 不受全是全非曰義 不受恣聰恣明曰智 불수전시전비왈의 불수자총자명왈지 不受濫物濫慾曰信 불수남물남욕왈신
32
또 이러하니라. 德懋耳鳴 過懲鼻息 덕무이명 과징비식 潛心之下 道德存焉 反掌之間 兵法在焉 잠심지하 도덕존언 반장지간 병법재언
33
또 이러하니라. 非人情不可近 非情義不可近 非義會不可近 非會運不可近 비인정불가근 비정의불가근 비의회불가근 비회운불가근 非運通不可近 非通靈不可近 非靈泰不可近 非泰統不可近 비운통불가근 비통령불가근 비영태불가근 비태통불가근
34
또 이러하니라. 正心 修身 齊家 治國 平天下 爲天下者 不顧家事 정심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 위천하자 불고가사 桀惡其時也 湯善其時也 天道敎桀於惡 天道敎湯於善 걸악기시야 탕선기시야 천도교걸어악 천도교탕어선 桀之亡 湯之興 在伊尹 걸지망 탕지흥 재이윤 束手之地 葛公謀計 不能善事 속수지지 갈공모계 불능선사 瓦解之餘 韓信兵仙 亦無奈何 와해지여 한신병선 역무내하
35
또 이러하니라. 厥有四象包一極 九州運祖洛書中 궐유사상포일극 구주운조낙서중 道理不暮禽獸日 方位起萌草木風 도리불모금수일 방위기맹초목풍 開闢精神黑雲月 遍滿物華白雪松 개벽정신흑운월 편만물화백설송 男兒孰人善三才 河山不讓萬古鐘 남아숙인선삼재 하산불양만고종 龜馬一圖今山河 幾千年間幾萬里 귀마일도금산하 기천년간기만리 胞連胎運養世界 帶道日月旺聖靈 포련태운양세계 대도일월왕성령 元亨利貞道日月 照人臟腑通明明 원형이정도일월 조인장부통명명
36
차윤경에게 말씀하시기를 "천지에서 현무(玄武)가 쌀을 부르니 네 형 경석의 기운을 써야 하리라. 돌아가서 네 형에게 '혀와 입술을 움직이지 말고 시천주를 외우되, 기거동작에 쉬지 말고 외우라.' 하라." 하시니라.
37
3월에 김자현에게 하문하시기를 "학질(虐疾)로도 사람이 상하느냐?" 하시므로, 자현이 "학질이 세 직째는 거적을 가지고 달려든다 하오니 이 말이 상한다는 말일 것이옵니다." 하고 아뢰니 "진실로 그러하리라." 하시고 전주로 행행하시니라. 그 후에 자현의 조모가 문득 학질을 앓아 세 직 되던 날 죽으니, 상제님께서 임어하셔서 "학질로 사람이 상한다 함이 옳도다." 하시고 만들어 놓은 관 앞에 누우시며 "내 몸에 맞는다." 하시니라. 그 후에 자현을 부르셔서 "관 한 벌을 더 만들어야 하겠으니 박춘경(朴春京)의 집에서 관 재목 중에 적당한 것으로 가져오라. 내게 쓰일 날이 멀지 않았느니라." 하시므로 "선생님께서 어찌 이런 상서롭지 못한 말씀을 하시옵니까?" 하니 "네가 내 말을 믿지 아니하는도다." 하시니라.
38
종도들에게 하명하시기를 "내 얼굴을 잘 익혀 두라. 후일에 내가 출세할 때에는 눈이 부시어 보기 어려우리라." 하시고, 또 "예로부터 신선이라는 말을 전설로만 들어 왔고 실제로 본 사람이 없었으나 오직 너희들은 신선을 보리라." 하시니라.
39
또 "사람의 죽음길이 먼 것이 아니라, 문턱 밖이 곧 저승이니 나는 죽고 살기를 뜻대로 하노라." 하시니라.
40
"나는 곧 미륵이라, 금산사 미륵은 여의주를 손에 들었으나 나는 입에 물었노라." 하시고 "내가 금산사로 들어가서 불양답(佛養畓)이나 차지하리니, 나를 보고 싶거든 금산사로 오라." 하시니라.
41
"이 세상이 너무 악하여 몸 둘 곳이 없으므로 장차 깊이 숨으려 하느니 어디가 합당하뇨?" 하시므로 신원일이 "변산(邊山) 속에 은벽한 곳이 많사오니 그곳이 좋으리이다." 하였으나 아무 말씀도 없으시니라.
42
약방에서 종도 8인을 정좌시키시고 사물탕 한 첩을 지어 그 봉지에 사람을 그리셔서 두 손으로 드시고 시천주를 3독하신 다음, 여러 사람에게 차례로 그리하게 하시더니 "남조선(南朝鮮) 배가 범피중류(汎彼中流)로다." 하시고 "상륙하였으니 풍파는 없으리라." 하시니라.
43
약방에서 36만신(三十六萬神)과 운장주를 쓰셔서 종도들로 하여금 7백 번씩 외우게 하시며 "이제 국가나 사가에 화둔을 묻었는데 날마다 바람이 불다가 그치고, 학담으로 넘어가니 사람이 많이 상할까 하여 그리하노라." 하시니라.
44
전주 용두리에 행재하실 때, 김광찬으로 하여금 방약합편(方藥合編)의 약명에 주묵(朱墨)으로 점쳐서 그 책을 불사르시니라.
45
종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이제 청국공사(淸國公事)를 보려 하되 길이 너무 멀어 가기 어려우므로, 청주 만동묘에 가서 천지대신문(天地大神門)을 열고자 하나 또한 가기가 불편하니, 다만 음동(音同)을 취하여 청도원(淸道院)에 그 기운을 붙여 그 공사를 보려 하노라." 하시니라. 상제님께서 형렬과 공우를 거느리시고 청도원 고개에 임어하셔서 성황묘(城隍廟) 마루에 잠시 앉아 쉬시고 일어나시며 "청국은 아라사 군사에게 맡길 수밖에 없노라." 하시니라. 송환의 집에서 글을 써서 소화하시고, 밤에 유찬명의 집에서 대신문(大神門)을 여시는 도수를 짜실 때 무수한 글을 쓰셔서 소화하시니라.
46
약방 마루에서 찬명을 마루 아래에 앉히시고 "순창(淳昌) 오선위기(五仙圍碁)""장성(長城) 옥녀직금(玉女織錦)""무안(務安) 호승예불(胡僧禮佛)""태인(泰仁) 군신봉조(群臣奉詔)"와 "청주(淸州) 만동묘(萬東廟)"를 쓰게 하셔서 불사르시니라. 이때 찬명이 조금 방심하니 "신명이 먹줄을 잡고 있는데 어찌 방심하느냐?" 하시니라.
47
용두리에 행재하실 때, 마당에 촛불을 밝히시고 찬명에게 "천유일월지명 지유초목지위(天有日月之明 地有草木之爲) 천도재명고 인행어일월(天道在明故 人行於日月) 지도재위고 인생어초목(地道在爲故 人生於草木)"을 쓰게 하셔서 소화하시니 구름이 가득 차고 바람이 급하게 불며 비가 내리는데 촛불은 꺼지지 않으니라. 상제님께서 찬명에게 "서북쪽 하늘에 별이 나타났는가 보라." 하시므로 우러러 살피고 구름 사이에 별 하나가 보임을 아뢰니 "다시 동남쪽 하늘을 보라." 하시니라. 또 우러러보고 구름이 많이 흩어지고 별이 많이 보임을 아뢰니 "서북은 살아날 사람이 적고 동남은 살아날 사람이 많으리라." 하시니라.
48
종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오늘은 청국 만리창신명(萬里廠神明)이 이르리니 술을 대접하여야 하리라." 하시더니 술을 종도들에게 나누어 주시니라.
49
또 "청국 기우제(祈雨祭)를 지내리라." 하시고 돼지 한 마리를 잡고 소주를 사셔서 종도들에게 나누어 주시니라.
50
종도들에게 운장주(雲長呪)를 써 주시며 "이 글은 대차력주(大借力呪)니라." 하시니 이러하니라. 운장주 天下英雄關雲長 依幕處 謹聽天地 八位諸將 六丁六甲 六丙六乙 천하영웅관운장 의막처 근청천지 팔위제장 육정육갑 육병육을 所率諸將 一別兵營 邪鬼唵唵 急急 如律令 娑婆啊 소솔제장 일별병영 사귀음음 급급 여율령 사바아
51
종도들을 정좌시키시고 오주를 쓰셔서 한 사람에게 주어 읽히시며 "만 명에게 전하라." 하셔서 다짐을 받으신 다음, 그 사람으로 하여금 다시 그와 같이 다른 사람에게 전하여 차례로 돌려서 서로 다짐받게 하시니라.
52
종도들에게 하문하시기를 "최수운의 시천주에는 포교50년 공부가 들어 있고, 비인(庇仁) 사람 김경흔(金京訢)은 50년 공부로 태을주(太乙呪)를 얻었으니 같은 50년 공부에 어느 주문을 취함이 옳으뇨?" 하시니라. 김광찬이 아뢰기를 "처분대로 하옵소서." 하니 "시천주는 이미 행세되었으니 태을주를 쓰리라." 하시고 써 주시니 이러하니라. 태을주 吽哆吽哆 太乙天上元君 吽哩哆耶都來 吽哩喊哩 娑婆啊 훔치훔치 태을천상원군 훔리치야도래 훔리함리 사바아
53
전주에서 김석(金碩)을 입도시킬 때, 광찬과 형렬을 좌우에 세우시고 청수를 그 앞에 놓으신 다음, 두 사람에게 태을주를 불가의 염불하듯 21독하게 하시고 석으로 하여금 따라 읽게 하시니라.
