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극진경

제목 태극도 - 무극진경 7장
1
구천상제님께서 정미(丁未 : 도기 전 2, 단기 4340, 서기 1907)년 봄 불가지 김성국의 집에 행재하실 때, 그 면 황새물 문치도(文致道)가 뵈러 오는 길에 이성동(二聖洞) 송대유(宋大有)에게 들러 함께 오려 하니라. 대유는 마침 일이 있어 함께 오지 못하고, 폐병이 위기에 이른 사촌 아우를 딸려 보내며 치도에게 "선생님께서 고쳐 주시도록 잘 말씀드려 달라." 하고 돈 2원을 그 사촌 아우에게 주며 "이것이 약소하되 술이나 공양하라. 그리고 원금은 갚으라." 하니라. 병자가 돈을 받았다가 '갚으라'라는 말에 부담이 되어 1원을 돌려준 다음, 1원만 가지고 치도를 따라와서 상제님께 뵈니라. 치도가 상제님께 그의 병세를 아뢰며 고쳐 주시기를 간청하니 말씀하시기를 "인색한 자는 병을 고치지 못하느니라." 하시므로 "이 사람이 본래 가난하여 인색의 여부가 없나이다." 하고 아뢰매 "주는 것도 돌려주고 왔으니 어찌 인색이 아니리오? 병은 정성이 있어야 낫느니라." 하시니라.
2
병자가 부끄러워 돌아간 후에 치도가 돈 1원을 성국에게 주어 약간의 술과 안주를 준비하여 진상하게 하니, 상제님께서 "그 돈이 오늘 밤에 많이 불어날 것인데 부질없이 소비하도다." 하시니라. 치도는 그 돈이 오늘 밤의 노름 밑천임을 아무도 모르는데 상제님께서 미리 아심에 더욱 놀라 천신이 강세하신 줄로 확신(確信)하니라. 치도가 절하고 물러나올 때, "병자는 오늘 밤부터 보리밥을 먹으며 시천주를 24독 하게 하라." 하시므로 치도가 전하여 그대로 하니 오래지 않아 완쾌하니라.
3
3월에 광찬을 거느리시고 말점도(末店島)로 출어하실 때, 형렬과 갑칠을 만경 남포(南浦)로 부르셔서 하명하시기를 "내가 이제 섬으로 들어감은 천하창생의 죄를 대속(代贖)하는 공사로 인한 귀양길이니라. 20일 만에 돌아오리니 너희들은 지방을 잘 지키라." 하시니라.
4
4월에 상제님께서 말점도에서 공사를 마치시고 객망리로 환어하셨다가 태인으로 행행하시며 원일을 보내셔서 숙소를 정하게 하시니라. 이튿날 중도에서 형렬에게 하명하시기를 "나는 여기서 자리니 너는 먼저 가서 원일과 함께 자고 내일 아침에 하마정(下馬亭)에서 나를 기다리라." 하시니라. 형렬이 명을 받들어 행하고 다음 날 아침에 원일과 함께 하마정에 이르니 마침 장날이므로 사람들이 많으니라. 상제님께서 그들을 만나 말씀하시기를 "내가 오늘 벼락을 쓰리니 술을 가져오라." 하시므로 술을 올리매 잔을 받으셔서 조금 진어하신 다음, 공중에 뿌리시니 문득 광풍이 크게 일며 뇌전과 함께 폭우가 쏟아지니라.
5
이윽고 비바람이 그치자, 원일에게 하명하시기를 "경원의 집에 가면 알 일이 있으리니 빨리 다녀오라." 하시니라. 원일이 경원의 집에 가니 마침 나무장수가 비를 피하다가 말하기를 "나는 오늘 놀라운 일을 보았노라. 오는 길에 고부간의 두 여인이 싸우는데, 며느리가 아들을 낳은 지 7일도 못 되어 어젯밤에 남편이 죽었으나 초상도 치르지 아니한 채 갓난애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시어머니가 쫓아와서 어린애를 맡아 가라고 애걸하되, 며느리가 듣지 않고 행패를 부리다가 갑자기 벼락을 맞아 그 자리에서 죽었으니, 실로 천도(天道)가 소명(昭明)하도다." 하므로 돌아와서 들은 대로 아뢰니라.
6
상제님께서 들으시고 말씀하시기를 "내가 오늘 아침에 물망리(物望里)를 지날 때 그 젊은 부인이 이슬을 털며 빨리 지나가더니, 그 뒤로 노부가 달려오며 젊은 부인의 자취를 물으니라. 알고 보니 실로 천지법도상(天地法度上) 용서하지 못할 죄악이라, 더욱이 망부와는 저희들 스스로 작배(作配)한 것이라 하니, 천연(天緣)의 의를 저버리고 어찌 천벌을 받지 않으리오? 대저 부모가 맺어 준 것은 인연(人緣)이요, 스스로 맺은 것은 천연(天緣)이니라. 인연은 고칠 수 있으나 천연은 고치지 못하는 법인데 이는 인도와 천도를 함께 거슬림이니라." 하시니라.
7
상제님께서 원일을 거느리시고 태인 관왕묘(關王廟) 제원(祭員) 신경원의 집에서 공사를 행하실 때, 경원에게 말씀하시기를 "관운장이 조선에 와서 극진한 대우를 받았으니 그 보답으로 공사에 진력 협조함이 가하리라." 하시고 백지에 글을 쓰셔서 불사르시니, 경원은 처음 보는 일이므로 이상히 생각하니라. 다음날 경원이 다른 제원과 함께 관왕묘에 들어가 봉심(奉瀋)하니 관운장의 삼각수(三角鬚) 한 갈래가 떨어져 없으니라. 모든 제원은 이상하게 생각하였으나, 오직 경원은 상제님께서 전날 하신 말씀을 상기하고 관운장이 공사에 진력협조한 연유라 생각하니라. 이후로 태인 사람 김경학(金京學) 최창조(崔昌祚) 최내경(崔乃敬) 최덕겸(崔德兼) 등이 추종하니라.
8
용암리(龍岩里) 물방앗집 김사유(金士有)의 곁방에 사는 정태문(鄭泰文)이 상제님을 모시고 여러 날 같은 방에서 지낼 때, 풍토병으로 고생하다가 고쳐 주시기를 간청하니 상제님께서 윤허만 하시고 고쳐 주지 아니하시니라. 하루는 태문에게 "네가 병을 고치려 하느냐?" 하시므로 "고소원(固所願)이로소이다." 하고 아뢰니, 백지에 글을 써 주시며 "이 글을 네 베개 속에 넣고 자라.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개 한 마리가 방문을 향하여 앞발을 모으고 혈담을 토하리니, 곧 네 병을 개에게 옮겨 너를 낫게 함이니라. 그러나 그 개도 죽지는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태문이 명하신 대로 하니 과연 그러하니라.
9
태문이 상제님께 사은(謝恩)의 4배를 올리고 술과 안주를 외상으로 사서 진상하니, 말씀하시기를 "만일 외상값을 지체하면 사지 아니함만 못하리라." 하시므로 태문이 "내일 틀림없이 갚겠나이다." 하고 아뢰니라. 이튿날 상제님께서 정읍으로 떠나신 후, 태문이 외상값을 늦게 갚으려고 생각하니 문득 복통이 일어나므로 다시 "나으면 곧 갚으리라." 하고 결심하니 복통이 나으니라.
10
형렬의 사촌 아우 김준상(金俊相)의 아내가 두 발바닥에 종창이 나서 백약이 무효하여, 마침내 사경에 이르렀으므로 준상이 사방으로 의원을 구하니 어떤 의원이 말하기를 "그 종기 난 곳은 곧 용천혈(龍泉穴)이라, 다스리기 어려우나 지성으로 하여 100냥의 약값을 들이면 나으리라." 하니라. 준상이 탄식하며 "집안이 빈한하여 100냥을 마련하기 어려우니 집을 팔 수밖에 없도다." 하니라. 상제님께서 이 사정을 들으시고 준상을 불러 하문하시기를 "반드시 집을 팔아야 하느냐?" 하시므로 "집을 팔 수밖에 방법이 없나이다." 하고 아뢰니 "진실로 그러할진대 집문서를 써 오라. 내가 의원을 대신하여 고쳐 주리라." 하시니라. 준상이 문서를 써 올리니 받으셔서 불사르시고 손가락으로 물을 찍어 종기에 바르시니 곧 나으니라. 그 후에 집은 전과 같이 살게 하시고 다만, 사랑방 한 칸을 수리하여 후에 약방을 차리시니라.
11
동곡 박순여(朴順汝)가 반신불수(半身不遂)로 오랫동안 앓다가 상제님께 사람을 보내어 고쳐 주시기를 간청하니, 자현에게 하문하시기를 "순여의 병을 고쳐 줌이 옳으냐, 그대로 둠이 옳으냐? 네가 마음을 먼저 풀어야 하리라." 하시니라 자현이 "고쳐 주심이 옳으리이다." 하고 아뢰니, "순여가 네게 불평을 끼친 일이 많으니 너와 함께 가서 다스리리라." 하시며 순여의 집에 임어하셔서 휘파람을 길게 부시고 병든 팔다리를 주무르시며 더운물 한 그릇을 먹이시니 곧 나으니라. 본래 자현이 사교 관계로 순여에게 불평을 품었는데, 상제님께서 그 일이 척이 됨을 풀어 주심이니라.
