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극진경

제목 태극도 - 무극진경 8장
1
구천상제님께서 무신(戊申 : 도기 전 1, 단기 4241, 서기 1908)년 원조(元朝)를 옥중에서 맞으셨는데, 뇌전과 눈비가 계속되므로 말씀하시기를 "이는 대공사를 처결함이니라." 하시니라. 이때 공신은 발길에 차인 곳이 몹시 결리며 열이 나고 떨려 위독하므로 간수가 공신의 족쇄를 풀어 주며 상제님까지도 풀어 드리니라. 말씀하시기를 "이제 만일 공신이 죽으면 너희도 다 죽으리니 인곽(人槨)을 써서 낫게 하여야 하리라." 하시고 마침 아침밥이 들어오므로 상제님께서 밥그릇마다 그 위에 공중으로 무슨 글자를 그리시고 먹게 하시니라. 식후에 모두 일어나게 하셔서 좌우로 7인씩, 상하로 2인씩을 늘어세워 널과 같이 되게 하신 다음, 공신을 그 가운데 눕히시고 시천주를 세 번 외우시니라.
2
구류간에서는 통풍 구멍에 바가지 한 개를 두어 오줌을 받아 내는데, 마침 그 바가지에 오줌 찌꺼기가 반쯤 괴어 있으니라. 상제님께서 공신을 일으켜 세우신 다음, 먼저 바가지의 오줌 찌꺼기를 친히 마시시는데 안색이 변하지 아니하시면서 나머지를 공신에게 마시게 하시니라. 공신이 "선생님께서는 나를 살리기 위하여 더러운 것을 안색도 변하지 않으시고 드셨으니 내가 어찌 마시지 않으리오?" 생각하고 마시자 오장이 거꾸로 올라오는 듯하였으나 억지로 참으므로 "참지 말고 올라오는 대로 토하라." 하시니라. 공신이 그대로 다 토하매 땀이 많이 나며 열이 내리고 결리는 곳이 나으니라.
3
간수들 중에 형렬과 자현을 아는 자가 있더니 두 사람의 편의를 보아 별실로 옮겨 주므로, 형렬이 간수에게 청하여 상제님을 그 방으로 옮겨 모시니라. 형렬과 자현에게 말씀하시기를 "삼인회석에 관장의 공사를 처결한다 하니 이제 우리 세 사람이면 무슨 일을 해결하지 못하리오?" 하시고 또 "비록 10만 대중이 이러한 화액(禍厄)에 걸렸을지라도 털끝 하나 상함이 없이 다 풀리게 하리니 안심하라." 하시니라.
4
종도들은 여러 날이 될수록 마음이 동요되어 상제님을 원망하는 자가 늘어나므로 타이르시기를 "대저 사생(死生)이 유명(有命)이라, 모든 것이 도수니 죽어도 원망은 말라." 하시고 또 공신에게는 "일을 하려다가 이루지 못하고 죽더라도 천명으로 순사(順死)하는 것이 군자의 도리니라. 너는 자식이라도 있으니 한이 없으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을 들은 종도들이 서로 두려워하며 "그 말씀은 이런 화액에 대처할 권능이 없음을 자인하심이니 우리가 믿었던 그의 권능은 모두 허언(虛言)이요, 혹세무민의 사사(邪事)로써 우리를 사지로 몰아넣음에 불과함이라." 하고 공신 화춘 등은 욕설을 하며 상제님을 비방하므로 허성희(許聖喜)는 종도들의 불평을 타일러 진정시키기에 애쓰니라.
5
이후에 경무청에서 종도들을 취조하여도 의병의 증거가 없고 그날 모임은 다만, 여러 사람이 상제님께서 신방(神方)으로 병을 치료하여 주신 은혜를 잊지 못하여 설 선물을 드리러 왔거나, 혹은 공신의 친척으로서 정의(情誼)를 나누기 위해서 왔을 따름이라는 사실이 판명되었으므로, 정월 초10일에 종도들을 석방하며 경고하기를 "이때는 단체로 모일 때가 아닌 비상시니 특히 주의하라." 하니라.
6
경무청에서는 상제님의 말씀을 한갓 황탄(荒誕)한 말로 돌리고 구류간에 홀로 남겨 두었다가, 2월 초4일 경칩절에 석방하니라. 상제님께서는 압수되었던 돈과 백목을 찾아내셔서 순검과 빈궁한 사람들에게 모두 나누어 주시고 본댁에서 3일을 유어하신 후, 와룡리 응종의 집으로 행행하시니 경석이 수종하니라.
7
이번 화액에 구금되었던 사람은 김형렬 · 김자현 · 문공신, 공신의 형 학철, 오촌 조카 수암(首岩), 매부 허성희와 김광수 · 김공빈 · 김참봉 · 이화춘 · 박장근 등과 그 외 9인이니라. 이 화액 후에도 형렬 · 자현은 여전히 상제님을 추종하고, 다른 사람은 거의 흩어졌으며 공신은 수차 왕래가 있었는데 상제님께서 "너는 마음을 바로 가지라, 그렇지 않으면 하늘의 노여움이 있으리라." 하시니라.
8
이후에 고부 식당 주인이 공신의 집에 와서 옥중에서의 외상 음식값을 독촉하니, 공신은 상제님께서 석방되실 때 돈과 백목을 찾으셔서 외상값을 갚지 않으셨음을 크게 불평하니라. 상제님께서 공신의 집에 임어하시니 불평을 품었던 일을 아뢰며 폭언하므로, 타이르시기를 "네 말을 들으니 그럴 성싶도다. 내가 순창 농암에서 3일간을 머물며 너를 만나 여러 가지 대공사에 참관하게 하였거니와, 고부도수를 보려하니 감당할 사람이 없으므로 네게 주인을 정하여 독조사 도수를 붙였느니라. 진주(眞主) 노름에 독조사라는 것이 있는데 남의 돈은 따 보지 못하고 제 돈만 잃은 후에, 개평을 떼어 새벽녘에 회복하는 수가 있느니라. 고부에서도 외상값을 말한 일이 있었으나, 그 돈을 쓰면 독조사가 아니니라. 만일 네가 돈이 있어야만 하겠으면 달리 주선하여 주리라." 하시니 공신이 생각하다가 "일이 그와 같사오면 그만두사이다." 하니라.
9
달포 후에 공신의 차인 곳이 재발하여 문밖출입을 못 하게 되자, 응종을 동곡으로 보내어 상제님께 아뢰었으나 "조금 기다리라." 하시므로 돌아와서 그대로 전하니라. 공신이 다시 반감이 나서 아무 약도 쓰지 않으니 병세가 더욱 위중하여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되니라. 응종이 민망히 여기고 다시 상제님께 와서 뵈니 하문하시기를 "공신의 병세가 어떠하뇨?" 하시므로 "누워서 움직이지 못하나이다." 하매 "마음을 바로 가지라 하였더니 끝내 고치지 못하고 그릇된 공부를 함이로다. 그러나 죽어서야 되겠느냐? 찰밥을 아홉 끼만 먹으라 하라." 하시니라. 응종이 돌아가 전하니 공신이 그대로 하매 완쾌되니라.
10
상제님께서 태인 경원의 집에 달포 동안 행재하실 때, 창조에게 하명하시기를 "네 집에 돌아가서 돼지 한 마리를 잡아 계란으로 전을 부쳐 대그릇에 담아 깨끗한 곳에 두고 또 내 옷 한 벌을 지어 두라, 장차 쓸 곳이 있노라." 하시므로 창조가 명하신 대로 하니라.
11
상제님께서 태인에 행재하시며 공우를 보내셔서 경석을 부르시므로 가 뵈니 돈을 주시며 "돌아가서 쌀을 사 놓으라." 하셨는데 경석이 그 돈을 사사로이 써 버리니라. 그 후 상제님께서 임어하셔서 고부인에게 하문하시기를 "쌀을 많이 사 두었느냐?" 하시니, 부인이 "알지 못하나이다." 하므로 경석을 부르셔서 "며칠 전에 태인에서 네게 돈을 주며 '쌀을 사라.' 하였는데, 매씨에게 그 말을 고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라. 경석이 "고하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더니 이후로는 모든 일을 경석에게 시키지 아니하시고 부인에게 시키시니라.
12
2월에 종도들을 거느리시고 보리밭 길로 행행하시는데, 종도들이 농담하기를 "이 세상에 먹기 어려운 보리가 빈민의 양식이 되어 빈부의 차별을 일으키니 보리를 없애어야 차별이 없으리라." 하니, 상제님께서 들으시고 "너희들의 뜻이 정히 그러하냐? 그렇다면 보리를 없애 버리자." 하시니라. 4월이 되어 크게 가물어 보리가 다 말라 죽게 되자 농가에서 크게 소동하므로 종도들이 "이제 만일 보리 흉년이 들면 굶어 죽는 자가 많겠사오니 비를 내리게 하옵소서." 하니 꾸짖으시기를 "지난번에 너희가 '보리를 없애 버림이 옳다' 하고, 이제 다시 '보리 풍작'을 호소하느냐? 비록 말 한마디라도 도수에 박혀 천지에 울려 나가느니 이후로는 모든 일에 실없는 말을 삼가라." 하시니라. 전주 용머리고개에 임어하셔서 낙범에게 거친 보리밥과 된장국 한 사발씩을 가져오게 하시고 "빈민의 음식이 이러하도다." 하시며 국에 밥을 말아 맛있게 진어하시니, 문득 검은 구름이 일어나며 비가 내려 다시 보리의 풍작을 이루니라.
13
경석의 소실이 바늘에 찔린 손가락 끝에 독이 나서 팔이 저리다가 마침내 반신불수가 되었음을 상제님께서 보시고, 60간지를 쓰셔서 한 간지씩 읽으심에 따라 상한 손가락 끝으로 힘껏 짚게 하시니, 혈기가 돌아 곧 나으니라.
14
김형렬의 딸이 병들어 앓는다는 말을 들으시고 문밖에 거둥하셔서 휘파람을 세 번 부신 다음, "만수(萬修)"를 세 번 부르시니 문득 맑은 하늘에 먼지 같은 기운이 가득 끼어 바로 앞을 분별하기 어려우니라. 상제님께서 "이런 것이 있어 사람을 많이 병들게 하느니라." 하시고 공중을 향하여 입으로 한 번 부시니 바람이 일어나서 하늘이 맑아지며 형렬의 딸이 나으니라.
15
박공우가 추종하면서부터 상제님의 순행에 많이 시봉(侍奉)하더니 밤에는 달무리, 낮에는 햇무리가 나타남을 보고 행장을 단속하여 명을 기다리면, 그때마다 부르셔서 출어하시니라. 상제님께서는 어디를 행행하시든지 행방을 미리 말씀하지 않으시니라.
16
김보경이 곰개에 소실을 두고 본가를 돌보지 아니하므로 상제님께서 글을 써 주시며 "네 소실을 마주 보며 소지하라. 그러면 좋은 일이 있으리라." 하시니라. 보경이 그대로 하매 뜻밖에 임질에 걸려 본가로 돌아와서 한 달 남짓을 치료하며 머물렀더니 그동안에 소실이 다른 곳으로 가니라. 보경을 불러 경계하시기를 "이제는 집안이 편안하여야 좋은 운수가 열리리니 본처를 사랑하여 저버리지 말라." 하시고 임질을 낫게 하시니라.
17
3월에 동곡에 임어하셔서 형렬에게 하명하시기를 "태인에 가서 신경원과 최내경을 데리고 다시 백암리 최창조의 집에 가서 '일찍이 준비하여 둔 옷 한 벌을 세 사람이 한 가지씩 나누어 입고, 밤에 인적이 그쳤을 때 그 집 정문 밖에 땅을 파고 그 앞에 청수 한 그릇과 화로를 놓으라. 그리고 깨끗한 그릇에 호주(胡酒)와 문어와 돼지고기를 담고, 그 위를 두부로 덮어 그 구덩이 속에 넣으라. 다시 한 사람은 돼지고기 전을 들어 청수와 화로를 넘기고, 한 사람은 받아서 구덩이 속에 넣은 다음, 흙으로 덮으라.'라고 자세히 일러 주고 빨리 돌아오라." 하시니라. 형렬이 명을 받들고 일일이 지휘한 다음, 빨리 집으로 돌아오니 밤은 깊은데 뇌전이 크게 일어나며 소나기가 쏟아지니라. 상제님께서 하문하시기를 "이때쯤 일을 행하겠느냐?" 하시므로 "행할 때가 꼭 되었나이다." 하니 "변산과 같은 큰 불덩이가 나타나 구르면 온 세계가 재가 될 것이므로 이제 매화(埋火)하였느니라." 하시니라.
18
4월에 공신의 집 벽에 정의도(情誼圖)를 그려 붙이시니 다음 장과 같으니라.
19
동곡에 행재하실 때 백남신의 돈 천 냥을 가져오셔서 김준상의 집 방 한 칸을 수리하시고 약방을 차리시니라. 이때 공우에게 고부에 가서 장판을 사오게 하셔서 깔으시며 밀씀하시기를 "이는 고부 선인포전(仙人布氈)의 기운을 씀이니라." 하시니라. 그리고 목수 이경문(李京文)을 부르셔서 오동목판으로 약장(藥欌)과 궤(櫃)를 짜게 하시며, 장광척촌(長廣尺寸)과 짜는 방법을 일일이 가르치시고 기한을 정하시며 엄수하게 명하시니라. 목수가 기한에 마치지 못하매 목재를 한곳에 모아 놓고 그 앞에 꿇어앉게 하신 다음, 기한 넘겼음을 꾸짖으시며 봉서(封書)를 주어 소지하게 하시니 문득 뇌전이 일어나므로 목수가 몸을 떨며 땀을 흘리니라. 다시 명하셔서 속히 짜게 하셨으나, 목수가 수전증(手顫症)이 나서 한 달이 넘은 후에야 마치므로 말씀하시기를 "약장과 궤에 번개가 들어야 하리니, 너는 몸을 깨끗이 씻고 의관을 정제한 다음, 청수 한 그릇을 약장과 궤 앞에 놓고 성심으로 절하라." 하시므로 목수가 하명하신 대로 하매 문득 맑은 하늘에 번개가 크게 치니라.
20
약장과 궤를 약방에 들여놓으신 다음, 갑칠을 명하셔서 날마다 이른 아침에 방을 깨끗이 쓸게 하시며 문을 닫아 사람의 출입을 금하시고, 21일이 지난 후에 비로소 방에 드시며 통감 · 서전 · 주역 각 한 질과 철연자(鐵硏子) · 삭도 등 모든 약방기구를 장만하여 두시고, "주역은 개벽할 때 쓸 글이니 주역을 보면 내 일을 알리라." 하시니라.
21
약장 서랍은 아래에 큰 칸, 그 위에 가로로 세 칸, 또 그 위에는 세로로 된 세 칸을 각각 다섯 칸으로 한 15칸이 있는데 그 복판 칸에 "단주수명(丹朱受命)"· "열풍뇌우불미(烈風雷雨不迷)"· "태을주(太乙呪)"를 각각 쓰신 다음 그 속에 목단피(牧丹皮)를 넣으시고, 그 위 칸에는 천화분(天花紛), 아래 칸에는 금은화(金銀花)를 각각 넣으시니라. 양지를 오려 칠성경을 한 줄로 내려쓰신 다음, 그 끝에 "우보상최등양명(禹步相催登陽明)"을 가로 쓰셔서 약장 위로부터 뒤로 넘겨서 내려 붙이시고 그 위에 "양정 유월 입일, 음정 유월 이십일(陽丁六月卄日 陰丁六月二十日)"을 쓰시니라.
22
궤 안에는 "오강록(烏江錄)"· "설문(舌門)"· "반구제수(半口齊水)"· "천문지리 풍운조화(天文地理 風雲造化)"· "팔문둔갑 지혜용력(八門遁甲 智慧勇力)"등의 글을 쓰시고 글자마다 화각(火刻)하신 다음, 내부 정면의 문자 주위에 24점을 주사(朱砂)로 돌려 찍으시며 "이 궤는 나의 도지(道旨)와 도통(道統)을 숨겼으므로 '둔궤(遁櫃)'니라." 하시니라.
