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극진경

제목 태극도 - 무극진경 4장
1
구천상제님께서 갑진(甲辰 : 도기 전 5, 단기 4237, 서기 1904)년 정초 전주에 행재하시는데, 백남신이 관액(官厄)에 걸려 거처를 감추고 김병욱을 통하여 풀어 주시기를 간청하니라.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부자는 돈을 써야 하니 돈 10만 냥의 증서를 가져오라." 하시므로 증서를 올리니 관액이 곧 풀렸으며 증서는 불사르시니라.
2
이달 15일에 상제님께서 오수(午睡) 중에 장효순(張孝淳)이 손자의 급병을 고하며 고쳐 주시기를 간청하니 잠결에 "냉수나 먹이라." 하시므로 효순이 돌아가 병든 아이에게 냉수를 먹이매 곧바로 죽으니라. 효순은 본래 성질이 포악하여 부중 사람들이 '천둥'이라 부르더니 손자의 죽임을 당하여 원망하기를 "이는 고의로 약을 잘못 일러주어 죽임이라. 손으로 만져서 죽은 사람을 일으키며 말 한마디로 위급한 병고침을 누차 직접 보았는데, 만일 고의가 아니라면 물은 고사하고 흙을 먹였어도 그 신이한 도술로 능히 낫게 하였으리라." 하고 상제님께 와서 심하게 행패하니라. 효순이 상제님을 결박하여 장방청으로 가다가 문득 뉘우친 듯이 "이것이 다 나의 잘못이라, 어린애가 급병으로 죽었는데 어찌 선생님을 원망하리오?' 하고 전과 같이 지내심을 청하며 자기 집으로 동행하시자고 하였으나, 상제님께서는 원규(元奎)의 집에서 유어(留御)하시고 다음날 이직부(李直夫)의 집으로 이어(移御)하시니라. 대저 효순이 상제님을 장방청에서 놓아 드림은 남신에게서 받은 돈 10만 냥의 증서가 있음을 알고 돈을 요구하려 함이니라.
3
다음날 효순이 원규의 집에 가서 상제님께서 아니 계심을 보고 크게 노하여 "살인범이 도피하였다."라고 고함치며 사방으로 찾으니라. 이때 상제님의 가족은 전주군 우전면 화정리(花亭里) 이경오(李京五)의 집 골방으로 옮겼는데 효순의 가족들이 와서 행패하였으며, 형렬은 화정리에 갔다가 그들로부터 결박을 당하여 원규의 집까지 끌려가니라. 그들은 상제님의 행방을 물었으나 알려 주지 않음으로 더욱 분노하여 형렬과 원규를 무수히 구타하니, 이로 인하여 상제님의 가족은 태인 굴치(屈峙)로 가서 화를 피하고, 형렬은 밤중에 도피하였으며, 원규는 연일 그들의 행패에 견디지 못하여 약국을 폐쇄한 채 가족을 거느리고 익산(益山)으로 가서 숨으니라.
4
종도들이 여쭈기를 "선생님의 권능으로 어찌 효순의 난을 당하셨나이까?" 하니 "도중(道中)이나 집안에 분쟁이 일어나면 신정(神政)이 문란하여지느니 그대로 두면 세상에 큰 재앙이 이르게 될 것이므로 내 스스로 그 기운을 옮겨 받아 해소함이니라." 하시니라.
5
하루는 이직부(李直夫)의 집에 행재하시는데 직부의 부친 치안(治安)이 그해 신수를 여쭈니 상제님께서 백지에 글을 쓰셔서 한 장은 불사르시고 한 장은 밀봉하여 주시며 "급한 일이 있거든 떼어 보라." 하시므로 치안이 깊이 간수하니라. 연말에 치안이 병으로 위급할 때 직부가 봉서를 떼어 보니 "소시호탕(小柴胡湯) 이첩(二貼)"이 적혀 있으므로 그 약을 쓰매 곧 나으리라.
