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극진경

제목 태극도 - 무극진경 3장
1
구천상제님께서 계묘(癸卯 : 도기 전 6, 단기 4236, 서기 1903)년 정월에 전주에 행행하셔서 서원규(徐元奎)의 약방에 행재하시니 김병옥(金秉旭) 김윤찬(金允贊) 등이 추종하니라.
2
한 종도가 상제님께 여쭈기를 "금년에는 어떤 곡식종자를 심음이 좋으리이까?" 하니, 말씀하시기를 "일본 사람이 녹줄을 띠고 왔으니 일본종을 심으면 녹줄이 따라 들리라." 하시니라.
3
장익모(張益模)가 어린 아들을 지나치게 사랑함을 보시고 말씀하시기를 "복은 위에서 내리는 것이요, 아래에서 치오르지 않느니 자식보다 부모를 잘 공경하여야 하느니라." 하시니라.
4
3월에 전주에 행재하실 때 장효순(張孝淳)의 딸이 어려서부터 횟배를 앓아 해마다 달포씩 서너 번 고생하더니, 이해에는 두어 달이나 계속되어 생명이 위태로우니라. 효순이 고쳐 주시기를 애원하니 상제님께서 그 사위를 부르셔서 "부부끼리 벽을 끼고 서로 등을 맞추어 서라." 하시니 명하신 대로 하매, 딸은 낫고 사위가 옮아 앓으므로 상제님께서 그 몸을 어수로 만져 낫게 하니시라.
5
상제님께서 형렬과 다른 종도들에게 하명하시기를 "옛적에는 동서양 간에 교통이 없었으므로 신명도 또한 서로 넘나들지 못하니라. 이제는 기차와 윤선으로 수출입하는 화물의 표호(標號)를 따라 서로 통하여 다니므로 조선신명들을 서양으로 보내어 역사시킬 길을 틔우려면 재주(財主)가 있어야 하리니 천거(薦擧)하라." 하시므로 병욱이 전주 부호 백남신(白南信)을 천거하니라.
6
상제님께서 남신에게 하문하시기를 "그대의 재산이 얼마나 되느뇨?" 하시니 "30만 냥은 되나이다" 하고 아뢰니라. 다시 "20만 냥으로써 그대의 생활을 넉넉히 하겠느뇨?" 하시니 "그러하옵니다." 하고 아뢰므로 "이제 쓸 곳이 있으니 돈 10만 냥을 내놓놓겠느뇨?" 하시니라. 남신이 망설이다가 드디어 승낙하니 이에 10일의 기한으로 한 증서를 받으셔서 병욱에게 맡기시니라. 기한이 이르매 남신이 돈을 준비하여 각지(刻紙)로 열두 장을 올리니 상제님께서 공사를 행하신 다음, 병욱에게 맡기셨던 증서를 불사르시고 각지는 돌려주시며 말씀하시기를 "돈은 이미 요긴하게 공사에 썼으니 다행이로다." 하시니라. 남신이 현금으로 쓰지 않으심이 송구하여 다시 여쭈기를 "이 돈으로 현물을 무역(貿易)하여 이익을 증식(增殖)함이 어떠하나이까?" 하니 "그것은 모리(謀利)하는 일이므로 불가하니라." 하시고 또 "남신의 일이 용두사미(龍頭蛇尾)와 같으니라." 하시니라.
7
또 말씀하시기를 "이 지방을 수호(守護)하는 신명들을 서양으로 보내어 큰 난리를 일으키리니 이후로는 외인(外人)들이 주인 없는 빈집 드나들듯 하리라. 그러나 그 신명들이 일을 다 마치고 돌아오면 제집 일은 제가 다시 주장하게 하리라." 하시니라.
8
김윤근(金允根)이 묵은 치질로 수십 년 앓다가 이해에는 더욱 심하여 기동을 못 하고 누웠더니, 상제님께서 불쌍히 여기시고 "아침마다 시천주(侍天呪)를 일곱 번씩 외우라." 하시므로 윤근이 그대로 하니 곧 나으니라.
9
고부 이도삼(李道三)이 간질로 고생하면서 고쳐 주시기를 애원하므로 말씀하시기를 "나를 믿으면 나으리라." 하시고 누워서 자지 못하게 하시더니, 밥 먹은 뒤에 배가 아프고 대변에 담(痰)이 섞여 나오다가 14일 만에 나으리라.