23
이후에 전주 용머리고개에 임어하셔서 공우에게 말씀하시기를 "천지의 약 기운을 평양으로 내렸으니 내일 평양에 가서 약재를 사 오라." 하시므로 공우가 대령하더니, 이날 밤에 글을 쓰셔서 불사르시며 "약 기운을 평양에서 전주로 옮겼노라." 하시고 병욱을 부르셔서 "약 300냥 어치를 사 오라." 하시므로 병욱이 전주로부터 약재를 가져올 때, 마침 비가 오므로 말씀하시기를 "이 비는 약탕수니라." 하시고 며칠 후에 동곡으로 환어하시니라
24
하루는 밤나무 목재로 약패(藥牌)를 만드신 다음, 패면에 "광제국(廣濟局)"을 새기게 하시고 자획에 경면주사를 바르셔서 공우에게 "이 약패를 원평 길거리에 붙이라." 하시니라. 공우가 명을 받들고 가려고 하는데 하문하시기를 "이 약패를 붙일 때 경관이 물으면 어떻게 대답하려 하느뇨?" 하시니 "만국의원을 설립하여 죽은 자를 살리고 눈먼 자를 보게 하며, 앉은뱅이를 걷게 하고 그 밖에 대 · 소병을 다 낫게 하리라 하겠나이다." 하니 "네 말이 옳으니 그대로 하라." 하시고 약패는 불사르시니라.
25
약재는 목단피 • 천화분 • 금은화 3종과 당귀 • 천궁 • 백작약 • 숙지황 • 목과 • 오매 • 원지 • 석창포 • 독활 • 강활 • 창출 • 형개 • 방풍 • 길경 • 전호 • 백지 • 진피 • 고련근 • 갈근 • 황기 • 감초 • 지각 • 양강 • 시호 등 24종이니라. 이때 응종이 여쭈기를 "풍속에 '약국에는 인삼이 빠지지 아니한다' 하옵는데 어찌 인삼이 빠졌나이까?" 하니 "삼정(蔘精)은 가는 곳이 따로 있느니라." 하시므로 "어디로 가나이까?" 하매 "형렬에게로 가느니라." 하시니라.
26
약방 벽 위에 "사농공상(士農工商) · 음양(陰陽) · 기동북이고수(氣東北而固守) · 이서남이교통(理西南而交通)"과 그 밖에 여러 글을 많이 써 붙이시고 백지로 배접(褙接)하신 다음, 자현에게 뜻 가는 대로 사발을 대고 배접한 곳을 오려 내게 하시니 음(陰)자가 나타나므로 말씀하시기를 "정히 옳도다. 음과 양을 말할 때 음자를 먼저 읽느니 이는 지천태(地天泰)니라." 하시니라, 또 "이 종이를 뜯을 날이 속히 이르러야 하리라." 하시니라.
27
하루는 약방 후원에 푸른 대 10여 그루를 손수 심으신 다음, 약방에 갖추어 둔 모든 물건의 목록을 기록하셔서 공우와 광찬에게 주시며 "이 물목기(物目記)를 금산사에 가지고 가서 그곳에 봉안한 석가불상을 향하여 마음속으로 '불전을 마당 서편으로 옮겨 세운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불사르라." 하시므로 두 사람이 하명대로 봉행하니라. 이로부터 수년 후에 금산사를 중수할 때, 서가불전을 마당 서편으로 옮겨 세우니 미륵전 앞이 넓어지니라.
28
종도들에게 하교하시기를 "중천신(中天神)은 후사(後嗣)를 두지 못한 신명이요, 황천신(黃泉神)은 후사를 둔 신명이니라. 중천신은 의탁할 곳이 없으므로 황천신에게 붙어서 물밥을 얻어먹으므로 원한을 품었다가 이제 나에게 호소하니 이후로는 중천신에게 녹을 주어 원한이 없게 하리라." 하시니라.
29
상제님께서 며칠간 백지에 글을 쓰셔서 크게 두루마리를 만드신 다음, 광찬 · 형렬 · 갑칠 · 윤근 · 경학 · 원일 등에게 하명하시기를 "방 안에서 문을 닫고 이 두루마리를 화로에 불사르되, 다 사른 후에 문을 열라. 일을 하려면 화지진(火地晉)도 하여야 하느니라." 하시므로 하명대로 하매 연기가 방안에 가득 차서 윤근과 원일은 밖으로 나가고 남은 사람은 다 사른 후에 문을 여니라.
30
상제님께서 황응종이 오는 것을 보시고 말씀하시기를 "황천신이 이르니 황건역사(黃巾力士)의 숫대를 불사르리라." 하시고, 갑칠에게 볏짚 한 단을 물 축여 잘라서 숫대를 만들어 화로에 불사르게 하시니라.
31
하루는 백암리 창조의 집에서 그에게 포대를 만들어 벼 서 말과 짚재를 섞어 넣게 하신 다음, 응종에게 "이 포대를 가지고 네 집에 가서 항아리 물에 담가 매일 한 번씩 둘러 젓고 또 식혜 일곱 사발을 빚어 넣으라. 내가 3일 후에 가 보리라." 하시므로 응종이 명을 받들고 그대로 하니 물빛이 잿빛이 되고, 하늘도 또한 3일간 잿빛 구름이 끼어 해가 나지 아니하니라.
32
3일 후에 응종의 집에 임어하셔서 말씀하시기를 "이제 산하대운(山河大運)을 걷어 돌리리라." 하시니라. 밤에 백지로 고깔을 만드셔서 응종의 머리에 씌우시며 "포대에 넣었던 벼를 꺼내어 네 집 사방에 뿌리고, 백지 120장과 양지 4장에 글을 써서 이를 식혜에 버무려, 인적이 없는 밤중에 시궁 흙 속에 파묻고 고깔 쓴 채로 세수하라." 하시므로 응종이 하명대로 하니, 문득 두 눈썹 사이에 콩알만 한 사마귀가 생겨났으며, 이튿날 아침에 벼 뿌렸던 곳을 두루 살폈으나 하나도 남아 있지 않으니라.
33
상제님께서 공우에게 "마음속으로 육임(六任)을 정하라." 하시니라. 공우가 한 사람을 마음속에 정하니 "불가하다." 하시므로 다시 다른 여섯 사람을 마음으로 정하니라. 이날 밤에 그 여섯 사람을 부르게 하셔서 등불을 끄고 방안에서 돌아다니며 시천주를 외우게 하시니, 갑자기 한 사람이 거꾸러지므로 여러 사람이 놀라 외우기를 그치매 "놀라지 말고 계속하라." 하시니라. 한 식경이 지난 후에 외우기를 그치게 하시고 불을 밝히시니 손병욱(孫秉旭)이 죽어 있으니라. 말씀하시기를 "병욱에게 손병희의 기운을 붙여 보았더니 이기지 못한다." 하시며 물을 얼굴에 뿜으시매 병욱이 정신을 차리므로 "나를 부르라." 하시니 병욱이 힘없이 겨우 "선생님"하고 부르자 곧 기운이 회복 되니라. 이에 "시천주에 큰 기운이 박혀 있도다." 하시고, 또 "너를 그대로 두었더라면 밭두둑 사이에 엎드려져서 우마(牛馬)에게 밟힌 바가 되었으리라. 이후에 괴병이 온 세계를 엄습하여 삽시간에 죽을 때가 있으리니 그 위급한 때에도 나를 부르면 살아나리라." 하시니라. 공우가 육임을 정할 때 불가하다고 말씀하신 사람은 며칠 후에 죽으니라.
34
어느 날은 종도들을 거느리시고 이리를 지나셔서 나루터에 임어하시니 사공은 없고 빈 배만 떠 있으니라. 상제님께서 몸소 노를 저으셔서 건너신 후에 하늘을 쳐다보시고 웃으시므로 모두 우러러보니, 구름 같은 이상한 기운이 노를 저어가는 모양을 이루어 천천히 떠가니라.
35
태인 금상리를 행행하실 때 마침 날이 가물어 모심기를 못 하는데, 동학신도 유한필(柳漢弼)이 그 전날 구름이 끼고 비가 올듯하여 마른 논에 호미로 모를 심었더니, 비가 오지 않아 모가 마르므로 심히 초조하여 "가뭄이 이렇게 심함에도 비 올 조짐이 없으니 논을 갈아엎고 콩이나 심을 수밖에 없도다." 하며 탄식하니라. 상제님께서 들으시고 "모심은 것을 갈아엎고 다른 곡식을 심는 것은 변고가 아니냐?" 하시며 한필을 앞세우시고 논에 임어하셔서 참혹한 광경을 보시고 서천을 향하여 우사(雨師)를 부르시니, 문득 검은 구름이 일어나며 소나기가 내리니라. 한필이 상제님의 권능은 알지 못하고 다만, 예지술(豫知術)이 있으심으로 여기며 감탄하니라.
36
어떤 여인이 간부(間夫)를 보아 자식을 낳았으나 본 남편은 모르니라. 하루는 상제님께서 그 여인에게 엄히 책망하시기를 "저 아이가 혈통이 바르지 못하니 어찌 애매하게 하여 큰 죄를 지었느냐?" 하시니 그 여인이 사죄하고 참회하니라.
37
경학의 28세 된 아들 용주(龍胄)가 여러 해 된 폐병으로 죽을 지경에 이르니라. 경학이 상제님께 아뢰면 곧 나았다가 오래되면 재발하여 혼도(昏倒)하므로 온 집안이 걱정하더니, 하루는 밤중에 상제님께서 임어하셔서 병자를 꾸짖으시며 "아비가 오는데 어찌 일어나지 않느냐?" 하시니라. 용주가 문득 정신을 차리므로 경학이 붙들어 일으키려 하니 금하시고 스스로 일어나기를 명하시니라. 용주가 억지로 몸을 떨며 일어나니 문밖으로 내세우셔서 잠시 달음질을 시키신 다음, "밥을 가져다 먹이라." 하시니라. 그 모친이 밥을 새로 지으려 하매 "이제 짓는 밥을 기다릴 수 없으니 용주의 저녁밥 남은 것을 가져오라." 하시므로 경학이 그 밥이 식었음을 아뢰니 "관계없으니 가져오라." 하시니라. 용주가 그 밥을 3분의 2나 먹음을 보시고 "달음질도 하고 밥도 많이 먹었으니 아픈 사람이 아니로다." 하시더니 이로부터 병이 완쾌하니라.
38
이후 상제님께서 약방에 임어하셔서 경학에게 말씀하시기를 "용주가 모르는 수를 가르쳐야 하리니 속히 보내라." 하시므로 용주를 약방으로 보내니라. 이에 앞서 당국에서 엽전을 모아 없애려 하므로 상제님께서 엽전 70냥을 약방에 간수하여 두시며 "아직 다 없애는 것이 불가하다." 하시니라. 용주가 온 후에 엽전 2푼으로 수를 두게 하시다가 "이 방에 있는 엽전이 도합 102냥 2푼이어야 하리니 여러 사람에게 있는 것까지 모두 다 찾아내어 세어 보라." 하시므로 종도들이 각자 가진 돈을 모두 내어도 102냥밖에 되지 않으니라. 상제님께서 "맞지 아니하면 못쓰리니 잘 찾아보라." 하시므로 여러 사람의 주머니를 뒤지니 형렬의 부시쌈지에 1푼이 있고, 궤 속에 1푼이 있으니라. 이후에 엽전은 전국이 다 쓰지 않게 되었으나 원평 부근은 수십 년 후 경오 · 신미(서기 1930~ 1931)년까지 쓰게 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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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학이 병들어 위독함을 상제님께서 들으시고 "사물탕 한 첩을 달여서 땅에 붓고 달빛을 우러러보라." 하시므로 경학이 그대로 하니 곧 나으니라.
40
경학의 아내가 병이 있어 독삼탕(獨蔘湯)을 많이 쓰다가 상제님께 약의 효능을 여쭈니 "인삼은 내가 모르는 약이니라." 하시니라.
41
하루는 용두리에 행재하실 때 낙범이 천연두를 앓으면서 시종하니, 상제님께서 갑자기 꾸짖으시기를 "네가 어찌 어른 앞에서 태만하뇨?" 하시니라. 낙범이 다만 머리를 숙여 황송히 생각하고 한 편으로는 이상히 여기다가 집으로 돌아와서 무슨 허물인가 생각하였으나 깨닫지 못하였는데, 천연두가 나으므로 비로소 상제님의 꾸짖으심이 곧 약임을 깨달으니라.
42
수류면 회평(會坪)에 사는 19세 소년 광부가 큰 돌에 맞아 다리가 부러지고, 힘줄이 끊어진 것이 그대로 굳어 마침내 움직이지 못하므로 상제님께 고쳐 주시기를 애원하니라. 말씀하시기를 "남의 눈에 눈물을 나게 하면 제 눈에서는 피가 흐르느니라." 하시고 "몸을 뛰쳐서 골절과 혈맥을 충동하라." 하시므로 그 소년이 몸을 솟구쳐 한 번 뛰니 오그라졌던 다리가 곧바로 펴지며 움직임을 마음대로 하게 되니라.
43
동곡 이정삼(李正三)이 발제(髮際)가 나서 크게 고통하므로, 상제님께서 친감하시고 광찬에게 명하셔서 백회(百會)를 쳐주시니 그 병이 곧 나으니라
44
대흥리 거사막(巨沙幕) 장성원(張成遠)의 어린 아들이 병들어서, 낮이면 낫고 밤이면 신열과 기침으로 잠을 자지 못하며 몇 달간 고통하므로 성원이 아들을 안고 와서 고쳐 주시기를 애원하니, "이 증세는 곧 서양으로부터 멀리 온 비별(飛鼈)이니라, 산으로 옮기면 금수도 또한 생명이요, 바다로 옮기면 어별(魚鼈)도 또한 생명이니 전선에 붙여서 사방으로 흩어가게 하리라." 하시고 성원에게 하명하시기를 "철사 두어 자를 구하여 아이의 머리맡에 두었다가 전신주 밑에 버리라." 하시니라. 성원이 그대로 하매 곧 나으니라.
45
동곡 앞 술장수 평양댁의 5세 된 아들이 앉은뱅이인데, 상제님께 안고 와서 고쳐 주시기를 간청하니 "내일 아침에 쇠고기와 참기름을 조금 먹여서 안고 오라." 하시니라. 평양댁이 가난하여 쇠고기는 사 먹이지 못하고 참기름만 먹인 다음, 안고 와서 아뢰니 아무 말씀도 아니하시니라. 평양댁이 심히 미안하여 아이에게 "병신이 되어 살기보다 차라리 죽으라." 하며 때리니, 아이가 울며 문득 다리를 펴고 일어나서 도망가므로 평양댁이 그 광경을 보고 매우 기뻐하며 상제님께 감사드렸으나, 끝내 아무 말씀도 아니하시니라.
46
황응종이 상제님께 뵈려고 새올 최창조의 집에 가니 마침 집안에서 곡소리가 들리므로, 들어가지 못하고 창조를 불러내어 온 사유를 말하니 창조가 들어가서 상제님께 아뢴 다음, 나와서 "선생님께서 이제 내 집에 계시나, 지금 보시는 일이 있으니 좀 지체하라." 하니라. 응종이 기다리다가 부르시므로 들어가 뵈니, 상제님께서는 창조의 7세된 아들을 무릎 위에 눕히셨으나 이미 숨이 끊어져 있으니라. 이는 그 아이가 전날 급병으로 죽자, 상제님께 살려 주시기를 애원하므로 방금 임어하셔서 살리려 하심이니라. 상제님께서 어수로 배를 어루만지시고 냉수를 입에 넣으시매, 왼다리를 움직이므로 꾸짖으시기를 "네가 어찌 어른 앞에 누워 있느냐?" 하시자 문득 눈을 뜨고 정신을 차리며 일어나니라. 상제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사담(私談)을 금하게 하시며 "이 아이가 천 리 길을 갔다 왔으니 고요히 있어야 하느니라. 안방에 눕히고 미음을 먹이라." 하시더니 이튿날 그 아이가 사랑에 나오므로 입에 참기름을 바르시고 밥을 먹이시니라.