6
2월 어느 날 영학(永學)에게 "대학을 읽으라." 하명하셨으나 영학이 듣지 아니하고 술서(術書)에 쏠리므로 "미구에 영학을 보지 못하게 되리라." 하시고, 이도삼(李道三)을 보내셔서 "골포사장전유초(骨暴沙場纏有草) 혼반고국조무친(魂返故國弔無親)."이라는 시 한 구절을 전하여 영학으로 하여금 살펴 깨우치게 하셨으나 영학은 끝내 깨닫지 못하니라.
7
그 후에 영학이 병들어 위독하다는 소식이 있으므로 상제님께서 김갑칠을 거느리시고 행행하실 때, 중도에서 한 곱사등이를 보시고 그 병고를 하문하시니 "10여 년 전부터 곱사등이가 되어 고치지 못하나이다." 하므로 그 허리를 어수로 만지셔서 펴 주시고 "사례금 열닷 냥을 가져오라." 하시니라. 그 사람이 기뻐하며 "실로 재생지은(再生之恩)이옵니다. 은혜를 갚자오면 태산이 오히려 가볍사오나 지금 몸에 지닌 돈이 없으니 무엇으로 갚사오리까?" 하니 "물품도 가하니라" 하시니라. 그 사람이 "제가 관(棺) 장사를 하오니 관으로 드림이 어떠하옵니까?" 하므로 "그도 가하니 좋은 것으로 가려 두라." 하시니라. 영학의 집에 임어하시니 영학이 이미 죽었으므로 그 관으로 장사지내게 하시니라.
8
갑칠을 거느리시고 부안, 고부 등지를 순행(巡幸)하시다가 15일 저녁에 고부 검은 바위 주막에 임어하시니라. 이때 화적(火賊)이 많아 대낮에도 횡행하므로 순검 한 사람이 사복으로 주막에 들어 있음을 보시고 주모에게 말씀하시기를 "저 사람에게 음식을 팔지 말라. 만일 값을 받지 못하면 구차한 영업에 손해가 되지 않으랴?" 하시니 순검이 분노하여 횡포하며 악담을 퍼부었으나, 웃으시며 "시체에게 당한다고 무엇을 탓하랴?" 하시고 밖으로 나가시니라. 주모가 순검에게 말하기를 "저분의 말씀이 이상하니 반드시 무슨 까닭이 있으리라. 나가서 사과하고 그 연유를 여쭈어보아라." 하므로 순검이 그대로 하니 "오늘 밤에는 사무를 폐하고 다른 곳으로 몸을 피하라." 하시니라. 순검이 명하신 대로 하니 이윽고 밤이 깊자 화적들이 몰려와서 주모를 구타하며 순검의 간 곳을 물으니라. 이는 곧 화적들이 순검을 죽이려고 미리 계획한 일이므로 화를 모면한 순검이 상제님께 재생의 은혜를 감사드리니라.
9
5월에 상제님께서 밤재에 행재하실 때, 갑칠이 와서 뵈니 하문하시기를 "너희 지방 농사 현황이 어떠하뇨?" 하시자 "가뭄이 심하여 모내기를 못 하므로 민심이 소란하옵니다." 하매 "네가 비를 빌러 왔도다. 네게 우사(雨師)를 붙이니 곧 돌아가되 길에서 비를 맞더라도 피하지 말라. 이는 네 몸에 공사를 띠고 가는 연고니라." 하시니라. 갑칠이 명을 받들고 얼마 안 가서 비가 내리기 시작하여 잠시 동안에 냇물이 넘치더니 이로부터 물이 풍족하여 며칠 안으로 보내기를 마치니라.
10
6월에 형렬을 거느리시고 태인 신배(新培)를 지나실 때, 어떤 집에 불이 나서 강풍에 불의 기세가 치열함을 보시고 민망히 여기시며 "저 불을 그대로 두면 이 바람에 온 마을이 재가 되리니 맞불을 놓아 꺼야 하리라." 하시고, 형렬에게 섶을 가져다 불을 지르게 하시니 곧 바람이 자고 불이 꺼지니라.