10
상제님께서 하교하시기를 "이때는 해원시대(解寃時代)라, 사람도 이름 없는 사람이 기세(氣勢)를 얻고, 땅도 이름 없는 땅에 길운(吉運)이 돌아오느니라." 하시니라.
11
또 "양반을 찾는 것은 그 선령(先靈)의 뼈를 깎아 내는 것 같아서 망하는 기운이 따르느니, 그러므로 양반의 기습(氣習)을 속히 버리고 천한 사람을 우대하여야 좋은 시대가 속히 이르리라." 하시니라.
12
"사람이 행신(行身)과 처사와 언습(言習)을 제 본성대로 할 것이요, 억지로 꾸며서 점잔과 교식(巧飾)을 내는 것은 삿(邪)된 일이니라." 하시니라.
13
"보화(寶貨)라는 글자에 낭패(狼狽)라는 패(貝)자가 붙어 있느니라." 하시니라.
14
"돈이란 것은 순환지리(循環之理)로 생겨서 쓰는 것이요, 구하여 쓸 것은 못 되느니 '백년탐물(百年貪物)이 일조진(一朝盡)이라.' 이르느니라." 하시니라.
15
"선천에는 돈이 눈이 어두워서 불의(不義)한 사람을 따랐거니와, 이후로는 그 눈을 틔워 선한 사람을 따르게 하니라." 하시니라.
16
"선천 영웅시대(英雄時代)에는 죄로써 먹고살았으나, 후천 성인시대(聖人時代)에는 선으로써 먹고살리니 죄로써 함이 장구하랴, 선으로써 함이 장구하랴? 이제 후천중생(後天衆生)으로 하여금 선으로써 먹고살 도수를 짜 놓았노라." 하시니라.
17
"마음을 깨끗이 하여야 복이 이르느니, 남의 것을 탐내는 자는 도적의 기운이 따라 들어 복을 이루지 못함이니라." 하시니라.
18
"부귀한 자는 빈천을 즐기지 아니하고 강한 자는 잔약(孱弱)함을 즐기지 아니하며, 지혜로운 자는 어리석음을 즐기지 아니하나, 나는 그들을 멀리하고 오직 빈천하고 병들고 어리석은 자를 가까이하느니 그들이 곧 내 사람이니라." 하시니라.
19
"부귀한 자는 자만자족(自滿自足)하며 그 명리(名利)를 증대하기에 몰두하여 딴생각이 나지 아니하니 어느 겨를에 나에게 생각이 미치리오? 오직 빈궁한 자라야 제 신세를 생각하여 도성덕립(道成德立)을 기다리며 운수 조일 때마다 나를 생각하리니 그들이 곧 내 사람이니라." 하시니라.
20
안내성(安乃成)에게 하교하시기를 "불의로써 남의 자제를 유인하지 말며, 남의 재화(財貨)를 탐내지 말고 남과 싸우지 말며, 도한(屠漢)과 무격(巫覡)을 천하게 대하지 말라." 하시니라.
21
또 "마음 지키기가 죽기보다 어려우니라." 하시니라.
22
"경위(經緯)는 천하가 같으니라." 하시니라.
23
"풍역취이식(風亦吹而息)하느니 남의 박해에 굽히지 말라. 만사동정(萬事動靜)이 각기 때가 있느니라." 하시니라.
24
"한고조(漢高祖)는 소하(蕭何)의 덕으로 천하를 얻었으나, 너희들은 베풀 것이 없으니 오직 언덕(言德)을 잘 가지라. 남의 말을 좋게 하면 덕이 되어 남이 잘되고 그 남은 덕이 밀려서 점점 큰 복이 되어 내게 이르며, 남의 말을 나쁘게 하면 해가 되어 남이 망하고 그 남은 해가 밀려서 점점 큰 재앙이 되어 내게 이르느니라." 하시니라.
25
"외식(外飾)을 버리고 음덕(陰德)에 힘쓰라, 덕은 음덕이 크니라." 하시니라.
26
유찬명(柳贊明)에게 하교하시기를 "훼동도자(毁東道者)는 무동거지로(無東去之路)하고, 훼서도자(毁西道者)는 무서거지로(無西去之路)니라." 하시니라.
27
또 "도적도 남에게 나누어 주면 덕이 되어 죄를 면하는 자가 있느니라." 하시니라.