54
찬명과 자현에게 하명하시기를 "각기 십만 인에게 포덕하라." 하시니 찬명은 응답을 올렸으나, 자현은 하지 아니하므로 재촉하셔서 응답을 받으신 다음, "평천하(平天下)는 내가 하리니 치천하(治天下)는 너희들이 하라. 치천하 50년 공부니라." 하시니라.
55
태인 수꾸지 전쾌문(全快文)이 박공우에게 와서 말하기를 "시천주를 연송하였더니 어느 날은 한 노인이 나타나서 '잘살고 잘될 곳을 가려면 남쪽으로 이십 리를 가라.' 하므로 그대를 찾아왔노라." 하니라. 공우가 쾌문을 데리고 상제님께 뵈며 아뢰니 글 한 장을 쓰셔서 쾌문에게 주시니라. 쾌문이 집에 돌아와서 펴 보니 곧 태을주니라. 이에 하룻밤을 외우니 온 마을 남녀노소가 다 따라 외우니라. 이튿날 쾌문이 이 사실을 아뢰니 "수꾸지는 곧 수(數)꾸지라, 장래 일을 수놓아 보았노라. 아직 시기가 이르니 그 기운을 거두리라." 하시며 약방 벽에 "기동북이고수(氣東北而固守) 이서남이교통(理西南而交通)"을 써 붙이시고, 문밖 반석 위에 물건 형태를 그리시며 점을 치신 다음, 다시 종이에 "태을주(太乙呪)"와 "김경흔(金京訢)을 쓰셔서 벽에 붙이시고 그들로 하여금 절하게 하시며 "이 주는 경흔이 받음이니라." 하시니라.
56
또 칼과 붓 각 한 자루, 먹과 부채 각 한 개를 반석 위에 벌여 놓으시고 종도들에게 "뜻 가는 대로 집으라." 하시니, 유찬명은 칼, 김형렬은 부채, 김자현은 먹, 한공숙은 붓을 집으니라. 종도들을 약방 네 구석에 앉히시고 상제님께서는 중앙에 서셔서 "2 7 6(二七六) 9 5 1(九五一) 4 3 8(四三八)"을 한 번 읽으신 다음, 종도 3인에게 종이를 지폐와 같이 무수히 끊어 벼룻집 속에 넣게 하시니라. 다시 한 사람에게 한 조각씩 집어내어 등우(鄧禹)를 부르고 다른 사람에게 전하며, 그 종잇조각을 받는 사람도 등우를 부르고 다른 사람도 그와 같이 받아서 청국지면(淸國知面)이라 읽고, 다시 그와 같이 하여 마성(馬成)을 부른 후에 일본지면(日本知面)이라 읽고, 또 그와 같이 하여 오한(吳漢)을 부른 다음, 조선지면(朝鮮知面)이라 읽어서 28장과 24장을 다 마치기까지 종잇조각을 집어내니 그 수효가 맞으니라. 쾌문이 집에 돌아갔다가 며칠 후에 와서 마을에서 태을주를 외우지 않는다고 아뢰니, 다시 태을주를 쓰게 하시며 "태을주를 문 위에 붙이면 신병(神兵)이 지나다가 '도가(道家)'라 하여 침범하지 아니하고 물러가리라." 하시니라.
57
종도들에게 하교하시기를 "태을주와 운장주를 내가 시험하였으니 너희들은 많이 외워라. 일찍이 김병욱의 화는 태을주로 풀었고, 장효순의 난은 운장주로 풀었노라. 태을주는 역률(逆律)을 범하여도 옥문이 스스로 열릴 것이요, 운장주는 살인죄에 걸려도 옥문이 스스로 열리리라." 하시니라.
58
상제님께서는 평소에 문자의 기록을 금하시더니, 하루는 "도운(道運)을 보리라." 하시고 세숫물을 대하셔서 종도들에게 눈을 감고 보게 하시므로 그대로 하매, 문득 큰 바다에 뱀의 머리와 용의 꼬리가 굽이치는 형상이 나타나니라. 본대로 아뢰니 "나의 형체가 사두용미(蛇頭龍尾)니라." 하시고 "문명(文命)은 후일 진경(眞經)으로 나오리라." 하시니라.
59
공우가 여쭈기를 "동학에서 강필(降筆)로 부(符)를 그려서 병자에게 먹이면 낫는 자도 있고, 죽는 자도 있어 일치하지 못하오니 무슨 연고니이까?" 하니 "부를 먹이면 비위를 상하게 하여 해가 될지언정 이로움은 없을 것이요, 혹 차효가 있는 자는 본시 나을 사람이니라. 강에 허강(虛降)과 진강(眞降)이 있는데 진인에게는 허강이 없느니라. 내가 너희들을 도통시킬 때 진강을 주리니, 진강을 받은 자는 병자를 만져도 낫고, 건너다보기만 하여도 나으며, 말만 하여도 나으리라." 하시니라.
60
상제님께서 공사를 행하실 때나 어느 곳에 자리를 정하고 행재하실 때에는 반드시 종도들에게 "정심(正心)하라." 명하시고, 방심하는 자가 있으면 마음을 보신 듯이 책망하시며, 혹 침수 드신 틈을 타서 방심하는 자가 있어도 문득 보신 듯이 "마음을 거두라." 하고 엄중히 경계하시니라.
61
종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신명들이 부안신명을 불러도 불응한다 하므로 내가 그 지방에 신명을 보냈더니, 원일이 공부를 하고 있어 그 지방신들이 그를 호위하느라 떠나지 못한다 하느니라. 이 일을 보아도 공부를 등한히 할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62
또 "오는 잠을 적게 자고 태을주를 많이 외워라. 하늘에 으뜸가는 임금이니 5만 년 동안 동리동리 각 학교에서 외우리라." 하시니라.
63
처음으로 수종하는 자에게는 항상 "평생에 지은 허물을 일일이 생각하여 마음으로 사죄를 하라." 하셨으나 만일 잊고 생각나지 않는 일이 있으면 하나씩 화두를 열어 주셔서 깨닫게 하시고, 또 반드시 그를 위하여 모든 척신과 병고를 물리쳐 주시니라.
64
종도들에게 하교하시기를 "옛사람이 3년간 공부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서는 사람을 만나면 그 성명이 절로 알아지므로 일일이 말하였으나, 귀가 후에는 지각이 막혀 어두워졌다 하느니라." 하시니라.
65
김형렬이 양식이 떨어져 손이 오는 것을 괴롭게 여기므로 말씀하시기를 "개문납객(開門納客)에 기수기연(其數其然)이라 하느니 사람이 와야 하느니라." 하시니라.
66
4월에 전주 용두리 김주보(金周甫)의 집에 행재하실 때, 이치복(李致福)이 와서 뵈니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런 때에는 나이 많은 사람의 절을 받기도 하느니라." 하시고 치복으로부터 사배를 받으시니라. 또 "금년에는 비가 없으니 오늘 만일 비가 오지 아니하면 천지의 동과혈(冬瓜穴)이 말라 죽으리라. 그러므로 서양으로부터 우사를 불러와서 비를 내리게 하리라." 하시며 치복에게 술 두 잔을 주시고 한 잔을 요강에 부으시매 술이 피가 되더니 곧 비가 내리니라.
67
다시 백지 세 장을 펴셔서 모서리마다 '천곡(泉谷)'이라 쓰시므로 이치복이 여쭈기를 "어떠한 사람이옵니까?" 하니 "원(員)으로서 절사(節死)한 사람이니라." 하시고 이치복과 김송환에게 명하셔서 백지를 마주잡게 하시며 "그 모양이 상여의 호방산(護防傘)과 같도다." 하시니라. 백지를 땅에 놓게 하신 다음, 김갑칠에게 명하시기를 "밖에 나가 하늘에 구름이 있는가 보라." 하시므로 나가 보니 서쪽 하늘에 구름 한 점이 있으니라. 들어와서 아뢰니 "다시 나가 보라." 하시므로 다시 보매 순식간에 구름이 하늘을 덮어 있으니라. 그대로 아뢰니 백지 중앙에 "호승예불(胡僧禮佛) · 군신봉조(群臣奉詔) · 오선위기(五仙圍碁) · 선녀직금(仙女織錦)"을 쓰시며 치복에게 "궁을가의 사명당이 갱생(更生)이란 말을 지금까지는 승(僧) 사명당(四溟堂)으로만 알아 왔으나 그릇된 일이요, 이 사명당(四明堂)을 이름이니라. 조화는 불법에 있으니 호승예불의 기운을 거둬 조화하게 하고, 무병장수는 선술(仙術)에 있으니 오선위기의 기운을 거둬 무병장수하게 하며, 군신봉조는 장상이 왕명(王命)을 받듦이니 그 기운을 거둬 나라를 태평하게 하고, 선녀직금은 선녀가 비단을 짬이니 그 기운을 거둬 창생에게 비단옷을 입히리라. 6월 보름날 신농씨 제사를 지낸 다음 일을 행하리니 올해가 천지의 한문(閈門)이므로 이제 일을 하지 않으면 이루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68
또 백지에 "이십칠년(二十七年)"이라 쓰시므로 그 뜻을 여쭈니 말씀하시기를 "홍성문(洪成文)이 회문산에서 이십칠 년간 허공부(虛工夫)를 하였다 하니 이로부터 이십칠 년 허도수가 있느니라." 하시고, 또 백지 한 장을 열두 조각으로 나누셔서 조각마다 글을 쓰신 다음, 한 조각은 친히 불사르시고 열 한 조각은 치복에게 소지하게 하시니 문득 비가 크게 내려 이 비로 인하여 보리농사가 잘 되니라.