12
동곡 이재헌(李載憲)의 처가 오래된 병으로 수척해져 뼈만 남았는데, 재헌이 상제님께 고쳐 주시기를 간청하니 "그 병은 평소에 욕설을 많이 하여 그 응보로 난 것이니 참회하면 나으리라." 하시므로 명하신 대로 하매 곧 나으리라.
13
단오절이 되어 종도들과 마을 사람들이 상제님을 모시고 학선암(學仙庵)으로 소풍하러 갈 때, 중도에서 소나기가 크게 몰려오므로 상제님께서 공중을 향하여 담뱃대를 한 번 휘두르시자 비가 다른 곳으로 비켜 가니라.
14
5월에 상제님께서 형렬의 집을 출어하시며 말씀하시기를 "이 길이 길행이라, 한 사람을 만나려 함이니 장차 네게 알리리라." 하시더니 용암리 음식점에서 정읍사람 차경석(車京石)을 만나시니라. 그는 전주로 가는 길에 여기서 점심을 먹으려고 쉬는데, 상제님께서 대삿갓에 풀대님으로 자현 등 몇 사람을 거느리시고 오시매, 경석이 그 초탈(超脫)하신 기상 의표와 순박하신 언어 행동을 보고 존경하여 인사를 드리니라. 상제님께서 온화하게 대하시고 오찬수라(午餐水喇)로 계탕(鷄湯)을 진어하시며 경석에게도 권하시므로, 경석이 황송하게 받자 벌 한 마리가 탕에 빠지니라. 경석이 수저를 멈추고 상서롭지 못한 징조인가 염려하니 말씀하시기를 "벌은 규모 있는 곤충이니 길상(吉祥)이니라." 하시니라.
15
경석이 상제님께 여쭈기를 "무슨 업을 하시나이까?" 하니 웃으시며 "의원(醫員)이라고 하면 좋으랴?" 하시니라. 또 여쭈기를 "어느 곳에 머무르시나이까?" 하니 "나는 동역객(東亦客) 서역객(西亦客) 천지무가객(天地無家客)이로라." 하시니라. 경석이 속으로 상제님의 경륜을 알고자 다시 "어떻게 하면 인권(人權)을 많이 얻으리이까?" 하니 "폐일언(蔽一言)하고 욕속부달(欲速不達)이니라." 하시니라. "자상한 뜻을 알지 못하겠나이다." 하고 아뢰니 "사람 기르기가 누에 기르기와 같아서 일찍 내나 늦게 내나 먹이만 도수에 맞춰 주면 다 같이 올리게 되느니라." 하시니라.
16
경석의 이번 전주행은 재무관과 쟁송(爭訟)할 일이 있어 그 문서를 가지고 가는 길인데, 문서를 상제님께 보이며 여쭈기를 "삼인회석(三人會席)에 관장의 공사를 한다 하오니 판단하여 주옵소서." 하니라. 상제님께서 그 문서를 한 번 훑어보신 다음 "이 송사는 그대에게 유리하리라. 그러나 피고의 열한 식구는 살길을 잃으리니 일의 곡직(曲直)은 여하간에 대인의 할 일이 아니라, 장부가 반드시 활기를 띨 것이요, 살기를 띰은 불가하니라." 하시므로 경석이 크게 감복하여 "과연 지당하옵나이다." 하고 그 문서를 즉석에서 불사르니라.
17
경석은 일찍이 동학신도로서 손병희(孫秉熙)를 따르다가 그 처사에 불만을 품고 길을 고치려 하던 참이니라. 이날 상제님을 뵙고 추종하려 하여 함께 숙소로 가니 숙식의 범절이 너무 간략하여 보기에 민망하니라.
18
상제님께서 경석의 떠나지 아니함을 괴로워하시며 물러가기를 독촉하셨으나, 경석은 자기 집으로 모시고자 간청하니 상제님께서 혹 화도 내시고 혹 욕도 하시며, 혹 쫓아내기도 하시니라. 경석이 문득 생각하니 수운 가사의 "여광여취(如狂如醉) 저 양반을 간 곳마다 따라가서 지질한 그 고생을 누구더러 한 말이며,,,, ."라는 구절의 뜻에 깊이 깨닫는 바 있어, 10일간을 머무르면서 집지(執贄)하기를 굳이 간청하니라. 상제님께서 하명하시기를 "네가 나를 따르려면 천만사를 전폐하고 오직 나의 가르치는 바에만 일심하여야 할지니, 이제 돌아가서 가사를 정리하고 다시 이곳으로 찾아오라." 하시므로 경석이 그제야 절하고 물러 나와 집에 돌아가서 모든 일을 정리하니라.
19
6월 초1일에 경석이 다시 용암리에 와서 상제님께 배알하고 정읍 자기 집에 임어하시기를 거듭 간청하매, 윤허하지 않으시다가 3일 후에야 윤허하시며 "내가 깊은 목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다가 겨우 벗어나 발목물에 당도하였는데, 이제 네가 다시 깊은 물로 끌어들이는 도다." 하시니라.
20
상제님께서 일진회가 일어난 후로는 삿갓을 쓰시더니 이날부터 의관을 정제하시니라. 경석을 거느리시고 정읍으로 행행하시다가 원평에서 군중에게 술을 사서 나누어 주시며 말씀하시기를 "이 길은 남조선 뱃길이니 짐을 채워야 떠나리라." 하시니라. 다시 출어하시며 "대진(大陳)은 일행(日行) 30리니라." 하시므로 경석이 이곳에서 30리 되는 고부 송내(松內) 박공우(朴公又)의 집으로 모시니 공우는 경석의 동류로서 동학신도였으며 마침 49일 동안 기도하는 중이니라.
21
상제님께서 경석과 공우에게 하교하시기를 "이제 만날 사람을 만났으니 통정신(通精神)이 나오노라. 나의 일은 비록 부모 형제 처자라도 모르는 일이니, 나는 서천서역(西天西域) 대법국(大法國) 천계탑(天階塔) 천하대순(天下大巡)이니라. 동학주문에 '시천주(侍天主) 조화정(造化定)이라' 함은 나의 일을 이름이니라. 내가 삼계대권으로 천지를 개벽하여 선경을 열고 조화정부를 세워 진멸지경에 이른 인간과 천지의 혼란을 바로잡으려 하여 삼계를 주시하다가 동방에 이르러 이 땅에 그친 것은 곧 참화 중에 빠진 무명약소(無名弱小)의 민족을 먼저 도와서 만고에 쌓인 원을 풀어 주려 함이니라. 나를 좇는 자는 무궁한 복을 얻어 불로불사하며 선경의 낙을 누리리니 이것이 참 동학이니라. 궁을가에 "조선강산 명산이라 도통군자 다시 난다." 하였으니 또한 너희 일을 이름이니라. 동학 신자간에 "대선생(代先生)이 갱생(更生)하리라."고 전하니 이는 대선생(大先生)이 다시 나리라는 말이니라." 하시니라.
22
이튿날 정읍 대흥리로 출어하실 때 공우에게 따로 말씀하시기를 "만났을 적에...." 하시니, 공우가 문득 동학가사의 "만나기만 만나보면 너의 집안 운수(運數)로다."라는 구절의 뜻을 깨닫고 드디어 상제님을 따라 나서니라.
23
용암리 앞 음식점에 임어하셨을 때 그곳 여주인이 연주나력(連珠瘰癧)으로 여러 해 동안 고생하다가 상제님께 고쳐 주시기를 애걸하므로, 종이에 글을 쓰셔서 그 집 개에게 던지시니 종이는 바람에 공중으로 날아가고 개는 그 자리에 엎어졌다가 일어났으며 여주인의 병은 곧 나으니라.
24
이날 상제님께서 대흥리 경석의 집에 임어하셔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르는 곳을 천지에 알려야 하리라." 하시며 글을 쓰셔서 서쪽벽에 붙이시니 뇌성이 크게 일어나므로 "속하도다." 하시고 그 글을 떼시자 뇌성이 곧 그치니라. 공우는 크게 놀라 감복하고, 마을 사람들은 맑은 날씨에 일어나는 천둥소리를 이상히 여기니라.
25
상제님께서 경석에게 하문하시기를 "이 집에서 지난 갑오년 겨울에 세 사람이 동맹한 일이 있느냐?" 하시니 경석이 시인하매, "너의 부친이 그 일로 인한 배신자의 밀고로 화를 입었느냐?" 하시므로 경석이 울며 "그러하나이다." 하고 아뢰니라. 또 "너의 형제들이 그 배신자에게 큰 원한을 품고 복수하기를 도모하느냐?" 하시므로 "자식 된 도리에 어찌 그러하지 아니하오리까?" 하고 아뢰니, "너희들이 그러한 마음을 품고 있음을 너희 부친이 크게 걱정하고 있으니 너희들은 마음을 돌리라. 이제는 악을 선으로 갚아야 할 때니라. 만일 악을 악으로 갚으면 악이 거듭 되풀이되어 후천에 악의 씨를 심는 것이 되느니, 너희들이 나를 따르려면 먼저 그 악한 마음을 버려야 할지니라." 하시니라. 경석의 4형제가 별실에 가서 서로 그 원한을 풀기로 결의하고 그대로 아뢰니 "뜰 아래에 짚을 편 다음, 청수 한 동이를 놓고 그 앞에서 너의 부친을 대하듯이 마음 돌렸음을 심고하라." 하시니라. 4사형제가 그대로 봉행하며 설움이 복받쳐 크게 우니 상제님께서 타이르시기를 "너희가 너무 슬퍼함을 부친은 오히려 싫어하니 그만 그치라." 하시며, "천고춘추아방궁(千古春秋阿房宮) 만방일월동작대(萬方日月銅雀臺)"를 벽에 써 붙이시며 "잘 기억하라." 하시니라. 그 후에 안내성(安乃成) · 문공신(文公信) · 신경수(申京守) · 박장근(朴壯根) 등이 이어 추종하니라.