47
고부 벌매면 교동(校洞) 손병욱(孫秉旭)이 지성으로 상제님을 믿었으나, 그 아내가 불쾌하게 생각하며 방해하되 공우에게는 심히 후대하니라. 그 후에 병욱의 아내가 병이 들어 뼈마디가 쑤시고 아파 식음을 전폐하여 사경에 이르렀으므로 공우가 듣고 불쌍히 여겨 상제님께 고쳐 주시기를 고하려 하니라. 하루는 정읍으로부터 상제님을 모시고 와룡리 사거리에 이르렀는데 이곳은 북으로 가면 회룡리(回龍里) 경수의 집에 이르고, 서북으로 가면 교동 응종과 병욱의 집에 이르는 곳이니라. 상제님께서 사거리 한복판에 서셔서 공우에게 하문하시기를 "어디로 가는 것이 마땅하냐?" 하시니 "응종의 집으로 임하소서." 하였으나 불윤(不允)하시니라. 세 번을 그렇게 문답하시고 응종의 집으로 임어하셨다가 병욱의 집으로 임어하시니라. 병욱에게 돈 서 돈을 가져오게 하시고 또 두 냥을 가져오게 하셔서 공우로 하여금 간수하게 하신 다음, 병욱의 아내를 부르셔서 앞에 앉히시고 "왜 그리하였느뇨?"를 세 번 말씀하시고 옥안을 한쪽으로 돌리시며 혼자 말씀으로 "다른 죽을 사람에게 가라." 하시니 그 병이 곧 나으니라.
48
이때 병욱이 상제님께 공양할 술을 준비하려 하는데 "나 먹을 술은 있으니 준비하지 말라." 하시더니 과연 병욱의 장모가 상제님께서 임어하셨음을 알고 술과 안주를 가져오니라. 술을 진어하신 다음, 응종의 집에 임어하셔서 밤에 침수(寢睡) 들지 않으시고 새벽에 동곡으로 행행하실 때, 길에서 공우에게 말씀하시기를 "병욱의 처는 남편이 잘되려 함을 방해하니 제 연분이 아니라, 신명들이 없애려 하는 것을 구하여 주었노라. 이제 병은 나았으나 이후로 잉태는 못 하리라." 하시더니 과연 그러하니라.
49
하루는 진당대부께서 병환이 위독하셔서 응종이 상제님께 아뢰려고 동곡으로 가서 행재소를 물으니 "전주 능소(陵所)에 행재하신다." 하므로 다시 능소에 가서 상제님께 아뢰니라. 상제님께서 술을 하사하시고 돈 10원을 주시며 "날이 이미 저물어 불편하나 바로 돌아가되 청도원(淸道院) 김송환(金松煥)의 집에서 자고, 내일 아침에 갑칠에게 가서 내 모시 두루마기를 가지고 집에 돌아가 아버님께 입혀 드리고, 이 돈으로 보양물을 사서 잘 봉양하여 드리라." 하시니라. 응종이 날이 저물었으나 감히 명을 어기지 못하고 능소를 떠나 한 시간이 못 되었는데, 뜻밖에 길가에 비석이 보이므로 자세히 살펴보니 곧 청도원이라, 놀라 생각하기를 "능소에서 여기가 60리인데 한 시간도 못 되어 이르게 됨은 반드시 선생님의 권능이 미침이라." 생각하며 송환의 집에서 자고 이튿날 아침에 하명대로 하니 대부의 병환이 곧 나으시니라. 이에 보양물을 사서 봉양하니 원기도 회복되시니라.
50
보경의 모친이 위독하여 사경을 헤매는데, 이때 마침 상제님께서 임어하시므로 보경이 울며 호소하매 "사람이 죽으면 그 방 네 구석에 글을 써 붙이는 풍속이 있느니라." 하시며 종이 네 조각에 각기 "인(人)"자를 쓰시고, 그 아래에 "김보경(金甫京)"을 써 주시며 병실 네 구석에 붙이게 하시니라. 다시 보경을 부르시더니 문득 큰소리로 "정신 차리라." 하시므로 보경이 어찌할 줄을 모르고 섰는데 "속히 병실에 다녀오라." 하셔서 가 보니 그 모친이 회생하여 있으니라.
51
하루는 종도들을 거느리시고 순행 중에 한 음식점에 임어하시니, 그 주인이 창증으로 사경에 있으니라. 종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저 병을 치료하여 주라." 하시며 "대학지도(大學之道)는 재명명덕(在明明德)하며 재신민(在新民)하며 재지어지선(在止於至善)이니라."를 읽히시니, 즉시 부기가 빠지고 창증이 나으므로 상제님께서 웃으시며 "너희들의 재주가 묘하도다." 하시니라. 종도들이 대학 수장 일절로 병이 나은 이유를 여쭈니 "재신민이라 하였으니 어찌 새사람이 되지 않으리오?" 하시니라.
52
김준찬의 모친이 견비통(肩譬痛)으로 팔을 움직이지 못하는데, 하루는 그 형 덕찬의 소실 집으로 상제님을 모시고 갔더니 모친의 병환을 하문하신 다음, 혼자 말씀으로 "바깥 인심은 좋으나 안 인심은 좋지 못하도다." 하시니라. 준찬이 이상히 여기며 안에 들어가 살피니 그 소실이 제 방에 모심을 불평하며 노기를 띠고 있으니라. 준찬이 달래어 안정시켰더니 이튿날부터 그 모친의 견비통이 절로 나아 팔을 마음대로 움직이니라. 준찬은 이로부터 더욱 크게 감복하여 상제님을 추종하니라.
53
응종이 그 아들의 병이 위독하므로, 청수를 떠 놓고 상제님 행재소를 향하여 발원하니 그 병이 곧 나으니라. 이튿날 상제님께 뵈니 말씀하시기를 "어제 천상에서 내려다보니 네가 손을 비비며 발원함을 내가 알았노라." 하시므로 더욱 감복하니라.
54
준찬이 아들의 병이 사경에 이르렀음을 상제님께 아뢰며 고쳐 주시기를 애원하였으나, 아무 말씀도 아니하시니라. 준찬이 초조하여 즉시 귀가하려 하매, 상제님께서 만류하시므로 명을 어기지 못하여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 이튿날 아침에 귀가하니 아들이 나아서 쾌활하게 놀고 있으니라. 그 병세가 나은 때를 물으니 곧 상제님께서 만류하시던 시각이니라.
55
준상의 아내가 흉복통(胸腹痛)으로 매년 두세 차례씩 앓아 몰골이 초췌할 뿐 아니라, 살림을 거두지 못하여 항상 집안이 어지러우니라. 준상이 상제님께 아뢰며 고쳐 주시기를 간청하니, 불쌍히 여기셔서 사성음(四聖飮) 한 첩을 하사하시며 "장롱 속에 깊이 간수하라." 하시므로 하명대로 하였더니 그 증세가 다시 일어나지 아니하니라.
56
대흥리 신재인(申才人)의 아들이 흉복통으로 사경에 이르러 고쳐 주시기를 간청하니, 하교하시기를 "돼지 한 마리를 잡아 삶아 오라." 하시므로 재인이 하명대로 하려 할 때, 다시 "미구에 저육(猪肉) 세 점이 이르리니 잡지 말라." 하시니라. 이윽고 윤경이 제삿집에 가서 술상을 가져오니 과연 돼지고기 세 점이 있으니라. 이를 재인에게 하사하셔서 그 아들에게 먹이게 하시니 곧 나으니라.
57
5월에 상제님께서 문공신의 집에 행재하실 때, 김경학이 와서 뵈니 하명하시기를 "내일 아침에 태인 살포정으로 나를 찾아오라." 하시니라. 집으로 돌아갔다가 이튿날 아침에 살포정에 이르니, 그곳에서 나그네 두 사람이 싸우고 있고, 상제님께서는 한길가 언덕 위에 돌아 앉으셨으므로 올라가 인사를 드렸으나, 아무 말씀도 아니 하시며 노기를 띠고 계시니라. 경학은 어의를 헤아리지 못하여 황공한 마음으로 시립(侍立)하였더니, 이윽고 상제님께서 싸우던 자들에게 "그만 두라." 하시매 즉시 싸움을 그치고 돌아가니라. 경학이 여쭈기를 "어떤 사람들이 싸웠나이까?" 하니 "우리 국운(國運)을 위하여 정씨(鄭氏)를 없게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에서 정씨의 참요(讖謠)가 끊어지지 아니하니, 혹시 이씨가 정씨의 화를 받을까 염려하여 살기를 풀어 이씨의 기운을 돋우는 공사를 보았노라." 하시니라.
58
하루는 상제님께서 경학의 말을 타려 하시는데, 그 총각 마부가 다른 총각 두 사람을 상대하여 서로 머리채를 잡고 싸우는 것을 보시며 노기를 띠고 계시니라. 경학이 쫓아가서 싸움을 말려 마부와 다른 한 총각은 떼어 보냈으나 한 총각은 가지 않고 폭언을 연발하므로, 상제님께서 꾸짖으시며 술 한 잔을 먹여 보내시니라. 공우가 그 사유를 여쭈니 "이씨왕과 일본왕의 싸움을 붙였더니 이씨왕이 패하였느니라." 하시니라.
59
상제님께서 경학에게 하문하시기를 "십인 적(敵)이면 왕이 되겠느뇨?" 하시므로 "적의 뜻을 모르겠나이다." 하니 "일적이 십인이니라." 하시니라. 경학이 "십인 적으로서는 왕이 되지 못하겠나이다." 하니 "백인 적이면 어떠하뇨?" 하시므로 "그도 불가하나이다." 하매, 천인 적과 만인 적을 차례로 하문하셨으나 모두 불가함을 아뢰니라. 다시 "십만인 적이면 어떠하뇨?" 하시므로 경학이 비로소 "가하나이다." 하고 아뢰니 상제님께서 글을 쓰셔서 불사르시느라.
60
하루는 유찬명으로 하여금 두루마리에 이십팔수를 좌로부터 가로로 쓰게 하신 후 끊으셔서 자로 재시니 일척이 차므로 불사르시니라.
61
6월에 대흥리에 행재하시며 박공우를 명하셔서 각처에 전령(傳令)하여, 종도들에게 각기 21일간을 새벽에 한 시간씩만 자게 하시니라. 차경석이 여러 날 동안 자지 못하여 심히 피곤하더니 밖에 나갔다가 들어오는 길에 문 앞에서 혼도하므로,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천자를 도모하는 자는 다 죽으리라." 하시니라.
62
상제님께서 김광찬에게 하문하시기를 "네가 이전에 나를 어떤 사람으로 불렀었느냐?" 하시므로 "촌양반(村兩班)이라고 불렀나이다." 하고 아뢰니라. 또 "촌양반은 너를 어떻게 불렀으랴?" 하시므로 "고을 아전이라고 부르셨으리이다." 하니 "촌양반은 고을 아전을 아전 놈이라 부르고, 고을 아전은 촌양반을 양반놈이라 불렀느니 이것이 모두 불평줄이니라. 이제 나와 네가 서로 화해하면 천하가 다 화평하리라." 하시니라.
63
종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이제 천하에 수기(水氣)가 말랐으니 수기를 돌리리라." 하시고 뒷산 피란동(避亂洞) 안씨(安氏) 재실(齋室) 앞 우물을 댓가지로 한 번 저으시며 "음양이 고르지 못하니 재실에 가서 까닭을 알아 오라." 하시니라. 안내성이 들어가 알아보니 3일 전에 재지기는 죽고 그 아내만 있으니라. 돌아와서 아뢰니 "다시 행랑방에 가 보라. 딴 기운이 고이고 있도다." 하시므로 내성이 다시 살피고 와서 보부상 남녀가 들어 있음을 아뢰니라."상제님께서 재실 대청에 임어하셔서 여러 사람으로 하여금 서천을 향하여 만수(萬修)를 크게 부르게 하시며 "이 가운데 수운 가사를 가진 자가 있으니 가져오라." 하시니 한 사람이 가사집을 올리니라. 그 책 중간을 펴 드시고 "시운(詩云) 벌가벌가(伐柯伐柯)여 기칙불원(其則不遠)이라, 내 앞에 보는 것을 어길 바 없지마는 이는 도시(都是) 사람이요, 부재어근(不在於近)이라. 목전지사(目前之事) 쉽게 알고 심량(深量) 없이 하다가서 말래지사(末來之事) 같잖으면 그 아니 내 한인가?"라는 구절을 읽으시니라. 처음에 가는 소리로 한 번 읽으시니 맑은 날에 문득 뇌성이 일어나고, 다시 크게 읽으시매 뇌성이 대포 소리와 같이 일어나 천지가 진동하여 여러 사람이 정신을 잃고 엎어지므로 안내성을 명하셔서 일으키시니라.
64
경석의 집 서쪽 벽에 24장과 28장을 써 붙이시고, 공우의 왼팔을 잡아 올리시며 큰소리로 "만국대장 박공우"라고 부르시니라. 이후로 공우가 길을 떠날 때 문밖에 나서면 어디선가 발포성이 일어나니라.
65
태인에서 백암리로 행행하실 때, 공우가 시종하는데 상제님께서 문득 관운장의 얼굴로 변하셔서 하문하시기를 "내 얼굴이 누구의 얼굴과 같으냐?" 하시니라. 공우가 망설이다가 세 번을 하문하시므로 "관운장과 흡사하나이다." 하고 아뢰니, 본래의 용안으로 회복하시고 경학의 집에 임어하셔서 공사를 행하시니라.
66
동곡에 행재하실 때, 한공숙이 와서 뵈니 친히 술을 부어 하사하시며 "내 공사를 도왔으므로 술을 주노라." 하시므로 "그다지 도와 드린 공사가 없나이다." 하고 아뢰매, "이미 행한 공사가 있느니라." 하시니라. 공숙이 황송하게 술을 받아 마시고 한참 생각하다가 여쭈기를 "간밤 꿈에는 한 일이 있었나이다." 하니 "꿈속에서 한 일도 또한 공사니라." 하시니라. 여러 사람이 공숙에게 꿈 일을 물으니 "간밤 꿈에 선생님께서 제 집에 오셔서 '천하 호수와 인구수를 조사하여 책을 만들어 오라' 하시므로 오방신장을 불러 책을 만들어 올리매 선생님께서 받으심을 보았노라." 하니라.
67
상제님께서 "천지대팔문(天地大八門) 일월대어명(日月大御命) 금수대도술(禽獸大道術) 인간대적선(人間大積善) 시호시호(時乎時乎) 귀신세계(鬼神世界)"라는 글을 쓰셔서 공우에게 주시며, "경수의 집 벽에 붙이라." 하시고, 또 "경수의 집에 수명소(壽命所)를 정하느니, 너희들은 모든 사람을 대할 때에 그 장점만 취하여 호의를 가질 것이요, 혹 단점이 보이더라도 용서하고 증오하지 말라. 네가 경수의 집에 함께 사는 고로 이 일을 너에게 시키느니라." 하시니라. 또 형렬에게 "법은 원래 서울에서 비롯하여 세계만방으로 펴 나가는 것이므로 서울 경(京)자 이름 가진 사람의 기운을 써야 하니라. 그러므로 경수의 집에 수명소를 정하느니라." 하시고, 다시 경학의 집에는 대학교를 정하시며 "다유곡기횡이입(多有曲岐橫易入) 비무탄로정난심(非無坦路正難尋)"이라는 글을 쓰셔서 벽에 붙이게 하시고, 경원의 집에는 복록소(福祿所)를 정하시니라.
68
하루는 다음과 같은 글을 쓰셔서 불사르시고 말씀하시기를 "회문산에 24혈이 있고, 변산에 24혈이 있어 각각 사람 몸의 24추(椎)에 응하여 큰 기운을 간직하였으니 이제 회문산은 산군(山君), 변산은 해왕(海王)의 도수로 정하여 삼계공사에 그 기운을 쓰노라." 하시니라. 天下自己神 古阜運回 天下陰陽神 全州運回 천하자기신 고부운회 천하음양신 전주운회 天下通精神 井邑運回 天下上下神 泰仁運回 천하통정신 정읍운회 천하상하신 태인운회 天下是非神 淳昌運回 천하시비신 순창운회
69
형렬에게 하명하시기를 "내가 이제 화둔(火遁)을 묻었으니 불을 조심하라. 만일 네 집에서 불이 나면 화신(火神)이 세력을 얻어 온 세계에 큰 재앙을 끼치리라." 하시므로 형렬이 집안 사람들에게 불을 조심하도록 단속하니라.