11
동학 신도들이 갑오(甲午 : 서기 1895)년에 참패한 후로 감히 나타나지 못하고 잠복하다가 러일전쟁의 기회에 일본의 후원을 받아 일진회(一進會)를 조직하니 사방에서 호응하여 그 세력이 날로 왕성하였으나, 백성들은 갑오년에 난폭하던 행동을 기억하여 두려워하니라. 상제님께서 종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저들의 이번 운동에는 제 재산을 쓰게 하고, 갑오년과 같이 백성에게 폐를 끼치지 못하게 하리니 내가 솔선(率先)하여 모범을 보여야 하리라." 하시고, 7월에 본댁 살림과 약간의 전답을 팔아 전주에 임어하셔서 걸인들에게 나누어 주시더니, 과연 일진회원들이 제 재산을 탕진함을 보시고 "저들이 나를 본받으니 살려 줌이 옳으니라." 하시니라. 또 갓을 벗고 삿갓을 쓰신 다음, 안은 검고 겉은 흰 옷을 입으시며 "저들이 검은 옷을 입으니 나도 검은 옷을 입노라." 하시고 하늘을 가리키시며 "저 구름이 속은 검고 겉은 희니 곧 나를 본받음이니라." 하시니라.
12
8월 27일 상제님께서 익산 만중리(萬中里) 황사성(黃士成)의 집으로 임어하시니라. 원래 사성의 부친 숙경(叔京)이 전주 용진면(龍進面) 용바위 황참봉(黃參奉)에게 빚이 있더니, 황참봉이 죽은 후에 그 아들이 사람을 보내어 빚을 독촉하며 만일 갚지 아니하면 경무청에 고소하여 옥중에 썩히면서 받겠다고 위협하며 노기를 띠고 있으므로 상제님께서 그 마을 정춘심(鄭春心)의 집으로 이어하시니라. 이날 밤에 사성의 부자가 춘심의 집에 와서 상제님께 풀어 주시기를 간청하므로 숙경에게 명하셔서 무명베 한 필을 사다가 옷을 지어 입으시고 말씀하시기를 "일이 잘 풀리리니 근심을 놓으라. 무명베는 채권자와 채무자 간의 길을 닦는 것이니라." 하시니라. 그 후에 순검이 숙경을 체포하려고 오매 숙경도 함께 채권자의 집에 가서 연기하여 달라고 간청하였으나 채권자는 거부하는데, 그 모친이 보고 꾸짖기를 "저 어른은 네 부친의 친구인데 이제 옥에 가두려 하니 이는 금수(禽獸)의 행위라." 하고 그 증서를 빼앗아 불사르니 채권자가 할 수 없어 숙경에게 사과한 후 고소를 취하하고 빚을 탕감하니라.
13
9월 14일에 함열 회선동(會仙洞) 김보경(金甫京)이 병으로 위독하여 상제님께 고쳐 주시기를 간청하므로 그 집에 임어하시니라. 이때 개가 사납게 짖으며 달려들므로 엄숙하게 말씀하시기를 “주인의 병을 이미 저 개에게 옮겼으니 근심을 놓으라." 하시더니 과연 보경의 병은 곧 낫고 그 개는 3일간을 앓으니라.
14
보경이 여쭈기를 "이 근처에는 요사이 밤마다 도적이 출몰하는데, 저의 집이 비록 넉넉하지 못하오나 밖에서는 부자인 줄 알므로 두려워 마음을 놓을 수 없사오니, 도난(盜難)을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하니라.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후로는 마음을 놓으라. 도적이 절로 멀리 가리라." 하시더니 과연 그리되니라.
15
또 보경에게 하명하셔서 유불선(儒佛仙) 세 자를 쓰게 하신 다음, 종도들에게 '뜻 가는 대로 한자씩 짚으라." 하시므로 보경은 불자를 짚고, 또 한 사람은 유자를 짚으니 "불은 노불(老佛)이요, 유는 부유(腐儒)니라." 하시니라.