26
상제님께서 이도삼에게 "글 석 자를 부르라." 하시므로 도삼이 천지인(天地人) 석 자를 부르니, "천상무지천(天上無知天)하고 지하무지지(地下無知地)하며 인중무지인(人中無知人)하니 지인하처귀(知人何處歸)리오?" 하시니라.
27
이때 광찬은 동곡에 있다가 경석의 추종을 싫어하여 "그는 본래 동학여당으로 일진회에 참가하여 의롭지 못한 일을 많이 행하였는데 이제 도문에 들어오면 선생님께 누가 되고, 우리의 힘써 닦음이 모두 허사가 되리라." 하며 날마다 상제님을 원망하니라. 형렬이 민망하여 대흥리에 가서 상제님께 뵙고 광찬의 불평을 아뢰며 "어찌 이런 성질 가진 자를 문하에 두시나이까?" 하니 말씀하시기를 "용이 물을 구할 때는 비록 가시덤불이 길을 막더라도 회피하지 않느니라. 돌아가서 잘 무마하라." 하시니라.
28
하루는 경석에게 다음의 옛시를 외워 주시더니 그를 거느리시고 순창 농암(籠岩) 박장근의 집에 임어하셔서 말씀하시기를 "이제 천하대세를 회문산 오선위기의 형세에 붙여 돌리려고 너에게 한 기운을 붙이노라." 하시니라. 잠시 후에 그 집 머슴을 부르셔서 "어젯밤에 무엇을 본 일이 있느냐?" 하고 하문하시니, 그가 아뢰기를 "어젯밤 꿈에 한 노인이 농바위를 열고 갑주(甲胄)와 대검(大劍)을 내어 주며 "이것을 가져다가 주인을 찾아 전하라." 하므로 제가 받아 이 방에 두었사온데 곧 저분이 앉은 자리이옵니다." 하며 경석을 가리키니라. 일찍이 그 지방에서는 농바위 속에 갑주와 대검이 들어 있는데 장군이 나면 내어 가지리라는 말이 전하여 오니라. 溪分洙泗派 峯秀武夷山 襟懷開霽月 談笑止狂瀾 계분수사파 봉수무이산 금회개제월 담소지광란 活計經千卷 行裝屋數間 小臣求聞道 非偸半日閑 활계경천권 행장옥수간 소신구문도 비투반일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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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암에서 여러 날 동안 공사를 행하시고 환어하시며 한시 한 수를 읊으시니 이러하니라. 經之營之不意衰 大斛事老結大病 경지영지불의쇠 대곡사로결대병 天地眷佑境至死 漫使兒孫餘福葬 천지권우경지사 만사아손여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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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제님께서 6월부터 두어 달 동안 대흥리 경석의 집에 행재하실 때, 공우가 여쭈기를 "제가 시종하옵기 달포 전에 천원장에서 예수교인과 다투던 중 큰 돌에 맞아 가슴뼈가 상하여 한참 혼절하였다가 겨우 일어나서 수십 일 치료를 받은 후에 보행은 하되, 아직 가슴에 손을 대지 못하고 고통 중이오니 고쳐 주옵소서." 하니라.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예전에 어느 길가에서 남의 가슴을 쳐서 사경에 이르게 한 일이 있으리니 그 일을 뉘우치라. 또 네가 몸의 병세가 좋아진 후에는 가해자를 찾아서 죽이려고 생각하나 네가 상해를 입힌 척이 그에게 붙어서 갚은 바이니 그만하기가 오히려 다행이니라. 네 마음을 잘 풀어 가해자를 은인과 같이 생각하면 곧 나으리라." 하시므로 공우가 이 말씀에 크게 감복하여 마음을 돌리니라. 며칠 후에 천원 예수교회에 12고을의 목사가 모여 대전도회를 연다는 말이 들리므로 공우에게 말씀하시기를 "네 상처를 낫게 하기 위하여 목사들을 모이게 하였느니라." 하시더니 그 후 3일 만에 공우의 상처가 완쾌하니라.
31
하루는 가물치회를 진상하니 상제님께서 진어하신 후, 문밖을 소요(逍遙)하시며 하늘을 우러러보시고 말씀하시기를 "그 기운(氣運)이 빠르도다." 하시므로 종도들이 우러러보니 가물치 형상의 이상한 기운이 동쪽을 향하여 떠나가니라.
32
종도들이 금사(琴師)를 불러 가야금을 타게 하고 유쾌하게 노는데, 상제님께서 금지하시며 말씀하시기를 "저 허공을 보라, 모든 일을 함부로 하기 어려우니라." 하시므로 종도들이 모두 우러러보니 가야금을 타는 형성과 여러 사람이 벌여 앉은 형상의 이상한 기운이 허공에 떠 있으니라.
33
중복 날 종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오늘 번개가 나지 아니하면 병충해가 생겨 농작물에 큰 해가 있으리니 잘 살피라." 하시니라. 종도들이 모두 주의하여 저물도록 살폈으나, 번개가 나지 않음으로 상제님께 사뢰기를 "천지가 어찌 생민(生民)에게 이렇듯 재앙을 내리나이까?" 하니, 상제님께서 마른 짚을 끊으셔서 화로에 꽂아 불사르시니 문득 북방에서 번개가 치니라. 종도들이 다시 "북방에만 번개가 치니 다른 지방 사람은 어찌되나이까?" 하니 사방에서 번개가 번쩍이므로 상제님의 권화(權化)에 모두 감복하니라.
34
하루는 신원일 박공우 등 여러 종도들을 거느리시고 태인 살포정 음식점에서 쉬시는데, 문득 뇌전이 크게 일어나며 벼락이 그 집에 떨어질 듯하므로 상제님께서 허공을 향하여 꾸짖으시니 그치니라. 공우는 전에 대흥리 경석의 집에서 벽에 글을 써 붙이셔서 뇌전을 일으키기도 하시고, 이번에는 꾸짖어 그치게 하심을 보고 상제님께서 천지조화를 임의로 행하시는 권능에 감복하여 더욱 두려워하고 공경하게 되니라.
35
상제님께서 공우에게 하교하시기를 "네가 오랫동안 식고(食告)를 하였으나 이제 나를 만났으니 식고는 내게로 돌릴지어다." 하시므로 공우가 크게 기뻐하며 그리하니라. 본래 공우는 동학의 통례대로 "대신사응감(大神師應感)"이라는 식고를 하지 않고 항상 " 하느님 뵈어지이다." 하는 발원으로 식고하다가 이제 하교를 받들고 생각하니 저의 심증을 통찰하시고 천지조화를 임의로 행하심을 보아 평생소원(平生所願)이던 하느님께서 강림하심이라고 믿어 의심하지 않으니라.
36
경석에게 말씀하시기를 "구월산(九月山)에 있는 네 선조의 묘 금반사치(金盤死雉)의 기운을 옮겨 오리라." 하시며 경석으로 하여금 춤을 추게 하시고 공우에게는 북을 치게 하시니라.
37
하루는 남기의 집에 임어하시니 남기가 아들을 꾸짖으매 아들이 불손한 말로 대답하고 밖으로 들락날락하다가 문득 문 앞에 서서 움직이지 못하고 진땀을 흘리며 큰소리를 연발하므로 온 집안이 크게 놀라 어찌할 바를 모르니라. 상제님께서 보시고 말씀하시기를 "왜 그렇게 고통하느냐? 마음을 풀라." 하시니 그제야 몸을 움직이며 정신을 차리니라. 집안 사람들이 그 연유를 물으니 "뜻밖에 정신이 혼미하고 숨이 막혀 호흡을 통하지 못하며 뼈마디가 굳어 굴신(屈伸)을 못하였나이다." 하니라. 상제님께서 하문하시기를 "그때에 네 가슴이 어떠하더냐?" 하시니 "심히 답답하여 견딜 수 없었나이다." 하므로 "네가 당한 바로써 네 부친의 마음을 헤아려 보라. 부친에게 그렇게 불순한 말을 하였으니 그 마음이 어떠하였으랴? 이로부터 뉘우쳐 다시는 그리하지 말지어다."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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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석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강령(降靈)을 받아야 하리니 '원황정기(元皇正氣) 내합아신(來合我身)'을 연송하라." 하시니라. 경석이 잠시 연송하다가 갑자기 소리 내어 울므로 "이는 신명에게 벌을 받는 울음이니라." 하시니 울음을 그치니라.
39
경석과 공우가 신안(神眼)으로 살피니 대소신명들이 상제님께 배알할 때는 반천무지식(攀天撫地式)으로 사배를 올렸으며 상제님께서는 읍(揖)으로 대하시니라.