70
안내성에게 하명하셔서 몽둥이로 마룻장을 치게 하시며, "이제 병의 독기에 걸린 인류를 건지려면 '일등방문(一等方文이 여기 있는데 이등방문이 어찌 머리를 들리오?' 하고 꾸짖으라." 하시므로 하명대로 하였더니, 이후에 안중근(安重根)이 하얼빈에서 이등박문(伊藤博文)을 사살하니라.
71
동곡에서 밤중에 글을 쓰시며 김보경에게 명하셔서 "동천에 별이 나타났는가 보라." 하시므로, 밖에 나가 보고 "검은 구름이 하늘을 가려서 별이 보이지 아니하나이다." 하고 아뢰니라. 상제님께서 문을 여시고 동천을 향하여 입으로 한 번 부시니 구름이 흩어지고 별이 나타나니라.
72
김병욱이 상제님께 사람을 보내어 묘적(墓賊)이 백남신의 부모묘에서 두골(頭骨)을 도굴하여 간 사건을 아뢰니, 상제님께서 초상집과 같이 등불을 밝히시고 사흘 밤을 철야하신 다음, 남신에게 전하시기를 "두골을 찾으려 서둘지 말고 조용한 곳에 거쳐하며 외인들과 교제를 끊으라. 처서절에는 절로 찾게 되리라." 하시니라. 이때 사흘 밤 철야하심을 종도들이 불평하며 "이런 노고를 당사자가 알지 못하오니 그만 두사이다." 하니 "두골만 찾게 할 뿐이요, 그의 알고 모름은 관계할 바 아니니라." 하시니라. 남신이 명하신 대로 궁벽한 백운정(白雲亭)에 거처하더니 7월에 그 묘 아랫동네에서 동장이 자발적으로 동회를 열고 의논하기를 "우리가 이 묘하촌(墓下村)에 살면서 범연히 지낼 수 없으니 온 동네가 나서서 근처를 수색하여 만일 두골을 찾는 사람이 있으면 묘 주인에게 말하여 상당한 보상을 받게 하리라." 하고 마을 사람들을 동원하여 근처 산기슭을 수색하니라. 이때 묘적이 생각하기를 "묘 주인이 돈을 들여서 두골을 찾으려 하지 아니하니, 차라리 이 기회에 두골을 가져다주면 도적이란 오명도 면하고 보상을 받으리라." 하고 동장에게 가서 말하기를 "내가 여러 곳을 두루 수색하다가 다행히 찾았노라." 하므로 동장이 그 사람을 데리고 백운정에 가니 이날이 곧 처서절이니라.
73
이튿날 아침에 병욱이 상제님께 와서 두골 찾은 일을 아뢰니, "묘적은 어떻게 하였느뇨?" 하시므로 "경무청으로 보냈나이다." 하매 "잘 타일러 돌려보냄이 가하거늘 어찌 그리하였느뇨?" 하시니라. 병욱에게 검은 옷 한 벌을 지어 오게 하셔서 불사르시며 "극형을 면하고 징역에나 처하게 하리라." 하시더니 과연 그리되니라. 종도들이 처서절에 찾게 된 이유를 여쭈니 "사사(私事)라도 삼계공사의 도수에 부쳐두기만 하면 그 도수에 이르러 공사와 사사가 다 함께 풀리느니라." 하시니라.
74
김덕찬이 상제님께 대하여 항상 거만하더니 하루는 공사를 보시며 뇌전을 쓰실 때, 두려워하여 자리를 옮겨 앉으므로 말씀하시기를 "네가 지은 죄가 없는데 어찌 두려워하느냐?" 하시니라. 덕찬이 더욱 황공하여 하더니 그 후로는 상제님을 극진히 공경하니라.
75
백남신의 일가 용안(容安)이 양조업 허가를 얻고 전주 부중에 있는 수백 술집의 자가양조(自家釀造)를 금하니라. 상제님께서 용머리고개 김주보(金周甫)의 주막에 임어하시니 그 주모가 가슴을 치며 "다른 벌이가 없고 다만 술장사로 가족이 살아왔는데 이제 양조를 못하면 무엇을 하여 살아가리오?" 하므로 불쌍히 여기시며 "어찌 남장군(男將軍)만 있으리오? 마땅히 여장군도 있으리라." 하시고 종이에 "여장군(女將軍)"을 쓰셔서 불사르시니라. 이때 주모가 신(神)기운를 얻어 부중을 돌며 호령하여 잠시 동안에 수백 명의 주모를 모아 거느리고 용안의 집을 엄습하매, 형세가 험악하므로 용안이 크게 놀라 군중에게 사과하고 양조업을 폐지하니라.
76
장님 한 사람이 항상 용머리고개 길가에 앉아 피리를 불어 돈을 빌더니, 하루는 상제님께서 행행 중에 임감하셔서 "네 돈으로 술 한 잔을 사 먹으려 하느니 어떠하뇨?" 하시니 "몇 잔이든지 사 잡수시옵소서." 하니라. 상제님께서 가상하게 여기시며 돈 한 닢을 집으셔서 술 한 잔을 사 진어하시고 '이제부터 네가 편히 먹고살게 하리라." 하시더니 그 후에 전주의 한 부자 과부가 데려다가 함께 지내니라.
77
신경원이 급히 사람을 보내어 아뢰기를 "경관이 날마다 찾아와서 선생님의 거취를 조사하나이다." 하니, 상제님께서 심부름 온 사람에게 글을 써 주시며 "이 글을 경원에게 전하되, 한 번 읽고 곧 불사르게 하라." 하시니라. 경원이 그대로 하매 그 후로는 경관의 조사가 그쳤으며 그 글은 이러하니라. 天用雨露之薄則 必有萬方之怨 地用水土之薄則 必有萬物之怨 천용우로지박즉 필유만방지원 지용수토지박즉 필유만물지원 人用德化지薄則 必有萬事之怨 天用地用人用 統在於心 인용덕화지박즉 필유만사지원 천용지용인용 통재어심 心也者 鬼神之樞機也 門戶也 道路也 開閉樞機 出入門戶 往來道路 심야자 귀신지추기야 문호야 도로야 개폐추기 출입문호 왕래도로 神 或有善 或有惡 善者師之 惡者改之 吾心之樞機 門戶 道路 大於天地 신 혹유선 혹유악 선자사지 악자개지 오심지추기 문호 도로 대어천지
78
김병욱의 심부름으로 김윤근(金允根)이 상제님께 와서 뵙고 여쭈기를 "요사이 날이 가물어 농작물이 다 마르므로 만민이 초조하오니 선생님께서 단비를 내려 주옵소서." 하니라. 상제님께서 김덕찬을 명하셔서 돼지 한 마리를 잡게 하시고 종도들로 하여금 태을주를 연송하게 하시니 갑자기 뇌전이 일며 소나기가 쏟아지므로 김윤근이 기뻐하며 외치기를 "선생님은 진실로 만인을 살리시는 하느님이시로다." 하니라.
79
동곡의 이장 정성원(鄭成元)이 여쭈기를 "제가 가난하오니 이 고생을 면할 길을 가르쳐 주옵소서." 하니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동민의 금년(도기 전 1, 서기 1908년) 세금을 거두어 상납하지 말고 그대로 쓰라. 뒷일은 내가 풀어 주리라." 하시므로 "너무 심한 말씀이로소이다. 국세를 받아쓰고 어찌 생명을 보전하리이까?" 하고 물러가니라. 그 후에 고의는 아니나 세금 수천 냥을 받아 써 버리게 되어, 기유년(서기 1909년) 봄에 이르러서는 관청에서 독촉이 심하니라. 성원이 술에 취하여 마을로 돌아다니며 외치기를 "내가 국세를 받아썼으니 누구든지 내 배를 가르라." 하니라. 상제님께서 부르셔서 "염려하지 말라. 무사하게 하여 주리라." 하고 위로하며 달래셔도 끝내 믿지 아니하더니, 그 후에 과연 무신 · 기유년 세금이 모두 면제되어 그 화가 풀리니라.
80
태인 백암리 김명칠(金明七)이 산중 경사지를 개간하여 담배를 심었는데, 어느 날 거름을 하고 배토(培土)하였더니 마침 소나기가 쏟아지므로 가슴을 치며 "내 생업은 담배 농사뿐인데, 거름하고 배토한 뒤에 이렇게 소나기가 퍼부으니 사태가 나서 다 버리게 되리라." 하며 한탄하니라. 상제님께서 들으시고 "근심을 풀라. 그 재앙을 면하게 하리라." 하시더니 비가 갠 후에 명칠이 밭에 가보니 아무런 피해가 없으니라.
81
정괴산의 주막 앞을 행행하실 때, 마침 고부환란 때에 안면이 있던 정순검이 이르므로 상제님께서 술을 주셨는데, 떠날 때 돈 십 원을 요구하며 조끼 주머니에 손을 넣어 십 원을 빼앗아 가므로, 상제님께서 "모든 일을 의로써 할 것이어늘 어찌 이렇게 무례(無禮)하뇨?" 하시니라. 정순검이 전주에 가서 다시 편지로 사십 원을 요구하므로 형렬에게 명하셔서 돈 약간을 구하여 보내시며 "의롭지 못한 사람이로다." 하시더니, 며칠 후에 정순검이 고부로 가다가 정읍의 한 다리에서 도적에게 맞아 죽으니라. 상제님께서 들으시고 "도적을 징치(懲治)하는 직책을 가진 순검이 도리어 분수 밖의 재물을 탐하니 도적에게 죽음은 우연이 아니니라. 다 신명이 행하는 바니라." 하시니라.
82
김영서(金永西)와 정남기(鄭南基)가 와서 뵌 다음, 서로 사담을 나누는데 남기는 "요사이 일본말을 아는 사람은 입신출세하기도 쉽고 돈벌이도 잘하더라." 하고 영서는 "요사이는 연극배우를 하여도 돈벌이가 잘되더라." 하며 서로 그런 일에 등한하였음을 뉘우치니라. 잠시 후에 남기는 손을 흔들며 유창한 말씨로 일본말을 지껄이고, 영서는 상건과 상복으로 북치는 흉내를 내며 춤을 추고 노래를 불러 등이 젖도록 땀을 흘리니, 일동이 크게 웃으니라. 상제님께서 "너희는 속히도 소원을 이루었도다." 하시니 두 사람이 비로소 정신을 차리고 부끄러워하니라. 상제님께서 다시 "대도를 닦는 자는 마땅히 마음을 정대(正大)히 하여 그칠 곳을 알아야 할 것이요, 한 가지라도 분수 밖의 생각을 가지거나 실없는 말을 함이 불가하니라." 하시니라.
83
7월 초 상제님께서 백암리 행재시에 김영학(金永學)이 김경학의 천거로 와서 뵈니, 7일이 되도록 하교의 말씀이 없으시므로 섭섭히 여기니라. 공우와 원일이 그에게 말하기를 "성의로써 스승으로 섬기기를 아뢰면 밝게 가르치시리라." 하니 영학이 그대로 하매 허락하시고 문득 크게 꾸짖으시므로 한 편으로는 두려워하고, 한 편으로는 언짢아 문밖으로 나가니라. 이윽고 영학을 부르셔서 "너를 꾸짖음은 네 몸에 있는 두 척신을 물리치려 함이니 너는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라." 하시므로 "무슨 척신이온지 깨닫지 못하겠나이다." 하니 "네가 18세에 살인하고, 금년에도 살인하였으니 어찌 원척이 없으리오?" 하시니라. 영학이 생각하매 18세 때에 남원에서 전주 아전 김모와 서로 말다툼하다가 노하여 화로를 던진 것이 머리를 상하게 하여 다음 해 2월에 사망하였고, 올봄에는 외숙 김요선(金堯善)이 의병에게 약탈당함을 의병대장 김영백(金永伯)에게 문책하니, 영백이 사과하고 범인을 조사하여 총살한 일이 있으므로 비로소 확연히 깨닫고 사실을 아뢰며 그 신성하심에 더욱 감복하니라.
84
상제님께서 손병욱의 집에 행행하시니 종도들이 많이 모이니라. 병욱이 아내에게 점심을 짓게 하매, 날이 심히 더우므로 괴로워하여 홀로 불평하는 말을 하였더니 문득 와사증(喎斜症)이 일어나니라. 응종이 이를 보고 상제님께 아뢰니 "이는 불평하는 말을 하다가 조왕(竈王)에게 벌을 받음이니라." 하시고 글을 써 주시며 병욱의 아내로 하여금 부엌에서 소지하고 참회하게 하시므로 그대로 하매 곧 나으니라.
85
대흥리에 행재하실 때, 공우에게 하문하시기를 "네가 남과 싸움을 많이 하느냐?" 하시므로 "그리하였나이다." 하니 "표단(豹丹)이 들어서 싸움을 즐기느니 이제 표단을 빼어내고 인단(人丹)을 넣으리라." 하시니라. 이후로는 공우의 성질이 온순하게 되어 혹 싸우는 자만 보아도 두려운 마음이 생겨 멀리 피하니라.
86
경석 · 내성 · 공우를 거느리시고 대흥리 앞 내에서 목욕하시려고 경석에게 흰 소금 한 줌을 물 위에 뿌리게 하시고, 물에 들어서시며 "고기잡이를 하리라." 하시니라. 잠시 후에 경석의 다리를 잡으시며 "큰 이무기를 잡았다." 하시므로 "제 다리로소이다." 하니 "그렇게 되었느냐?" 하시고 놓으시니라.
87
형렬이 외출하였다가 예수교인에게 큰 모욕을 당하고 돌아와서 상제님께 아뢰니 "청수를 떠 놓고 스스로 허물을 살펴 심고하라." 하시므로 형렬이 하명대로 하니라. 그 후에 그 예수교인이 병들어 사경에 이르렀다가 어렵게 살아났다는 말을 듣고 아뢰니 "이후로는 그런 일을 당하거든 조금도 그를 원망하지 말고 스스로 몸을 살피라. 만일 허물이 네게 있을 때는 참회하면 그 허물이 다 풀릴 것이요, 허물이 네게 없을 때는 그 독기가 본처로 돌아가리라." 하시니라.
88
안내성에게 하교하시기를 "직업에 힘써 밖으로 봉공의무(奉公義務)와 안으로 선령제사와 제가양육(齊家養育)의 책임을 다하고 몸을 잘 닦을지어다." 하시니라.
89
박공우에게 하명하시기를 "죽을 사람을 가려내라." 하시므로 잠시 생각하다가 "도인으로서 겉과 속이 같지 아니한 자가 먼저 죽어야 옳으리이다." 하니 응답하지 아니하시니라. 다시 "살 사람은 어떤 사람이뇨?" 하시므로 "들에서 농사짓는 사람, 산에서 화전(火田) 파는 사람, 남에게 맞고도 대항하지 않는 사람이 살아야 하리이다." 하니 "네 말이 옳으니라." 하시니라.
90
공우가 여쭈기를 "동학 주문으로 강(降)을 받는 자가 많이 있으니 저는 강(降)을 받지 못하였나이다." 하니 "이는 다 제우강(濟愚降)이요, 천강(天降)은 아니니라. 천강을 받은 자는 병든 자를 한 번 만져도 낫고, 건너보기만 하여도 낫느니라." 하시니라.
91
종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김병욱이 남의 나라 일만 힘쓰니 그 식록을 떼리라." 하시니라. 그 후에 공우가 가보니 생계가 궁핍하므로 가구를 저당잡혀 겨우 생활하고 있으니라. 돌아와서 아뢰매 상제님께서 글을 써 불사르시더니 생계가 다시 넉넉하여지니라.
92
또 하교하시기를 "대도를 닦는 자는 먼저 아내의 뜻을 돌려 순종하게 하여야 하느니라. 그 마음을 돌리지 못할 때는 예의를 갖추어 더욱 설득하기를 날마다 일삼으면 마침내 순종하게 되느니라." 하시니라.
93
또 "자고로 부인을 존신(尊信)하는 일이 적었으나, 이후로는 부인도 각기 닦은 바에 따라 공덕비(功德碑)가 설 것이요, 금패(金牌)와 금상(金像)으로 존신의 표징을 세우리라." 하시니라.