16
동곡에 행재하실 때 하루는 황응종(黃應鍾)이 와서 뵙고 선경부인에 관한 진당대부의 명을 고하니 상제님께서 김형렬, 김자현, 김보경, 한공숙 등에게 말씀하시기를 "가정사는 부명(父命)대로 처리하리니 너희들이 증인이 되니라." 하시니라.
17
11월에 전주에 임어하시니 마침 민요(民擾)가 일어나서 인심이 소란하니라. 보경에게 하명하시기를 "병욱이 국가의 중책을 맡았으니 소란한 인심을 잘 진압하여 그 직책을 다하여야 하리라. 그 방략(方略)을 어떻게 정하였는지 물어 오라." 하시니라. 보경이 병욱에게 명을 전하니 상제님께 와서 뵙고 "무능한 저로서 물 끊듯 하는 민요를 진압할 방략이 없사오니, 하교하여 주시옵소서" 하고 아뢰니라. 상제님께서 "내가 가름하여 진압하리라." 하시고 이날 저녁부터 큰눈을 내리시며 기후를 혹냉하게 하시니, 방한장비(防寒裝備)가 없이 모인 군중이 부득이 해산한 후 많은 눈이 3일간 계속 내리므로 다시 모이지 못하여 소요가 절로 진정되니라.
18
12월에 원평에 행재하실 때 어사 박재빈(朴齋斌)이 전라북도 7읍 군수를 파직하고 전주에 출두하려 하매, 군수 권직상(權直相)의 직위도 위태로우니라. 병욱은 이때 장교로서 직상과 친분이 있을 뿐 아니라, 직상이 파직되면 자기도 또한 낭패될 일이 많으므로 근심하여 상제님께 그 대책을 여쭈니 "그 일을 무사히 풀어 주리니 안심하라." 하시니라. 그 후 박어사의 면관비훈(免官秘訓)이 전주에 이름으로써 해결되니라.
19
동곡에 임어하시니 김갑진(金甲振)이 여러 해 된 나병으로 얼굴과 손발에 부종이 나고 눈썹이 다 빠졌는데, 상제님의 신성하심을 듣고 와서 고쳐 주시기를 간청하니라. 상제님께서 갑진으로 하여금 정문 밖에서 방을 향하여 서게 하시고, 형렬 등 여러 사람에게 대학 경일장(經一章) 장하(章下)를 읽히신 후에 돌려보내시더니 갑진의 병이 나으니라.
20
동곡 앞의 술장수 전순일(全順一)이 병으로 오랫동안 앓아누워 상제님께 한번 뵙기를 원하더니, 상제님께서 공숙을 거느리시고 임어하셔서 말씀하시기를 "나 있는 곳에 주안상을 차려 오라." 하셨으나 상을 차려 오지 않음으로 나가시며 "의원이 떠나니 병자는 문밖에 나와 전송하라." 하시니라. 순일이 간신히 사람을 붙들고 일어나 문밖에 나와서 절하며 전송하매 병이 곧 나았음에도 상을 차려 오지 않자, "그 사람이 구미(口味)를 회복하지 못하여 신고(辛苦)하리라." 하시더니 과연 입맛을 잃어 두어 달을 고생하니라.
21
하루는 종도들을 거느리시고 모악산 용안대(龍眼臺)에서 여러 날 행재하실 때, 마침 큰 눈이 와서 교통은 두절되고 양식은 두 끼분밖에 없음으로 종도들이 걱정하니라. 상제님께서 아시고 "그 남은 양식 전부로 식혜를 빚으라." 하시므로 종도들이 굶게 됨을 염려하면서도 식혜를 지어 올리매, 종도들과 나누어 진어하시니 곧 눈이 그치고 일기가 따뜻하여 쌓인 눈이 삽시간에 녹아 양식 걱정이 없어지니라.