40
공우가 대흥리에서 상제님을 모시고 동곡으로 갈 때, 과교리(科橋里)를 지나다가 문득 동학으로 여러 해 동안 고생하던 일이 생각나서 크게 통곡하니라. 상제님께서 보시고 하문하시기를 "무슨 일로 그다지 우느냐?" 하시므로 연속 눈물을 흘리고 울면서 "전날의 고생이 낱낱이 생각나서 황송하옵게도 저도 모르는 사이에 울음이 나서 금하지 못하였나이다." 하니 "이후로는 너의 일을 잘되게 하리니 그만 그치라." 하시자 비로소 그쳐지니라.
41
이해 가을에 농암 장근의 집에 행재하실 때, 종도들에게 하교하시기를 "이곳에 큰 기운이 묻혀 있으니 이제 풀어쓰리라. 전명숙과 최면암은 그 사람이 아니므로 도리어 해를 받았느니라." 하시고 공사를 행하시며 "영웅소일대중화(英雄消日大中華) 사해창생여락자(四海蒼生如落子)"의 시구를 읊으시니라. 이날 참석한 사람은 형렬 · 공신 · 광찬 · 원일 · 도삼 · 응종 · 갑칠 · 장근 등이니라. 상제님께서 백지고깔에 마장군(馬將軍)을 쓰셔서 문중방 위에 거시고, 또 짚으로 두 아름쯤 되는 인경(人定)을 만들어 방 가운데 다신 다음, 그 겉을 백지로 바르셔서 24방위 자와 다른 글자를 돌려쓰시고 그 위에 종이를 비늘같이 오려 붙이시니 그 모양이 쇠비늘을 붙인 갑옷과 같으니라.
42
장근에게 식혜 한 동이를 빚게 하셔서 이날 밤 초경에 식혜를 자배기에 담아 인경 아래에 놓게 하시고 공사를 행하시며 말씀하시기를 "회문산(回文山) 오선위기혈(五仙圍碁穴)에 바둑의 원조 단주(丹朱)의 해원 도수를 붙여 조선국운을 돌리려 하노라. 다섯 신선 중 한 신선은 주인으로 수수방관할 따름이요, 네 신선이 판을 대하여 서로 패를 써서 따먹으려 하니 시일만 천연하고 승부가 속히 나지 아니하는도다. 이제 최수운을 청하여 증인으로 세우고 승부를 결정하려 하느니 이 식혜는 수운에게 줄 것이니라." 하시니라.
43
이어 말씀하시기를 "너희들 중에 동학가사의 글귀를 아는 자가 있느냐?" 하시므로 몇 사람이 "기억하는 구절이 있나이다." 하고 아뢰니라. 상제님께서 백지에 "걸군굿 초라니패 남사당(男寺黨) 여사당(女寺黨) 삼대치"라 쓰시며 "이 글은 주문이니라. 외울 때에 만약 웃는 자가 있으면 죽으리니 주의하라. 또 이 글에 고저청탁과 곡조가 있으니 외울 때에 잘 맞추라. 맞지 않으면 신선들이 웃으리라." 하시며 친히 곡조를 맞추어 외우시므로 모두 따라 외우니 실내에 냉기가 도니라. 외우기를 멈추시고 "수운이 왔으니 조용히 들어 보라." 하시니 인경 위에서 "가장이 엄숙하면 그런 일이 왜 있으리?" 하는 소리가 나니라. 하문하시기를 "이 말이 어디 있느뇨?" 하시므로 한 사람이 "수운 가사에 있나이다." 하니 상제님께서 인경 위를 향하여 알아듣지 못할 두어 마디의 말씀으로 이야기를 나누시니라.
44
또 말씀하시기를 "조선을 서양으로 넘기면 인종이 다르므로 차별과 학대가 심하여 살아날 수 없을 것이며, 청국으로 넘기면 민중이 우둔하여 뒷감당을 못 할 것이요, 일본은 임진란 후로 도술 신명들 사이에 척이 맺혔으니 그들에게 넘겨주어야 척이 풀리리라. 그들을 수운의 주장 아래 두고 일시 천하통일지기(天下統一之氣)와 일월대명지기(日月大明之氣)를 붙여 주어 역사를 잘 시키려니와 한 가지 못 줄 것이 있으니 곧 '어질 인(仁) 자'라, 만일 '인'까지 붙여 주면 천하는 다 저들의 것이 될 것이라. '인' 자는 너희에게 붙여 주니 오직 '인'을 잘 지키라. 너희는 편한 사람이요, 저희는 너희 일꾼이 되어 일은 분명하게 잘할 것이나 갈 때에는 품삯도 못 받고 빈손으로 돌아가리니, 말 대접이나 후하게 하라." 하시니라.
45
이 공사를 마치시고 형렬에게 하명하시기를 "허미수(許眉叟)가 중수한 성천(成川) 강선루(降仙樓)의 1만2천 고물은 녹(綠)줄이 붙어 있고, 금강산 1만2천 봉은 겁살(劫殺)이 끼어 있으니 그 겁살을 벗겨야 하리라. 너는 광찬과 도삼을 데리고 동곡에 가서 아침저녁으로 청수 한 동이씩을 길어 스물네 그릇에 나누어 놓고 밤에는 칠성경을 21독하며, 백지를 한 방촌씩(方寸式) 오려 한 사람이 하루에 '모실 시(侍)' 자 4백 자씩 10일간을 써서 사방 벽에 붙이고 나를 기다리라." 하시므로 형렬이 그대로 받들어 행하니라.
46
이튿날 피노리 이남기(李南基)의 집에 임어하셔서 누렁개 한 마리를 잡아 개장국을 끓이게 하시고, 술 한 동이를 받아 오게 하신 후에 뒷산에서 가장 큰 소나무 한 그루를 베고 남방 황토를 파 오게 하시니라. 또 백지 세 장을 각각 청홍황(靑紅黃)의 삼색으로 물들이게 하셔서 이어 붙여 소나무 윗가지에 달게 하신 다음, 시천주를 쓰신 백지 세 장에 황토를 조금씩 싸서 함께 달아 집 앞에 세우시니 깃대와 같으니라. 말씀하시기를 "전명숙이 이곳에서 잡혔는데 사명기(司命旗)가 없어 포원(抱寃)이 되었으니 이 기를 세워 해원하노라." 하시니라.
47
이어 말씀하시기를 "개장국은 인간에서 먹는 음식인데 도가에서는 먹지 아니하므로 또한 원이 붙어 있으니 이제 이 국을 먹음으로써 해원 겸 개정(改政)하려 함이니라." 하시고 종도들도 함께 먹도록 하신 다음, 남기에게 명하셔서 돈 33냥을 벽장에 두게 하시니라.
48
이후에 다른 종도들은 돌려보내시며 공신에게 돈 33냥을 지니게 하시고 태인 행단(杏壇) 앞 음식점에 임어하셔서 술을 찾으셨으나 없다 하므로 "이런 음식점에 어찌 술이 없으리오?" 하시니라. 주모가 "새 독에 거르지 않은 새 술은 있나이다." 하므로 "이 공사는 새 술이라야 하고 안주는 이 집에 명이 다된 돼지가 있느니라." 하시고 글을 쓰셔서 주인으로 하여금 소지하게 하시고 돼지우리에 가 보게 하시니 돼지가 죽어 있으니라. 주인이 이를 보고 소란을 피우므로 진정시키시고 삶게 하시며 말씀하시기를 "이 돼지는 저 스스로 수천 명의 인명을 대신함이니 삶을 때 허락 없이 맛보는 자는 죽으리라." 하시니라. 돼지가 삶아지니 그릇에 담아 뜰 가운데 놓고 술을 걸러 마루 위에 놓게 하신 다음, 21자의 글을 쓰셔서 주인에게 소지하게 하신 뒤에 "신명들은 비록 축생(畜生) 하나의 혼이라도 잘 되게 인도하라." 하시니라. 또 큰 소리로 "글자 한 자에 하나씩의 도수면 족하리라." 하신 다음, 마을 사람들과 더불어 술과 안주를 나누어 진어하시니라.
49
이튿날 아침에 33냥을 음식점에 주신 다음, 출어하셔서 어느 솔밭 속을 지나시다가 문득 큰소리로 "이놈이 여기 있도다." 하시므로 공신이 놀라 옆을 보니 동자석이 서 있으니라. 원평으로 행행하시며 말씀하시기를 "뒷날 이곳에 일본 군사가 매복하여 수천 명을 상하게 될 곳이니라. 그러나 글자 한 자에 하나씩밖에 죽지 않게 하였느니라." 하시더니 그 후에 일진회원 수천 명이 떼를 지어 이곳을 지나는데, 일본 군사가 의병인 줄 알고 총을 쏘아 21명이 죽으니라.
50
원평을 지나 신암(新岩)에 임어하셔서 말씀하시기를 "들으니 손병희가 전주에 와서 서울에 교당을 짓는다고 신도들의 어린아이들 옷고름에 찬 돈까지 떼어다가 큰집과 작은집을 거느리고 산다 하니 그 무능함을 가히 알지니라. 만일 재능이 있으면 천하 집이 모두 저의 집이 될지니 집은 지어 무엇하리오? 이제 호남 각지에서 돈을 거두면 부하들은 망할 것인데, 누가 나서서 그 무능함을 꾸짖으면 대답하지 못하고 돌아가리라." 하시니라. 응종이 여쭈기를 "제가 찾아가서 혼을 내주겠나이다." 하니 "네가 진실로 쾌남아로다." 하시고, 또 "저희들은 다 구암(久庵)이요, 이곳은 신암이니 곧 도안(都安)의 집이니라." 하시니라. 이때 손병희가 호남지방을 순회하려다가 예정을 변경하여 돌아가니라.