94
공우가 상제님을 모시고 태인읍을 지날 때, 한 젊은 여자 행인을 체면상 바로 보지는 못하였으나, 그 미모를 잊지 못하니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색은 남자의 정기를 모손(耗損)함이니, 이후로는 여자를 볼 때 익히 보되 마음에 남겨 두지 말라." 하시니라. 공우가 깨닫고 이후로는 명하신 대로 하니 마음에 욕정이 일지 아니하니라.
95
상제님께서 두 노파가 지나는데 길을 비켜 외면하고 서셨다가, 모두 지나간 후에 거동하시며 "이제는 해원시대라, 남녀의 분별을 틔워 각기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풀어놓았으나 이후에는 건곤(乾坤)의 위차를 바로잡아 예법을 다시 세우리라." 하시니라.
96
태인 감곡면 산직촌(山直村) 앞을 행행하시며 공우에게 하문하시기를 "복을 얼마나 지니면 좋겠느냐?" 하시므로 "많이 지니면 좋으리이다." 하니라. 또 "어디에 쓰려느냐?" 하시므로 "가난하고 궁핍한 사람을 먹이고 입히려 하나이다." 하니 "복이 너무 많으면 귀하지 않으니 지닐 만큼 지녀야 하느니라." 하시니라.
97
천원(川原)에 행재하실 때 한 종도가 참외를 진상하니, 상제님께서 맛보지 않고 두셨는데 공우가 한 개를 먹자, 설사가 나서 낫지 아니하니라. 상제님께 아뢰니 "그 아내가 주기 싫어하였으므로 그 살기가 붙어 있었는데 네가 그 살기를 받았느니라, 닭국을 먹으면 나으리라." 하시므로 그대로 하매 곧 나으니라.
98
부안 사람이 감주를 올리매, 상제님께서 물리치시며 "이것은 곧 구천하감주(九天下鑑酒)이어늘 네가 어찌 도적 음식을 올리느냐?" 하시므로 종도들이 그에게 물으니 "아내가 불응하므로 몰래 가져왔노라." 하니라.
99
동곡에 행재하실 때 꿩 한 마리를 올리는 자가 있었는데, 상제님께서 받아 두시고 삼 일이 지나니 꿩이 썩게 되니라. 종도들이 아뢰니 삶아 먹게 하시고 조금도 진어하지 않으시므로 그 연고를 여쭈매, 말씀하시기를 "그 아내가 싫어하여 그 꿩에 살이 붙어 있느니라." 하시니라. 다시 여쭈기를 "그러하오면 어찌 저희들로 하여금 살이 있는 것을 먹게 하셨나이까?" 하니 "그 살은 이미 다 제거하였느니라." 하시니라.
100
하루는 전간재(田艮齋)의 문도 5, 6인이 의관을 정제하고 와서 "선생님 뵈옵나이다." 하며 절을 하려 하니라. 상제님께서 돌아보시고 "나는 너희 선생이 아니니라." 하시며 절을 받지 아니하시니, 그들이 주저하며 섰다가 물러가니라.
101
공우를 거느리시고 태인 보림면 장자동(長者洞)을 행행하실 때, 길가에 있는 묘 하나를 보시고 "이는 와우혈(臥牛穴)인데 금혈(琴穴)이라고 혈 이름을 잘못 지어서 발음(發蔭)이 못 되었느니라. 혈 이름을 모르거든 용미(龍尾)없이 조분(造墳)하였다가 아는 이에게 작명(作名)한 후에 용미를 달면 발음이 되느니라." 하시니라.
102
공우에게 말씀하시기를 "태인 살포정 뒤의 호승예불혈(胡僧禮佛穴)을 써 주리니, 일꾼을 먹일 만큼 술을 빚어 두라." 하시므로 명하신 대로 하니라. 그 후에 "장사 지내 주리라." 하시며 그 술을 종도들에게 나누어 주신 다음, 글을 써 불사르시고 "지금은 천지에 수기(水氣)가 돌지 않아 묘를 써도 발음이 되지 않느니라. 이후에 수기가 돌 때에는 와지끈 소리가 나리니 그때에라야 지기가 발하리라." 하시니라.
103
덕찬에게 종이 한 장을 주시며 "칠성경을 쓰라." 하시므로 글자의 대 · 소를 여쭈니 "네 뜻대로 쓰라." 하시니라. 덕찬이 다 쓰니 종이에 꽉 차고 겨우 석 자 쓸 만한 여백이 남았으므로 그 여백에 "칠성경(七星經)"세 자를 써서 불사르게 하시니라.
104
경석을 앞에 세우시고 공우에게는 망치를, 윤경에게는 칼을 들리신 다음, 그들로 하여금 "네가 이후에도 지금의 스승을 모시고 있듯이 변함이 없겠느냐? 만일 변심하면 이 망치로 턱을 칠 것이요, 이 칼로 배를 가르리라." 하고 경석에게 경고하여 굴복받게 하시니라.
105
공우가 아내와 다툰 다음 상제님께 와서 뵈니, 꾸짖으시기를 "나는 독도 천하의 독을 다 가졌고 선도 천하의 선을 다 가졌는데, 네가 어찌 내 앞에 그런 패악(悖惡)을 하느뇨? 이제 천지신명이 운수 자리를 찾으려고 각 가정에 들어가서 기국(器局)을 시험하느니, 만일 가장으로서 성질이 옹졸하여 화기를 잃으면 신명들이 비웃고 손가락질하며 "기국이 작으니 어찌 큰일을 맡기리오?" 하고 서로 이끌고 떠나리라. 천하사를 뜻하는 자 어찌 잠시라도 소홀히 하리오." 하시니라.
106
또 공우에게 하명하시기를 "평소에 잡되게 행하던 일과 부정한 뜻을 낱낱이 생각하여 거둬들이라." 하시니라. 공우가 일찍 서울에서 왕과 장상의 행차를 보고 마음으로 부러워하여 대장부라면 마땅히 이와 같아야 하리라고 생각한 일까지 아뢰니 "네가 그런 생각을 죄로 알았느냐, 선으로 알았느냐?" 하시므로 "죄가 될지언정 선은 되지 못할까 하나이다." 하매 "그러면 내게 사배하고 다시 그러지 않기를 심고하라." 하시니라.
107
종도들에게 하교하시기를 "말버릇을 삼가라. 먹고살려고 좋은 반찬에 잘 먹은 다음 '배불러 죽겠다.' 하고 말하며, 잘살려고 땀 흘려 일한 후에 '고단하여 죽겠다.' 하고 말하느니, 이때는 말대로 되는 시대라, 병겁이 돌 때에 어찌 죽기를 면하리오?" 하시니라.
108
상제님께서 밥알 하나 땅에 흘린 것이라도 반드시 주우시며 "장차 밥 찾는 소리가 구천에 사무치리니 어찌 경홀(輕忽)히 하리오? 쌀 한 알이라도 하늘이 아느니라." 하시니라.
109
형렬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도선(徒善)이라, 복 마련하기 어렵도다." 하시니라.
110
또 "대상(大祥)이란 상 자는 상서(祥瑞)라는 상 자니라." 하시니라.
111
어떤 사람이 피난할 방도를 여쭈니, 말씀하시기를 "이때는 일본 사람을 잘 대접하는 것이 곧 피난이니라." 하시므로 "무슨 연고(緣故)니이까?" 하매 "일본 사람이 서방 백호기운(白虎氣運)을 띠고 왔으니 숙호충비(宿虎衝鼻)하면 상해를 받으리라. 범은 건드리면 해치고, 건드리지 않으면 해치지 않느니라. 또 범이 새끼 친 곳은 부근 동네까지 두호(斗護)하느니 사사로운 일로 그들에게 거슬리지 말라. 이것이 곧 피난하는 방도니라. 그러나 청룡(靑龍)이 동하면 백호는 스스로 물러가느니라." 하시니라.
112
또 하교하시기를 "지난 임진란에 일본인이 조선에 와서 성공하지 못하여 세 가지 한이 맺힌 삼한당(三恨堂)이 있다 하느니라. 먼저 도성에 들지 못하였음이 1한이요, 인명을 많이 죽였음이 2한이요, 수종(水種)을 가르쳤음이 3한이니라. 이제 해원시대를 당하여 먼저 도성에 들게 되매 1한이 풀리고, 인명을 많이 죽이지 않게 되매 2한이 풀리며, 고한삼년(枯旱三年) 백지강산(白地江山)에 민무추수(民無秋收)하게 되매 3한이 풀리리라." 하시니라.
113
공우가 여쭈기를 "수운 가사에 '청송녹죽(靑松綠竹)은 도통지연원(道統之淵源)이라' 하였나이다." 하니 "만물이 다 철을 찾는데 오직 청송녹죽은 여름이나 겨울이나 항상 푸르니 이는 철모르는 물건이니라." 하시니라.
114
종도들에게 하교하시기를 "선천에는 도수가 그르게 되어 제자로서 선생을 해하는 자가 있었으나, 이후로는 그런 불의를 자행하는 자는 배사율(背師律)을 받으리라." 하시니라.
115
공우에게 하문하시기를 "죽어서 잘될 줄 알면 죽겠느냐?" 하시니, 공우는 상제님께 아뢰는 말씀이 항상 말대로 되므로 죽을까 두려워하여 "살아서 잘되려 하나이다." 하니라.
116
상제님께서는 불경하고 업신여기며 욕을 하는 자에게도 더욱 예로써 대하시니라. 종도 중에 이를 불평하는 자가 있으면 타이르시기를 "저들이 나에게 불경함은 나를 모르는 연고니라. 만일 나를 알면 너희와 다름이 없으리라. 저들이 나를 알지 못하여 불경하고 업신여기며 욕함을 내가 어찌 마음에 두리오?" 하시니라.
117
상제님께 부자를 천거하는 자가 있으면 그때마다 그가 오는 길가에서 폭 잡을 수 없이 횡설수설하셔서 그들이 싫어하고 스스로 물러가게 하시니라. 종도들이 연고를 여쭈니 "그들에게는 그 가진 재산(財産) 수효대로 살기가 붙어 있느니라. 만일 그들의 추종을 허락하려면 먼저 그 살기를 제거하여 앞길을 열어 주어야 하리니 많은 시간의 낭비로 공사에 지장이 있으리라. 그러므로 그들이 스스로 멀리하도록 함이니 그중에도 혹 혜두(慧竇)가 열려 나를 알아보고 굳이 따르려 하는 자가 있으면 허락할 뿐이니라." 하시니라.
118
한 종도가 무고히 남의 오해로 구설이 일어남을 분하게 여기므로, 타이르시기를 "풍역취이식(風亦吹而息)이라, 바람도 불다가 때가 되면 그치느니 남의 시비를 잘 이기라. 동정이 각각 때가 있어 걷힐 때에는 흔적도 없이 걷히느니라." 하시니라.
119
종도들에게 하교하시기를 " 하늘이 사람을 낼 때에는 무한한 공부를 들이느니 그러므로 모든 선령신들이 쓸 자손 하나씩 타내려고 60년 동안 힘을 들여도 못 타내는 자가 많으니라. 이렇듯 어렵게 태어난 몸으로 어찌 일생을 꿈결같이 헛되게 보낼 수 있으리오?" 하시니라.
120
또 "어머니가 태아를 열 달 동안 뱃속에서 기를 때에는 온갖 선을 다하다가 낳을 때에는 일 분간의 악을 쓰느니 이로써 악의 씨가 되느니라." 하시니라.
121
종도들에게 맹자 한 절을 외워 주시며 하교하시기를 "이 글의 뜻을 알면 이 책은 더 볼 것이 없느니라." 하시니라. 天將降大任於是人也 必先苦其心志 勞其筋骨 餓其體膚 천장강대임어시인야 필선고기심지 노기근골 아기체부 空乏其身 行拂亂其所爲 所以動心忍性 曾益其所不能 공핍기신 행불란기소위 소이동심인성 증익기소불능
122
또 "도적 잡는 자를 포교(捕校)라고 부르는데 포덕(布德)을 또한 포교(布敎)라고 일컫느니라. 우리 일은 세상에 모든 불의를 밝히려는 일이니 세상에서 영웅이라는 칭호를 듣는 자는 다 잡히리라." 하시니라.
123
"자손을 둔 신은 황천신이니 삼신이 되어 하늘로부터 자손을 타내리고, 자손을 두지 못한 신은 중천신이니 곧 서신(西神)이 되느니라." 하시니라.
124
김송환이 사후의 일을 여쭈니 "사람에게 혼(魂)과 백(魄)이 있어 혼은 하늘에 올라 신이 되어 제사를 받다가 4대가 지나면 영(靈)도 되고 선(仙)도 되며, 백은 땅으로 돌아가서 4대가 지나면 귀(鬼)가 되느니라." 하시니라.
125
또 여쭈기를 " 하늘 위에 또 하늘이 있나이까?" 하니, "있느니라." 하시고 "그 위에 또 있나이까?" 하매 "또 있느니라." 하시니라. 이와 같이 아홉 번을 답하신 다음, "그만 알아 두라." 하시더니 그 후에 "김송환은 만사불성(萬事不成)이니라." 하시니라.
126
한 종도가 여쭈기를 "제사에 우는 것이 옳으니이까, 울지 않는 것이 옳으니이까?" 하니 "원통하게 죽은 신에게는 우는 것이 옳되, 원통함이 없는 신에게는 울지 않는 것이 옳으니라." 하시니라.
127
종도들에게 하교하시기를 "한 농부가 이른 봄 농한기에 논도랑을 깊이 파서 수원지에 이르게 하니, 여러 사람이 비웃으며 '이 논은 예로부터 천수(天水)만으로도 흉작이 없었는데 쓸데없이 힘을 이렇게 들이느뇨?' 하니라. 이해에 크게 가물어 온 들이 적지(赤地)가 되었으나, 그 농부는 그 도랑으로 물을 대어 농사를 잘 지었느니 이 일을 알아 두라." 하시니라.
128
상제님께서 한 술객(術客)에게 허령부(虛靈符)를 그려 보이시며 말씀하시기를 "이제 동양이 서양으로 떠 넘어가는데, 공부하는 자들이 이 일을 바로잡으려는 자가 없으니 어찌 한심하지 않으리오? 그대는 부질없이 떠돌지 말고 이 일을 공부함이 어떠하뇨?" 하시니라. 술객이 놀라 "저는 그런 능력이 없나이다." 하므로 그 무능함을 꾸짖으셔서 추방하시니라.
129
종도들에게 하교하시기를 "서양이 곧 명부니라. 사람의 본성은 어두운 곳을 등지고 밝은 곳을 향하느니 이것이 곧 배서향동(背西向東)이라. 서양 사람을 믿는 자는 이롭지 못하니라." 하시니라.
130
또 "속담에 전명숙의 결(訣)이라 하여 '전주 고부 녹두(綠豆)새'라 이르나, 이는 '전주 고부 녹지사(祿持士)'라는 말이니, 장차 천지녹지사가 모여들어 선경을 건설하리라." 하시니라.
131
"장차 48장(四十八將)을 늘어세우고 옥추문(玉樞門)을 열 때에는 정신 차리기가 어려우리라." 하시니라.
132
"항간에서 떠도는 말에 '짚으로 만든 계룡(鷄龍)이라.' 하여 세상이 잘 일러주는 것을 모르느니라." 하시니라.
133
내성이 일본인과 싸워 몸에 상해를 입고 와서 뵈니, 꾸짖으시기를 "이로부터 너는 내 문하에서 물러가라. 너의 죽고 사는 일을 내가 간여하지 않으리라." 하시니라. 내성이 이유를 몰라 부복 대죄(待罪)하니 "속언에 길성소조(吉星所照)를 말하나 길성이 따로 비치는 곳이 없고, 일본 사람을 잘 대접하는 곳에 비치느니 네가 이제 싸웠음은 멸망을 자초함이라, 내 어찌 너를 가까이 하리오?" 하시니라.
134
종도들에게 하교하시기를 "사람마다 닦은 바와 기국에 따라 임무를 감당할 만한 신명이 호위하느니, 만일 남의 자격과 공부만 추앙(推仰)하고 부러워하여 제 일에 태만(怠漫)하면 신명들이 다른 사람에게로 옮겨 가느니라." 하시니라.
135
"부모의 시신(屍身)을 묶어서 묻음은 부모를 원수처럼 다루는 자라. 묶지 말고 그대로 입관(入棺)하여 흙으로 덮어 두는 것이 옳으니라." 하시니라.