22
순일의 이웃집 술장수 김사명(金士明)의 17세 된 아들 성옥(成玉)이 급병으로 죽으매, 반나절이 넘도록 살리려고 백방으로 힘써도 회생의 가망이 없으니라. 사명의 처가 황망하여 죽은 아이를 안고 동곡에 당도하니, 상제님께서 미리 아시고 "약방이 안 되려니 송장을 안고 오는 자가 있도다." 하시니라. 사명의 처가 성옥을 눕혀 놓고 살려 주시기를 애걸하니, 상제님께서 죽은 아이를 무릎 위에 눕히시고 배를 만져 내리시며 허공을 향하여 큰 소리로 "미수(眉叟)시켜 우암(尤庵) 부르라." 외치시고 침을 죽은 아이의 입에 넣으시니, 문득 항문으로 피고름을 쏟으며 큰 울음소리와 함께 살아나니라. 이에 미음을 먹이시고 걸어서 돌아가게 하시니라.
23
동곡 김창여(金昌汝)가 묵은 체증으로 음식을 먹지 못하여 고통하므로 상제님께서 불쌍히 여기시고 평상에 눕히신 다음, 배를 어루만지시며 형렬에게 다음의 한시를 외우게 하시니 곧 나으니라. 調來天下八字曲 淚流人間三月雨 葵花細沈能補袞 萍水浮踵頻泣抉 조래천하팔자곡 누류인간삼월우 규화세침능보곤 평수부종빈읍결 一年月明壬戌秋 萬里雲迷太乙宮 淸音蛟舞二客簫 往劫烏飛三國塵 일년월명임술추 만리운미태을궁 청음교무이객소 왕겁오비삼국진
24
전주 용머리고개 앉은뱅이 김모(金某)가 가마를 타고 와서 고쳐주시기를 애원하므로 상제님께서 앞에 앉히시고, "이 담뱃대를 따라 일어서라." 하시며 담뱃대를 천천히 들어 올리시니 그 사람이 그대로 하여 무릎과 다리를 천천히 펴며 일어서니라. 이에 형렬에게 명하셔서 다음의 주문을 외게 하신 후에 그 사람에게 마당에서 걷게 하시고, 광찬에게 명하셔서 회초리로 다리를 때려 달리게 하신 다음, 가마를 버리고 걸어서 가게 하시니라. 이때 사례금 30냥을 받으셔서 큰길가 주막에서 길 가는 행인들에게 음식을 사 주시니라. 曳鼓神 曳彭神 石蘭神 東西南北中央神將 造化造化 云吾命令吽 예고신 예팽신 석란신 동서남북중앙신장 조화조화 운오명령훔
25
금구 수류면(水流面) 구밀안 최운익(崔雲益)이 "사경에 이른 아들을 살려 주소서." 하고 애원하니, 상제님께서 타이르시기를 "병자의 얼굴이 심히 못나 일생에 한을 품었으므로 그 혼백(魂魄)이 이제 청국 심양(瀋陽)에 가서 돌아오기를 싫어하니 어찌할 수 없노라." 하시니라. 운익이 그 아들의 얼굴을 보신 듯이 말씀하심을 신기하게 여기고 살지 못하리라는 말씀에 더욱 슬퍼하면서도 굳이 약을 간청하니, 사물탕(四物湯) 한 첩을 지으셔서 약명을 "구월음(九月飮)"이라 써 주시므로 약을 가지고 집에 돌아가니 아들이 이미 죽어 있으니라. 운익이 돌아간 후에 종도들이 구월음의 뜻을 여쭈니 "9월에 '장시황어여산하(葬始皇於驪山下)'라 하였으니 살지 못할 뜻을 표시함이니라. 만일 굳이 약을 청하다가 얻지 못하면 한을 품을 것이므로 약을 지어 주었노라." 하시니라.