51
신암을 떠나 동곡에 임어하셔서 양 한 마리를 잡아 그 피를 사기그릇에 담게 하시고, 손가락으로 찍으셔서 형렬 등이 벽에 써 붙인 1만2천 시(侍) 자에 바르시니 글자 수가 다하매 피도 또한 다하니라.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 글자의 모양이 아라사(俄羅斯) 병정과 같도다." 하시고 또 "사기는 김제로 옮겨야 하리라." 하시더니, 마침 김제 수각리(水閣里) 임상옥(林相玉)이 이르므로 그 사기 그릇을 주시며 "인부를 많이 부릴 때에 쓰라." 하시니라.
52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선천에는 삼상(三相)으로 인하여 음양이 고르지 못하니라." 하시고 "거주(居住) 성명(姓名) 서신사명(西神司命) 좌상(左相) 우상(右相) 8판(八判) 12백(十二伯) 현감(縣監) 현령(縣令) 황극후비소(皇極后妃所)"를 쓰셔서 광찬으로 하여금 약방 문지방과 맞추어 보게 하시니라. 광찬이 대어 보고 맞지 않음을 아뢰매 "일이 허사로다." 하시므로 경학이 "여백을 오려 내고 글자 쓴 곳만 대어 봄이 옳겠나이다." 하며 그대로 하니 꼭 맞으니라.
53
이후에 공우를 거느리시고 전주로 행행하시다가 세내(細川)에 임어하시니 점심때니라. 공우가 상제님을 모시고 고송암(高松庵)을 좇는 친구의 집에 찾아가 점심을 부탁하니라. 상제님께서 수라상을 받으시며 문득 "서양 기운을 몰아내어도 다시 몰려드는 기미가 있음을 이상히 여겼더니 뒷방에 딴전 보는 자가 있음을 몰랐도다." 하시고 공우를 명하셔서 "고송암에게 가서 물어보라." 하신 다음, 칠성경에서 문곡(文曲)의 위치를 제4위에서 제2위로 바꾸시니라.
54
11월에 동곡에 행재하실 때, 공우가 동곡으로 오는 길에 우연히 흥이 나서 "모시러 가자, 모시러 가자. 부처님 모시고 우리집으로 돌아가자." 하고 노래를 부르니라. 동곡에 이르러 상제님께 배알하니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집에 가기를 원하느냐?" 하시므로 "소원이로소이다." 하고 기뻐하니라. 상제님을 모시고 돌아가다가 용암리 물방앗집에 들어가 쉬는데 상제님께서 남쪽 하늘을 바라보시며 "높다 높다." 하시므로 공우가 바라보니 구름이 가득 끼었는데 하늘이 방석 한 닢 넓이쯤 통하며 바람이 슬슬 불고 눈이 내리니라. 공우에게 "나와 친구로 지내자." 하시니 공우는 그 말씀에 황공하면서도 이상히 여기는데, 또 "기운이 적다." 하시므로 공우가 저도 모르는 사이에 여쭈기를 "바람이 좀 더 불리이다." 하니 바람이 세게 부니라. 또 그렇게 말씀하시므로 "바람이 더 세어지리다." 하니 그때는 바람이 크게 불어 모래와 돌을 날리니라. 말씀하시기를 "용호대사(龍虎大師)의 기운을 네게 붙여 보니 그 기운이 적도다." 하시니라.
55
공우를 거느리시고 정읍으로 행행하실 때, 말씀하시기를 "마음으로 '풍운조화'를 외우라." 하시므로 공우가 그대로 외우다가 문득 잊어버리고 '천문지리'로 잘못 외우니라. 상제님께서 "잘못 외우고 있으니 고쳐 외우라." 하시므로 놀라 생각하니 과연 그러하니라. 이로부터 고쳐 외우며 대흥리까지 가니 이날 밤에 비와 눈이 섞여 오므로 "네가 한번 잘못 외움으로써 천기가 한결같지 못하도다." 하시니라.
56
정읍 수통점에 행재하실 때, 공우가 시종하는데 도삼이 와서 그 이웃 버들리의 "20세 된 여자가 범에게 물려 갔다."는 말을 고하니라. 상제님께서 공우에게 " 하늘에 충성(蟲星)이 보이는가 보라." 하시므로 공우가 보고 나타나 있음을 아뢰니 목침으로 마루를 치시며 "충성아 어찌 사람을 해치느뇨?" 하시니라. 이튿날 그 여자가 돌아왔는데 의복은 찢어졌으나 몸은 상하지 않으니라.
57
태인 고현리(古縣里) 행단(杏壇)에 임어하셔서 경석에게 말씀하시기를 "공자가 행단에서 강도(講道)하였느니 여기서 네게 글을 전하리니 잘 지키라." 하시고 옛글 한 장(章)을 외워 주시니 이러하니라. 夫主將之法 務攬英雄之心 賞祿有功 通志於衆 與衆同好 靡不成 與衆同惡 부주장지법 무람영웅지심 상록유공 통지어중 여중동호 미불성 여중동오 靡不傾 治國安家 得人也 亡國敗家 失人也 含氣之類 咸願得其志 미불경 치국안가 득인야 망국패가 실인야 함기지류 함원득기지
58
또 "내 일은 수부(首婦)가 들어야 하는 일이니 네가 내 일을 위하여 수부를 들여세우라." 하시므로 경석이 상제님을 모시고 자기 집으로 돌아와 그 이종매(姨從妹)인 고부인(高夫人)을 천거하니라.
59
이달 초3일에 상제님께서 고부인을 수부로 맞으시며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만나려고 15년간 정성을 들였느니 이로부터 천지대업을 너와 함께 행하리라." 하시니라. 이어 부인과 더불어 붉은 책과 누른 책 각 한 권씩을 앞으로부터 번갈아 깔며 그 책을 밟고 마당까지 나가셔서 부인으로 하여금 남쪽 하늘을 향하여 사배하게 하시고, 다시 그 책을 번갈아 깔며 밟으시고 방으로 들어오시니라.
60
또 경석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접주(接主)가 되어라. 나는 접사(接使)가 되리라. 이 뒤로는 출입을 폐하고 집을 지키라, 이것은 자옥도수(自獄度數)니라." 하시니라.
61
동곡에서 공사를 보시다가 형렬에게 하명하시기를 "내가 삭발하리니 너도 하라." 하시므로 형렬이 마음으로는 싫어하나 억지로 승복하니라. 또 갑칠을 부르셔서 "내가 삭발하리니 내일 대원사에 가서 주지 금곡을 불러오라." 하시므로 형렬이 삭발할 일을 근심하였으나 그 후 다시 말씀이 없으시니라.
62
지난해 여름에 공우가 처음 상제님을 모시고 동곡으로 올 때, 제비산 중턱에 한 대장이 투구와 갑옷을 입고 큰 칼을 잡고서 있음을 본 일이 있으니라. 이날 밤에 준상의 집에 머무르는데 어떤 사람이 와서 일본 헌병이 당신을 잡으려고 여기로 온다는 말을 전하니 상제님께서 들으시고 형렬의 집으로 이어하시니라. 종도들은 준상의 집에서 깊이 잠들었으나, 공우는 헌병이 올까 두려워서 뒷산에 올라 망을 보니 밤중에 원평 쪽에서 등촉을 밝힌 5, 6인이 오다가 마을 어귀에 이르러 불이 꺼지니라. 준상의 집에 돌아와 종도들을 깨워 함께 도피하려 하였으나, 모두 잠을 깨지 않아 한 식경이나 지났는데 아무 기척이 없으므로 안심하고 자니라. 다음 날 아침에 상제님께서 공우에게 말씀하시기를 "대장은 도적을 잘 지켜야 하느니라." 하시니라.
63
공우가 은밀히 일진회 사무소에 다녀왔더니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한 몸으로 두 마음을 품는 자는 그 몸이 쪼개어지고, 한 어깨에 두 짐을 지면 뒤통수가 깨어지리라." 하시므로 공우가 놀라서 다시는 숨은 일을 하지 못하고 일진회 관계도 아주 끊으니라.
64
공우가 상제님을 추종한 후로 여러 종도가 모두 보발(保髮)하였으므로 머리를 깎은 자신이 어울리지 못함을 불안하게 생각하여 머리를 길러 몇 달 후 솔잎상투에 갓과 망건을 쓰고 다니니라. 하루는 금구를 지나다가 전날의 일진회 동지 10여 인을 만나매 그들이 공우의 장발을 조소하며 붙들어 머리를 깎으니라. 공우가 집에 돌아와서 다시 두어 달 동안 출입을 폐지하고 다시 머리를 기르더니, 상제님께서 임어하셔서 여러 달 동안 나오지 않는 이유를 하문하시므로 황공하여 삭발을 당한 경위를 아뢰고 집에 있으면서 머리를 길러 갓과 망건을 차린 후에 배알하려고 하였다는 뜻을 아뢰니 "나는 오직 마음을 볼 뿐이니 머리에 무슨 관계가 있으리오?" 하시니라.
65
공우의 처가 물을 긷다가 빙판에 넘어져 허리와 다리를 상하여 기동하지 못하므로 공우가 걱정되어 청수를 떠 놓고 상제님 행재하신 곳을 향하여 낫게 하여 주시기를 지성으로 빌었더니 그 상처가 곧 나아 일어나니라. 그 후에 상제님께 배알하니 웃으시며 "아내의 병으로 얼마나 염려하였느냐? 그러나 고칠 줄을 아니 다행이로다." 하시니라.