28
"뱀도 인표(人票)를 얻어야 용이 되느니 남의 말을 좋게 하면 덕이 되느니라." 하시니라.
29
"인망(人望)을 얻어야 신망(神望)에 오르느니라." 하시니라.
30
"내 밥을 먹는 자라야 내 일을 하여 주느니라." 하시니라.
31
"식불언(食不言)이라 하였으니 남의 먹는 일을 말하지 말며, 침불언(寢不言)이라 하였으니 남의 누행(陋行)을 말하지 말라." 하시니라.
32
"우리 일은 남 잘되게 하는 공부니 남이 잘되고 남은 것만 차지하여도 되느니라. 전명숙(全明淑)이 거사할 때에 상인(常人)을 양반 만들려는 뜻이 있었으므로 죽어서 조선명부가 되었느니라." 하시니라.
33
"너희들은 손에 살 생(生)자를 쥐고 다니니 득의지추(得意之秋)가 아니냐? 또 삼천(三遷)이라야 일이 이루어지느니라." 하시니라.
34
"시속에 길성소조(吉星所照)를 찾으나 그것이 따로 있음이 아니라, 덕을 잘 닦고 사람을 잘 대우하는 데 비치느니 이 일이 곧 피흉취길(避凶就吉)하는 길이니라." 하시니라.
35
"시속에 어린 학동들에게 통감(通鑑)을 가르치나, 이는 곧 첫 공부를 시비부터 가르침이니 어찌 마땅하리오?" 하시니라.
36
"전쟁사(戰爭史)를 읽지 말라. 승전자(勝戰者)의 신은 춤을 추되 패전자(敗戰者)의 신은 이를 가느니라. 자고로 도가에서 글 읽는 소리에 신이 감응(感應)함이니라." 하시니라.
37
형렬에게 하교하시기를 "망하는 살림살이 아낌없이 버리고 새 배포를 꾸미라. 만일 애석(愛惜)하여 놓지 않고 붙들면 몸까지 따라 망하느니라." 하시니라.
38
또 "속언에 화복(禍福)이라 이르느니 이는 복보다 화가 먼저 이름을 말함이니라. 화를 잘 받아 견디어야 복이 따르느니라." 하시니라.
39
"선천에 안락을 누리는 자는 후천에 복을 받지 못하리니 고생을 복으로 알고 잘 참으라. 만일 고생을 당하여 이기지 못하면 오는 복을 물리침이니라." 하시니라.
40
"나는 해마(解魔)를 위주(爲主)하는 고로 나를 따르는 자는 먼저 복마(伏魔)가 발동하느니, 복마의 발동을 잘 받아 이겨야 복이 따르느니라." 하시니라.
41
"속언에 '무척 잘산다' 이르느니 척이 없어야 잘산다는 말이니라. 남에게 원억(冤抑)을 짓지 말라, 척이 되어 갚느니라. 또 남을 미워하지 말라, 그의 신명이 먼저 알고 척이 되어 갚느니라." 하시니라.
42
"이웃 사람이 인정으로 주는 음식이 비록 맛이 없거나 먹고 병들지라도 사색(辭色)을 보이지 말라, 오는 정이 꺾여 척이 되느니라." 하시니라.
43
"어떤 사람을 대하든지 마음으로 반겨하면 그 사람은 몰라도 신명은 알아서 갚느니라. 또 '일반지덕(一飯之德)을 필보(必報)하라'는 말이 있으나 나는 '반반지은(半飯之恩)도 필보(必報)하라.' 하노라." 하시니라.
44
"남이 힘들여 말할 때에 설혹 그릇된 점이 있더라도 일에 낭패만 없으면 반박하지 말라. 그도 또한 척이 되느니라." 하시니라.
45
"이제 모든 선령신(先靈神)이 발동하여 그 선자선손(善子善孫)을 척신의 손에서 빼내어 새 운수의 길로 인도하려고 바쁘게 서두르니라." 하시니라.
46
"대군을 거느리고 적진을 격파함이 영화롭기는 하되 인명을 잔멸(殘滅)하는 일이므로 악척이 되어 앞을 막느니라." 하시니라.