69
그 후 치복과 여러 종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불가지(佛可止)는 불(佛)이 가히 그칠 곳이란 말이요, 그곳에서 가활만인(可活萬人)이라 일러 왔으니 그 기운을 거둬 창생을 건지리라." 하시며 교자를 타시고 불가지로 행행하시며 고시 한 수를 외우시니 이러하니라. 金屋瓊房視逆旅 石門笞壁儉爲師 금옥경방시역려 석문태벽검위사 絲桐蕉尾誰能解 竹管絃心自不離 사동초미수능해 죽관현심자불리 匏落曉星霜可履 土墻春柳日相隨 포락효성상가리 토장춘류일상수 革援瓮畢有何益 木耜耕牛宜養頤 혁원옹필유하익 목사경우의양이
70
성국의 집에 임어하셔서 "용둔(龍遁)을 하리라." 하시며 백지 20장 을 각각 세로 8절, 가로 4절로 자르셔서 책을 매시고 보시기에 실로 "미(米)"자와 같이 둘러매셔서 오색으로 그 실을 물들이시고 보시기 변두리에는 푸른 물을 발라 책장마다 찍으시니라. 다시 그 책장을 다 떼어 풀로 마주 이어 4절로 접으셔서 시렁에 걸어 놓으시니 오색찬란한 무늬의 광채가 용의 형상과 같으니라. 이에 그 종이를 거두셔서 교자를 내려놓았던 자리에서 소화하시니라.
71
다시 비에 푸른 물을 적시셔서 방 벽에 인형을 그리신 다음, 이치복에게 명하셔서 그 앞에 청수를 떠 놓고 꿇어앉아 상여 소리를 내게 하시며 "이마두를 초혼(招魂)하여 광주 무등산(無等山) 상제봉조(上帝奉詔)에 장사하고, 최수운을 초혼하여 순창 회문산 오선위기에 장사하노라." 하시니라. 또 종도들에게 24절을 읽히시며 "그때도 이때와 같아서 천지의 혼란한 시국을 광정(匡正)하려고 당태종을 내고 다시 24절에 응한 24장을 내어 천하를 평정하였으니 너희들도 장차 그들 못지않은 대접을 받으리라." 하시니라.
72
이 공사 후에 김덕찬을 거느리시고 싸리재를 넘으시다가 고사리 캐는 노파를 보시고 "중이 동냥을 청하노라." 하시니 노파가 "없나이다." 하니라. 상제님께서 다시 청하시매 "쌀 두 되가 있나이다." 하므로 "그중에서 한 홉만 베풀기를 원하노라." 하시니 노파가 쌀을 바치니라. 덕찬에게 "중은 본래 걸식하는 것이니 이 땅을 불가지(佛可止)라 하는 말에 응함이니라." 하시니라.
73
청도원 김송환의 집에 임어하시니 마침 김경원이 오므로 "네가 올 줄 알았노라." 하시고 백지 한 장을 주셔서 유불선(儒佛仙) 세 자를 쓰게 하신 다음, 유 자 옆에 이구(尼丘), 선 자 옆에 고현(苦縣), 불 자 옆에 서역(西域)이라 쓰셔서 불사르시고 약방으로 환어하셔서 각처의 종도들에게 "6월 20일에 약방으로 모이라." 하는 명을 내리시니라.
74
종도들에게 하교하시기를 "내가 삼계공사로써 일체의 아표신(餓표神)을 천계(天界)로 올려보내리니 이후로는 굶어 죽는 폐단이 없으리라." 하시니라.
75
또 "묵은 하늘이 사람을 죽이는 공사만 하였으므로 일용백물(日用百物)이 모두 핍절(乏絶)하여 살아갈 수 없게 되었으니 이제 그 도수를 뜯어고치지 않을 수 없느니라." 하시고 3일 간 공사를 보신 후에 "아직은 간신히 연명만 하고 장정의 배는 채워지지 못하게 되리니 한때 배고프다는 소리가 구천에 사무치리라." 하시니라.
76
"내가 삼계공사를 주재함은 천지신명들이 모여 삼계를 바로잡아주기를 호소하므로 괴롭기는 한량없으나 할 수 없이 내 몸소 강세함이니라." 하시니라.
77
상제님께서 자주 뱃소리를 하시므로 종도들이 그 뜻을 여쭈니 "조선을 장차 세계 상등국(上等國)으로 만들려면 서양신명을 불러와야 할지라. 이제 배에 실어 오는 화물표(貨物標)를 따라 넘어오게 되므로 그러하노라." 하시니라.
78
하루는 종이에 글을 많이 쓰셔서 종도들에게 주시며 "태인 신호(新濠) 대장간에 가서 그 풀무불에 소지하라." 하시므로 종도들이 명하신 대로 하니라. 며칠 후에 김갑칠에게 명하시기를 "전주 김병욱에게 가서 세상 소문을 들어오라." 하시므로 갑칠이 병욱에게 가니 "요즈음 일본 신호(神戶)에 큰 화재가 일어나서 피해가 많다." 하니라. 돌아와서 아뢰니 "일본은 너무 강렬한 지기가 모인 섬이므로 민족성이 사납고 탐욕이 많으며 침략열이 강하여 우리나라가 예로부터 그들의 침략을 받아 편안한 날이 없었으니 그 지기를 뽑아야 장차 서로 편할 것이요, 또한 안락을 누리리라. 그러므로 내가 그 지기를 뽑아내기 위하여 전날 신호공사(新濠公事)를 보았더니 이제 신호(神戶)에 화재가 일어남은 그 지가가 뽑힘이니라." 하시니라.
79
상제님께서 개고기를 즐기시며 말씀하시기를 "이 고기는 상등 사람의 음식이니라." 하시므로 종도들이 그 이유를 여쭈니 "이 고기는 농민들이 즐기느니 이 세상에 상등 사람은 곧 농민이니라. 선천에는 도가에서 이 고기를 꺼렸으므로 망량(魍魎)이 응하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라.
80
이어 간혹 며칠씩 굶으시며 말씀하시기를 "후일 박복한 중생에게 식록을 붙여 줌이니라." 하시고 또 여름에 솜옷, 겨울에 홑옷을 입으시며 "후일 빈궁한 중생에게 옷을 얻게 함이니라." 하시니라.
81
이도삼에게 말씀하시기를 "사람을 해치는 생물을 일일이 헤아리라." 하시므로 범 · 사자 · 이리로부터 모기 · 벼룩 · 빈대에 이 · 파리에 이르기까지 낱낱이 들어 아뢰니 "후천에는 사람을 해치는 생물은 모두 없게 하리라." 하시니라.
82
김광찬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김병욱의 집에 가서 내가 전하는 글을 정서하여 오라." 하시고 형렬에게 그 글을 전하게 하시니라. 광찬이 정서하여 오매 "이 글을 세상에 전함이 옳으냐?" 하시므로 "뜻대로 하옵소서." 하니 "내가 지난 정월 보름날에 정읍 마동(馬洞)에 책 두 권을 두었으니 그 글이 나오면 세상이 다 알리라." 하시고 불사르신 다음 동곡으로 환어하시니, 광찬이 정서한 글로서 기억에 남은 것은 이러하니라. 士之商 職也 農之工 業也 士之商 農之工 職業也 (或有闕字) 사지상 직야 농지공 업야 사지상 농지공 직업야 (혹유궐자) 萬物資生 羞恥 放 蕩 神 道 統 春之氣 放也 夏之氣 蕩也 秋之氣 만물자생 수치 방 탕 신 도 통 춘지기 방야 하지기 탕야 추지기 神也 冬之氣 道也 統 以氣之主張者也 知心大道術 신야 동지기 도야 통 이기지주장자야 지심대도술 戊申 十二月 二十四日 무신 십이월 이십사일 左旋 四三八 天地 망魎主張 좌선 사삼팔 천지 망량주장 九五一 日月 竈王主張 구오일 일월 조왕주장 二七六 星辰 七星主張 이칠륙 성신 칠성주장 運 至氣今至 願爲大降 운 지기금지 원위대강 無南女老少兒童 詠而歌之 무남녀노소아동 영이가지 是故 永世不忘 萬事知 시고 영세불망 만사지 侍天主 造化定 永世不忘 萬事之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
83
전주 김준찬의 집에 행재하실 때, 김낙범에게 하문하시기를 "요즈음 관왕묘에 치성을 올리느냐?" 하시므로 "올리옵니다." 하니 "그 신명이 이 지방에 있지 아니하고 서양에 가서 큰 난리를 일으키는 중이므로 치성은 헛된 일이니라." 하시니라.
84
동곡 앞 큰 나무 아래에서 금산사 쪽을 가리키시며 글을 외워 주시니 이러하니라. 天皇地皇人皇後 天下之大金山寺 천황지황인황후 천하지대금산사 萬國活計南朝鮮 淸風明月金山寺 만국활계남조선 청풍명월금산사 文明開化三千國 道術運通九萬里 문명개화삼천국 도술운통구만리 世界有而此山出 紀運金天藏物華 세계유이차산출 기운금천장물화 應須祖宗太昊伏 何事道人多佛歌 응수조종태호복 하사도인다불가
85
종도들에게 하교하시기를 "큰 운수를 받으려 하는 자는 서전(書傳) 서문(序文)을 많이 읽으라." 하시고 또 "차생어수천재지하(且生於數千載之下) 이욕강명어수천재지전(而欲講明於數千載之前) 역이난의(亦已難矣)라는 한 구절은 청수를 떠놓고 읽을 만한 구절이니라." 하시니라.
86
김덕겸이 여쭈기를 "천하사(天下事)는 어떻게 되오리까?" 하니 상제님께서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子丑寅卯辰巳午未申酉戌亥)"를 쓰시며 "이러하니라." 하시니라. 김자현이 "그 뜻을 해석하기 어렵나이다." 하매, 다시 그 위에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甲乙丙丁戊己庚辛壬癸)"를 쓰시고 차경석에게 말씀하시기를 "이 두 줄은 베 짜는 바디와 머리 빗는 빗과 같으니라." 하시니라.