66
하루는 형렬에게 옛글을 외워 주시며 "잘 기억하라." 하시니 이러하니라. 夫用兵之要 在崇禮而重祿 禮崇卽義士至 祿重卽志士輕死 故祿賢不愛財 부용병지요 재숭례이중록 예숭즉의사지 녹중즉지사경사 고녹현불애재 賞功不逾時卽 士卒竝 敵國削 상공불유시즉 사졸병 적국삭
67
또 이러하니라. 處世柔爲貴 剛强是禍基 發言常欲訥 臨事當如癡 처세유위귀 강강시화기 발언상욕눌 임사당여치 急地尙思緩 安時不忘危 一生從此計 眞個好男兒 급지상사완 안시불망위 일생종차계 진개호남아
68
또 다음의 옛글을 외워 주시며 "너는 좌불(坐佛)이 되어 처소를 잘 지키라, 나는 유불(遊佛)이 되리라." 하시니라. 明月千江心共照 長風八遇氣同驅 명월천강심공조 장풍팔우기동구
69
"속언에 '남조선 사람이라' 이르느니 이는 '남은 조선 사람이라'라는 말과도 같으니라. 동서 각 교파와 사상에 혼을 빼앗기고 남은 못난 사람에게 길운이 있음을 이르는 말이니 그들을 잘 가르치라." 하시니라.
70
하루는 형렬에게 명하셔서 종이에 64괘를 점치고 24방위를 둘러쓰게 하셔서 태양을 향하여 불사르시며 "여아동거(與我同居)하자." 하시고 "잘 믿는 자에게 해인(海印)을 전하여 주리니 잘 믿으라." 하시니라.
71
또 "선비는 반드시 몸에 지필묵(紙筆墨)을 지녀야 하느니라." 하시니라.
72
선비는 대학 경일장(經一章) 장하(章下)를 알아 두어야 하느니라." 하시고 외워 주시니 이러하니라. 右는 經一章이니, 皆孔子之言을 而曾子述之하고 其傳十章은 則曾子之意를 우 경일장 개공자지언 이증자술지 기전십장 즉증자지의 而文人記之也니라. 舊本 頗有錯簡일새 今因程子所定하고 이문인기지야 . 구본 파유착간 금인정자소정 而更考經文하야 別爲序次如左하노라. 이갱고경문 별위서차여좌
73
형렬에게 서경(書經) 진서편(秦誓編)의 한 절을 외워 주시며 "잘 기억하라" 하시니라. 如有一介臣 斷斷倚無他技 其心休休焉 其如有容焉 人之有技 若己有之 여유일개신 단단의무타기 기심휴휴언 기여유용언 인지유기 약기유지 人之彦聖 其心好之 不啻如自其口出 是能容之 以保我子孫黎民 亦職有利哉. 인지언성 기심호지 불시여자기구출 시능용지 이보아자손여민 역직유리재. 人之有技 冒疾以惡之 人之彦聖 而違之 碑不達 是不能容 以不能保我子孫黎民 인지유기 모질이오지 인지언성 이위지 비부달 시불능용 이불능보아자손여민 亦曰殆渽. 역왈태재.
74
또 말씀하시기를 "어떤 말을 묻는 자가 있거든 그가 듣고 실행하든지 않든지 바른대로 일러 주라." 하시니라.
75
이어서 종도들에게 하교하시기를 "세상이 성으로 풍(風)씨가 먼저 났으나 전하지 못하고 다만, 사람의 몸에 들어 체상(體相)의 칭호인 풍신(風身) 풍채(風采) 풍골(風骨) 등으로 일컫게 되었을 뿐이요, 그다음에 강(姜)씨가 먼저 났느니 곧 사람 성의 원시이니라. 그러므로 이제 개벽시대를 당하여 원시반본되는 연고로 강씨가 일을 하게 되었느리라." 하시니라.
76
어떤 종도가 진당대부의 가택이 협소하고 초라함을 민망히 여겨 그보다 큰 집을 사드리니, 상제님께서 아시고 꾸짖으시기를 "네가 어찌 내 가친의 앞길을 막느냐? 속 모르는 사람은 나를 불효라 할 것이나, 나는 가친의 앞길을 닦아 드리려 함이니라. 내가 항상 가늠을 놓고 보는데, 만일 그 가늠에 어긋나면 허사가 되느니라. 너희들이 가친의 빈궁하심을 민망히 여겨 원조하고 싶으면 먼저 내게 말하라." 하시니라. 상제님께서는 대부께서 일상생활을 스스로의 힘으로 하도록 하시고 허물이 있으시면 고치시기를 간곡히 말씀드리시며 종도들이 혹 물품이나 금품을 드리는 것을 엄금하시니라.
77
상제님께서 옛사람을 평하실 때는 강태공 서가모니 관운장 이마두를 자주 칭찬하시니라.
78
하루는 종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일꾼된 자는 씨름판을 본받을지니 씨름에 뜻하는 자는 판밖에서 보양물(補養物)을 많이 먹고 기운을 잘 길러 끝판을 노리고 있느니라." 하시니라.
79
또 "위천하자(爲天下者)는 불고가사(不顧家事)하느니 제갈량이 성공하지 못함은 유상팔백주(有桑八百株)로 인함이니라." 하시니라.
80
"일꾼 된 자는 강유(剛柔)를 겸비하여 한편으로 기울지 않아야 하리니 만사음양이이(萬事陰陽而已)라, 천지의 대덕으로도 춘생추살(春生秋殺)의 은위(恩威)로써 이루느니라." 하시니라.
81
"생유어사(生由於死)하고 사유어생(死由於生)하느니 나를 믿는 자는 먼저 망하고 들어서야 하느니라." 하시니라.
82
"일에 뜻하는 자는 넘어오는 간(肝)을 잘 삭혀 넘겨야 하느니라." 하시니라.
83
"현세에는 아는 자가 없느니 상(相)도 보이지 말고 점도 치지 말지니라." 하시니라.
84
차경석이 논에 내리는 참새 떼를 굳이 쫓음을 상제님께서 보시고, 말씀하시기를 "한낱 날짐승인 참새의 삶을 생각하지 못하면서 어찌 천하창생의 죽고 삶을 생각할 수 있으리오?" 하시니라.
85
차경석이 모든 행동에 위엄을 내며 양반의 풍습을 본뜨므로 훈계하시기를 "대인의 도를 닦는 자는 항상 공손하고 삼가 온화한 기운을 기를지니 이후로는 그런 풍습을 버리라, 망하는 기운이 따라 드느니라." 하시니라.
86
또 하교하시기를 "사람을 쓸 때에는 남녀의 구별이 없느니, 진평(陳平)은 야출동문(夜出東門) 여자(女子) 이천인(二千人)하였느니라." 하시니라.
87
"한신(韓信)이 한고조의 추식사지(推食食之)하고 해의의지(解依依之)한 은혜에 감격하여 괴철(蒯徹)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느니, 한신이 한고조를 저버림이 아니요, 한고조가 한신을 저버림이니라." 하시니라.
88
"세상 사람이 전명숙의 덕을 많이 입었느니 한 몫에 80냥 하는 세금을 30냥으로 감하게 한 자는 전명숙이니라. 말로라도 그의 이름을 해하지 말라." 하시니라.
89
김병욱에게 하교하시기를 "남은 어떻게 생각하든지 너는 전명숙의 이름을 해하지 말라. 너의 영화에는 전명숙의 덕이 많으니라." 하시니라.
90
또 "이마두가 24절을 개정하여 인민이 그 덕을 입어왔으나 이후로는 푼각(分刻)이 나리니 그것은 너희가 쓰리라." 하시니라.
91
천존(天尊)과 지존(地尊)보다 인존(人尊)이 크니 이제는 인존시대니라." 하시니라.
92
"나의 일은 남 죽을 때 살자는 일이요, 남 살 때는 영화와 복록을 누리자는 일이니라. 그러나 그 근본은 언제나 '남 잘되게 함'에 있느니라." 하시니라.
93
"너희들은 아무리 죽고자 하여도 못 죽을 것이요, 내가 놓아 주어야 죽으리라." 하시니라.
94
"믿는 자를 가려 손을 꼽는데, 만일 배신하는 행위가 있어 꼽았던 손이 펴지는 때에는 살아남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95
"너희들이 믿음을 주어야 나의 믿음을 받으리라." 하시니라.
96
"이 시대는 원시반본하는 시대니 혈통(血統) 줄을 바로 잡으라. 환부역조(換父易祖)하는 자와 환골(換骨) 환혈(換血)하는 자는 다 죽으리라." 하시니라.
97
"옛적에는 신성(神聖)이 입극(立極)하매 성(聖)과 웅(雄)이 겸비하여 정치와 교화를 통제관장(統制管掌)하였으나, 중고 이래로 성과 웅이 바탕을 달리하여 정치와 교화가 갈렸으므로 마침내 여러 가지로 분파되어 진법(眞法)을 보지 못하였느니, 이제는 원시반본이 되어 군사위(君師位)가 한 갈래로 되리라." 하시니라.
98
"이제는 천지도수가 정리되어 각 신명의 자리가 잡히는 때니라. 일본 사람이 효(孝) 줄을 띠고 조선에 건너와 임진란 때 죽은 저의 선령신을 찾아가려 하므로 의병이 일어나서 그 일을 이루어 주려고 각 오지(奧地)까지 이끌고 들어가느니라." 하시니라.