47
7월에 쌀값이 오르고 농작물에 병충해가 심하여 인심이 불안하므로 종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연사(年事)도 내가 맡은 일이니 금년 농사를 잘되게 하여 민록(民祿)을 풍족하게 하리라." 하시고 크게 뇌전을 일으키시더니 이로부터 병충해가 그치고 농사가 잘되니라.
48
가을에 상제님께서 동곡 김성천(金成天)의 채소밭에 뜨물과 삭음이 일어 채소가 전멸하게 되었음을 보시고 말씀하시기를 "죽을 사람에게 기운을 붙여 소생하게 함과 같이 이 채소를 소생시키리라." 하시고 곧 비를 내리시니라. 그 후에 출타하셨다가 환어(還御)하셔서 자현(自賢)에게 하문하시기를 "성천의 채소가 어찌 되었느냐?" 하시므로 자현이 "지난번 비로 소생하여 그 작황이 이 부근에서 으뜸이 되었나이다." 하고 아뢰니 "사람의 일도 이와 같이 병든 자와 죽은 자라도 기운만 붙이면 일어나느니라." 하시니라.
49
하루는 원평에서 여러 사람을 향하여 큰소리로 "이제 우박이 올 터이니 장독 뚜껑을 짚으로 덮고 새끼로 잘 얽어 놓으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편편파쇄(片片破碎)되리라." 하셨으나 여러 사람은 무심히 듣고 최명옥(崔明玉)만이 하교대로 행하였더니, 과연 두어 시간 후에 큰 우박이 내려 여러 집의 장독이 모두 깨어지니라.
50
하운동에 행재하실 때 영학(永學)이 항상 도술(道術) 통하기를 상제님께 발원(發願)하더니, 하루는 부채에 학을 그려 주시며 "집에 돌아가 이 부채를 부치며 칠성경(七星經)을 무곡(武曲) 파군(破軍)까지 읽고 이어서 대학을 읽으라, 그러면 도술을 통하리라." 하시니라. 영학이 부채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다가 남기(南基)의 집에 들르니, 그 아들이 부채의 아름다움을 탐내어 빼앗고 주지 아니하니라. 영학이 그 사유를 말하고 돌려주기를 간청하였으나 남기의 아들이 그 말을 듣고 더욱 탐내므로 부득이 빼앗기고 돌아가니라.
51
그 후에 남기의 아들이 부채를 부치며 대학을 읽으매 신통력(神通力)을 얻어 신명을 부리고 물을 뿌려 비를 오게 하니라. 남기가 기뻐하며 아들을 교사(敎唆)하여 상제님의 도력(道力)을 빼앗고자 아들을 데리고 하운동에 이르니, 상제님께서 미리 아시고 남기의 무의(無義)함을 꾸짖으시며 그 아들의 신력(神力)조차 거두시니라.
52
김병욱(金秉旭)이 관찰사(觀察使)의 심부름으로 남원에서 오랫동안 머무르며 세금을 감독하여 받았는데, 이때 조정에서는 러시아와 결탁하여 일본을 억제하려고 일본에 망명한 박영효(朴泳孝)의 일파를 친일파로 지목하여 찾아서 처형하니, 병욱 또한 연루(連累)되니라. 8월에 서울로부터 다수의 포교가 전주에 와서 병욱을 찾다가 남원에 있는 줄 알고 남원으로 향하니라.
53
이때 상제님께서 남원으로 거동하셔서 병욱이 그동안 받은 세금을 주인에게 맡기게 하신 다음, 병욱을 데리시고 성 밖으로 나가시니 병욱은 그 까닭을 모르니라. 10여 리를 가시다가 병욱의 선산(先山) 재실에 임어하셔서 산지기에게 "남원의 형편을 살펴 오라." 하시므로 산지기가 이내 남원에 갔다 와서 포교들이 병욱을 찾는 상황을 아뢰니 병욱이 비로소 크게 두려워하니라.
54
이튿날 가마를 준비하여 내교(內轎)로 변장하게 하셔서 병욱을 태우시고 전주 원규(元奎)의 약방으로 가시니라. 원규가 병욱을 보고 크게 놀라 말하기를 "그대가 어찌하여 사지를 벗어났으며, 또 어찌 이러한 위지(危地)로 들어왔느뇨? 너무 급한 일이므로 통지할 겨를이 없어 그대의 집안에서는 어찌할 줄을 모르고 다만, 울음으로 지내느니라." 하니라. 병욱이 그 자세한 경과를 들으니 포교들이 남원에 도착한 때와 자기가 상제님을 따라 남원을 벗어날 때가 거의 같은 시각이니라. 병욱이 감복하여 사뢰기를 "선생님께서는 진실로 천신(天神)이시오니 만일 이러한 애휼(愛恤)과 구원이 아니었으면 어찌 사지(死地)를 면하였사오리까?" 하니라.