26
동곡 박순여(朴順汝)의 60여 세 된 모친이 병으로 위독하여 회복할 가망이 없음으로 초상 치를 준비를 하는데, 상제님께서 그 집에 임어하셔서 순여에게 "장에 가서 초상에 쓸 물건이 쓰이지 않게 하여 달라는 심고를 정성껏 하고 돌아오라." 하시어 보내시니라. 이어 사물탕 한 첩을 달이신 다음, 그 병실 문밖에서 3칸 거리의 땅을 장방형으로 파시고 그 약을 부으시며 "병이 이미 장기(葬期)에 이르렀으니 약을 땅에 써야 되리라." 하시니 병자가 곧 회생하니라. 순여가 장으로부터 돌아오매, 하문하시기를 "장에서 누구에게 심고하였느뇨?" 하시니 "선생님께 심고하였나이다." 하고 아뢰니라. 상제님께서 미소를 지으시며 장례에 쓸 술과 안주를 가져오게 하셔서 이웃 사람들과 나누어 진어하시니라.
27
종도들에게 하교하시기를 "파리 죽은 귀신이라도 원망이 붙으면 삼계공사가 아니니라." 하시니라.
28
또 "예로부터 처녀나 과부가 죽인 사생아(私生兒)와 그 밖의 모든 불의아(不義兒)의 압사신(壓死神)과 질사신(窒死神)이 철천의 원을 맺어 탄환과 폭약의 정(精)이 되어 세상을 진멸하게 하느니라." 하시니라.
29
"다른 사람이 만일 나를 구타하면 그의 손을 만져 위로하여 줄지니라." 하시니라.
30
"원수를 풀어 은인과 같이 사랑하면 덕이 되어 복을 이루느니라." 하시니라.
31
"악을 악으로 갚으면 피를 피로 씻는 것과 같으니라." 하시니라.
32
"나를 모르는 자가 나를 헐뜯느니 내가 다시 헐뜯음으로써 갚으면 나는 더욱 어리석은 자가 되리라." 하시니라.
33
"남의 비소(鼻笑)를 비수(匕首)로 알며 남의 조소(嘲笑)를 조수(潮水)로 알라. 대장이 비수를 얻어야 적진을 헤치고, 용이 조수를 얻어야 천문에 오르느니라." 하시니라.
34
형렬이 여쭈기를 "세상 사람들이 선생님을 광인(狂人)으로 여기나이다." 하니 말씀하시기를 "이전에 거짓말로 행세할 때에는 신인(神人)이라 이르더니, 이제 참말을 하니 도리어 광인이라 하도다. 광인은 경륜(經綸)도 못 세우고 건사도 못하느니, 후일에 광인으로 여기던 자가 광인이란 말을 듣던 자에게 절할 날이 있으리라." 하시니라.
35
어떤 종도가 상제님께 추종함을 남이 비소하므로 괴로워함을 보시고, 타이르시기를 "남의 비소를 잘 받아 쌓으면 내어 쓸 때에 비수 쓰듯 하리라." 하시니라.
36
형렬에게 말씀하시기를 "이 시대를 지내려면 남에게 폭을 잡히지 말지니라. 너는 광인이 되지 못하니 농(弄)판으로나 행세하라." 하시니라.
37
한 종도가 남의 일을 비방함을 들으시고 말씀하시기를 "각기 제 노릇을 제가 하는데 어찌 남을 시비하느뇨?" 하시니라.
38
종도들에게 하교하시기를 "허물이 있거든 다 풀어 버리라. 만일 하나라도 남아 있으면 신명(身命)을 그르치느니라." 하시니라.
39
또 "이때는 신명시대니라, 삼가 죄를 짓지 말라. 새 기운이 돌 때 신명들이 불칼을 휘두르며 '죄지은 것을 내어놓으라.' 하면 그때 정신을 차리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40
보경이 옛 허물을 생각하여 근심하므로 하교하시기를 "일찍이 '내 앞에 낱낱이 생각하여 풀어 버리라.' 하였거늘 아직도 남은 것이 있느냐? 이후로는 다시 생각하지 말라." 하시니라.