99
"세상에서 우순(虞舜)을 대효(大孝)라 이르나, 그 부친 고수(瞽瞍)의 오명(汚名)을 벗기지 못하였으니 어찌 한스럽지 아니하리오?" 하시니라.
100
"우리 공부는 물 한 그릇이라도 연고 없이 남의 힘을 빌리지 못하는 공부니, 비록 부자 형제간이라도 헛된 의뢰를 하지 말라." 하시니라.
101
고부 와룡리에 행재하실 때, 종도들에게 오주(五呪)를 가르쳐 주시며 말씀하시기를 "이 글은 천지인 삼계의 진액(津液)이니라." 하시니 이러하니라. 오주 時天地家家長世 日月日月 萬事知 시천지가가장세 일월일월 만사지 侍天主造化定 永世不忘 萬事知 시천주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 福祿誠敬信 壽命誠敬信 至氣今至 願爲大降 복록성경신 수명성경신 지기금지 원위대강 明德觀音 八陰八陽 至氣今至 願爲大降 명덕관음 팔음팔양 지기금지 원위대강 三界解摩 大帝神位 願趁天尊 關聖帝君 삼계해마 대제신위 원진천존 관성제군
102
경석의 집에서 백지 한 장에 사람의 형체를 그리셔서 벽에 붙이시고 제사절차와 같이 신위를 설치하신 다음, 종도들에게 그곳을 향하여 '반천무지식'으로 사배를 올리게 하시고 "마음으로 소원을 심고하라." 하시니라. 상제님께서 그 그림 앞에 서셔서 하문하시기를 "누구에게 심고하였느냐?" 하시므로 모두 "선생님께 소원을 고하였나이다." 하니 "내가 산 제사를 받았으니 이후에까지 미치리라. 사배를 받았으니 나는 읍으로 대하리라." 하시며 읍하시고 또 "자리는 띠자리가 정(淨)한 것이니라." 하시니라.
103
12월 초1일에 대흥리에서 백미 한 섬을 방에 두시고 백지 고깔 20여 개를 쌀 위에 놓으신 다음, 고부인으로 하여금 글을 쓰게 하셔서 불사르시며 말씀하시기를 "불과 물만 가지면 비록 석산(石山) 바위 위에 있을지라도 먹고사느니 그 수화(水火)의 조화(調化)는 솥이라야 하느니라." 하시며 그 백미로 밥을 지어 이날 모인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시니라.
104
하루는 공신을 거느리시고 고부로 행행하시며 하문하시기를 "가는 길에 벗이 있느냐?" 하시므로 "운산리(雲山里)에 신경수가 있나이다." 하고 아뢰니라. 상제님께서 경수의 집에 임어하셔서 글을 써 불사르시고 공신에게 "집에 다녀오라." 하시므로 가 보니 일진회 두목 송대화(宋大和)가 와 있으니라. 대화를 떠나보내고 다시 운산에 오니 "손이 있더냐?" 하시므로 "손이 있어 떠나보내고 왔나이다." 하고 아뢴 다음, 상제님을 모시고 집으로 오니라. 이때 공신의 모친이 요통이 심하여 상제님께 아뢰니 매실 한 냥쭝을 종이에 싸 들보에 거시고 글을 써 불사르시니 곧 나으니라.
105
공신의 집에 종도 수십 명이 모이니 상제님께서 며칠 동안 오주를 수련하게 하시니라. 그 후에 당요(唐堯)의 "역상일월성신(曆象日月星辰) 경수인시(敬授人時)"를 해설하시고 "천지는 일월이 아니면 공각(空殼)이요, 일월은 지인(知人)이 아니면 허영(虛影)이니라. 당요가 일월의 법을 알아내어 백성에게 가르침으로써 인류가 비로소 천혜(天惠)와 지리(地利)를 누리게 되었느니라." 하시니라. 또 "일월무사치만물(日月無私治萬物) 강산유도수백행(江山有道受百行)"을 읊으시며 선기옥형도수(璿璣玉衡度數)를 보실 때, 경수의 집에 저울갈고리 도수, 응종의 집에 추(錘) 도수, 공신의 집에 끈 도수를 정하시고 다시 경수의 집에 일월대어명(日月大御命) 도수, 공신의 집에 천지대팔문(天地大八門) 도수를 정하신 후, 밤낮으로 번갈아 세 집에 임어하셔서 공사를 행하시니라.
106
이때 공우에게 말씀하시기를 "후천오만년 첫 공사를 너로 하여금 행하게 하려 하니 너는 잘 생각하여 가장 중대한 일을 말하라." 하시니라. 공우가 "식견이 없어 아뢸 바를 모르겠나이다." 하며 사양하다가 이윽고 여쭈기를 "선천에는 청춘과부가 수절한다 하여 빈방을 지켰사오나 후천에는 이 폐단을 없이하셔서 젊은 과부는 젊은 홀아비를, 늙은 과부는 늙은 홀아비를 각각 가려 일가와 친구가 모인 공중예석에서 예절을 갖추어 개가하게 함이 옮은 줄 아나이다." 하니라. 상제님께서 칭찬하시며 "네가 아니면 이 공사를 보지 못할 것이므로 네게 맡겼더니 잘 처결되었도다. 이제 결정된 이 공사가 5만 년을 내려가리라." 하시니라.
107
다시 며칠 동안 오주로 수련시키신 다음, 말씀하시기를 "전북 7읍 곡식이면 양식이 넉넉하겠느냐?" 하시므로 "쓰기에 달렸나이다." 하니 "그러나 독이 찼다 비었다 하면 못 쓸 것이요, 용지불갈(用之不渴)하여야 하리니 어떻게 함이 좋겠느뇨?" 하시매 "알지 못하나이다." 하고 아뢰니라. 상제님께서 백지에 저수지와 수로의 도면을 그리셔서 "이곳이 운산이 아니냐? 운암강(雲岩江) 물줄기를 김만경(金萬頃)으로 돌려도 하류에서 원망이 없으리니 이 물줄기가 대한불갈(大旱不渴)이라, 능히 하늘을 겨루리라." 하시며 불사르시고 "강태공은 제(齊)나라 한 고을에 흉년을 없게 하였으나 나는 전북 칠읍에 흉년을 없게 하였느니라." 하시니라
108
하루는 "최면암과 박영효(朴泳孝)의 원을 풀어 주리라." 하시고 글을 쓰셔서 불사르시니 이러하니라. 千歲千歲 千千歲 萬歲萬歲 萬萬歲 日月 崔益鉉 천세천세 천천세 만세만세 만만세 일월 최익현 千胞千胞 千千胞 萬胞萬胞 萬萬胞 蒼生 朴泳孝 천포천포 천천포 만포만포 만만포 창생 박영효
109
공신의 집에서 밤중에 종도들로 하여금 번갈아 그 집 물독 물을 반 바가지씩 퍼내어 우물에 붓고, 다시 우물의 물을 반 바가지씩 퍼내어 독에 부은 다음, 다른 여러 우물의 물과 독의 물을 반 바가지씩 전과 같이 바꾸어 갈아 붓게 하시며" 이는 물화상통(物貨相通)이니 만국인민의 새 생활법이니라." 하시니라.
110
종도들에게 하문하시기를 "이후에 전쟁이 있겠느뇨?" 하시니 있으리라는 사람도 있고 없으리라는 사람도 있으니라.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천지개벽 시대에 어찌 전쟁이 없으리오?" 하시고 전쟁기구를 챙긴다 하시며 방에 있는 담뱃대 20여 개를 거두어 거꾸로 모아 세우게 하시니라. 또 종도들에게 수건으로 머리와 다리를 동이게 하시고 백지에 시천주를 쓰셔서 심지를 비벼 불붙여 들게 하신 다음, 창문에 구멍을 뚫게 하시고 담뱃대를 거꾸로 메게 하시며 말씀하시기를 "대오를 잃으면 군사가 상하리라." 하시니라. 또 그들에게 밖에 나가 부엌으로 돌아들어 창구멍에 담뱃대를 대고 입으로 총소리를 내게 하시고, 다시 변소를 돌아와서 창구멍에 대고 총소리를 낸 다음, 다시 허청(虛廳)으로 돌아들어 그와 같이 하되 궁을형(弓乙形)을 지어 빨리 달리게 하시니 늙은 사람은 헐떡거리니라.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말세를 당하여 어찌 전쟁이 없으리오? 후일 큰 전쟁이 일어나면 각기 재주를 자랑하여 재주가 일등 되는 나라가 상등국이 되리라." 하시니라. 이 공사를 보신 후에 사방에서 천고성(天鼓聲)이 일어나니라.
111
고부 와룡리 경수의 집에서 공사를 보실 때, 원일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일찍이 동천을 향하여, 붉은 옷을 입고 구름 위에 앉은 사람에게 사배한 일이 있으리니 이제 다시 그와 같이 절하라. 내가 곧 그 사람이니라." 하시므로 원일이 보매 그러한지라, 곧 일어나서 사배하니라. 종도들이 원일에게 그 사유를 물으니 "몇 년 전에 우연히 병이 들어 죽게 되었더니, 정신이 황홀한 중에 어떤 사람이 사인교(四人橋)를 타고 와서 내게 말하기를 '네가 새 옷을 갈아입고 문밖에 나가 동천에 붉은 옷을 입고 구름 위에 앉은 어른에게 사배하라. 그러면 네 병이 나으리라.' 하므로 그대로 하매 병이 곧 나았는데, 그때 그 어른이 바로 이 어른이시니라." 하니라.