55
포교들이 남원에 와서 병욱을 수색하다가 도로 전주로 돌아가 군수 등을 독려(督勵)하여 엄탐(嚴探)하니라. 병욱이 원규의 약방이 번화한 대로변에 있어 은신처(隱身處)가 못됨을 근심하니 상제님께서 "모든 것은 나를 믿고 근심하지 말라. 내가 장차 너의 환난(患難)을 풀어 주리라." 하시니라. 이로부터 병욱이 원규의 약방에 오랫동안 머무르는데, 밤에는 자주 병욱을 데리시고 거리에서 소풍을 하셨으나 병욱은 한 번도 아는 사람의 눈에 뜨이지 아니하니라.
56
병욱에게 하문하시기를 "러시아와 일본이 국가의 허약함을 틈타 서로 세력을 각축(角逐)하매 조정에는 당파가 분립(分立)하여 혹은 일본과 친선하려 하고, 혹은 러시아와 결탁하려 하니 너는 어떤 주의를 옳게 여기느뇨?" 하시니라. 병욱이 "인종의 차별과 동서양의 구별로 보아 일본을 친선하고 러시아를 멀리함이 옳을까 하나이다." 하고 아뢰니 "네 말이 옳으니라. 이제 만일 서양의 세력을 물리치지 아니하면 동양은 영원히 서양 사람에게 짓밟힌 바 되리라. 그러므로 서양의 세력을 물리치고 동양을 붙잡음이 옳으니 일본 사람을 임시 일꾼으로 내세우리라." 하시니라.
57
또 "내가 너의 화액(禍厄)을 풀기 위하여 러일전쟁을 붙이고, 일본으로 하여금 러시아를 물리치게 하리라." 하시니라. 종도들은 그 말씀을 믿지 아니하고 서로 수군거리기를 "한 사람의 액운을 풀기 위하여 '두 나라의 전쟁을 붙인다.' 하심도 망령이려니와 '약소한 일본으로 하여금 막강한 러시아를 물리치게 한다.' 하심은 더욱 황당(荒唐)한 말씀이라." 하였으나 12월에 러일전쟁이 일어나 일본군이 승리하여 국경을 넘으니 이에 국금(國禁)이 해이(解弛)되고 드디어 병욱의 혐의도 풀리니라.
58
이때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서양 세력을 물리치기 위하여 천지대신문(天地大神門)을 열고 공사를 행하리라." 하시며 49일을 한 도수로 정하시고 동남풍을 불게 하시니라. 그 기한이 며칠 남았을 때 한 사람이 와서 치병(治病)하여 주시기를 애걸하였으나, 상제님께서 공사에 전심(專心)하셔서 상대하지 않으시자 병자가 한을 품고 돌아가더니 문득 동남풍이 그치니라. 상제님께서 그제야 급히 그 병자에게 사람을 보내셔서 공사로 인하여 살피지 못한 사유를 말하여 안심하게 하신 다음, 병을 고쳐 주시며 "한 사람이 원한을 품으매 능히 천지기운을 막는다." 하시니라. 그 후에 러시아가 육지와 바다에서 연패하니라.
59
겨울 어느 날 김보경(金甫京) 등 종도들이 시좌하고 있는 자리에서 혼자 말씀으로 "내 일이 어찌 이렇게 더딘고?" 하시니라. 보경이 여쭈기를 "무엇이 그리 더디나이까?" 하니 "내 이제 신명을 시켜 진인(眞人)을 찾아보니 아직 아홉 살밖에 되지 않은지라, 내 일과 때가 이렇듯 더디니 어찌 민민(憫憫)하지 않으리오?" 하시니라. 보경이 다시 "그러하오면 저희들은 모두 무용지인(無用之人)이요, 또한 지금까지 헛되이 수종(隨從)하옴이니까?" 하고 상고하니 "체유기체(體有其體) 용유기용(用有其用)이며, 시유기시(時有其時) 인유기인(人有其人)이니라." 하시니라.