87
종도들에게 하교하시기를 "절후문(節候文)이 좋은 글인 줄을 세상 사람이 모르느니라. 속언에 절후를 '철'이라 하고 어린아이의 무지몰각함을 '철부지'라 하며 소년으로도 지각을 차린 자에게는 '철을 안다.' 하고 노인도 몰지각(沒知覺)하면 '철부지 한 아이와 같다.' 하느니라." 하시니라.
88
하루는 젊은 여인이 남편상을 당한 후 순절하였다는 말을 들으시고 "여인의 뜻은 장하나 악독한 귀신이 인명을 살해하는도다." 하시며 글을 두 번 쓰셔서 불사르시니 이러하니라. 忠孝烈 國之大綱 然 國亡於忠 家亡於孝 身亡於烈 충효열 국지대강 연 국망어충 가망어효 신망어열 大丈夫 大丈婦 대장부 대장부
89
김송환에게 한시 한 수를 외워 주시니 이러하니라. 少年才氣拔天摩 手把龍泉幾歲磨 소년재기발천마 수파용천기세마 石上梧桐知發響 音中律呂有餘和 석상오동지발향 음중율려유여화 口傳三代詩書敎 文起千秋道德波 구전삼대시서교 문기천추도덕파 皮幣已成賢士價 賈生何事怨長沙 피폐이성현사가 가생하사원장사
90
종도들에게 하교하시기를 "과거에는 도통이 나지 아니하였으므로 도가에서 음해를 이기지 못하여 성사되는 일이 없었으나, 이후에는 도통이 나므로 음해하려는 자가 도리어 해를 입으리라." 하시니라.
91
상제님께서 세상에 전하여 오는 모든 허례에 대하여 "이는 묵은 하늘이 그르게 꾸민 것이니 장차 진법(眞法)이 나리라." 하시고 또 제례 진설법에 대하여 "이는 묵은 하늘이 그릇 정한 것이며 제사 음식은 깨끗하고 맛있는 것이 좋은 것이요, 그 놓여 있는 위치로 인하여 귀중하게 되는 것은 아니니라." 하시니라. 또 상복제도(喪服制度)도 미워하셔서 "이는 거지 죽은 귀신이 지은 것이니라." 하시니라.
92
종도들에게 하교하시기를 "예수교도는 예수의 재림을, 불교도는 미륵의 출세를, 동학신도는 수운의 갱생을 기다리나 그 위의 한 사람이 오면 모두 따르리라." 하시니라.
93
또 "내가 참으로 일하려고 들어앉으면 너희들이 아무리 나를 보려 하여도 못 볼 것이요, 내가 찾아야 보게 되리라." 하시니라.
94
불가지 김성국의 집에 행재하실 때 김덕찬이 모셨는데, 무슨 말씀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거짓 대답하여 올리니 "네가 용소리(龍巢里) 김의관(金義官)의 집에 가서 자고 오라." 하시니라. 덕찬이 명을 받들고 김의관의 집 문 앞에 이르러 주정꾼을 만나 심한 모욕을 당하고 분하여 되돌아오니 상제님께서 "왜 자지 않고 돌아오느뇨?" 하시고 타이르시기를 "사람을 사귐에 있어 마음을 참되게 할 것이어늘 어찌 마음을 스스로 속이느뇨?" 하시니라. 덕찬이 처음에는 불평하다가 징벌하심인 줄 깨닫고 이로부터 더욱 두려워하면서 공경하여 비록 작은 일이라도 극히 삼가하니라.
95
전주 봉서산(鳳棲山) 아래에 행재하실 때, 종도들에게 하교하시기를 "김봉곡(金鳳谷)은 원래 시기심이 많았는데, 하루는 진묵이 봉곡에게 성리대전(性理大全)을 빌려 가면서 곧 찾아갈 줄을 알고 걸어가며 한 권씩 읽어 보고 길가에 버리니 절에 이르기까지 다 읽으니라. 봉곡이 책을 빌려준 다음, 생각하기를 '진묵은 불법을 통한 자인데 만일 유학까지 정통하면 상대하지 못하게 될 것이요. 또 불교는 매우 왕성하고 유교는 쇠퇴하리라.' 하고 급히 사람을 보내어 그 책을 도로 찾아오게 하니, 그 사람이 뒤쫓아가면서 길가에 한 권씩 버린 책을 거두어 오니라. 그 후에 진묵이 봉곡에게 가니 빌린 책을 돌려 달라 하므로 '그 책은 쓸데없음으로 다 버렸노라.' 하매 봉곡이 분노하니라. 진묵이 말하기를 '내가 외우리니 기록하라.' 하고 암송하는데 한 자도 틀리거나 뒤섞임이 없으므로 봉곡이 이로부터 더욱 시기하니라. 그 후에 진묵이 상좌승에게 8일간을 폐문시키고 범서(梵書)와 불법서를 더 연구하려고 시해(尸解)로 서역에 갔는데 봉곡이 알고 절에 가서 그 방문을 열고 '어찌 썩는 시체를 방에 감추어 두고 혹세무민하느냐?' 하고 상좌를 시켜 화장하니라. 8일 후 진묵이 돌아와서 신체가 없음을 보고 공중에서 소리치기를 '이는 봉곡의 소행이라. 내가 각 지방 문화의 정수(精髓)를 거두어 천하를 크게 문명하게 하고자 하였더니, 이제 봉곡의 시기로 허사가 되었으니 어찌 한스럽지 않으리오? 이제 나는 이곳을 떠나려니와 봉곡의 자손은 대대로 호밋자루를 면하지 못하리라.' 하며 동양의 도통신을 거느리고 서양으로 갔느니라." 하시니라.
96
또 "최풍헌(崔風憲)은 지난 임진왜란 때의 고흥 사람이라. 유훈장(柳訓長)의 면하인(面下人)으로 있으면서 술 취한 사람처럼 말과 행동이 거칠었으나, 일을 당하면 명민(明敏)하고 지혜가 뛰어나 훈장이 비범하게 여겼는데, 때마침 왜군이 침입하리라는 풍문이 유포되어 민심이 흉하게 동요하니라. 훈장이 풍헌에게 피란할 일을 부탁하니 풍헌이 알지 못한다고 사양하다가 재삼 간청하매 말하기를 '그대의 재산과 전답을 팔아서 내게 맡기라.' 하므로, 훈장이 그대로 하니라. 풍헌은 그 돈으로 날마다 음주로 탕진하는 듯하였으나 훈장은 모른 체하더니, 하루는 풍헌이 사망하였다는 부고가 오므로 크게 놀라 풍헌의 집에 찾아가니 과연 죽었다 하니라. 그 아들에게 '유언이 있더냐?' 하고 물으니 '훈장에게 통지하여 집안 식구에게 모두 상복을 갈아입혀 상여 뒤를 따라와서 지리산 골짜기에 장사를 지내라 하시더이다.' 하므로 원래 풍헌을 믿던 훈장은 집에 돌아와서 의논하니 모두 듣지 않고 큰아들만 따르니라. 3일 후에 운상하여 지리산에 들어가니 골짜기 위에서 '상여를 버리고 이곳으로 올라오라.' 하는 소리가 크게 들리므로 올려다보니 곧 풍헌이니라. 상여를 버리고 가보니 그곳에 집을 지어 놓고 식량을 풍부히 저장하여 두니라. 얼마 지난 후에 산 위에서 살던 곳을 바라보니 불길이 맹렬히 타올라 하늘 높이 솟으므로 사유를 물으매 왜군이 침입하여 방화함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라.
97
"서교는 신명 박대가 심하므로 능히 성공하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98
"대인의 행차에 삼초(三哨)가 있는데, 갑오년에 1초가 있었고, 갑진년에 2초가 있었으며, 손병희는 3초를 맡았느니 삼초 끝에 대인이 나오리라. 그러므로 손병희의 만사를 미리 지으리라." 하시고 종이에 쓰셔서 불사르시니 이러하니라. 知忠知義君事君 一魔無藏四海民 지충지의군사군 일마무장사해민 孟平春信倍名聲 先生大羽振日新 맹평춘신배명성 선생대우진일신
99
"옛적에 한 사람이 지조가 견실하지 못하여 방탕하다가 하루는 생각하기를 '내 일생에 이룬 일이 없이 늙게 되었으니 어찌 한스럽지 않으리오? 이제 마음을 고치고 신선을 찾아 선학(仙學)을 배우리라.' 하는데 문득 심신(心神)이 하늘로 올라가 신선을 만나니라. 그 신선이 말하기를 '네가 이제 방탕함을 뉘우치고 선학을 배우려 하니 그 뜻이 가상하도다. 내가 선학을 가르쳐 주리니 너는 조촐한 땅에 도장을 세우고 많은 동류를 모아 기다리라.' 하므로 정신을 가다듬으니 더욱 상쾌하니라. 이날부터 정결한 땅을 가리고 동류를 구하니 과거에 탕자(湯子)였던 그에게 의심을 두어 듣는 자가 적고 다만 평소에 마음이 맞던 자 몇 명이 모여 도장을 열매, 문득 하늘로부터 오색구름이 찬란하고 선악(仙樂)소리가 유량(嚠喨)하게 들리니라. 이윽고 그 신선이 내려와서 선학을 가르쳐 주었다 하는데 너희 일도 이 학선자(學仙者)의 일과 같으니라." 하시니라.