112
이후에 응종의 집에 임어하셔서 식혜 아홉 사발을 빚게 하시고, 응종을 태인 경원의 집에 보내셔서 새 수저 한 벌을 가져오게 하신 다음, 항아리에 식혜를 부으시니 꼭 차니라. 양지 백지 장지(壯紙)를 각각 준비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비인(庇仁) 복종(覆鐘)이 크다 하므로 북 도수를 보노라. 북은 채가 있어야 하리니 이 수저가 북채라, 행군할 때 이 수저로 북채를 하여야 녹이 진진(津津)하여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종이 여러 장을 자르셔서 조각마다 글을 써 항아리에 넣으시고 잘 봉하여 깨끗한 곳에 묻게 하시니라.
113
또 공신의 집에서 종도 30여 인을 모으시고, 오주를 수련하게 하시며 하교하시기를 "동학은 입도일로부터 녹이 떨어지느니, 대저 녹이라는 것은 곤(坤)에 붙어 있는데 동학은 '시천주 조화정'이라 하여 하늘에만 편중하는 까닭이요, 또 '수명복록'이라 하지마는 수명만 길고 복록이 없으면 죽는 것만 같지 못함에도 수명을 먼저 하고 복록을 뒤로하는 까닭이니라. 그러므로 이제는 복록을 먼저 하리라." 하시고 소리를 높여 외우게 하시니라.
114
이튿날 새벽에 각기 정좌하게 하시고 종이 한 조각씩 나누어 주시며 "후천음양도수(後天陰陽度數)를 보려 하니 각자 남이 모르게 마음에 있는 아내의 수를 점으로 표하라." 하시므로 각각 마음대로 점쳐 올리니, 응종은 2점, 경수는 3점, 내성은 8점, 경석은 12점, 공신은 1점이니라.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9점은 없으니 1남 9녀란 말을 알 수 없도다." 하시며 내성에게 "8선녀라는 말이 있으므로 8점을 쳤느냐?" 하시니라. 또 응종과 경수에게 "노인들이 두 세 아내를 원하니 어떻게 감당하려 하느뇨?" 하시므로 "후천이 되면 새 기운이 돌지 아니하리이까?" 하니 "그럴 듯도 하도다." 하시니라. 다시 경석에게 "웬 아내를 열둘이나 원하느냐?" 하시므로 "12제국에 하나씩 두어야 만족하겠나이다." 하니 "그럴 듯도 하도다." 하시니라. 또 공신에게 "경석은 열둘이나 원하는데 너는 어찌 하나를 원하느뇨?" 하시므로 "건곤(乾坤)이 있을 따름이요, 2곤(二坤)이 있을 수 없사오니 일음일양(一陰一陽)이 원리인 줄 아나이다." 하니 "네 말이 가장 옳도다." 하시며 "공사를 잘 보았으니 특히 성대하게 준비하여 손님 대접을 잘하라." 하시니라.
115
공사 후에 경석 · 광찬 · 내성은 대흥리로, 원일은 경원의 집으로, 형렬 · 자현은 동곡으로 각각 보내시니라. 공신 · 응종 · 경수에게 말씀하시기를 "경석이 성경신(誠敬信)이 지극하므로 달리 써 볼까 하였더니 제가 스스로 청하니 부득이한 일이로다. 원래 동학은 보국안민(輔國安民)을 주창하였으나 때가 아니므로 안으로는 불량하고 겉치레에만 그쳤으니 한갓 후천 일을 제창함에 불과하니라. 스스로 왕후장상(王候將相)을 바라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비명에 죽은 자가 수만 명이라, 원한이 창천(漲天)하였으니 그 신명을 해원하지 않으면 후천에는 역도(逆度)에 걸려 정사(政事)를 못하리라. 그러므로 이제 그 원신(寃神)들을 해원시킬 두령을 정하고자 하는 중인데 경석이 12제국을 말하니 이는 자청함이니라. 그 부친이 동학 두목으로 비명에 죽었고 저도 또한 동학 총대였으므로 오늘부터는 동학 신명들을 전부 그에게 붙여 보내어 왕후장상의 해원이 되게 하리라." 하시니라. 두루마리에 글을 쓰시고 외인의 출입을 금하신 다음, 말씀하시기를 "동학 신명들이 전부 이 자리에서 해원되리라. 후일 두고 보라. 금전도 무수히 소비될 것이요, 사람 수효도 갑오년보다 훨씬 많게 되리니 이렇게 풀어놓아야 후천진인(後天眞人)의 일에 지장이 적으리라." 하시니라.
116
공신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정음정양(正陰正陽)도수니 네가 온전히 잘 받겠느냐?"정심으로 잘 수련하라. 문왕(文王)과 이윤(伊尹)의 도수가 있으니 그 도수를 맡으려면 극히 어려우리라. 미물 곤충이라도 원망이 붙으면 삼계공사가 아니니라." 하시니라.
117
12월 25일에 "천자신(天子神)과 장상신(將相神)을 모아들여 백의군왕(白衣君王) 백의장상(白衣將相)도수를 본다." 하시며 사람 수효를 33천 수로 채우신 다음, 하명하시기를 "만일 순검이나 병정이 겁나는 자는 다 돌아가라. 열 사람 중 한 사람이 도망하면 아홉 사람도 그 해를 입어 죽을 것이므로 도망할 마음을 가진 자는 미리 돌아가고 마음을 지켜 도망하지 아니할 자는 굳은 다짐을 두라. 일을 하는 자는 화지진(火地晉)도 하느니라." 하시므로 모두 "삼가 마음을 굳게 지켜 변함이 없겠나이다." 하고 다짐을 드리니 21인이니라.
118
이 공사를 시작하실 때 종도들에게 각자 새 옷을 지어 입게 하시고, 상제님께서는 일광단 두루마기와 무문모초 바지저고리를 지어 입으시니라. 이날 저녁에 경수의 집에서 초저녁부터 불을 끄고 일찍 자게 하시며 상제님께서는 아랫방에서 침수 드시고, 종도들은 윗방에서 자는데, 새벽에 순검이 들어와서 공신을 찾으므로 대답하고 나서니 곧 포박하고 이어서 상제님과 종도들을 모두 체포하니라. 이때 돈 약간과 백목(白木) 여러 필을 방구석에 두었다가 상제님께서 돈과 백목을 인부에게 지워 따르게 하시니라.
119
종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이 시대는 거짓말하는 자를 없이하는 시대니 반드시 바른말을 하라." 하시고, 순검들에게도 "그대들은 상관의 명령을 받고 왔으니 거짓말을 말고 참말로 하라." 하시니라. 일행이 고부장터에 이르니 장꾼들이 말하기를 "고부는 장차 쑥밭이 되리로다. 저런 큰 인물들이 잡혀 왔으니 어찌 무사하기를 바라리오?" 하고 모두 불안해 하니라. 이때는 각처에서 의병이 일어나 왜군과 충돌하므로 의병혐의로 체포된 자는 누구를 불문하고 흔히 총살을 당하는 공포시대니라.
120
경무청에 임어하시매 신문관이 먼저 상제님께 병기의 유무를 물으므로 "없노라." 하시니, 즉시 종도들은 구류간에 가두고 상제님은 상투를 풀어 들보에 매단 채 저고리를 벗긴 다음, 경관 10여 명이 회초리로 치며 "관리는 몇 명이나 죽이고, 일본 사람은 몇 명이나 죽였느뇨?" 하니라. 상제님께서 "우리를 의병으로 알고 묻는 말이냐?" 하시매, 경관이 그렇다고 하므로 "의병을 하려면 깊숙한 산중에 모일 것이어늘 어찌 태인읍 사람들이 무수히 왕래하는 번잡한 곳에서 거병하리오? 그대들이 묻는 의병은 무엇을 이름이뇨?" 하시니 "이씨 왕가를 위하여 일본에 저항하는 것을 이름이로다." 하니라. 상제님께서 "그러면 그릇 알았도다. 우리는 그런 일을 아니 하노라." 하시니, 경관이 다시 "무슨 일로 모였느뇨?" 하므로 "이제 혼란진멸(混亂殄滅)에 임한 천지를 개조하여 새 세상을 열고 비겁(否劫)에 빠진 인간과 신명을 널리 광구(匡救)하여 선경의 복을 누리게 하려는 모임이로다." 하시니라. 통역순검 문형로(文亨魯)가 이 말씀을 듣고 놀라 "감히 어찌 그런 대담한 말을 하느뇨?" 하므로 "천하사를 뜻하는 자가 따로 있음이 아니니, 그대도 도략(韜略)과 자비(慈悲)가 있으면 좌시할 수 없으리라." 하시니라. 잠시 후 상제님을 풀어내어 구류간에 가두고 공신을 불러내어 발길로 차니 기절하였다가 일어나 정신을 차리니, 다시 상제님과 공신에게 족쇄(足鎖)를 채워 구류간에 가두니라.
121
그믐날 저녁에 뇌전이 크게 일어나므로,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는 서양에서 천자신(天子神)이 넘어옴이니라." 하시고 또 "이제 천자신은 넘어왔으나 너희들이 혈심(血心)을 가지지 못하므로 장상신(將相神)이 응하지 아니하도다." 하시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