136
공우가 명을 받들고 각 지역을 순회할 때, 하루는 상제님을 비방하는 언동을 보고 와서 아뢰려 하니, 미리 아시고 용안(龍顔)을 돌리시니라. 공우가 깨닫고 말을 멈추니 "어디서 무슨 부족한 일을 보았을지라도 큰일에 낭패될 일만 아니면 항상 좋게 듣고 좋게 말하라." 하시니라.
137
공우를 거느리시고 태인 돌창이 음식점에 임어하셔서 주모에게 "술 한 잔 주시오." 하고 경어로 청하여 진어하시며 공우에게 "술을 청하여 먹으라." 하시므로, 공우가 관습대로 "술 한 잔 주게." 하니라. 상제님께서 타이르시기를 "이때는 해원시대라, 상민의 운수이므로 반상(班常)의 구별과 직업의 귀천을 가리지 아니하여야 속히 좋은 세상이 되리니 이후로는 그런 언습(言習)을 버리라." 하시니라.
138
형렬이 여쭈기를 "병을 고쳐 주시고도 병자에게 알리지 않으시고, 자식을 태워 주시고도 알리지 않으시니 무슨 연고이니까?" 하매 "나의 할 일만 할 따름이니 남이 알고 모름이 무슨 관계가 있으리오? 남이 알기를 힘씀은 소인의 일이니라." 하시니라.
139
종도들에게 남 속이지 않는 공부를 시키시며 말씀하시기를 "비록 성냥갑이라도 다 쓴 후에는 그 빈 갑을 깨어서 버리라." 하시니라.
140
동곡에 행재하실 때 신경수가 이르므로 한 종도가 "무슨 일로 왔느뇨?" 하니 "놀러 왔노라." 하고 답하니라. 상제님께서 들으시고 좌우에 명하셔서 경수를 쫓으시며 "여기는 노는 곳이 아니니 노는 자는 오지 못하느니라." 하시니라.
141
종도들에게 항상 참는 공부를 가르치셔서 "남에게 분한 일을 당할지라도 대항하지 말고 자기의 과실을 생각하여 풀라." 하시므로 종도들은 항상 그와 같이 닦으니라. 경석의 집에 행재하실 때 그 사촌형이 취하여 와서 경석에게 무수히 욕설을 하였으나, 경석이 한 말도 대항하지 않고 탓하지 않으니 더욱 기가 올라 방약무인(傍若無人)하다가 오랜 뒤에 스스로 지쳐서 돌아가니라. 상제님께서 경석에게 하교하시기를 "네 기운이 너무 빠졌으니 좀 회복하라. 덕으로만 처사하기는 어려우니 성(聖)과 웅(雄)을 합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
142
공우가 사소한 일로 형렬의 한 집안 사람과 말다툼하면서 "동곡 김씨를 모두 죽이리라."함을 상제님께서 꾸짖으셨는데, 그 후에 공우가 형렬의 집에 가니 우연히 김씨 일가가 많이 모이니라. 상제님께서 공우에게 "네가 못 올 데를 왔으니 이곳이 너의 죽을 곳이니라." 하시므로 "김씨 일가가 비록 많으나 제가 어찌 두려워하리이까?" 하매 김씨들이 웃고 공우도 따라 웃으니 이로써 화해되니라.
143
최창조의 처가 평소에 상제님의 임어하심을 싫어하더니, 하루는 식사 때가 지나 임어하시므로 밥 짓기가 싫어 불평하니라. 상제님께서 창조에게 말씀하시기를 "도가에서는 반드시 아내를 잘 이해시켜서 아무리 괴로운 일이라도 서로 화합하여야 복이 이르느니라." 하시니, 그 처가 문밖에서 그 말씀을 듣고 사람의 마음속까지 살피심에 놀라 마음을 바르게 고치니라.
144
한 종도가 경석에게 말하기를 "그대의 장인이 '그대가 요술쟁이에 끌려 바람맞은 사람이라'라고 비방한다는 말을 들었노라." 하니 경석이 "내가 어찌 바람맞았으리오? 말하는 그가 바람맞았도다." 하니라. 상제님께서 경석에게 꾸짖으시기를 "너는 대인공부를 하는 사람으로서 모르는 사람이 하는 말을 탓하면 너도 그와 같은 사람이 될지니 어찌 대인을 이루리오?" 하시니라.
145
종도들이 상제님을 모시고 길을 가다가 바람과 비, 추위와 더위에 따른 괴로움을 말하면 천기를 돌리셔서 편하게 하시더니, 하루는 "너희들이 이후로는 추워도 춥다 말고 더워도 덥다 말며, 비나 눈이 와도 탓하지 말라. 천지가 하는 일에 말썽을 부리면 역천(逆天)이 되느니라." 하시니라.
146
공우를 거느리고 거둥하시면서 우산을 들리시니, 공우는 평소에 상제님께서 우산을 받는 일이 없으시고, 비록 비를 맞으셔도 빗물이 의관을 적시는 일이 없었으므로 이상히 여기는데 뜻밖에 비가 내리니라. 상제님께서 공우에게 우산을 받게 하시고, 공우는 상제님께 받으시게 하여 서로 사양하다가 함께 비를 맞아 옷이 젖으니 말씀하시기를 "이후로는 우산을 들지 말라. 의뢰심(依賴心)과 두 마음을 품으면 신명의 엄호를 받지 못하느니라." 하시니라.
147
종도들에게 하교하시기를 "어떤 대인이 천하사를 경영하러 먼 길을 떠나매, 그 부모처자는 의탁할 곳이 없으니라. 한 사람이 그 일을 근심하여 구호할 길을 백방으로 생각하였으나 힘이 미치지 못함을 한탄하더니, 마침 장에 가서 어물전 앞을 지나다가 다시 그 일이 생각나서 길에서 머뭇거리매 그 가게 주인이 이상히 여기고 까닭을 물으므로 그 사정을 말하니, 감동하고 함께 대인의 집에 가서 스스로 구호를 담당하여 계속 생활비를 공급하니라. 그 후에 대인이 일을 마치고 돌아와서 부모와 처자가 안녕한 연고를 들어서 알고 그 가게 주인에게 후하게 갚았다 하느니라." 하시니라.
148
또 "예전에는 판이 좁아서 성(聖)으로만 천하를 다스리기도 하고 웅(雄)으로만 다스리기도 하였으나, 이제는 판이 넓고 복잡하므로 성과 웅을 합하여야 하느니라." 하시니라.
149
공우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데리고 다니는 것은 네 뱃속에 경위가 많은 연고니라. 여인도 경위가 많아야 아이를 많이 낳느니라." 하시니라.
150
원일이 여쭈기를 "이제 중국이 혼란하여 인민이 도탄에 빠졌사오니, 선생님께서 무소불능(無所不能)하신 권능으로 그 인민을 건지시고 제위(帝位)에 오르심이 옳으리이다." 하니 "벼슬은 넘나들지라도 제왕은 제나라 사람이 하여야 포원이 없느니라." 하시니라.
151
종도들에게 하교하시기를 "여인들이 천하사를 하려고 염주를 딱딱거리는 소리가 구천에 사무쳤으니 장차 여인의 천지를 만들려 함이니라. 그러나 그렇게까지는 되지 못할 것이요, 남녀동권시대(男女同權時代)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라.
152
또 "속담에 '병신이 육갑한다'라고 하느니 서투른 글자나 안다고 손가락을 곱작거리며 아는 체하는 자는 죽음을 면하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153
장성원에게 글 한 절을 써주시며 "후일에 보라." 하시니 이러하니라. 將驕者敗 見機而作 장교자패 견기이작
154
8월 18일 밤에 상제님께서 승마하시고 대흥리에 임어하셔서 안중서(安重宣) · 차윤경(車輪京)을 불러 하명하시기를 "이 길로 동곡에 가서 일등 가마와 일등 하인을 구하여 날이 밝기 전에 돌아오라. 내일 부인을 데리고 동곡으로 이사하리라." 하시니 두 사람이 명을 받들고 떠나니라. 이튿날 아침에 고부인에게 말씀하시기를 "그대가 동곡으로 가면 몸이 부서질 것이요, 이곳에 있으면 몸이 크리니 이곳에 있는 것이 옳으니라." 하시며 승마하시고 출어하셔서 살포정에서 가마를 만나 바꿔 타시고 동곡으로 행행하시니라.
155
이날 상제님께서 행행하심에 말을 몰아 모시던 김승연(金昇淵)이 중도에서 목이 말라 물을 마시려고 샘을 찾는데, 상제님께서 아시고 말에서 내리셔서 어수장(御手掌)으로 길가의 바위를 누르시니, 바위 바닥이 움푹 패어 들어가고 맑은 물이 고임으로 승연에게 그 물을 마시게 하시니라.
156
덕찬이 여쭈기를 "오늘 제 매가에 잔치가 있사오니 소풍을 겸하여 가사이다." 하니 "내 술을 먼저 마시라." 하시므로 "무슨 술이옵니까?" 하매 "좀 기다리라." 하시니라. 잠시 후에 공우가 술과 찐 닭을 가져와서 상제님께 진상하니라.
157
경석이 상제님께 수종하면서부터 살림을 돌보지 아니하여 집안 형편이 날로 기울어지니라. 그 아우 윤칠이 불평하기를 "증산을 따르면 복을 받는다 하더니 이제 복은 고사하고 빈궁(貧窮)이 따르니, 이는 한갓 기만에 불과함이라. 내가 가서 따지리라." 하고 동곡으로 가다가 길에서 비를 만나 진흙탕에 넘어져 의복을 버리니라. 상제님께서 보시고 말씀하시기를 "이 근처에 의병이 출몰하므로 일본 병사가 사방으로 정탐하는데, 만일 네가 비 맞고 초라하게 다니는 모양을 보면 의병으로 의심하여 큰 욕을 당하리니 조용한 곳에 숨어서 내가 부를 때까지 기다리라." 하시고 형렬로 하여금 숨겨 주게 하시니라. 다음날 돈 3원을 주시며 "내가 며칠 후에 정읍으로 가리니 돌아가서 기다리라." 하시므로 윤칠은 더할 말이 없을 뿐 아니라, 수일 후에 정읍으로 임어하신다는 말씀을 듣고 마음이 풀려 따지는 일은 후일로 미루고 돌아가니라.
158
며칠 후에 와룡리에 임어하셔서 경석에게 기별하시기를 "나를 보려 하거든 학동(學洞)으로 오라." 하시므로 이튿날 학동으로 가서 뵈니 돈 15원을 하사하시며 "너를 부른 것은 이 일극(一極)을 주려 함이니라. 내가 윤칠이 두려워서 네 집에 가지 못하노라." 하시니라. 경석이 황송하게 받으며 여쭈기를 "무슨 일로 그리하시나이까?" 하니 "며칠 전에 윤칠이 살기를 띠고 왔는데 돈이 아니면 풀기 어려우므로 돈 3원을 주어 돌려보냈노라." 하시니라. 경석이 돌아와서 윤칠에게 물으니 과연 그러한 사실이 있음을 자백하니라.
159
이튿날 학동을 출어하시며 공우에게 말씀하시기를 "나의 이번 길은 장래(將來)할 유일인(唯一人)의 절을 받기 위함이니 그 절이 천하에 널리 미치리라. 그 인사가 곧 후천진인(後天眞人)이니라." 하시고 홀로 정읍 마동(馬洞)에 임어하시니라. 그곳에 집 한 채를 사 놓으시고 매씨 선덕 부인을 부르셔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출가 10년에 소생이 없어 시가의 소박(疏薄)을 당함은 측은한 일이나, 이 또한 도수니라. 이제부터 이곳에 홀로 살면서 도수에 따른 인사를 기다리면 내 일을 이루리니 대망(大望)은 정월 대망이니라. 이곳이 나의 본소(本所)임은 천기니 누설하지 말라." 하시며 그 집을 하사하시고 대흥리로 행행하시니라.
160
하루는 경석이 세숫물을 가져다 올리고 나감을 가리키시며 고부인에게 말씀하시기를 "저 살기를 보라. 경석은 만고대적(萬古大賊)이니라. 자칫하면 내 일을 낭패시키리니 극히 조심하라." 하시고, 또 "경석에게 한 짐을 잔뜩 지워 놓으니 이기지 못하고 비틀거리도다." 하시니라.
161
종도들에게 하문하시기를 "내가 비록 세상을 떠나더라도 너희들이 마음을 변하지 않고 믿겠느냐?" 하시므로 모두 "어찌 변할 리가 있사오리까?" 하니 다음의 글 한 절을 외워 주시니라. 無語別時情若月 有期來處信通潮 무어별시정약월 유기래처신통조
162
상제님께서 백지 7장에 각각 "병자기이발(病自己而發) 장사병쇠(葬死病衰) 왕관대욕(旺冠帶浴) 생양태포(生養胎胞)"를 쓰셔서 봉하신 다음, 형렬에게 하명하시기를 "전주에 가서 누구누구 등 7인에게 이 글을 나누어 주고 돌아오라." 하시니라. 종도들이 그 글의 뜻을 여쭈니 "지금은 말하여도 모를 것이요, 성공한 후에는 스스로 알게 되리라." 하시니라. 형렬이 명을 받들고 전주에 가서 김낙범 · 김병욱 · 김광찬 · 김준찬 · 김윤근 등 5인에게 나누어 주고 나머지 두 장은 사람이 없어 전하지 못하고 돌아오니 찾아서 전하지 않았음을 책망하시니라.
163
10월에 낙범에게 명하셔서 백미 20말을 약방에 들여 두셨는데, 형렬이 마침 양식이 떨어져서 갑칠을 시켜 그 쌀에서 반 말을 갈라내었더니 상제님께서 아시고 꾸짖으시니라.
164
이달에 고부 와룡리에 임어하셔서 종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이제 혼란한 세상을 바르게 하려면 청국 광서제(光緖帝)에게 응기된 황극신(皇極神)을 옮겨 와야 하리니 황극신이 이 땅으로 옮기게 된 인연은 송우암이 만동묘(萬東廟)를 세움으로부터 시작되었으니라." 하시니라. 상제님께서 밤마다 시천주에 친히 곡조를 붙이셔서 종도들에게 연송하게 하시되 이렇게 하신 지 며칠 후에 "이 소리가 상여소리와 같도다. 상여소리를 어로라 하느니 어로(御路)는 곧 임금의 길이라. 이로써 황극신의 길을 틔웠노라." 하시고 큰 소리로 "이제 상(上)씨름이 넘어간다." 하시니라. 또 "세계일가(世界一家) 통일정권(統一政權)의 공사를 행하리라." 하시며 종도들을 엎드리게 하시고 "이제 만국제왕(萬國帝王)의 기운을 걷어 내노라." 하시니 문득 구름과 같은 이상한 기운이 제왕의 거둥 모양을 이루어 허공에 벌려 있다가 사라졌는데, 이때 청국 광서제가 붕(崩)하니라.
165
와룡리 경수의 집에서 공우에게 하문하시기를 "너의 살과 나의 살을 떼어서 쓸 곳이 있는데, 네 뜻이 어떠하뇨?" 하시므로 "쓸 곳이 있으시면 쓰시옵소서." 하니 그 후에 살을 떼신 일은 없으나 다음날부터 상제님과 공우가 매우 수척하여지니라. 공우가 여쭈기를 "살을 떼어 쓰신다는 말씀만 하시고 행하지 않으셨음에도 선생님과 제가 수척하여지옴은 무슨 연고(緣故)니이까?" 하니 "살은 이미 떼어 썼느니라. 천지의 운도가 사람의 살을 쓰려 하는데 만일 허락하지 않으면 공사가 되지 않음이니라." 하시니라.
166
종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범의 성질이 너무 사납다 하므로 그 성질을 알아보려고 일찍이 객망리 시루산에서 호둔(虎遁)을 하여 보매, 모든 인간이 개나 돼지와 같이 보이니 범을 그대로 두면 인간에 많은 해를 끼치겠으므로 종자만 남겨 두고 없애었노라." 하시니라.