100
"여동빈(呂洞賓)이 인연 있는 자를 찾아 장생술(長生術)을 전하고자 빗장수로 변장하고 거리에 다니며 외치기를 '이 빗으로 빗으면 흰머리가 검어지고, 굽은 허리가 펴지며, 쇠한 기력이 완성하여지고, 노인이 다시 소년이 되리니 하나에 천 냥이라.' 하였으나 듣는 사람이 모두 허망한 소리로 생각하여 믿지 않았는데, 동빈이 한 노파에게 시험하매 과연 말한 바와 같으니라. 그제야 모든 사람이 다투어 모여들었으나 동빈은 빗을 팔지 않고 승천(昇天)하였다 하니 너희 일도 이와 같으니라." 하시니라.
101
"운수를 열어 주어도 능히 받지 못하면 그 운수가 본처로 돌아가기도 하고, 또 남에게 그 운수를 빼앗기기도 하느니라." 하시니라.
102
"내가 시키는 공부에는 3등이 있으니 상등은 도술이 겸전하여 만사를 임의로 행하고, 중등은 용사에 제한이 있으며, 하등은 알기만 하고 용사는 못하느니라. 옛사람은 알기만 하고 용사하지 못하였으므로 하등이라, 모든 일을 뜻대로 행하지 못하였느니라." 하시니라.
103
김경수가 돼지 한 마리를 기르다가 도둑맞고 와서 아뢰니 "그 돼지를 찾지 말라. 네 전생에 그 사람의 눈을 속여 손해를 보였으므로 이제 그 보복을 받음이니라." 하시니라.
104
종도들에게 하교하시기를 "공자는 72인을 통예(通藝)시키고, 서가는 500인을 통하게 하였다 하나, 나는 천한 백성까지 마음을 밝혀 주어 제 일은 제가 알게 하며, 남자는 남의 여자에게 탐심을 내지 않고 여자는 남의 남자에게 탐심을 내지 않으며, 길에 흘린 것을 줍는 자가 없고, 산에는 도적이 없게 하리라." 하시니라.
105
상제님께서 전주 이치안(李治安)의 집에 글을 써 두시니 이러하니라. 高見遠慮曰智 고견원려왈지 智者 與天地同 有春夏秋冬之氣 每事任意用之 謂之智慧勇力 지자 여천지동 유춘하추동지기 매사임의용지 위지지혜용력 大智 與天地同 有春夏秋冬之氣 대지 여천지동 유춘하추동지기 其次 與日月同 有弦望晦朔之理 기차 여일월동 유현망회삭지리 又其次 與鬼神同 有吉凶禍福之道 우기차 여귀신동 유길흉화복지도 萬事起於陰 以布陽 先察陰晦 以觀陽明 每事 先觀始發處 만사기어음 이포양 선찰음회 이관양명 매사 선관시발처 陰起事而陽明 陽起事而陰匿 要須先察陰陽 陰陽則 水火而已 음기사이양명 양기사이음익 요수선찰음양 음양즉 수화이이 日用事物 起居動靜 在於耳目口鼻聰明道理 일용사물 기거동정 재어이목구비총명도리 耳屬水 目屬火 明白然後 萬事 可知 이속수 목속화 명백연후 만사 가지 水生於火 火生於水 金生於木 木生於金 其用 可知然後 方可謂神人 수생어화 화생어수 금생어목 목생어금 기용 가지연후 방가위신인 陰殺陽生 陽殺陰生 生殺之道 在於陰陽 人可用陰陽然後 음살양생 양살음생 생살지도 재어음양 인가용음양연후 方可謂人生也 人爲陽 神爲陰 陰陽相合然後 有變化之道也 방가위인생야 인위양 신위음 음양상합연후 유변화지도야 不側變化之術 都在於神明 感通神明然後 事其事則 謂之大仁大義也 불측변화지술 도재어신명 감통신명연후 사기사즉 위지대인대의야 事有決斷 然後 有變化之道也 春夏秋冬 秋爲義 義則決斷也 사유결단 연후 유변화지도야 춘하추동 추위의 의즉결단야 六用三德 三德則 天德 地德 人德也 統合 謂之大德也 육용삼덕 삼덕즉 천덕 지덕 인덕야 통합 위지대덕야 德義 有生殺之權 生殺則 陰陽 知此兩端而已 덕의 유생살지권 생살즉 음양 지차양단이이 天用地用人用之 調理綱紀 統制乾坤 此之謂造化手段也 천용지용인용지 조리강기 통제건곤 차지위조화수단야 理雖高 出於太極无極之表 不離乎日用事物之間 이수고 출어태극무극지표 불리호일용사물지간 年月日時分刻輪廻 皆是元亨利貞天地之道也 연월일시푼각윤회 개시원형이정천지지도야 天地之用 胞胎養生浴帶冠旺衰病死葬而已 천지지용 포태양생욕대관왕쇠병사장이이 養則收藏處 藏則出用處 觀其收藏出用之物 以致出也 양즉수장처 장즉출용처 관기수장출용지물 이치출야 人而用之之道 捨此而何以也 인이용지지도 사차이하이야 入而養中 出而形外 因其已知之理而 益窮之 自然心自開也 입이양중 출이형외 인기이지지리이 익궁지 자연심자개야
106
박공우가 여쭈기를 "도통을 주옵소서." 하니 상제님께서 꾸짖으시기를 "이 무슨 말이뇨? 각 성씨의 선령신 한 명씩이 천상공정(天上公庭)에 참여하여 있으니 이제 만일 한 사람에게 도통을 주면 모든 선령신들이 편벽됨을 불평하리라. 그러므로 사정(私情)을 쓰지 못하노라. 공자는 72인만 통예 시켰으므로 얻지 못한 자는 모두 함원(含怨)하였으나 나는 누구나 다 닦은 근기(根機)에 따라 도통을 주리니 상재(上才)는 7일, 중재(中才)는 14일, 하재(下才)는 21일이면 각기 성도하게 하리라." 하시니라.
107
또 "강태공(姜太公)이 10년 경영으로 3,600개의 낚시를 벌였음이, 어찌 다만 주나라를 일으켜 봉작(封爵)을 얻으려 함이랴? 이를 넓게 후세에 전하려 함이니라. 내가 이제 72둔을 써서 화둔을 틔우리니 나는 곧 삼리화(三離火)니라." 하시니라.
108
"문왕은 유리(羑里)에서 384효를 해석하였고, 태공은 위수(渭水)에서 3,600개의 낚시를 벌였는데, 문왕의 도술은 먼저 나타났거니와 태공의 도술은 이때 나오느니라." 하시고 또 "천지무일월공각(天地無日月空殼)이요, 일월무지인허영(日月無知人虛影)이라." 하시니라.
109
박공우가 3년간 상제님을 모시고 삼계공사에 많이 수종하였는데 항상 공사 후에는 각처 종도들에게 널리 순회하며 공사의 뜻을 펴게 하시고 "이도 또한 삼계 공사의 일부니라." 하시니라.
110
또 하교하시기를 "이불 덮고 아침 늦게 자는 자는 내 눈에 송장으로 보이느니라." 하시니라.
111
한 종도가 계룡산 정씨 왕국에 관한 비결을 여쭈니, 하교하시기를 "일본 사람들이 모든 섬 속까지 샅샅이 뒤져보고 물밑까지 더듬었느니, 정씨가 몸 붙여 일을 벌일 곳이 어디에 있으리오? 그런 생각은 다 버리라." 하시니라.
112
종도들에게 하교하시기를 "나의 일이 장차 초장봉기지세(楚將蜂起之勢)로 각색이 혼란스럽게 일어나 물중전(物衆廛)의 본을 이루리라. 그러나 다시 진법이 나오게 하리라." 하시니라.
113
또 "도통줄은 대두목에게 주어 보내리라. 법방(法方)으로 용하면 되리니 내가 어찌 홀로 맡아 행하리오? 도통시킬 때에는 유불선 각 도통신(道統神)들이 그 닦은 근기를 따라서 통하게 하리라." 하시니라.
114
"도통은 건감간진손이곤태에 있느니라." 하시니, 유찬명이 큰소리로 한 번 외우고 문밖으로 나가니라.
115
"너희들이 장차 천하만국에 돌아다니며 가르칠 때에 오죽 우대를 받겠느냐? 그때에는 큰 영화가 있으리라." 하시니라.
116
"담배에 시비가 붙어 있으니 이를 해원시켜 상하 귀천의 구별 없이 피우게 하리라." 하시고 종도들의 담뱃대에 담배를 넣어 함께 피우시니라.
117
형렬에게 옛 시 한 절을 외워 주시며 "잘 지키라." 하시니 이러하니라. 幣衣多垢勝金甲 頹屋無垣似鐵城 폐의다구승금갑 퇴옥무원사철성
118
또 글 한 수를 외워 주시며 "잘 기억하여 두라." 하시니 이러하니라. 三人同行七十里 五老峰前二十一 삼인동행칠십리 오로봉전이십일 七月七夕三五夜 冬至寒食百五除 칠월칠석삼오야 동지한식백오제
119
또 이러하니라. 口重崑崙山 心深黃河水 구중곤륜산 심심황하수
120
또 하교하시기를 "이 운수는 원원(元元)한 천지대운이므로 갑을(甲乙)로써 머리를 들 것이요, 무기(戊己)로써 굽이를 치리니 무기는 천지의 한문(閈門)임이니라." 하시니라.
121
또 "신농씨가 경농(耕農)과 의약을 가르침으로부터 천하가 그 두터운 혜택을 입어 왔으나 그 공덕을 앙모(仰募)하여 보답하지 않고, 강태공이 제잔금폭(除殘禁暴)의 묘략(妙略)을 전수함으로부터 천하가 그 덕을 입어왔으나 그 공덕을 앙모하여 보답하지 아니하니 어찌 도의에 합당하리오? 이제 해원시대를 당하여 모든 신명이 신농과 태공의 은혜를 보답하게 하리라." 하시니라.