41
또 "창생이 큰 죄를 지은 자는 천벌(天罰)과 신벌(神罰)을 받고 작은 죄를 지은 자는 인벌(人罰)과 자벌(自罰)을 받느니라." 하시니라.
42
"유부녀(有夫女)를 범하는 것은 천지의 근원을 끊는 것과 같아서 워낙 죄가 크므로 내가 간여하지 아니하여도 천리(天理)가 갚느니라." 하시니라.
43
"죄는 남의 천륜을 끊는 것보다 더 큰 죄가 없느니라." 하시니라.
44
"죄 중에 노름죄가 크니라. 다른 죄는 홀로 짓는 것이로되 노름 죄는 남까지 끌어들이고 또 서로 속이지 않고는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는 까닭이니라." 하시니라.
45
"수운 가사에 '난법난도하는 사람 날 볼 낯이 무엇인가?' 하였으니 난법난도의 죄를 짓지 말라. 돌이킬 수 없는 천지의 대죄니라." 하시니라.
46
"안으로는 불량하고 겉으로만 꾸며대면 누가 능히 분별하리오. 그러나 신명은 아느니라." 하시니라.
47
"새 기운이 돌 때 오장이 바르지 못한 자는 수숫대 꼬이듯 죽고, 거짓말한 자는 쓸개가 터져 죽으리라." 하시니라.
48
"일신수습(一身收拾)이 중천금(重千金)이요, 경각안위(頃刻安危)가 재처심(在處心)이니라." 하시니라.
49
"나는 생장염장(生長斂藏) 사의(四義)를 쓰느니 곧 무위이화(無爲而化)니라." 하시니라.
50
"예로부터 생이지지(生而知之)를 말하나 이는 그릇된 말이라, 천지의 조화로도 풍우(風雨)를 지으려면 무한한 공부를 들이느니 공부하지 않고 아는 법은 없느니라. 정북창(鄭北窓) 같은 재주(才주)로도 '입산삼일(入山三日)에 시지천하사(始知天下事)라.' 하였느니라." 하시니라.
51
"생각에서 생각이 나오느니라." 하시니라.
52
"신보(神報)가 인보(人報)만 같지 못하니라." 하시니라.
53
"모든 일을 알기만 하고 변통을 못하면 모르는 것만 못하느니 될 일을 못되게 함보다 안될 일을 되게 하여야 하느니라. 손빈(孫嬪)의 재주는 방연(龐涓)으로 하여금 모지마릉(暮至馬陵)하게 함에 있었고, 제갈량(諸葛亮)의 재주는 조조(曺操)로 하여금 화용도(華容道)에서 만나게 함에 있었느니라." 하시니라.
54
"글도 않고 일도 않는 자는 사농공상(士農工商)에 벗어난 자니 쓸데가 없느니라. 하시니라.
55
"안다는 자는 다 죽으리니 아는 것도 모르는 체하여 어리석은 자처럼 행동하라. 남이야 어떻게 알든지 실지(實地)만 있으면 좋으리니, 길가에 좋은 꽃을 심어두면 아이도 꺾고 어른도 꺾느니라." 하시니라.
56
"가장 두려운 것은 박람박식(博覽博識)이나 한 일에 일심을 쏟으라." 하시니라.
57
"마음은 성인의 바탕으로 닦고, 일은 영웅의 도략(韜略)을 취하라." 하시니라.
58
"예로부터 상통천문(上通天文)과 하달지리(下達地理)는 있었으나 중통인의(中通人義)는 없었느니, 너희가 비로소 인의를 통하리라. 위징(魏徵)은 '밤이면 상제를 섬기고, 낮이면 당태종(唐太宗)을 도왔다' 하나 나는 사람의 마음을 빼었다 넣었다 하노라." 하시니라.
59
"도를 잘 닦은 자는 그 정혼(精魂)이 굳게 뭉쳐 사후(死後)에 천상에 올라 영원히 흩어지지 아니하나, 도를 닦지 않은 자는 정혼이 흩어져서 연기와 같이 사라지느니라." 하시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