167
하루는 공사를 보시며 다음의 글을 써 불사르시고 말씀하시기를 "이는 천지귀신축문(天地鬼神祝文)이니라." 하시니라. 천지귀신축문 所願人道 願君不君 願父不父 願師不師 소원인도 원군불군 원부불부 원사불사 有君無臣 其君何立 有父無子 其父何立 유군무신 기군하립 유부무자 기부하립 有師無學 其師何立 大大細細 天地鬼神垂察 유사무학 기사하립 대대세세 천지귀신수찰
168
신원일과 최덕겸에게 하명하시기를 "너희 두 사람이 김덕찬의 집 머리방을 치우고 7일간을 한 도수로 하여 두문불출(杜門不出)하며 중국 일을 가장 공평하게 재판하라. 이 재판으로 중국 일을 결정하리라." 하시므로 두 사람이 하명대로 공부에 전심하니라. 7일이 지난 후에 원일을 부르셔서 "중국재판을 어떻게 하였느냐?" 하고 하문하시므로 "청나라 조정이 정치에 실패하고 여러 나라의 침략을 당하여 백성이 의지할 곳이 없사오니 이는 하늘이 주시는 기회이옵니다. 선생님의 무상(無上)하신 권능으로 이를 평정하시고 제위에 오르사이다. 옛말에도 '천여불취(天與不取)면 반수기구(反受其咎)라' 하였나이다." 하니 상제님께서 대답하지 않으시니라.
169
다시 덕겸에게 "너는 어떻게 재판하였느냐?" 하시니, 덕겸은 7일간 공부하여도 별다른 생각이 없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물중지대(物重地大)하기 세계에 짝이 없고 예악문물(禮樂文物)이 크게 발달되었던 대명제국(大明帝國)의 산하와 인민이 이적(夷狄)의 칭호를 받던 청국에게 정복되었으니 어찌 원한이 맺히지 않으리이까? 이제 그 국토와 주권을 회복하여 주심이 옳을까 하나이다." 하니라. 상제님께서 무릎을 치시며 칭찬하시기를 "네가 재판을 잘하였도다. 이 재판으로 인하여 중국을 회복되게 하리라." 하시니라. 원일이 불평하기를 "이제 명나라는 해원이 되옵지마는 우리나라는 어떻게 되나이까?" 하니 "중국인민이 부흥하여야 우리도 부흥하리라. 중국이 오랫동안 조선의 조공을 받아왔으나, 이후로 25년 만이면 보은신(報恩神)을 중국에서 조선으로 넘겨 오리니 그 공사는 진주가 하리라." 하시니라.
170
하루는 남향으로 누우시며 덕겸에게 명하시기를 "내 몸에 파리를 앉지 못하게 쫓으라." 하시고 침수에 드시니라. 반 시간쯤 후에 덕찬이 덕겸에게 "점심을 먹으라." 하여도 덕겸이 "선생님의 명령으로 인하여 가지 못한다." 하자, 덕찬이 다시 "잠드셨으니 나오라." 하므로 파리를 멀리 쫓아 놓고 나가려 할 때, 상제님께서 갑자기 일어나시며 "네가 밥을 얻어먹으러 다니느냐? 공사를 보는 중에 그런 법이 없으니 차례로 돌려먹으라." 하시니라.
171
상제님께서 백지에 태극을 무수히 그리시고 또 그 네 귀퉁이에 다른 글자를 쓰신 다음, 덕찬에게 동도지(東桃枝)를 여러 개 꺾어 오게 하셔서 덕겸에게 "태극을 세는데 열 번째가 될 때마다 동도지 하나씩 입에 물고 세도록 하라." 하시므로 그대로 하여 다 세어 보니 49개니라. 상제님께서 "맞았도다. 만일 잘못 세었으면 큰일이 나느니라." 하시며 동도지를 드시고 공중을 향하여 큰소리로 "나머지 하나를 속히 그리라." 하신 다음, 그 종이로 두루마리를 만드셔서 그 후에 약방 둔궤 앞에서 불사르시니라. 또 "백지에 용(龍)자 한 자를 써서 약방 우물에 넣으라." 하시므로 그대로 하니 그 종이가 물속으로 들어가자 물이 솟구치니라.
172
공우에게 고부에 가서 돈을 주선하여 오도록 하명하셔서 약방을 수리하신 다음, 갑칠에게 활 한 개와 화살 아홉 개를 만들게 하셔서 공우로 하여금 천장을 쏘아 맞히게 하시고 "이제 구천을 맞혔노라." 하시니라. 또 "고부 돈으로 약방을 수리함은 선인포전(仙人布氈) 기운을 씀이니라." 하시니라.
173
백암리 근처에 호환(虎患)이 많다는 말을 들으시고 호피(虎皮) 담요를 펴놓으시며 말씀하시기를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 짐승을 제어(制御)함이 옳은데, 이 짐승은 사람을 잡아먹으니 어찌 괴이한 변이 아니리오? 그 악기가 눈에 있으니 악기를 제거하리라." 하시고 범의 눈에 먹물을 찍으시더니 그 후로는 호환이 없어지니라.
174
약방에서 백지 한 권을 가늘게 끊어 풀로 이으신 다음, 사립문과 집 앞 감나무에 맞추어 자르셔서 한 끝을 약방 문구멍으로 빼내어 방안에서 감으시며 원일에게 푸른 청솔가지에 불을 붙여 부채질을 하게 하시니, 집이 크게 흔들리므로 종도들이 모두 놀라 문밖으로 뛰어나가니라. 백지를 다 감아 변소 보꾹에 달아매시고 경학에게 불을 붙이고 빗자루로 부쳐 변소를 다 태우게 하시며 "종이가 모두 탔는가 보라." 하시므로 자세히 살피니 과연 한 조각이 변소 옆 대나무 가지에 걸려 있으니라. 그대로 아뢰매 속히 태우게 하시고 하늘을 우러러보시며 "속하도다." 하시므로 모두 보니 햇무리가 한 쪽이 터졌는데, 그 남은 종잇조각이 탐에 따라 햇무리가 완전히 이어지니라.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는 기차기운을 돌리는 공사니라." 하시니라.
175
최창조의 집에 행재하실 때, 짚을 축이셔서 상투 모양으로 맺기도, 풀기도 하시며 "머리를 깎으리니 가위를 가져오라." 하시고 글을 써 불사르신 다음, 짚은 땅에 묻으시니라.
176
또 종도 수십 인을 둘러앉히시고 "각기 글 세 자씩을 부르라." 하시므로 천자문의 처음부터 부르기 시작하여 최덕겸이 일(日)자까지 부르매 말씀하시기를 "덕겸은 일본왕도 좋아하느냐? 남을 따라 부르지 말고 각기 제 생각대로 부르라." 하시니라. 그 다음날 밤에 담뱃대의 진을 빼내시며 덕겸에게 "한번 잡아 놓치지 말고 빼내어 문밖으로 내버리라." 하시므로 명하신 대로 하니 온 마을의 개가 일시에 짖으니라. 덕겸이 여쭈기를 "어찌 이렇듯 개가 짖나이까?" 하니 "대신명이 오는 까닭이니라." 하시므로 "무슨 신명이옵니까?" 하매 "시두(時痘)손이니라." 하시고 이어 "대신명은 천자국이라야 들어오느니라." 하시니라.
177
양지책에 그림과 글을 무수히 쓰신 다음, 한 장씩 떼셔서 종도들로 하여금 마음대로 무수히 찢게 하신 후에 한 조각씩 세어서 불사르시니 모두 383조각이니라. "한 조각이 부족하니 자세히 찾으라." 하시므로 두루 찾으니 사람을 그린 한 조각이 요 밑에 들어 있으니라. 이에 마저 불사르시며 "이것이 곧 황극수(皇極數)라, 당요 때에 나타났던 수가 이제 다시 나타났도다." 하시니라.
178
하루는 등불을 처마 밑에 다시고 공사를 행하시며 "오랜만에 어렵게 빠져나오도다." 하시고 글을 쓰시니 이러하니라. 面分雖舊心生新 只願急死速亡亡 면분수구심생신 지원급사속망망 虛面虛笑去來間 不吐心情見汝矣 허면허소거래간 불토심정견여의 歲月汝遊劍戟中 往劫忘在十年乎 세월여유검극중 왕겁망재십년호 不知而知知不知 嚴霜寒雪大鴻爐 부지이지지부지 엄상한설대홍로
179
11월에 김광찬이 개벽을 속히 이루지 않으심을 불평하여 항상 좌중(座中)을 시끄럽게 하며 "내가 불고가사하고 다년간 선생님을 수종함은 하루빨리 새 세상을 보자는 것인데, 날짜만 미루어져 집에 가서 집안 식구들을 대할 낯이 없으니 차라리 스스로 생명을 끊음만 못하다." 하니라, 상제님께서 들으시고 타이르시기를 "모든 일이 욕속부달이니라. 개벽이란 것은 때와 기회가 있느니 마음을 눅여 평안히 하라. 사지종용(事之從容)도 자아유지(自我由之)하고 사지분란(事之紛亂)도 자아유지(自我由之)하느니 자방(子房)의 종용(從容)과 공명(孔明)의 정대(正大)를 본받아 어리석음을 면하라." 하시고 또 "죽는 일은 장차 내게서 보라." 하셨으나 종도들은 끝내 어의를 깨닫지 못하니라.
180
이달에 고부 와룡리 신경수의 집에 행재하시며 벽 위에 두문동성수(杜門洞星數)를 써 붙이시니 다음 장과 같으니라.
181
차윤경이 동곡에 와서 상제님을 뵙고 고부인이 안질로 고생함을 아뢰니 "이제 돌아갔다가 내일 태인 살포정에서 나를 만나라." 하시니라. 윤경이 돌아갔다가 살포정에 갔으나 상제님께서 임어하지 않으셨으므로 소투원 음식점에 가니 주인이 "선생님께서 새올 창조의 집으로 가시며 그대가 오면 그곳으로 보내라 하셨느니라." 하므로 새올로 가는데 도중에 일본 군사 수백 명이 길에 진을 치고 통행인의 주소와 행방 출타 이유 등을 조사하니라. 새올에 가서 상제님을 뵈니 "오늘 밤 자지 말고 밖에서 순찰하라." 하신 다음, 닭이 운 후에 거느리시고 백암리로 출어하시니라.
182
경학의 집에서 아침 수라를 진어하시고 다시 정읍으로 행행하시는데, 혹 앞서기도 뒤서기도 하시면서 말씀하시기를 "이 길에는 일본인을 보는 것이 불가하니라." 하시니라. 상제님께서 정읍 노송정(老松亭)에 임어하셔서 "좀 지체함이 옳으니라." 하시고 반식경을 지내신 다음, 다시 행행하셔서 큰 연못가에 임어하시니 기병이 많이 오다가 되돌아간 자취가 있으니라. 이를 보시고 "저희들이 어찌 대인의 앞길을 막으리오?" 하시므로 윤경이 그 근처 사람에게 물으니 "방금 일본군 기병 수십 명이 달려오다가 그곳에서 되돌아갔다." 하니라.
183
여기서 대흥리로 가려면 길이 두 갈래로 나뉘어 한 길은 정읍 읍내를 지나가는 큰길이고, 한 길은 사잇길이니라. 윤경이 어느 길로 향하실지를 여쭈니 "군자가 어찌 사잇길로 다니리오?" 하시며 큰길로 읍내를 행행하시는데 좌우에 즐비한 일본인 상점에 한 사람도 밖에 나선 일본인이 없으니라.
184
27일 밤에 상제님께서 종도들에게 하명하셔서 "경주용담(慶州龍潭) 대도덕(大道德) 봉천명(奉天命) 봉신교(奉神敎) 대선생전(大先生前) 여율령(如律令) 심행(審行) 선지후각(先知後覺) 원형이정(元亨利貞) 포교오십년공부(布敎五十年工夫)"를 읽게 하시며 고부인을 재우시더니, 동틀 무렵에 부인이 눈을 뜨매 뜨거운 눈물이 많이 흘러내리고 이어서 안질이 나으니라. 며칠 동안 부인의 안력을 검사하시는데 깃발 수십 개를 세우시고 그 아래 한 사람씩 서게 하신 다음, 사람들의 이름을 일일이 물어 답하게 하시고, 또 깃발에 글자를 쓰셔서 물어 답하게 하시며 밤에는 등불을 향하여 불 모양을 물어 분명히 답하게 하시니라. 하루는 색 저고리를 부인에게 입히시고 밖으로 나가서 집을 돌아 후문으로 들어오게 하시며 미리 엎어 두신 양푼을 들게 하시므로, 부인이 들며 그 밑에 있는 머리카락을 알아보니 "이제는 염려 없느니라." 하시니라.
185
상제님께서 경석의 검은 두루마기를 입으시고 속옷을 벗으신 다음, 긴 수건으로 허리를 매시고 종도들에게 "이러하면 일본 사람과 같으냐?" 하시니라. 모두 "비슷하나이다." 하고 아뢰니 "내가 어려서 서당에 다닐 때 한 아이와 글을 겨루다가 그 아이가 지고 다른 서당으로 옮기니라. 그 후에 병으로 죽었는데 그 신명이 원한을 품었다가 이제 내게 와서 해원하여 주기를 요구하므로, 어떻게 하면 해원이 될까 물으니 내가 일본을 싫어하는 줄 알고 일본 의복을 입으라고 하여 이렇게 함이니라." 하시니라.
186
고부인의 모친이 단독(丹毒)으로 앓다가 상제님께 찾아오니 "왕대 뿌리에 왕대 나고 시누대 뿌리에 시누대가 나느니 딸이 잘되도록 축수하시오." 하시매 단독이 곧 나으니라.
187
이달 28일에 상제님께서 경석의 집에 임어하셔서 포정소(布政所)를 정하시고 공사를 시작하시니라.
188
상제님께서 마당에 말을 엎어놓으시고 그 위에 요를 까신 다음, 왼손에 칼, 오른손에 망치를 들고 앉으셔서 고부인에게는 땅에 앉게 하시며 말을 가리키시니라. 다시 부인으로 하여금 칼과 망치를 들고 말 위에 앉게 하시고 상제님께서는 땅에 앉으셔서 부인에게 말을 가리키게 하시니라.
189
상제님께서 북향으로 서시고 부인에게는 남향으로 마주 향하여 서게 하신 후에, 주안상을 그 가운데에 차리게 하시고 무수히 글을 쓰셔서 주안상 위에 놓으시고 부인과 함께 서로 절하시니라.
190
하루는 백지에 24방위를 둘러쓰시고 중앙에 혈식천추(血食千秋) 도덕군자(道德君子)"를 쓰신 다음, 말씀하시기를 "천지가 간방(艮方)으로부터 시작하였다 하나 그것은 그릇된 말이요, 24방위에서 동시에 이루어졌느니라." 하시니라. 또 "이 일은 남조선(南朝鮮) 배질이라, 혈식천추 도덕군자의 신명들이 배질을 하고 전명숙이 도사공(都沙工)이 되었느니라. 그 신명들이 만인의 앙모(仰慕)와 천추의 혈식을 받게 된 연유는 모두 일심에 있느니라. 그러므로 오직 일심을 가진 자가 아니면 이 배를 타지 못하리라." 하시며 공사를 행하신 다음 불사르시니라.
191
이달 어느 날 아침에 공우를 거느리시고 대흥리로부터 태인 새올 최창조의 집으로 행행하시는데, 공우는 해가 높아지면 언 길이 녹을 것이므로 진 신발을 신고 나서니라. 상제님께서 나무라시며 손으로 동쪽 산에 오르는 해를 세 번 누르는 형용을 하시니 해가 오르지 못하다가 살포정 주막에 임어하셔서 쉬시매 그제야 높이 솟아오르니라.
192
창조의 집에 임어하셔서 벽력표(霹靂票)를 묻으시니 우레가 크게 일어나며 천지가 진동하므로 즉시 거두시고, 이튿날 동곡약방으로 환어하시니라.
193
창조의 집에 행재하실 때, 공우에게 하문하시기를 "네가 눈을 많이 흘기느냐?" 하시므로 "그러하나이다." 하고 아뢰니 "집으로 돌아가 있으라." 하시니라. 공우가 집으로 돌아오는데 눈이 가렵고 붓더니 집에 이르매 안질이 크게 나서 달포를 앓다가 하루는 씻은 듯이 나으므로 상제님께 와서 뵈니 "안질로 고생하였느냐?" 하시며 웃으시니라. 원래 공우는 성질이 사납고 악착스러워 싸움을 즐기고 눈짓이 곱지 못하더니 이로부터 성질이 부드러워지고 눈짓이 고와지니라.