122
종도들에게 글 한 절을 외워 주시니 이러하니라. 天是天非修道道 不求俗地得長生 천시천비수도도 불구속지득장생
123
또 이러하니라. 步拾金剛景 靑山皆骨餘 其後騎驢客 無興但躊躇 보습금강경 청산개골여 기후기로객 무흥단주저
124
또 이러하니라. 道通天地無形外 思入風雲變態中 도통천지무형외 사입풍운변태중
125
또 이러하니라. 我得長生飛太淸 衆星要我斬妖精 아득장생비태청 중성요아참요정 惡逆催折邪魔驚 躡罡履斗躋光靈 악역최절사마경 섭강이두제광령 天回地轉步七星 禹步相催登陽明 천회지전보칠성 우보상최등양명 一氣混沌看我形 唵唵急急如律令 일기혼돈간아형 음음급급여률령
126
또 이러하니라. 七八年間古國城 畵中天地一餠成 칠팔년간고국성 화중천지일병성 黑衣飜北風千里 白日頃西夜五更 흑의번북풍천리 백일경서야오경 東起靑雲空有影 南來赤豹忽無聲 동기청운공유영 남래적표홀무성 虎兎龍蛇相會日 無辜人民萬一生 호토용사상회일 무고인민만일생
127
또 하교하시기를 "천지에 수기가 돌 때에는 만국 사람이 배우지 아니하고도 통어(通語)하게 되느니 그때에는 와지끈 철철 소리가 나리라." 하시니라.
128
또 "너희들은 오사(誤死)는 아니하리라. 천하사를 하다가 좀 갇히는 것이야 무서울 것이 있느냐?" 하시니라.
129
"주머니에 돈 한 냥이 있든지 5전이 있든지, 쓸 일에 쓰지 않고 집안 살림만 생각하는 자는 천하사를 못하리라." 하시니라.
130
"내가 출세할 때에는 일심자만 따르리니 희귀(稀貴)하다는 희 자는 드물 희 자니라." 하시니라.
131
한 종도가 계룡산 도읍의 비결을 여쭈니 "동서양을 통일하게 할 터인데, 계룡산에 도읍하여 무슨 일을 하리오?" 하시므로 "언어가 같지 아니하니 어찌 통일하오리까?" 하매 "언어도 장차 통일되게 하리라." 하시니라.
132
또 하교하시기를 "모악산은 청짐관운형(靑鴆貫雲形)인데, 그 피워 내는 살기에 세계가 물 끓듯 하리라." 하시니라.
133
또 "양이 적은 자에게 과다하게 주면 배가 터지고, 양이 큰 자에게 과소하게 주면 배를 곯느니 각기 기국(器局)에 맞추어 주리라." 하시니라.
134
"주문은 무슨 주문이든지 믿고 외우면 되느니라. 옛날 어느 처녀가 혼기를 놓쳐 한이 되어 도나 닦으려고 이웃의 수도하는 노부부를 찾아가 주문을 물으니, 마침 그들은 가정불화로 심사가 불안하여 귀찮은 마음에서 '아무것도 싫다.' 하고 대답하니라. 처녀는 이를 주문으로 믿고 좌와동정(坐臥動靜)에 쉬지 않고 열성으로 외우니 모든 식구가 싫어하는데 그 말을 계속 외우면서 물동이를 이고 오니, 그 부친이 도리깨로 쳐서 돌 위에 넘어졌으나 동이도 성하고, 물도 쏟아지지 아니하였다 하느니라." 하시니라.
135
"옛적에 어떤 사람이 선술(仙術)을 배우기 위하여 스승을 찾아 돌아다니는데, 선술을 가르쳐 주려는 사람이 있어 '십 년간의 성의를 보이라.' 하므로 머슴살이로 진심갈력(盡心竭力) 하니라. 십 년이 찬 후에 주인이 그 성의를 칭찬하며 '이제 선술을 가르쳐 주리라.' 하고 부근에 있는 연못에 데리고 가서 말하기를 '물 위로 뻗은 버들가지에 올라가서 물로 뛰어내리면 선술을 통하리라.' 하므로 머슴이 그대로 하매 떨어지기 전에 문득 꽃구름이 일고 선악이 울리며 보련(寶輦)이 내려와서 태우고 천상으로 올라갔다 하느니라. 이것이 그 주인의 도술로 인함인지, 머슴의 성의로 인함인지, 잘 새겨 보라." 하시니라.
136
"이 시대가 장차 길에는 두 사람이 동행하기도 어렵고, 방에는 다섯 사람이 동석(同席)하기도 어려우리니 아는 것도 모르는 체하고 폭 잡기 어렵게 지낼지니라." 하시니라.
137
"앞으로 산금증식(産金增殖)이 옛날과는 유례가 없으리니 이는 장차 내가 쓰려고 시킨 바니라." 하시니라.
138
상제님께서는 종도들에게 항상 평어(平語)를 쓰셨으나, 외인이 있을 때에는 경어를 쓰시니라. 또 누구를 대하든지 다정하게 하시고, 동(動) · 정(靜) · 어(語) · 묵(默) · 희(喜) · 로(怒) · 애(哀) · 락(樂)을 법도 있게 하시니라
139
종도들 중에 허물 있는 자가 있으면 추상(秋霜)같이 꾸짖으신 다음, 다시는 그러지 말라고 타이르셔서 봄바람과 같은 온화한 기운으로 마음을 풀어 주시니라.
140
종도들에게 하교하시기를 "24종의 약재만 잘 쓰면 만국의원이 되리라." 하시니라.
141
또 "후천에는 팔자 좋은 사람이라야 자식 둘을 둘 것이요, 아주 못 두는 자는 없으리라. 또 부자는 각 도에 하나씩 두고 나머지는 다 고르게 하여 가난한 자가 없게 하리라." 하시니라.
142
"운암강이 흘러 지금은 섬진강(蟾津江)이 되었지만, 장차 계화도(界火島)로 나가게 되리라." 하시니라.
143
하루는 약방의 부엌과 온 집 안을 청소하시며 "일본인이 보더라도 깨끗하다고 하겠느냐?" 하시더니 그 후에 일경(日警)의 청결법이 시행되니라.
144
박공우에게 하문하시기를 "네가 일찍 부모를 여의었느냐?" 하시므로 "그러하옵니다." 하니 "이후로는 나의 부모를 너의 부모와 같이 섬기라." 하시니라.
145
상제님께서 하교하시기를 "공부를 하다가 땅에 떨어지면 죽느니라." 하시니라.
146
또 "이제 너희들에게 다 각각 운수를 정하였느니 잘 받아 누릴지어다. 받지 못한 자는 성심이 없는 까닭이니라." 하시니라.
147
"씨름으로 남을 이기는 것도 척이 되느니 이는 성한 사람을 병들게 함이니라." 하시니라.
148
"아무리 무식하여도 거주 · 성명은 쓸 줄 알아야 하느니라." 하시니라.
149
"금년 운수가 명년 사월까지 가느니라." 하시니라.
150
상제님께서 조아시(鳥兒詩)와 묘시(猫詩)를 외워 주시니 이러하니라. 조아시 嘴力未穩全信母 卵心常在不驚人 취력미온전신모 난심상재불경인 묘시 身來城國三千里 眼辨西天十二時 신래성국삼천리 안변서천십이시
151
또 옛시를 외워 주시니 이러하니라. 胡來不覺潼關隘 龍起猶聞秦水淸 호래불각동관애 용기유문진수청
152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모든 법술은 내가 쓰기 위하여 내놓은 것이니라." 하시니라.
153
4월 28일에 김보경 · 이치복 등 종도 몇 사람을 거느리시고 대전역(大田驛) 근처의 철도 주변에 행행하셔서 혼자 말씀으로 "올 때가 되었는데......," 하시고 멀리 바라보시며 누구를 몹시 기다리는 표정이시니라. 종도들이 이상히 여겨 여쭈기를 "누구를 그렇게 기다리시옵니까?" 하였으나 답을 않으시고 바라만 보시더니, 마침 남쪽에서 달려오는 기차를 보시고 반겨하시며 "이제 나의 일은 다 이루었도다. 남아 십오 세면 호패(號牌)를 차느니 무슨 일을 못하리오. 과연 인유기인(人有其人) 시유기시(時有其時)로다." 하시고 한참 동안 서 계시니라.
154
5월 어느 날 백암리에 행재하실 때, 글 쓰신 종이를 김경학에게 주시며 "이것을 물동이에 외로 돌려서 적신 다음, 마르거든 소지하라." 하시므로 그대로 하니라. 그 후에 이웃에 불이 나서 거센 남풍을 타고 아홉 집을 태웠으나 경학의 집은 무사하니라.
155
정읍군 내장면 금붕리(琴朋里) 모시밭 가를 거동하시다가 충재(蟲災)가 심하여 모시 잎은 하나도 없이 대만 남았음을 보시고 "내가 충재를 제거하여 주리라." 하시며 북쪽을 향하여 휘파람을 세 번 부시니 참새 수천 마리가 모여들어 해충을 쪼아 없애니라.
156
이 무렵 청주에서 괴질이 창궐하고, 나주에서도 크게 성하여 민심이 흉흉하다는 말을 들으시고 "남북에서 마주 일어나니 장차 무수한 생명을 죽이리라." 하시니라. 이어 "칙령괴질신장(勅令怪疾神將) 호불범제왕장상지가(胡不犯帝王將相之家) 범차무고창생지가호(犯此無辜蒼生之家乎)."라는 글을 써 불사르시며 "내가 이것을 대속하리라." 하시고 김형렬로 하여금 새 옷 다섯 벌을 급히 지어 오게 하셔서 한 벌씩 갈아입으시고 옷마다 설사하여 버리신 다음, "약한 자가 걸리면 다 죽겠도다." 하시더니 이후로 괴질이 그치니라.
157
원평장터 김경집(金京執)의 집에 사관을 정하시고 오랫동안 행재하실 때에 경집은 누구든지 상제님을 빙자하고 술밥을 청하면 값이 있고 없음을 묻지 않고 청한 대로 내어 주니라. 태인 청석골의 강팔문(姜八文)이 술밥을 많이 먹은 후에 상제님의 말씀을 빙자하며 값을 주지 않고 갔는데 이로부터 협체(挾滯)로 인한 창증이 나서 죽을 지경에 이르니라. 신경수가 그 사유를 상제님께 아뢰니 답하지 않으시니라. 그 후에 또 와서 위독함을 아뢰니 "불인(不仁)한 일로 신명에게 죄를 얻었으니 참회하고 나에게 와서 사죄하라." 하시니라.
158
6월 초에 동곡에 행재하실 때, 김경학이 와서 뵙고 가뭄으로 모내기를 못하여 민심이 불안함을 아뢰니 상제님께서 김갑칠에게 명하셔서 청수 한 동이를 길어 오게 하시고, 글을 쓰신 양지 한 축을 경학에게 주시며 "청수에 적셔 비비라." 하시니라. 경학이 하명대로 하여도 비가 오지 않음으로 갑칠에게 "네게 장령(將令)을 붙여 서양의 우사를 불러와서 만민의 갈앙(渴仰)을 풀어 주려 하였더니 네가 어젯밤에 나의 명을 어기고 잠을 잤으므로 비가 오지 아니하니 옷을 벗고 청수 앞에 합장(合掌)하며 사죄하라." 하시니라. 갑칠이 하명대로 하니 문득 서쪽 하늘에서 먹구름이 일어나며 큰비가 내려 순식간에 앞 내가 넘치니라. 경학이 "이만하면 넉넉하겠나이다." 하니 상제님께서 부채를 들어 한 번 흔드시자 비가 그치니라. 종도들에게 하교하시기를 "너희들도 진법(眞法)에 따라 잘 수련하면 이와 같이 모든 일을 마음대로 하리라." 하시니라.
159
종도들이 근심되는 일이 있을 때 상제님께 아뢰면 알지 못하는 가운데 풀리게 되고, 만일 아뢴 후에도 근심을 놓지 않으면 위로하시기를 "내가 이미 알았으니 근심하지 말라." 하시고 풀어주시니라.
160
상제님께서 종도들에게 일을 명하실 때는 기한을 정하셔서 어기지 않게 하시고 명을 받든 자가 혹 기한 내에 일기가 좋지 못하여 어김이 있을까 염려하면 타이르시기를 "내가 너희들에게 어찌 좋지 못한 날을 정하여 주겠느냐?" 하시니 대저 상제님께서 정하신 날은 하루도 좋지 못한 날이 없으니라.
161
또 종도를 어느 곳에 보내시며 무슨 일로 보낸다는 말씀을 않으실 때가 많았으나, 종도들은 항상 그렇게 경험하였으므로 다시 여쭈지 않고 명하신 곳에 가면 되니라.
162
항상 종도들을 정좌시켜 몸을 요동하지 못하게 하시며 "잡념을 버리고 정심하라." 하시니라. 밤이면 닭이 운 뒤에 자게 하시고, 겨울에는 흔히 문을 열어 놓고 마루에 앉아 계셨으나 방 안 사람이 추움을 느끼지 못하였으며, 혹 춥다고 말하는 자가 있으면 즉시 더워지게 하시니라. 또 여름에는 모기가 머리 위에서 소리만 내고 물지는 않았으며, 빈대 있는 방에 하룻밤만 침수 드시면 빈대가 없어졌으며, 길을 갈 때도 덥다고 하면 부채나 삿갓으로 한 번 휘두르셔서 구름이 해를 가리고 서늘한 바람이 불게 하시니라.
163
가물 때에 비를 주시되 청수 동이에 소금을 조금 타시면 곡식이 잘 여물고, 병충해가 있을 때는 고춧가루를 풀어 넣으시면 곧 없어지니라.
164
상제님께서 삼계 대권을 임의로 행사하시되 일정한 법이 없으시고, 언제든지 때와 장소에 따라 수시로 공사를 행하셨으니, 예를 들면 폭우를 그치게 하실 때에 혹 종도들에게 명하셔서 화로의 불등걸을 문밖에 던지거나 담뱃대를 두르게도 하시고, 때로는 말씀으로도 하시니라.
165
더울 때에 출어하시려면 구름이 일산(日傘)과 같이 태양을 가리니라.
166
달밤에 거둥하실 때, 구름이 달을 가리면 상제님의 손길에 따라 오른쪽 또는 왼쪽으로 열려 달빛이 비치고, 목적지에 임어하시면 손길에 따라 합하니라.
167
종도들을 태좌법(胎坐法)으로 앉히시고 움직이지 않게 명하신 후에 만약 움직이는 자가 있으면 돌아 누우셔서도 아시고 꾸짖으시니, 그 심식(心識)이 깨어 있으실 때나 침수 드셨을 때, 또 거리의 멀거나 가까움에도 구별이 없이 밝으시니라.
168
공사를 몸소 아니하시고 종도로 하여금 대신하게 하실 때에는 능히 그 화권(化權)까지 대행하게 하시니라.
169
천문을 친감하실 때는 온 하늘을 구름으로 덮으시고 별을 하나씩 나타나게 하셔서 종도들로 하여금 살피게 하시니라.
170
상제님께서는 품성(稟性)이 위엄(威嚴)하시나 화기가 자애로우셔서 누구에게든지 친하게 대하시니, 종도들은 엄한 아버지와 자애로운 어머니처럼 시봉(侍奉)하니라.
171
공사를 행하실 때에는 수라나 어떠한 일로도 중단함이 없으시고 반드시 공사를 마치신 후에 하시니라.
172
어느 날 신원일이 상제님께 여쭈기를 "천하사는 어느 때 이루려 하시나이까?" 하니 "이제 천하를 도모하러 떠나려 하노라. 일을 다 본 후에 돌아오리라." 하시니라.
173
황응종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없을 때에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여 애통해하며 우왕좌왕하는 거동이 눈에 완연(宛然)하나, 내가 너희 눈앞에 있어도 보지 못할 것이요, 내가 찾아야만 만나리라." 하시니라.
174
종도들에게 하문하시기를 "내가 이제 몸을 숨기려 하느니, 너희들이 능히 찾겠느뇨?" 하시므로 모두 우러러 답하기를 "찾겠나이다." 하니 "너희들은 나를 찾지 못할 것이요, 내가 너희들을 찾아야 만나게 되리라. 그러나 나는 도의 체(體)로서 너희와 항상 같이 있음이니 도의 법방 공부로라야 나를 만나리라." 하시니라.
175
또 "속언에 '이제 보니 수원 나그네라.' 하느니 부지수모(不知誰某)하고 대하다가 다시 보니 지기지인(知己之人)이라는 말이니라. 나의 얼굴을 잘 익혀 둘지니라." 하시니라.
176
"내가 장차 열 석자로 오리니, 다음 여덟 자도 잊지 말고 명심하여 생각하라." 하시니라.
177
이달 초 10일에 종도들에게 "20일에 동곡약방으로 모이라." 하고 다시 명을 내리시니라.
178
20일에 종도들이 동곡에 모이니 상제님께서 존전(尊前)에 일렬로 꿇어 앉히시고 근엄하게 하문하시기를 "너희들이 나를 믿느냐?" 하시므로 모두 우러러 답하기를 "그러하옵니다." 하니라. 또 "목숨이 다하여도 믿으려느냐?" 하시므로 모두 "또한 그러하옵니다." 하니, "한 사람만 있어도 나의 일은 성립되느니라." 하시니라. 이때 종도들은 천하사를 도모하는데 위험한 곳에서 목숨이 다하게 될 일이 있는 뜻으로 알고 상제님의 화천(化天)은 짐작도 못하니라.
179
상제님께서 삼계공사를 마치셨음을 종도들에게 성명(聲明)하시니, 김경학이 여쭈기를 "공사를 마치셨으면 나서시기를 바라나이다." 하매 "도수가 아니므로 나서지 못하노라." 하시니라. 경학이 "제가 비록 무능하오나 몸이 닳도록 감히 두 사람의 몫을 행하려 하나이다." 하니 "그렇게 되지 못하느니 진주(眞主)가 있음이니라." 하시니라. 경학이 다시 "그러하오면 저희는 모두 무용지인(無用之人)이오니 평생 수종한들 무슨 소용이 있사오리까?" 하며 다른 종도들에게 "우리는 모두 무용지물이라, 함께 물러감이 옳으리라." 하고 일어서는데, 상제님께서 만류하시므로 모두 잘못되었음을 뉘우치니라.
180
이때 상제님께서 자리에 누우셔서 여러 가지 병을 두어 시간씩 번갈아 앓으시며 "내가 이러한 모든 병을 대속함은 후천 창생으로 하여금 영원한 강녕(康寧)을 얻게 함이니라." 하시니라. 한 가지 증세를 앓으신 후에는 일어나 앉으셔서 "약(藥)을 알았다." 하시고 용안을 거울에 비추시면, 대속하실 때의 수척하고 열을 띠셨던 기상(氣像)이 곧 회복되시니라. 그 증세는 운기(運氣) · 상한(傷寒) · 황달(黃疸) · 내종(內腫) · 호열자(虎列刺) 등이었으니 말씀하시기를 "세상에 있는 모든 병을 다 대속하였으나 오직 한 가지 괴질은 남겼으니 곧 무도(無道)의 병이요. 의통을 전하느니 곧 진법의 용이니라." 하시니라.