194
하루는 공사를 행하실 때 글을 쓰시며 "체면장(體面章)이라" 하시니 이러하니라. 維 歲次 戊申 十二月 七日 道術 0 0 0 敢昭告于 유 세차 무신 십이월 칠일 도술 0 0 0 감소고우 惶恐伏地 問安氣體候 萬死不忠不孝無序身 泣祝於君於父於師 황공복지 문안기체후 만사불충불효무서신 읍축어군어부어사 氣體候大安 千萬伏望伏望 기체후대안 천만복망복망
195
상제님께서 종도들에게 각각 소원을 하문하시는데, 경석은 열지(裂地)를 원하므로 말씀하시기를 "너는 병부(兵部)가 마땅하니라." 하시니라. 경석이 불만히 여기니 "직신(直臣)이 아니면 병권을 맡기기 어려우므로 유독 네게 맡김이니라." 하시니라.
196
공우가 과음으로 실수가 많더니, 하루는 상제님께서 "네가 술을 즐기니 주량을 보리라." 하시며 술을 많이 주시므로 연속하여 받아 마시고 크게 취하매 "모두 한 잔 주량이로다." 하시니라. 공우가 이후로는 술을 한 잔만 마셔도 크게 취하여 견디지 못하니라.
197
덕찬이 아들의 혼인을 지내려 하매, 여러 사람이 물품과 돈으로 부조하는데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부조할 것이 없으니 일기로나 부조하리라." 하시니라. 이즈음 일기가 연일 험악하여 심히 염려되더니 그날은 날씨가 맑고 온화하니라.
198
하루는 원일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내종(內腫)으로 죽게 되었으니 살리려 하노라." 하시므로, 원일이 놀라 아뢰기를 "아무 병도 없사옵니다." 하매 "그렇지 아니하니 국수를 사서 잘 말아 오라." 하시니라. 원일이 하명대로 하니 한 그릇을 먹이시고 "속이 어떠하냐?" 하시므로 "별로 다른 일이 없사옵니다." 하고 아뢰니라. 다시 한 그릇을 먹이시고 또 하문하시므로 "속이 쓰리나이다." 하니 "대변을 보고 살펴보라." 하시니라. 원일이 나가서 대변을 보니 전부 고름이니라.
199
도삼의 딸이 병들어 죽었는데, 그 아내가 울며 "선생님께서 계시면 이 아이는 살리실 터인데 지금 어디 계신지 알 수 없으니 어찌하리오?" 하더니, 저물 무렵에 상제님께서 임어하셔서 "이 아이가 죽지 않았으니 울지 말라. 울면 살리지 못하리라." 하시고 도삼에게 "달 속에 무엇이 있는가 보라." 하시니라. 도삼이 밖에 나가 보고 와서 "달 가운데 어린 아이가 있나이다." 하매 "네 딸이 살았으니 이름을 월례(月禮)라 하라." 하시더니 과연 그 딸이 다시 살아나니라.
200
상제님께서는 병을 아뢰는 자가 있으면 세 손가락으로 담뱃대를 짚어 진맥하기도 하시고, 혹 방바닥을 짚어 진맥하기도 하시니라. 또 병자와의 관계를 물으셔서 일가나 친척이 되지 않는다 하면, 다시 그 아버지나 형과의 관계를 물으시고, 그래도 아무 관계가 없다고 하면 "어찌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이 왔느냐?" 하시며 물리치셨으나 그 병은 낫게 하시니라.
201
종도들 중에 병고가 있어 아뢰는 자가 있으면 아무 법을 베푸심이 없어도 나았으며, 만일 위태로운 지경에 이른 자에게는 그 병 증세를 친히 대신하여 앓으시면 곧 나으니라. 가령 배 앓는 사람이 있으면 "배 아프다." 머리 앓는 사람이 있으면 "머리 아프다." 하고 한 번 말씀하실 따름이고 다른 치료가 없으셔도 병은 모르는 사이에 절로 나으니라.
202
12월 20일에 납향절(臘享節)에 대흥리에서 천지대신문을 여시고 공사를 행하시며 낮부터 밤까지 많은 글을 쓰시고 "이는 무신(戊申) 납월공사(臘月公事)이며 삼계의 대공사니라." 하시니라. 이때 종도들에게 24절후를 읽히신 다음, 밤중에 경석의 집 앞 버드나무 아래 정렬하게 하시고 북쪽을 향하여 휘파람을 부시니, 문득 방장산(方丈山)으로부터 실구름 한줄기가 일어나서 사방을 둘러 문지방 모양을 이루니라. 상제님께서 훈계하시기를 "곤이내(閫以內)는 짐(朕)이 제지(制之)하고 곤이외(閫以外)는 장군(將軍)이 제지(制之)하라." 하시니라.
203
하루는 종도들에게 "과거의 모든 명장의 명단을 들이라." 하명하시므로, 경석이 여쭈기를 "창업군주(創業君主)도 명장이 되옵니까?" 하니 "그러하니라." 하시니라. 경석이 모든 창업군주와 명장을 기록하고 끝에 전명숙을 써 올리니 "왜 전명숙은 맨 끝에 썼느냐?" 하시므로 "왼편으로부터 보시면 전명숙이 첫머리가 되옵니다." 하고 아뢰매 "네 말이 옳도다. 전명숙은 진실로 만고명장이라, 백의한사(白衣寒士)로 일어나서 능히 천하를 움직였느니라." 하시고 다른 종도들이 써 올린 것은 보지 아니하시니라.
204
경석에게 하명하시기를 "전날에는 네가 내 말을 좇았거니와 이 공사에는 내가 네 말을 좇으리니 묻는 말에 잘 생각하여 답하라." 하시고 "서양사람이 발명한 모든 문명이기(文明利器)를 그대로 두어야 옳으랴, 거두어 없애야 옳으랴?" 하시니라. 경석이 "그대로 두는 것이 인간 생활에 이로우리이다." 하니 "네 말이 옳도다. 그들의 문명 이기는 하늘로부터 내려온 것이니라." 하시고, 또 여러 가지를 하문하신 다음, "네 말에 따라 공사로써 결정하였노라." 하시니라.
205
하루는 30장의 백지 책에 앞의 15장에는 장마다 "배은망덕 만사신 일양시생(背恩忘德 萬死身 一陽始生)"을 쓰시고 뒤의 15장에는 "작지부지 성의웅약 일음시생(作之不止 聖醫雄藥 一陰始生)"을 쓰신 다음, 경면주사 가루와 보시기 한 개를 놓으시고 광찬에게 "이 공사는 죽고 사는 길을 결정하는 일이니 잘 생각하여 말하라." 하시니라. 김광찬이 "선령신을 부인하거나 박대하는 자는 살 기운을 받기 어려우리이다." 하니 상제님께서 한참 생각하시다가 "네 말이 옳도다." 하시고 보시기를 종이로 싸시고 주사 가루를 묻히셔서 책장마다 찍으시며 "이것이 마패(馬牌)니라." 하시니라.
206
차윤경에게 하명하시기를 "오늘 밤 너의 집에 8인을 모아 놓고 내게 알리라." 하시므로 명하신 대로 하였는데, 한 사람이 더 와서 9인이 되니라. 윤경이 상제님께 사유를 고하니 "무방하니라. 1인은 나의 시종으로 쓰리라." 하시고 윤경의 집에서 등불을 끄신 다음 1인을 데리고 중앙에 서시며 8인을 8방으로 벌여 세우신 후에 '건감간진손이곤태(乾坎艮震巽離坤兌)'를 외우게 하시고, 참관하는 종도 20여 인에게도 각기 정좌하여 따라 외우게 하시더니 밤이 깊어서야 그치게 하시니라. 등불을 켜시고 그 사람들에게 각기 훈계하신 다음, 외눈의 차공숙(車公淑)에게 "너는 통제사(統制使)라, 연중 360일을 맡았으니 돌아가서 360인을 구하여 오라. 이 일은 곧 팔괘를 맡기는 공사니라." 하시니 공숙이 명을 받들고 며칠 후에 한 사람을 데리고 오니라. 상제님께서 그 직업을 하문하시므로 농사에 전념하고 추수 후에 한 번 시장 출입이 있을 따름임을 아뢰니 "참으로 순박한 백성이로다. 정좌하여 잡념을 두지 말라." 하신 다음, 윤경에게 "밖에 나가 구름이 어느 곳에 있는가 보라." 하시니라. 윤경이 나가 보매 하늘은 맑은데 오직 상제님 행재소 위에 돈닢만 한 구름 한 점이 있으므로 그대로 아뢰니 "다시 나가 그 구름이 어디를 향하여 퍼지는가 보라." 하시니라. 다시 나가 보매 벌써 구름이 온 하늘을 덮고 북쪽 하늘만 조금 터져 있으므로 그대로 아뢰니 "그쪽이 조금 터졌다고 안 될 이치는 없으리라." 하시고 두어 시간 후에 그 사람을 돌려보내시니라.
207
하루는 글을 쓰셔서 불사르시니 이러하니라. 人生世間 何滋味 曰衣曰食 衣食然後 曰色也 故 至於衣食色之道 인생세간 하자미 왈의왈식 의식연후 왈색야 고 지어의식색지도 各受天地之氣也 惑世誣民者 欺人取物者 亦受天地之氣也 각수천지지기야 혹세무민자 기인취물자 역수천지지기야
208
종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있는 기운 그대로 풀어낼 수밖에 없느니라." 하시고 "상량공사(上樑公事)를 보리라." 하시며 차경석에게 무명베를 가져오게 하셔서 공사를 보시는데, "무명베가 부족하다." 하시고 더 가져오게 하셔서 공사를 마치시니라.
209
또 하교하시기를 "이제 서양 사람에게 재주를 배워 그들을 대항하는 것은 배은망덕(背恩忘德) 줄을 범하는 일이므로, 판밖에서 남의 의뢰 없이 남모르는 법으로 일을 꾸미노라. 일본이 미국과 싸우는 일은 배사율(背師律)을 범하는 것이므로 참혹하게 망하리라." 하시니라.
210
"내가 보는 일이 한 나라의 일뿐이면 쉽지마는 천하사(天下事)인 고로 이렇듯 더디노라." 하시니라.
211
"이제 동양 형세의 위급함이 누란지세(累卵之勢)와 같아서 내가 붙잡지 아니하면 영원히 서양으로 넘어가리라." 하시니라.
212
"조선은 원래 일본을 지도하던 선생국이었느니 배은망덕은 신도(神道)에서 허락하지 않음으로, 일시 저들의 영유(領有)는 될지언정 영원히 영유되지는 않게 하리라. 속언에 중국을 대국이라 이르나 조선이 오랫동안 중국을 섬겨 왔으므로, 장래에는 소중화(小中華)를 대중화로 뒤집어 대국의 칭호가 조선으로 옮겨지게 하리니 과거의 말버릇을 버릴지니라." 하시니라.
213
"수운 가사에 '인물보고 가사(家舍)보고 모몰염치(冒沒廉恥) 추존(推尊)말라.' 함과 또 '선불처변(善不處變) 명불수(名不秀)라.' 함을 알아 두라." 하시니라.
214
“이때는 해원시대니라. 수천 년 동안 깊이 갇혀서 남자의 완롱(玩弄)과 사역(使役)거리에 불과하던 여자의 원을 풀어 정음정양으로 건곤을 바르게 하려니와, 이후로는 예법을 다시 꾸며 남자가 여자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는 함부로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게 하리라.” 하시니라.
215
"예전에는 억음존양(抑陰尊陽)을 하면서도 항상 하는 말에 '음양'이라 하여 양보다 음을 먼저 일렀으니 어찌 기이한 일이 아니리오? 이후로는 음양을 사실 그대로 바로 꾸미리라." 하시니라.
216
"수운 가사에 '세 기운이 갊아 있다' 함은 말은 소(蘇) · 장(張)의 구변(口辯), 글은 이(李) · 두(杜)의 문장(文章), 앎은 강절(康節)의 지식이 갈무려 있다는 말이니 모두 나의 비결이니라." 하시니라.
217
한 종도가 생식(生食)과 벽곡(辟穀)의 편리함을 여쭈니, 상제님께서 책망하시기를 "천하사는 생사이로(生死二路)뿐이니, 우리가 쉴 새 없이 하는 일이 하루에 밥 세 끼를 먹고 살려는 일이라, 먹지 않고 살기를 꾀하는 자에게 무슨 참 영위(營爲)가 있으리오?" 하시니라.
218
최내경의 아들이 가난한 생계를 위하여 헌병 보조원에 들어가려고 상제님께 아뢰니 하교하시기를 "총 끝이나 칼끝이라도 덕을 붙이면 관계없으리라." 하시니라.
219
김병욱이 차력약(借力藥)을 먹고자 하여 아뢰니, 책망하시기를 "네가 약 먹고 차력하여 태전(駄錢) 짐을 지겠느냐, 길품을 팔겠느냐, 난리를 치겠느냐? 그 약은 사약이니라." 하시니라.
220
종도들에게 하교하시기를 "천(天)이 이기예(以技藝)로 여서인(與西人)하야 이복성인지역(以服聖人之役)하고 천이 이조화(以造化)로 여오도(與吾道)하야 이제서인지악(以制西人之惡)이니라." 하시니라.
221
또 "삼생(三生)의 인연이 있어야 나를 좇으리라." 하시니라.
222
"선령의 음덕(蔭德)으로 나를 믿게 되었느니, 음덕이 있는 자는 들어왔다가 나가려 하면 신명들이 등을 쳐들이며 '벗어나면 죽는다' 할 것이요, 음덕이 없는 자는 설혹 들어왔더라도 이마를 내치며, '너 있을 곳이 아니라' 하리라." 하시니라.
223
"대학(大學)에 '물유본말(物有本末)하고 사유종시(事有終始)하니 지소선후(知所先後)면 즉(卽) 근도의(近道矣)리라' 하였으며, 또 '기소후자(其所厚者)에 박(博)하고 소박자(所博者)에 후(厚)하리 미지유야(未之有也)이라' 하였으니 인도(人道)의 규범이니라." 하시니라.
224
"사지당왕(事之當旺)이 재어천지(在於天至)요, 필부재인(必不在人)이라, 연(然)이나 무인(無人)이면 무천지고(無天地故)로 천지생인(天地生人)하야 용인(用人)하나니 이인생(以人生)으로 불참어천지용인지시(不參於天地用人之時)면 하가왈인생호(何可曰人生乎)아?" 하시니라.
225
"수운 가사에 '원처(遠處)에 일이 있어 가게 되면 이(利)가 되고 아니 가면 해(害)가 된다' 하였으니 알아 두라." 하시니라.
226
"또 '운수는 길어지고 조가튼 잠시로다.' 하였으니 도에 뜻하는 자의 거울이니라." 하시니라.
227
"현대의 허다한 주의로 각색 단체가 난립됨은 추성(秋成) 후에 오곡을 거두어 결속(結束)함과 같으니라." 하시니라.
228
어떤 자가 말하기를 "증산은 진실로 폭 잡기가 어렵다." 하니 상제님께서 아시고 "사람이 마땅히 폭 잡기가 어려워야 할지니, 만일 폭을 잡히면 범속에 지나지 못하느니라." 하시니라.
229
종도들에게 하교하시기를 "남이 트집을 잡아 싸우려 하여도 마음을 눅여서 지는 것이 상등인이라, 복이 되는 것이요. 분을 참지 못하고 어울려 싸우는 자는 하등인이라, 신명의 도움을 받지 못하리니 어찌 잘되기를 바라리오?" 하시니라.
230
또 "믿기를 활 당기듯 하라. 활은 너무 성급히 당기면 꺾어지느니 진득이 당겨야 하느니라." 하시니라.
231
"죄가 없어도 있는 듯이 하여 잠시라도 방심하지 말고 조심하라." 하시니라.
232
"어떤 대신이 대명(大命)을 받아 그 첫 공사로 장안 화항(花港)의 물정부터 물었으니 이것이 슬기로운 공사니라." 하시니라.
233
"무물(無物)이면 무성(無誠)이요, 무성(無誠)이면 불성(不成)이니, 마음을 알려면 먼저 물질의 성의로써 하느니라." 하시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