181
상제님께서 삼계공사를 마치신 후에 "포교 오십년공부 종필(布敎五十年工夫終筆)"을 쓰셔서 불사르시고 종도들에게 하교하시기를 "옛사람이 50세에 49년간의 잘못을 깨달았다 하느니라. 이제 내가 천지운로를 뜯어고쳐 물샐틈없는 도수를 짜 놓았으니 도수에 돌아 닿는 대로 새 기틀이 열리리라. 너희들은 조심하여 타락하지 말고 오직 일심으로 믿고 닦아 나아가라. 이제 9년간 보아온 개벽공사 종필의 확증을 천지에 질정(質正)하여 너희들에게 알리려 뇌전과 지진으로 표징(表徵)하리니 잘 참관하여 믿음을 굳게 하라." 하시며 글을 써 소화하시매 문득 천둥과 지진이 아울러 크게 일어나므로 종도들은 두려워하며 몸 둘 바를 모르니라.
182
이때 돈 40원을 간수하시고, 종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이 돈은 치상비(治喪費)니 달리 쓰지 말라. 그리고 내 가족은 장차 맡을 사람이 따로 있느니라." 하시니라.
183
갑칠에게 장령을 붙여 서양으로부터 우사를 넘어오게 하시므로 유찬명이 여쭈기를 "이러한 묘법(妙法)을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오니 널리 알게 하옵소서." 하니 말씀하시기를 "너는 내 육신이 오래 있기를 바라는도다." 하시고 옛글을 외워 주시니 이러하니라. 稚兒哭問母何之 謂道靑山採菜遲 치아곡문모하지 위도청산채채지 日落西山人不見 更將何說答啼兒 일락서산인불견 갱장하설답제아
184
또 남원 양봉래(楊蓬萊)의 자만시(自輓詩)를 외워 주시니 이러하니라. 詩中李白酒中伶 一去靑山盡寂寥 시중이백주중령 일거청산진적요 又去江南楊進士 鷓鴣芳草雨蕭蕭 우거강남양진사 자고방초우소소
185
21일 밤에 김송환으로 하여금 김자현을 부르셔서 하문하시기를 "네가 나를 믿느냐?" 하시므로 자현이 우러러 답하기를 "제가 만일 믿음이 부족할진대 고부화란 끝에 배반하였으리이다." 하니라.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 말이 옳도다. 내가 이제 일이 있어 떠나려 하니 돌아올 때까지 잘 믿고 있으라. 만일 내 그늘을 벗어나면 죽으리라." 하시므로 "제가 모시고 따라가려 하나이다." 하니 "너의 갈 곳이 아니니라." 하시니라.
186
21일에 김형렬에게 하문하시기를 "네가 나를 믿느냐?" 하시므로 "그러하옵니다." 하니 "대인의 말은 한마디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느니 옛적에 자사(子思)는 성인이라. 위후(衛侯)에게 '약차불이(若此不已) 국무유의(國無遺矣)'라. 하였으나 위후가 그 말을 믿지 않았으므로 참혹히 망하였느니라. 나의 말은 더욱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니 너는 나의 말을 믿을지어다." 하시니라.
187
또 하문하시기를 "네가 내 일을 대신 맡아보겠느냐?" 하시므로 우러러 답하기를 "재질이 둔하고 배운 바 없사오니 어찌 능히 감당하오리까?" 하니 "미유학양자(未有學養子) 이후(以後)에 가자야(嫁者也)이라. 우순(虞舜)이 경우역산(耕于歷山)하고 어우뇌택(漁于雷澤)하며 도우하빈(陶于河濱)할 때는 선기옥형(璿璣玉衡)을 알지 못하였으나 당국하매 알았느니라." 하시니라.
188
또 "모든 일에 근신하여 무한유사지불명(無恨有司之不明)하라. 마속(馬謖)은 공명의 친구로되 처사를 잘못하였으므로 휘루참지(揮淚斬之)하였느니라." 하시니라.
189
이날 약방 마당에 자리를 깔게 하시고 그 위에 누우셔서 이치복에게 새 자리를 그 앞에 펴게 하신 다음, 공자(孔子)를 부르셔서 "소정묘(小正卯)를 죽였으니 어찌 성인이 되며, 삼대출처(三代出妻)하였으니 어찌 제가함이리오? 그대는 이곳에서 할 일이 없으니 물러갈지어다." 하시니라. 또 서가모니(釋迦牟尼)를 부르셔서 "수음(樹陰) 속에 깊이 앉아 남의 자질(子姪)을 유인하여, 부모의 윤기(倫紀)와 음양(陰陽)을 무시함으로써 인종을 절멸(絶滅)하려 하니 그대가 국가를 아느냐, 선령을 아느냐, 창생을 아느냐? 그대도 이곳에서는 할 일이 없으니 물러갈지어다." 하신 다음, 노자(老子)를 부르셔서 "세속에 산모가 10삭이 차서 산실에 들어갈 때면 사지(死地)에 들어가는 심정이라 하는데, 그대는 81년을 어미 배 속에 있었으니 그런 불효가 어디 있으랴? 또 이단(異端) 80권을 지었다 하나 본 자가 없고 나도 보지 못하였노라. 그대도 이곳에서는 할 일이 없으니 물러갈지어다." 하시니라.
190
이달 10일부터 수라를 폐하시고 냉수만 진어하시다가 22일에 형렬에게 명하셔서 보리밥을 지어 오게 하셨으나, 보기만 하시고 가져다 두게 하시니라. 반나절이 지난 후에 다시 하명하셔서 가져오매 밥이 쉬었으므로 "이는 절록(絶祿)이니라." 하시니라.
191
23일에 여러 종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이제 때가 바쁘니라. 수부를 다시 세워야 하리니 너희들 중에 임술생(壬戌生)으로서 자기의 누이나 딸이 있거든 천거하라." 하시니라. 김형렬이 우러러 답하기를 "수부는 저의 딸로 들여세우시옵소서." 하니 "세수시키고 옷을 갈아입혀 데려오라." 하시므로 형렬이 하명대로 하니라. 상제님께서 종도들로 하여금 약장을 방 중앙에 옮겨 놓게 하신 다음, 형렬의 딸에게 약장 주위를 세 번 돌고 그 옆에 서게 하시니라. 차경석에게 하명하셔서 "대시태조(大時太祖) · 출세(出世) · 제왕(帝王) · 장상(將相) · 방백(方伯) · 수령(守令) · 창생(蒼生) · 점고(點考) · 후비소(后妃所)"를 경석이 받아쓸 때 비(妃) 자를 비(妣) 자로 잘못 썼으므로 찢어 소화하시고 다시 쓰게 하셔서 약장에 붙이게 하신 다음, 말씀하시기를 "이것이 예식이니 너희들이 증인이 되었느니라." 하시고 김수부를 돌려보내시니라.
192
이날 오후에 약방 마루에 누우셨다가 뜰에 누우시고 또 대문 밖에 누우셨다가 형렬에게 업히셔서 그의 집에 임어하셔서 누우시더니 다시 업혀 약방으로 업혀 환어하시기를 대여섯 차례 반복하시니라. 형렬이 피곤하므로 경석이 대신하여 두세 차례 왕복한 후, 종도 다섯 사람에게 사지와 머리를 각기 잡도록 하시고 약방으로 환어하셔서 누우시며 말씀하시기를 "생사가 어렵지 않느니 몸의 정기를 흩으면 죽고 모으면 사느니라." 하시고 경석으로 하여금 "전라북도(全羅北道) 고부군(古阜郡) 우덕면(優德面) 객망리(客望里) 강일순(姜一淳) 서신사명(西神司命)"을 쓰게 하셔서 소화하시니라.
193
24일 이른 아침에 경석을 부르셔서 흘겨보시며 "정가(鄭哥), 정가, 무식하고 똑똑하지 못한 것이 무슨 정가냐?" 하시니라.
194
이날 사시(巳時)경에 상제님께서 약방 대청에서 수박에 소주를 타서 우물에 담갔다가 다시 가져오게 하시며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 수박을 먹으면 죽으리라. 내가 죽은 후에는 묶지도 말고 염습 없이 입관하여 초빈하라." 하시니라. 다시 형렬에게 꿀물 한 그릇을 가져오게 하셔서 진어하시고 그 몸에 의지하신 채 태을주를 외우시다가 홀로 와석하시니라.
195
이때 종도들은 모두 혹심한 더위를 피하여 후원 대나무 숲에 모였더니, 황응종이 이상한 생각이 들어 약방에 들어가 옥체를 살피매 이미 화천(化天)하셨으니라. 이날이 도기 원년 세차 기유 음력 6월 24일, 양력 8월 9일이고 일진은 신축(辛丑), 시각은 계사(癸巳)시며 인세향수(人世享壽)는 39년이시니라.
196
종도들이 옥체를 모신 방문을 닫고 나와서 탄식하며 말하기를 "허망한 일이로다. 천지가 어찌 아무 이징(異徵)이 없으리오?" 하니, 문득 맑은 하늘에 뇌전이 크게 일어나며 소나기가 쏟아지고 약방 지붕으로부터 서광이 충천하니라.
197
이날 다른 종도들은 뿔뿔이 흩어져 돌아가고 김형렬 · 차경석 · 박공우 · 김자현 · 김갑칠 · 김덕찬 등 6인만 남아서 객망리 본댁에 고부(告訃)하여 진당대부를 모셔오고, 유명(遺命)에 의하여 간수하신 돈으로 대렴(大殮) 없이 치상(治喪)하여 옥체를 약방 뒷산 기슭 장탯날에 외빈(外殯)하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